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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1. 2022

謙讓立德 正己和人

[개벽통문-231]


1. 

"겸양해야 덕이 서고, 나를 바르게 하여 사람들과 화합한다[謙讓立德 正己和人]"는 말씀은 해월 최시형 선생이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하는 예법[對人接物]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2. 

오늘 우리 시대는 일반 시민들의 평균적인 학력 수준도 높아졌거니와, 각종 대중매체와 거대한 정보베이스[DB, 인터넷], 그리고 개인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의 도움으로 역사상 그 어떤 시기보다 더 똑똑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천도교의 가르침으로 보거나, "천부인권"과 같은 서양사상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개개인의 권리와 인격적 가치 또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치부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 처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설령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불행하거나 뒤쳐진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주눅들 필요 없이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수많은 멘토들이 충심으로 조언합니다.


3. 

당장 어떤 '사실'(지식)을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 스마트폰'을 검색하면 금방 확인하여 '알 수' 있고, 지금 비록 가진 것이 없더라도, "이 세상의 행복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주며, 나름 자수성가하여 서울 자가(自家)+중견기업 임원 이상이라도 된다면 그 또한 제자랑을 부러 하지 않아도 절로 뭇 사람의 부러움을 사며, 이도 저도 아니라면 소확행에 내 삶을 맡기면 되는 세상에, 당당하게 살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며 살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겠지요.


4. 

그런 만큼 우리 주변에서 보기 드물게 된 것이 겸양(謙讓)과 정기(正己)의 태도입니다. 피장파장, 각인각색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겸양'이라는 것 자체가 생뚱맞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부담감과 거부감을 안겨주는 태도라는 생각마저 하는 것이 오늘의 세태입니다. 당신의 겸양 따위는 필요없고, 대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아야 하며, 손해를 끼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 시대의 바람직한 에티켓이라는 것이지요. 도움 받기도 싫고, 도움 주기도 싫은 것, 싫다기보다는 그것이 결국은 굴레를 서로에게 씌우는 일이니, 각자가 자기 삶의 주체로서 "홀로 서기"하는 것이 서로 편안하고, 그러므로 행복으로 가는 안전한 길이라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이런 세태에서 정기(正己)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과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5. 

그런데, 겸양이 무력해진 세상에는 뜻하지 않게 쇳소리의 자기주장과 자기신념이 횡행합니다. 내가 '알므로' 당당하게 말하는 것일 뿐이며, 내가 '확인하였'으므로 조금도 내 뜻을 굽힐 생각이 없습니다. 정기의 뜻이 '개인적인 것'으로 위축된 사회에서는 이기적인 보신과 '나홀로 산다'는 슬픈 착각이 만연합니다. 쇠와 쇠가 부딪치면, 불꽃이 일 뿐입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맛집 순례'가 줄을 잇고, '나홀로 캠핑'이 붐을 이룹니다. 누구도 바란 바가 아니며, 누구도 조장한 것이 아니어서, 누구의 책임도 물을 수 없어 보이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처럼, 각자가 자기 주장과 자기 신념을 내뱉으며, 제잘난 맛에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끝은 결국 '상처'로 이어집니다.


6. 

겸양도 고루한데, '덕(德)'이라고 하면 '선사시대' 소리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화(和)' 또한 요즘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으로 여겨질 듯합니다. 그러나 덕이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한울(하늘과 땅과 만물)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 또는 생명의 원천을 말하는 것이며 '화(和)'란 그 덕이 베풀어지는 방식을 지칭하는 한자어일 뿐입니다. '은덕(恩德)'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덕이란 곧 은혜와도 통하는 말이며(거의 동의이음어), '화합(和合)'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화란 결국 한울님의 덕 안에 나와 네가 하나임[=하나님]을 확인하는 체험으로부터 오는 느꺼움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동학에서는 이를 일러, '동귀일체(同氣一體)'라고 하고 역사속에서는 동성상응(同聲相應)' '동기상구(同氣相求)'라는 말도 이런 뜻을 보여줍니다. 


7. 

오늘까지 우리 인류가 구축해 온 문명이, 기후위기의 재난을 불러온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인류의 문명"이란 다름 아니라, 한울(하늘과 땅과 만물)에게 겸양하는 법을 잃어 버린 문명이며, 한울(하늘과 땅과 만물)과 더불어 살아가야 함[和合]을 잊어버린[忘失]한 문명입니다. 문명 차원, 지구적 차원의 이 일이 개인에게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지구를 '여섯 번째 대멸종' 시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개인 차원에서 경얌과 정기의 부족은 망신(亡身)을 자초하는 길임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이든 공동체(단체)든, 이렇듯 겸양과 정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득세할 때, 독식하는 승자가 있어서, 얼마간 성공하는 사람도 나올 수 있으나, 길게 보면, 그리고 그 단체(공동체) 전체로 보면 결코 성공이 오래가지 못하며, 기어이 불행으로 사태가 귀결되고 마는 것입니다. 


8. 

겸양은 덕을 세우는 근본이며, 나를 바르게 하면 이 세상이 바르게 되는 것이 참이며, 행복한 나와 세상으로 가는 출발점입니다. 


악한 사람은 선하게 대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나의 도가 바르면 저 사람이 반드시 스스로 바르게 되리니, 어느 겨를에 그 곡직을 가리고 장단을 비교하겠는가. 겸양은 덕을 세우는 근본이니라. 어진 것은 대인의 어진 것과 소인의 어진 것이 있나니 먼저 나를 바르게 하고 사람들과 융화하는 것은 대인의 어진 마음이니라.

惡人莫如善待 吾道正則 彼必自正矣 奚暇較其曲直長短哉 謙讓立德之本也 仁有大人之仁小人之仁 正己和人大人之仁心也 (해월신사법설, 대인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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