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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3. 2022

도담의 효능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개벽통문-231] 


1. 천도교인에는 두 가지 유형의 동덕이 존재합니다. "내가 안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유형과 "나는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유형이 그것입니다. 


2-1. "안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분들은 천도교 교리를 거침없이 논파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종교의 교리 역시 천도교 교리의 아류이거나 그보다 한 수 아래의 진리임을 다양한 논리로 펼쳐 보입니다. 그분들 가운데 어떤 분은 거침없는 어조로 다른 천도교인들이나 세상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내리며, 자신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분들(중립적), 납득하지 않는 분들(부정적)을 질타하고 난타하거나, 연민하고 읍소하기까지 합니다. 


2-2. 누가 보아도, 이분들-"안다"-에게 부족한 것은 겸양지덕입니다. 이분들이 거침없이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이분들은 "자신이 아는 것만 알지, 모르는 것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분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혹은 이 세상에는 "나만큼 아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호랑이가 없는 산에 토끼가 왕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에 호랑이가 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토끼가 왕노릇을 하는 격입니다.  


3-1. "모른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분들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대다수 말없는 천도교인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분들은 최대한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피치못하여 말해야 할 때마다 먼저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라는 말로 끝맺습니다.  


3-2. 이분들-"모른다"-은 사실은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지와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대개 꽤 오랫동안 천도교를 신앙해 온 분들이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았거나, 정규적인 교리교육(종학대학원 등)을 받은 경험이 없거나 하여, 자신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말할 기회를 얻지(훈련을 받지) 못하였고, 그런 이유로, 내가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 분들입니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가 아는 것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는 기회를 얻지 못하였고,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적'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분들입니다. 


4-1. 이런 점에서 "안다"고 말하는 천도교인이든, "모른다"고 말하는 천도교인이든 모두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때 "알지 못함"은 "진리를 알지 못함"이나 "지식 없음"이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이고,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다른 사람들은 아는 것이 무엇이고,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4-2. 이를 일러 경상도에서는 "본데없다"고 표현합니다. "배운 것이 없다"는 뜻도 되고,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뜻도 됩니다. "버르장머리"란 "버릇"의 뜻인데, 이때 버릇은 단지 "습관"의 의미가 아니라, "어른 밑에서 하나하나 가르침을 받으며 익힌 몸가짐" "예의범절"의 의미가 강합니다. 이는 깊은 학문이나 이론에 입각한 교육이 아니라 도제식으로 가르치거나 모범을 통해 가르치는 예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데없는 사람"은 "밥상머리 교육이 제대로 안 된 사람"인 셈입니다. 


5-1. "안다"고 말하는 분들은 대체로 "겸양지덕"이 태부족하고, "모른다"고 꽁무니부터 빼는 사람은 대체로 "과공비례"에 찌들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대화"입니다. 대화는 발화(주장)이 아니라 경청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저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저 사람이 말하는 바가 내가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를 분별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해 주고, 내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5-2. "안다"고 말하는 분들은 대화 대신에 발화(주장)로 치달려 갑니다. 치달리느라 바빠서, 다른 사람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바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거나, 혹은 "모른다"고 단정하고서 내 주장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간혹 상대방이 "아,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이렇게 알고 있다"고 대꾸하면, "그것은 잘못 아는 것"이라고 대꾸하거나 "내가 말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 고차원적인 다른 어떤 것"이라고 말을 바꾸어, 다시 발화를 계속합니다.


5-3. "모른다"고 말하는 분들은 경청하기보다 목석이 되는 길을 택합니다. 말하는 분이 무슨 말을 하든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그 말이 모드 옳은 말, 좋은 말, 아는 사람의 말이라고 얼핏 생각하며 듣지만,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맙니다. 애초부터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되고 맙니다. 


6. 도담(道談)은 이 양극단의 병폐를 치유하는 방법이며, 천도교인이 어떤 방식(수련, 경전, 설교)으로 공부를 하든, 이를 되새김질하여 진짜 내 살과 피가 되게 하는, 천도교밥을 먹는 시간입니다. 만사지는 식일완[萬事知食一碗]만사를 아는 것은 밥 한 그릇을 아는 것]이라고 할때, 식(食)은 실은 이러한 '되새김질'로서의 밥먹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도담이란,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이고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자리이며 시간이며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해월 신사는 "나는 부인과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배울 만한 것은 배우고 스승으로 모실 만한 것은 스승으로 모시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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