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컬처 2018년 5월호: 회화작가 필립 꼬네 인터뷰
프랑스 신구상주의 대표작가 필립 꼬네(Philippe Cognée)가 4번째 국내 개인전을 10년 만에 열었다. 이번 전시에는 군중과 탑, 벽을 주제로 한 신작 22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거대한 화면에 군중과 그들이 밀집해 사는 탑, 그리고 건물 외벽의 면면을 회화에 담았다. 화면 위에 남은 흐릿한 형상은 추상에 가깝다. 형상을 일부러 뭉개며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 한지희 기자
Art 10년 만에 한국에서 갖는 개인전이다. 전시를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PC 그동안 비형상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매달렸다. 예전 화면에는 형상이 더 도드라졌다면, 이번 전시에 공개한 작업은 추상 또는 상상에 가깝다. 새롭게 변화된 작업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싶었다.
Art 전시는 군중, 탑, 벽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각 주제에 대해 간략히 설명 부탁한다.
PC 군중과 탑은 서로 연결된다. 개인이 모여 군중을 이루는데 군중의 모습은 수평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탑은 수직적이다. 나는 군중, 탑 연작을 통해 끊임없이 확장하며 꽉 채워진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연작은 구체적인 대상을 그린 것이 아니다. 단지 군중이나 탑의 이미지를 차용해 최종적으로 화면에 그 이미지만 남긴 것이다. 벽 연작도 마찬가지다. 그림 속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는 실제 그림을 다시 화면 위에 옮긴 것으로, 이를 통해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벽돌의 붉은색이 사람의 살색 같기도 하다. 벽은 결국 건물의 껍질이니까,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가 살갗에 남긴 문신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림에 형상이나 내러티브를 뚜렷하게 담기를 거부한다. 단순히 이미지 하나로 남는 작업을 하고 싶다.
Art 밀랍에 안료를 섞어 그린 후 필름을 덮고 다리미질을 하는 기법이 독특하다.
PC 내가 원하는 균형감이 생길 때까지 그림을 덧 그리고, 다리미질을 반복한다. 물론 실패할 때도 많다. 나는 완전히 내 능력으로 작업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이 기법에 매력을 느낀다. 구체적인 형태를 그리지만 다리미질로 형태를 뭉개고 흐트러트리는 과정을 거쳐 이를 현실을 넘어서는 이미지로 확장시킨다. 벽돌을 그린 후 이를 뭉개면 벽돌 그 자체보다는 벽돌이 주는 이미지가 더 부각된다. 나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무너지면서 확산되는 것을 원한다. 밀랍화 기법은 이러한 이미지 확산에 최적인 방식이다.
Art 전시 서문에 회화란 ‘일상의 탈출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의미를 설명해달라.
PC 매우 철학적인 질문이다. 그러나 작품을 통해 어떤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나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을 때 내 감성이 끌어 올라간다.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 작업도 다른 사람의 감성을 일깨우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작업을 통해 사람, 사회와 대화한다. 때때로 그들의 반응은 내가 열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Art 앞으로 어떤 주제 혹은 어떤 매체를 다룰 것인가?
PC 답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다. 앞으로 어떻게, 어디로 갈지 구체적인 계획을 잘 세우지 않고 상황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의 생각은 좀 더 그림 내면에 다가서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형상도 많고, 내러티브가 있어 읽을 수 있는 작업을 해왔다면 이제는 좀 더 그림 안으로 들어가 내면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현실을 해체해야 하지 않은가. 이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아주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멀리 나아가기보다는, 좀 더 추상적인 이미지가 가미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인터뷰 진행: 한지희
불한/한불 통역: 이배
원고 작성: 한지희
편집, 감수: 김재석
디자인: 진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