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ch Dec 05. 2018

하랄트 제만, 비주류의 수호자

아트인컬처 2018년 3월호 'Abroad' ❷

<강박의 미술관>전은 하랄트 제만의 삶과 화려한 이력을, 그가 남긴 수많은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조명한다. 그의 개인적 이야기는 현대미술의 역사이기도 하다. 미술사의 내러티브를 벗어나 비주류 예술, 민족예술, 주술사의 창작물 등 시각문화의 전 영역을 포섭한 제만. 전시의 큐레이터들은 신화가 된 인물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공동 기획자이자 ‘하랄트 제만 전문가’로 통하는 도리스 천에게 이번 전시와 제만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 한지희 기자


인터뷰 페이지. 왼쪽 아래 이미지는 도리스 천 프로필, 오른쪽 이미지는 전시도록과 연구서 표지다.


Art <강박의 미술관>전은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뿐 아니라 아키비스트로서의 면모도 조명한다. 전시를 통해 특별히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DC 이번 전시는 제만이 수집한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그가 큐레이터로 보낸 50년을 탐구한다. 그의 아카이브는 작가와 주고받은 서신, 사진, 제안서, 전시 티켓이나 홍보물, 또 그가 모은 특이한 오브제를 포함한다. 제만은 150개 이상의 전시를 기획할 때마다 늘 철저히 공부했다. 전시를 통해 동시대 미술가를 옹호하는 한편, 전통적 미술사의 서사에 도전했다. 시각문화의 영역을 벗어난 다른 예술장르도 적극적으로 포섭했다. 언젠가 제만은 큐레이터로서 ‘강박의 미술관’을 설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적이 있다. 자신의 방대한 아카이브와 장서를 그렇게 칭하기도 했다. ‘강박의 미술관’에는 그가 어떤 연구 주제 또는 소재에 관심을 뒀는지, 여러 주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뚜렷이 드러났다. 큐레이터들은 아카이브의 연결망을 전시로 보여주고 싶었다.


Art 제만은 굉장히 비전형적인 방식으로 아카이브를 정리했다고 알고 있다. 다른 이의 편의를 고려해서 제만이 생전에 아카이브 활용 팁을 남겼을 것 같지도 않고. 게티센터 연구팀이 자료를 정리하느라 고생 많았겠다. 정리 과정은 어땠나?

DC 제만의 아카이브는 이탈리아어를 쓰는 스위스 남부 자치주인 티치노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지아다. 원래 시계 공장이었던 건물이라 아카이브도 ‘파브리카’ 즉 공장이라 불렀다. 3층짜리 공장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자료로 가득 차 있었다. 제만이 여러 섹션으로 구분해놓긴 했지만 언뜻 미로처럼 보였다. 개별 작가를 위한 자료 모음집만 해도 2만 2,000개였으니. 이외에도 사진과 전시, 프로젝트를 위해 모은 온갖 서류가 소장돼 있었다. 장서 섹션에는 작가 모노그래프와 미술사조, 컬렉션, 도시에 대한 책이 많았다. 그 외에도 무정부주의의 역사, 파타피직스, 공상과학을 다룬 책 등이 무수했다. 아카이브 구조는 제만의 머릿속을 보여주는 지도 같았다. 시간 순으로 정리하지 않고 자신의 눈에 비친 자료 간의 유사성 또는 연관성에 기반을 두었다. 그가 써 내려간 대안적인 미술사나 마찬가지였다. 아카이브 구성품을 목록으로 옮겨 적는 작업은 물론 만만찮았다. 게티센터로 제만의 장서와 자료들이 도착하자마자 카탈로그와 아티스트를 담당하는 팀이 제만이 분류해놓은 방식을 최대한 살리는 선에서 자료들을 정리했다. 그래야만 훗날 연구자들이 제만 특유의 사고방식과 분류법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Art 아카이브 중에는 제만이 순수한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모은 물건과 특정 전시를 위해 모은 자료가 뒤섞여있을 것이다. 최근 당신은 한 논문에서 제만의 강박관념이 크게 원초적 강박과 부차적 강박으로 구분된다고 지적했다. 둘의 차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DC 제만은 전시를 통해 스스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이라 묘사한 어떤 세계관을 보여주려 했다. 자신이 쓴 에세이 <강박의 미술관>에서 그는 강박관념을 모든 종류의 창의적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인 힘이라 강조했다. 이어서 물 불 흙 공기 4 원소와 엮인 강박관념은 원초적 강박이라 정의하고, 이는 무언가를 창조하고 실험하는 방식으로 발산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방화벽(불에 대한 집착)이나 1912년 페르디낭 슈발이 환영을 보고 나서 지은 석조건물 <꿈의 궁전>(흙에 대한 집착) 같은 것. 주류 예술은 부차적 또는 반사적 강박으로 분류된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의식적으로 의도를 갖고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강박관념을 상징체계에 숨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현실을 이상적으로 보이게도 만들지만.


Art 그렇다면 둘 사이에 어떤 위계질서가 있다는 말인가? 

DC 제만이 만든 미술관은, 명작이 아니라 그가 ‘강력한 의도(intensive intention)’라 불렀던 태도가 드러나는 작품들의 미술사에 치중했다. 흔히 말하는 명작은 제만이 흥미를 느꼈던 부분, 즉 창조 과정 이면에서 작동하는 강박적인 힘을 잘 보여주지 못하니까. 하지만 전시뿐 아니라 아카이브에서도 원초적 강박과 부차적 강박 사이에 위계나 서열을 짓지는 않았다. 제만은 모든 작가를 동등하게 대했다. 공식적인 예술가 수업을 받았든, 독학을 했든, 아니면 미신, 주술, 환영의 영역에서 예술을 다루든 간에 말이다.


Art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런데 제만의 업적을 이야기할 때 잘 강조되는 부분은 아니지 않나.

DC 그는 전시에서 앞서 말한 부류에 속하는 이들의 작업을 세상에 선보이고, 아카이브에는 그들의 유산을 보존했다. 제만은 적극적으로 아방가르드 예술을 옹호하고 국제 비엔날레 기획에 참여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관심사는 이보다 훨씬 넓고 깊었다. 제만은 비주류 예술과 민속예술,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의 작업, 주술사처럼 예술가로 간주되지 않는 이들이 만든 시각적 창작물에 정말로 매료됐다. 국가나 지역에 초점을 맞췄던 후반기의 전시에선 스위스 폴란드 오스트리아-헝가리 발칸반도 벨기에에 눈을 돌렸다. 분명 당시 예술계의 중심은 아닌 곳이었다.


Art 이 전시를 계기로 제만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 예상하는지?

DC 우리는 전시에서 제만이 커리어를 통틀어 끊임없이 덜 주목받았던 인물, 지역, 작품을 조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다. 제만에 대한 평가가 바뀐다기보다는 이런 점을 더 알아주는 이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Art 당신은 전시 기획에 참여하기 이전 박사 후 연구를 수행할 때부터 하랄트 제만이 미술사에 남긴 업적을 연구해왔다. 이 인물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DC 나는 작가들이 세운 미술관에 대한 조사를 하다가 제만이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됐다. 그는 1972년 도쿠멘타5에서 최초로 주제전 형식을 선보였다. 그는 마르셀 뒤샹, 클래스 올덴버그, 벤 보티에, 헤르베르트 디스텔, 마르셀 브로타스가 발명한 미술관을 포함한 ‘예술가들의 미술관’을 전면적으로 다뤘다. 이것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기존의 미술관을 비판했다. 먼저 이들이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해야 할지 결정하는 기준을 다시 정해버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예술을 창작하는 과정과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을 구별하는 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연구를 진행하다가 나는 그가 도쿠멘타가 끝난 후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자신의 미술관을 고안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큰 흥미를 느꼈다. 본인이 기획한 전시 내용에서 영감을 얻어, 전시 방법론을 정의하고 보존하는 수단으로 다시 자신만의 미술관을 만들다니, 영리하지 않나.


Art 앞으로도 제만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계획인가?

DC 물론이다. 현재 제만의 ‘강박의 미술관’을 포함해 동시대 미술에 등장한 ‘가상미술관’ 개념과 발전 양상에 대한 단행본을 준비하고 있다. 제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머릿속에만 있는 미술관’은 그가 이제껏 기획한 모든 전시와 앞으로 해보고 싶은 전시들이 담긴 공간이었다. ‘강박의 미술관’은 공적기관과는 달리 제만이 최초의 독립큐레이터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보장했고, 그 덕분에 탄생한 업적을 온전히 보존했다. 그의 아카이브는 이 가상의 미술관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제만의 아카이브에 담긴 자료를 토대로 앞으로도 나뿐 아니라 수많은 연구자, 큐레이터들이 그의 업적을 계속 파헤쳐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인터뷰 진행: 한지희

영한 번역: 한지희

원고 작성, 편집: 한지희

감수: 김재석

디자인: 진민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