한 사람의 아들로, 한 사람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산다는 건 때로는 세 개의 다른 삶을 동시에 사는 것 같다.
엄마에게는 여전히 어린 자식이고, 아내에게는 의지할 남편이며, 아이에게는 세상 전부인 아빠. 각자의 기대와 필요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면 막막함이 앞을 가릴 때가 있다. 어디에 더 무게를 둬야 할지,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고민만 깊어진다.
최근 엄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단순히 몸이 아프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투병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갑작스레 중환자실로 옮기며, 이제는 호전 상태를 기원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내는 둘째를 임신하면서 첫째 때와는 전혀 다른 입덧을 겪고 있다.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점점 더 지쳐가는 모습에 마음이 무겁다. 아이도 폐렴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단순 감기겠거니 했지만, 매일 링거를 맞으며 기침하는 아이를 보며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말도 못 하는 아이가 작은 몸으로 견디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엄마의 병실, 아이의 병원, 그리고 아내 곁을 지키며 나는 점점 무기력해진다.
모두가 나를 필요로 하지만,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어디에도 충분히 닿지 못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짓누른다. 누구에게 더 쏠리는 것은 또 다른 부담과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대학 시절 강의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무언갈 선택한다는 것은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 그땐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 이제는 조금 더 와닿는다.
완벽한 아들, 남편, 아빠가 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저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무감각하거나 무책임해지지 않으려 애쓴다. 모든 걸 다 해낼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래도 마음을 다하려 노력한다.
좋지 않은 일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 믿는다. 시간이 흐르면 오늘의 힘겨움은 추억이 되고, 조각이 될 것이다. 오늘의 나는 그 속에서도 계속 나를 찾아간다.
오늘도 나는 아빠라는 이름으로,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모두를 위해 나를 내려놓으면서도, 그들을 통해 나를 다시 찾는다. 이 삶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잘하고 있다고 믿으려 한다.
힘든 하루가 끝나면, 아이가 잠든 뒤에야 겨우 소파에 앉아 숨을 고른다.
지친 아내의 다리를 주무르며, 내일 엄마의 차도를 기원한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더 지칠 수도, 더 버거울 수도 있겠지만, 오늘의 나도 해냈으니 내일의 나 역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며, 나는 내일도 이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