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통문-201]
1. '시천주'란 사람(과 만물)이 모두 한울님을 모셨으므로, 이를 스스로 체득+체감+체리하고[내유신령], 세상 사람(과 만물)과 더불어 함께 현현+체현+구현하며[외유기화], 그렇게 살아가라[각지불이]는 말씀입니다. 시천주 안에 이미 사인여천과 체천행도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2. 시천주의 의미를 "'천'이 사람에게 모셔져 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이는 "사람이 '천'을 모시고 있음"으로 이해하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의미한 정도일 수도 있고, 천양지차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말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시천주의 이해를 '천'을 주체로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가, '사람'을 주체로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가 '시'라는 동명사를 주체로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근기와 수행의 정도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오늘 느껴 안 바는, 천(진리)은 '사람(만유)'을 통해 현현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도외시하고 한울님 모심을 생각하고, 말하고, 바란다는 것은 물을 버리고 해갈을 구하는 것과 같고, 씨를 뿌리지 아니하고 싹이 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며, 김매지 아니하고 가을걷이를 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해월신사는 이를 두고 "敬天만 있고 敬人이 없으면 이는 農事의 理致는 알되 實地로 種子를 땅에 뿌리지 않는 行爲와 같으니, 道 닦는 자 사람을 섬기되 한울과 같이 한 後에야 처음으로 바르게 道를 實行하는 者니라."라고 하셨습니다.
4. 오늘의 세상 사람들은 점점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더 편안해하고 반려동물과 친해하며, 로봇이나 가상인물이 사람 구실을 하는 세상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이든 로봇이든 또는 가상인물이든 그들 또한 '만유'로서 한울님이라는 점만 보면, 굳이 '경인'에 구애되지 않고 '경물'로 나아가는 세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경천과 경인과 경물은 그중 어느것 하나도 경시되거나 간과되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다만,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중에서도 간주관적으로 강조될 요소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의 세계에서 크게 문제시되는 것은 '불경물'의 사태라기보다는 '불경인'의 사태입니다.
5. 오늘 세상 사람들은, 사람들이 물[物=자연환경]을 함부로 대하고, 인간중심주의 문명을 발달시키는 데서 오늘의 기후위기-지구위험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과 셋은 모르는 말입니다. 근대문명은 인간중심주의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제국주의 국가, 그리고 국가 내에서는 일부 특권 지배계층, 그리고 인간의 측면에서 보아도 인간의 욕심이 견인해낸 자본주의 문명에 침윤된 인간의 삶의 행태가 '인간중심주의를 빙자하여' 만들어낸 괴물적이고 병적이며, 패륜적인 문명일 뿐입니다. 그 패륜적, 자멸적 근대문명이 자아낸 것이 오늘의 지구위험시대라는 점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을 위한 일(발전, 성장)"이라고 호도하면서, 오히려 인간을 도구화(생산)하고 대상화(소비)하는 문명이 근대문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되찾아야 할 것은 '오히려 (新)인간중심주의'입니다. 다만, 이 '인간중심주의'는 '한울중심주의'와 '사물중심주의'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6. 이런 문명적인 차원이 아니라도, 오늘 우리의 일상에서 사람을 떠나서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떠나서 학문을 이야기하며, 사람을 떠나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공정이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헛다리 짚는 데에 불과한 일입니다.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수용하고 향유하지 못하는 어떠한 교리나 학문과 주의주장도 모두괴설이며 요언에 불과합니다. '본질은 훌륭한데, 현재화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말은 사람을 도외시하고 '이론, 교리, 학설'을 우선시하는 반+몰인문(인간)적인 태도입니다. 오직, 사람에게 진리가 있고, 한울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심이 있고, 섬김이 있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살릴 줄 알고, 살릴 수 있고, 살릴 맘을 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곧 길이요, 진리이고, 그것이야말로 시천주의 참뜻입니다.
7. 이렇게, 다시, 이전의 허물을 참회하고, 도를 선생께 깨달아, 수도의 길로 나아갑니다. 내일은 또 모시는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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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다음과 같은 댓글을 주고 받아, 여기에 함께 게시합니다.
Taechang Kim ..... 기본적으로 공감합니다.다만 세 가지 엿줍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1. 신 인간중심주의라는 말가운데서 중심이라는 단어의 이력 때문에 본뜻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스니까? 좁은 소견입니다만 인간본위주의 같은 말은 어떻습니까? 2.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에서 사람이라는 우리말에 담겨진 뜻이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어떻습니까? 가령 중국어의 'ren人'이나 영어의 human이나 일본어의 '히토人'하고 뜻이 같다고 여기십니까? 3. "시천주"의 "시"의 세가지 차원의 상관연동을 설명해주신 것이 심금에 와닿습니다만 거기서도 주체는 사람이겠지요? 가령 경천-경인-경물의 세 차원이 상관연동한다고해도 사람이 준재하고 생각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경 자체가 작동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말의 사람을 어떻게 뜻밝힘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동학적-천도교적 사람 이해(인간이해가 아님)의 기본을 가르쳐 주십시요.
박길수--Taechang Kim ..... 좋은 공부거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페북의 글을 쓸 때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쓰는 것이어서,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헤아려서 썼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렇듯 조목조목 짚어 주시니, 저도 다시 한번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질문하신 부분에 대해,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신(新)인간중심주의’라는 말 대신에 ‘인간본위주의’라는 말을 써서, ‘(서구, 근대)인간중심주의’라는 말이 가진 원죄를 회피하고 우회하는 건 어떠냐는 질문 겸 제안의 뜻(진정)을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신인간중심주의’든 ‘인간본위주의’든 목표에 이르기까지 걸어야 할 거리는 같아 보입니다. 어느 말이든, 진정을 담아 거듭 이야기하고, 그 진정을 현실의 삶에서 구현함으로써 그 말뜻을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2. 人은 ‘두 사람이 기대어 있는 모습’이라는 정도 외에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일본어 히토[人]의 의미에 대해서는 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더 깊은 의미를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쓴 ‘사람’의 의미는 지금 문(아파트문이든 연립주택의 문이든 단독주택의 문이든)을 열고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어른, 아이, 착한 사람, 나쁜 사람, 남자, 여자, 장애인, 비장애인 등 필부필부, 장삼이사, 남녀노소 모두를 포함하는, ‘그냥 사람’입니다. 3. 뭐니 뭐니 해도 동학 천도교적인 사람 이해의 최후 관견은 ‘인시천인(人是天人; 해월신사법설, 개벽운수)’이라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의암성사 시대에 “인시천인이라는 말은 ‘한울이 만물을 화생함에 뜻을 형체에 부쳐 임의로 활용한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때 ‘人(인)’은 ‘人與物(인여물)’로서 곧 만유(萬有=萬物, 萬事, 萬理)의 의미라는 뜻도 되겠습니다. 사람이라는 봉우리는 개[犬]라는 봉우리, 소[牛]라는 봉우리, 산(山)이라는 봉우리, 돌(石)이라는 봉우리처럼 한울님이 형체로 화생한 것들 중의 하나이지만, 딱 머리 하나만큼 그 높이가 높아서 다른 봉우리들을 모두 조망(眺望)할 수 있는, 그리하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군봉(群峰)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봉우리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Taechang Kim - 박길수 .... 성의껏 응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상시 매사에 진정성이 느껴져서 말씀과 생각의 뿌리를 알고 싶었고 이분이라면 동학-천도교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주실 것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과 사람을 같은 뜻으로 쓰는 관례와는 달리 제가 나름대로 공부한 시천주적 체득으로는 사람이라는 우리말에 담긴 뜻이 더 잘 어울리지않나해서 여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뜻풀이를 말뿌리로 살펴보면 삶+앎=삶의 참모습을 깨달아 안 이이고 삶의 참모습은 하늘님이 안에 모셔져 있음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하는 것입니다. 일본말의 히토는 히(=혼, 영, 불 등등)+토(곳, 문,등등)=영이 들어와서 머무르는 곳 또는 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깊이 사귄 일본인 학자 가운데는 웬만한 한국사람보다 시천주라는 사람 이해가 빠릅(/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어의 人에는 수평적 수직적 관계의 뜻이 없이 사람이 서있는 모습을 옆에서 본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모심이라는 뜻을 담기가 어렵지요. 인간이란 말은 원래 불교용어로 사바세계와 같은 의미로 사람이 아니라 세상 또는 세계라는 뜻이 강합니다. 그러니까 저 자신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인간중심주의라는 말로는 시천주적 사람이해에 터잡은 입장이나 관점을 표명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게 되니까 사람중심주의라든가 사람본위주의라는 말을 쓰는 편이 좋지않을까샐각한거지요. 국제적인 활동을 하다보면 우리말 낱말에 담긴 깊은 뜻을 알고 한글말이 한자어의 부족하거나 왜곡된 의미나 이미지를 시정 보충 개선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저 친근감을 느꼈던 분이라 솔직한 감상을 말씀드린 거니까 가볍게 참고사항 으로 들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박돈서 경천에서 경인으로, 다시 경물로 나아감은 자연스런 흐름 아닐까요? 다만 시대에 따라 치유책은 다를텐데 현대문명은 물질문명이 극에 달아 총체적 난국이니 전방위 대책이 나와야 될 것인데 그게 천도책이 아닐까싶군요. 시천주로 체천행도하면 광제창생!
하경숙 박돈서 답글이 훌륭합니다. 더 간단 단순하게 요약해서 말하면 "시천주"라는 의미부터 이해하기 싑게 간단하게 풀어줘야 합니다. 즉 시천주란 고착된 개념이 아니라 항상 "천주"안에서(내유신령 안) 움직여주는 약동성을 가져야(지기금지...부터 시작되는 주문수련) 비로소 그게 진정한 사물을 창출하는 시천주가 된다는 걸!
홍경실 제가 끼어들 계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천주 사상 포덕의 최일선에 계신 분의 말씀이라서 그 영향력을 감안하여 한 말씀 드리지 않을 도리가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중심주의란 이미 21세기에 퇴물이 된 단어입니다. 제가 누누이 논문을 통해 말씀드렸듯이, 이제 인간중심주의로부터 인간존중과 생명존중의 시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점에서, 해월의 시상이 더 시의성을 띤다고 할 수 있겠지요! 시의성이 다는 아니겠지만, 시대의 옷을 입고서 어찌 맞지 않는 옷을 고집할 수 있을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