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통문-228]
1.
며칠 전, 문득 아스라한 기억의 한 자락을 떠올랐습니다. 내가 열 살 때까지 살던 고향 마을, 아마도 여덟살이나 아홉살 때쯤에 처음으로 전깃불이 들어왔던 그 궁벽(窮僻)한 마을에서, 가장 심한 '욕'(핀잔)은 "염치도 없다!"는 것이었다는 기억입니다.
그래 봐야, 제가 직접 체험한 말은 어린애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 속의 말이었지만, 내 기억 속에, 그 말은 어린애들이 제 스스로 알아서 쓰는 말이 아니라, 어른들 사이에서 가장 최악의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을 흉내내서 하는 말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염치도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함께 어울릴 수 없을 만큼 (되먹지 못한, 모자라는, 후안무치의)사람', '무리에서 내쳐져야 할 만큼 (되먹지 못한, 모자라는, 후안무치의) 사람'쯤으로 인식되었던, 그 기억이 문득, 그러나 생생히 떠올랐던 것입니다.
2.
가난하고, 그래서 그만큼, 혹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정서와 율법이 살아 있던 마을에서 '무리에서 내쳐져야 할 만큼의 사람'이란 '함께 어울릴 수 없을 만큼의 사람'이란, 생각해 보면, 결국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과도 통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시기의(윤리적, 정서적, 그리고 경제적) 삶의 조건에서 '무리로부터 내쳐진다'는 것은 사라답게 살아갈 기반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물론.
바로 그 시기(=1970년대 초반)은 급격한 이농향도가 정부 주도로 전개되던 때였습니다. 하여, 한편으로는 너나없이, 몸도 마음도 가난한 농촌(고향)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향하던 때였습니다. 경제적으로나 문화(교육)적으로나. 저도 바로 그 시기에 부모님의 '교육적 희망' 덕분에 부산으로 전학(이사)을 하게 된 셈이니까요.
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상당한 기간 동안 일년에 몇 차례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이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의례였으므로) 제가 아는 / 느끼는 고향의 정서에서 '염치없음'은 '멸문지화'나 '망신(亡身 = 죽음)'에 버금가는 죄악이었음이 분명합니다.
4.
동학을 창도하신 수운 최제우 선생도 '염치'를 말씀하셨습니다.
4-1.
대저 세상(大抵世上) 인도(人道) 중에 믿을 신(信) 자 주장(主張)일세. 대장부(大丈夫) 의기범절(義氣凡節)
신(信) 없으면 어디 나며, 삼강오륜(三綱五倫) 밝은 법(法)은 예(禮) 없으면 어디 나며, 대장부(大丈夫) 지혜범절(智慧凡節) 염치(廉恥) 중에 있었으니, 우습다 저 사람은 자포자기(自暴自棄) 모르고서 모몰염치(冒沒廉恥) 장난하니 이는 역시 난도자(亂道者)요, 사장(師丈) 못한 차제도법(次第道法) 제 혼자 알았으니 이는 역시 난법자(亂法者)라. 난법난도(亂法亂道) 하는 사람 날 볼 낯이 무엇인고. 이같이 아니 말면 제 신수(身數) 가련(可憐)하고 이내 도道 더럽히니 주소간(晝宵間) 하는 걱정 이밖에 다시 없다.
- 용담유사, 도수사
여기서, 수운 선생은 앞서 제가 떠올린 기억과 유사하게 "'염치없음을 무릅쓰고 행동(모몰염치)'하는 사람은 나(수운, 스승)를 차마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대장부(=동학도인)의 지혜범절은 '염치'가 기본이 되어야 그다음에 비로소 말할 수 있다고 단언하며, 모몰염치로 장난하는 사람은 결국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자포자기]이며, 난법난도하는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수운 선생은 '염치 있음'에 대하여 밤낮으로 걱정한다, 오직 염치에 대해서만 생각한다[이밖에 다시없다]고까지 단언합니다.
4-2.
운수(運數) 관계 하는 일은 고금(古今)에 없는 고로 졸필졸문(拙筆拙文) 지어 내어 모몰염치(冒沒廉恥) 전(傳)해 주니, 이 글 보고 웃지 말고 흠재훈사(欽哉訓辭) 하여스라.
- 용담유사, 권학가
여기서, 수운 선생은 동학의 비결(秘訣)은 '후천 운수'에 관계하는 비전(秘傳, 秘典)이므로 나의 글은 그에 비하면 '졸필졸문'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전하는 일이 너무도 긴절(緊切)한 일이므로 "염치를 무릅쓰고" (이 졸필졸문을) 전한다고 말씀합니다. 통상적으로 해석하자면, 당신의 글에 대하여 겸양(謙讓)하는 표현이고, 그 진정을 헤아려 보자면, 이 가르치고 당부하는 말[訓辭]을 제발 공경하는 마음가짐[欽哉]과 자세로서 받들어 공부하고 또 공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懇切)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염치없음'은 가장 '밑바닥인 상태'를 의미하는 만큼, 그만큼 당신을 낮춘 것이며, 그 '낮춤'만큼, 이 글을 받을 제자(세상사람)을 높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염치'도 역시 그 말 자체만 떼어놓고 보면, "더 이상 비천(卑賤)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4-3.
몰몰(沒沒)한 지각자(知覺者)는 옹총망총 하는 말이 ‘지금은 노천(老天)이라 영험(靈驗)도사 없거니와 몹쓸 사람 부귀(富貴)하고 어진 사람 궁박타’고, 하는 말이 이뿐이오, 약간(若干) 어찌 수신(修身)하면 지벌(地閥) 보고 가세(家勢) 보아 추세(趨勢)해서 하는 말이 아무는 지벌(地閥)도 좋거니와 문필(文筆)이 유여(裕餘)하니 도덕군자(道德君子) 분명타고 모몰염치(冒沒廉恥) 추존(推尊)하니 우습다 저 사람은 지벌(地閥)이 무엇이게 군자(君子)를 비유하며 문필(文筆)이 무엇이게 도덕(道德)을 의논(議論)하노.
- 용담유사, 도덕가
여기서, 수운 선생은 당시의 세상사람 가운데 '토호세력가(지벌)'나 '문벌세력(가세)' 그리고 '곡학아세 하는 문필가(문필)'를 추켜세우며 아우구용(阿諭苟容: 남에게 잘 보이려고 구차스럽게 아첨함)하는 사람들을 "염치없는 사람"이라도 단정합니다. 오늘날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몰염치 추존"하는지 돌아보면, 이 말의 전범(典範)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5.
오늘의 세태에서 "모몰염치"의 대표 주자로 저는 '언론'을 꼽고 싶습니다. '기레기'라는 말이 유행하는 세태를 떠올리면 제 말이 과언이 아니라는 데에 동의하실 줄로 믿습니다.
다음으로 정치인이나 졸부귀(부동산 투기꾼)자들도 "모몰염치꾼"임은 두 말 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 말이 "모든 기자" "모든 정치인"이나 "모든 집을 사려는 사람"을 퉁쳐서 "모몰염치꾼"으로 단정하고 단죄하려는 뜻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한 제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유'(=모몰염치의 기레기, 정치인, 졸부귀자)의 사람들은 오히려 "언급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므로, 굳이 말할 거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테지요.
제가 굳이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우리 자신의 '염치 있음'과 '염치 없음'에 대해서 입니다. 여기서 '우리'란,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시민 일반'이거나 '인민 다수' 또는 '민중들'일 테지요. 좀 더 좁혀서 말하자면, "양심껏, 남과 더불어(서로 도와가며),도우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피해 주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밝게, 바르게 깨끗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지금 염치 있게 살아가고 있나?
부모님과 스승님과 한울님(천지)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
생각합니다.
6.
결론적으로, "일반적인 경향에서" 오늘 이 세상의, 좁게는 우리 (대한민국) 사회의 많은 어려움과 괴로움과 위기들은 '우리들'의 염치없음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는 오늘 저녁입니다.
심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