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라키비움-동학천도교수도공부
[편집자주] 1. 개벽라키비움-천도교수도공부모임에서는 매월 2회 공부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일에는 석현민 교수님의 발제에 이어 질의 응답과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라명재 동덕이 정리하였습니다. 전반부는 주로 발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고, 후반부는 질의응답과 토론 중심으로 정리가 된 것입니다.
2. 천도교수련공부모임에서는 지난해 내내 '천도교 수련에 대한 검토, 체계화를 위한 시론'을 중심으로 발제-토론을 거듭하였고, 올해들어서는 국내외의 다양한 영성수련의 경향들에 대해 폭넓게 공부하면서, 천도교수련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하는 라맹재 동덕이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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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2023).3.2.
정리 : 라명재(중암)
현대인들은 두뇌중심 사고를 한다. 특히 안이비설신의 오관 중에서도 보이는 시각 중심의 사고를 한다. 자신이 본 것만 믿는다. 보지 못한 것은 신뢰하지 않고, 자신이 본 것은 조작된 영상이라도 의심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예부터 깨달음은 보는 것은 물론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심장 즉 마음으로 와 닿아야 자기 것으로 깨달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신사께서도 신앙의 시작은 ‘시지불견하고 청지불문하는’, 즉 오관을 넘어선 성령을 믿고 그를 느끼며 그에 고하며 그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하셨고, 그러한 성령을 언제 어디서나 가까이 부모님 섬기는 것처럼 하라고 하셨다. 그러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한 노력은 모든 문화권의 전통적인 수행에서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그러한 마음의 눈을 해부학적으로 퇴화된 제 삼의 눈이라 불리는 송과체를 활성화시키는 것에서 찾고자 하기도 한다.
송과체(송과선)는 제3뇌실 측벽에서 발달한, 빛을 수용하는 생체시계와 내분비기관으로 작용하는 기관이다. 송과체 세포는 하등척추동물에서 망막의 시세포와 아주 유사한 구조를 하며 고등할수록 감각세포로서의 특징이 소실된다. 포유류에서는 전부 호르몬을 분비하는 샘 세포가 된다.
송과체 세포에는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포유류에서 빛과 시간에 따른 빛의 리듬정보는 각각 망막과 시 교차상핵에서 교감신경을 거쳐 입력되어 송과체 세포에서 야간에 높은 멜라토닌 활동주기를 형성한다. 멜라토닌은 계절성 번식을 조절하고 빛에 의해 합성이 억제된다. 멜라토닌은 사람의 생체 리듬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낮이 되면 일어나고, 밤에는 졸리고 체온이 떨어지는 등의 변화에 영향을 준다.
보통 송과체는 빛과 관계하여 체내시간을 조절하는 기관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이것을 통해서 더 많은 빛을 감지하는 경우도 있다. 눈을 가리고도 앞을 보는 초능력자들은 이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보이며, 육감 또는 제3의 눈이 있다고 한다.
송과체는 하등동물일수록 더 발달해 있으며, 본능이 더 발달될수록 그 기능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인간의 송과체 능력은 많이 퇴화되어 있으나, 어릴 때는 일부 기능이 유지되고 성장하면서 점점 퇴화된다. 보통 10대 이전의 어린 나이에는 기능이 살아있으나, 20대에 가까워지며 대부분 퇴화된다.
감성적이고 본능적으로 빛을 감지하는 초능력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눈으로 보는 것처럼 실제적인 모습은 볼 수 없으나 그 모습이 연상될 정도의 느낌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일부 파충류, 양서류, 어류에 존재하는 두정안도 그러하다.
불교와 인도문화 등에 나오는 제3의 눈은 마음의 눈이라 하여 신성시 여기며, 세속에 찌들지 않은 근본적인 눈이라고 해석하여 불상의 이마에 또 하나의 눈을 장식하고 있다. 이 제3의 눈이라고 불리는 것이 송과체이다. 여기서 분비하는 멜라토닌은 우리가 일정한 시간이 되면 잠을 자고 몸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게 된다. 멜라토닌이 부족하면 우울해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성호르몬에도 영향을 주어서, 나이에 맞는 성욕 억제력을 제공한다. 나이가 들면 퇴화되기 때문에 잠이 줄어들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게 된다. 하루의 생체시계이기도 하면서 인생 전체의 생체시계이기도한 것이다.
우리의 뇌구조는 대뇌, 간뇌, 중뇌, 소뇌, 뇌교, 연수 등으로 되어 있는데, 대뇌가 이성적 판단을 하는 반면 나머지 뇌들은 신체에 관한 본능적인 움직임에 관여된다. 특히 간뇌는 진화론에 의하면 대뇌가 발달하기 이전의 오래된 뇌이며, 생존과 정서를 담당하는 뇌인데 여기에 송과체가 존재한다.
감각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체계다. 시각, 청각 등은 인간 뿐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감각기관이다. 그렇다면 송과체가 있는 간뇌에서 왜 빛을 감지하는지의 이유도 추리할 수 있다.
제3의 눈처럼 초능력과 같은 능력은 10대 초반까지만 가능하고, 그 마저도 동물에 비하면 큰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인간의 송과체는 10대 중반부터 퇴화를 겪으며 호르몬을 분비하는 역할만 감당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과체가 퇴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본능적인 능력, 한울님에게 받은 본래의 감각을 잃고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만이 남는, 시지불견의 세계를 잃고 오관의 세계로 스스로가 축소되고 갇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한 송과체의 석회화와 퇴화는 불소와 알미늄같은 중금속, GMO 식품같은 것들로 촉진된다고 한다. 반면에 단전호흡이나 충분한 물을 섭취하고 맨발로 지면을 느끼며 걷는 등의 수행으로 송과체의 퇴화를 늦추거나 햇볕을 쪼이며 밤에는 빛을 차단하여 멜라토닌 생성하는 송과체의 기능을 깨우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하늘과 땅이 덮고 실었으니 덕이 아니고 무엇이며, 해와 달이 비치었으니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며, 만물이 화해 낳으니 천지 이기의 조화가 아니고 무엇인가요”(해, 천지부모)
“태어난 후에 하늘이 품고 땅이 길러주는 자연한 이치와 기운 가운데서 자라나고 있음을 전연 알지 못하니 탄식할 일입니다.”(도결)
“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님의 살같이 하세요. 어머님의 살이 중한가 신발이 중한가요.”(성경신)
최근 지역마다 맨발로 걷는 숲길을 조성하고 있기도 하다. 맨발로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몸 안에서는 세포안팎으로 다양한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거기에서 에너지를 얻어 사용한다. 그 과정에서 활성산소가 생기고, 이는 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다. 이때 맨발로 걸으면 땅 속의 풍부한 자유전자가 몸 안으로 들어와 양전하를 띤 활성산소를 중화시킨다. 맨발로 걸으면서 암이 치유되고 고혈압 고혈당 등이 치유된다는 접지 이론이다.
그렇게 들어온 자유전자는 몸 안에서 에너지 대사의 핵심 물질인 ATP 생성을 촉진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안정화시키며 천연의 신경안정 작용을 한다.
또한 땅을 맨발로 밟으면 땅위의 돌, 나무뿌리, 나뭇가지 등이 발바닥을 자극하고 지압해준다. 거기에 발바닥의 아치가 압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근 골격계를 자극한다. 족저근막염 등의 통증이 자연히 완화되고 근육의 압축, 이완을 통해 혈액이 펌핑되어 순환이 좋아진다.
반면에 신발을 신으면 고무밑창이 땅과의 접지효과와 지압효과를 차단하고, 발바닥의 아치에 꼭 끼이게 만들어진 깔창이 아치의 스프링 기능을 차단한다.
이와 같은 맨발 걷기 관련 논문이 20~30편 있다. 미국 심장 전문의 스티븐 시나트라 박사는 2013년 ‘대체 및 보완의학 학회지’에 접지는 혈액의 점성을 묽게 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혈액이 끈적해지면 혈전이 생기기 쉽고, 혈전은 심근경색과 뇌졸중을 일으킨다. 그런데 맨발 걷기 즉, 발이 땅에 닿으면 혈액 속 세포끼리 밀어내는 힘이 활성화되면서 혈액이 묽어진다는 것이다. (박동창, 맨발로 걸어라, 국일미디어, 2022)
햇볕을 쬐는 것은 어떨까? 원래 생명은 주변 환경과 시간이 연동되어 있다. 야행성의 동물은 낮에 쉬거나 자고 밤에 활동을 하지만, 사람은 낮에 일하고 밤에 쉰다. 그것은 하루의 낮과 밤, 즉 해와 달의 움직임과 연동된 리듬이다.(circadian rhythm) 밤에 움직인다 해도 횃불이나 호롱불 등의 제한적 빛의 도움 아래 잠깐씩 하는 일이 전부였고, 1년의 주기도 마찬가지. 이것이 인류가 출현한 뒤 95% 이상의 기간 동안 채집생활하며 유지되던 생활 패턴이었다. 1년의 주기에도 씨뿌리는 시기를 놓치면 가을과 겨울에 굶어죽기 십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에는 전쟁을 할 때에도 한참 바쁜 농번기를 피하는 것이 철칙이었다.
이러한 생명의 연동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 전기를 이용한 인공적 빛의 사용이 일상화되고, 그로 인해 직업이나 개인적 습관들에서 밤낮이 뒤바뀌기 시작하면서이다. 그런 자연 시계와 개인 생체시계의 연동이 단절되면서 불면증에서 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질병이 급증하고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건전하고 건강한 낮의 문화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변이된 밤의 문화가 창궐하는 원인도 되었다. 이것이 선천 문명의 말기적 현상이요, 이를 극복하고자 나온 것이 모심의 후천문명이다. 모심이란 나와 타인, 다른 생명간의 연결을 회복하는 심법이므로, 결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간의 생체시계의 연동을 회복하는 법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그런 생체적 동시성은 있었으되 그 모심의 우주적 의미를 모르는 ‘우부우민’이었지만, 새로운 개벽의 시대, 후천의 신인간은 사람들과의 공감은 물론, 동물과 무생물, 그리고 달과 해와 같은 우주적 ‘때’의 연계와 동시성을 회복하여 우주적 생명의 주체가 되는 전혀 새로운 초인으로 등장할 것이다.
낮에 잠깐이라도 햇볕을 쬐며 천천히 걸어보자. 밤에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생체시계가 고쳐진다. 그것이 호르몬의 역할임을 송과체 이야기에서 살펴보았다. 또한 종일 건물 안에서만 생활할 때는 몰랐던 공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겨울에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찬 공기에서 봄이 되면 어느덧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공기로 변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몸 안에 잠자고 있던 계절 시계도 깨우는 것이다.
중금속이나 유전자 조작식품의 유해성은 흔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순수하고 말랑한 마음이 혼탁하고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은 우리의 욕심과 오관으로 형성된 고정관념이 더 큰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습관된 고정관념은 그 위험성 자체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오늘도 그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게 세상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동양의 수행전통에 비해, 원인과 결과를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서양의 전통이 이러한 다양한 해부학적인 접근과 수행의 방법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접근들과 수행법들이 모두 일리가 있고 소중한 것이다. 사람들의 성격이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수행에 다양한 접근이 가능한 것도 장점일 것이다.
음식을 가려서 먹고, 햇볕을 쪼이고, 맨발로 땅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모두 내면에 가려진 참된 마음, 내유신령을 깨우고 찾는 데 목적이 있다. 즉 마음공부를 주로 하며 음식이나 생활습관 교정을 함께 해야지 주객이 전도 되선 안 될 것이다.
어찌됐건 우리의 수련은 시각뿐이 아닌 청각과 후각 촉각 미각의 모든 육신의 감각을 넘어, 시지불견하고 청지불문하는 성령의 세계를 깨우치는데 있다.
‘이신환성’장에서 의암성사께서 말씀하셨듯이 “육신은 백년사는 한 물체요, 성령은 천지가 시판하기 전에도 본래부터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성령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 형상으로 가진 몸으로 화해 살다가 다시 성령으로 돌아간다. 물질계는 깨닫기 위해, 한울 성령을 깨닫는 명을 수행하기 위해 잠시 와서 공부하는 기간인 것이다.
성령은 우주에 틈이 없이 가득 차 있는 무한한 ‘혼원지일기’이다. 그러나 모든 생명과 물질의 근원이자 어버이인 성령은 인간의 언어로 규정할 수 없다. 때문에 ‘허령이 창창하다’고 하실 수밖에 없으셨을 것이다.
그러한 성령이 우리의 형상을 만들고 안에 있으면, 하고자 하고 헤아리는 ‘신령한 영’ 즉 내유신령이 된다. 몸 밖으로는 만물을 움직이고 작용하게 하는 기운 즉 외유기화가 된다.
그래서 대신사께서도 마음은 본연의 내유신령을 찾아 그를 잊지 않고 지키는 ‘수심’을 하라 하셨고, 기운은 바른 움직임과 바른 작용이 되도록 바른 자세와 바른 행동과 바른 음식섭취를 통해 바르게 하는 ‘정기’를 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련은 본래의 적자지심을 찾는 마음공부와 평상시 바른 기운이 유지되도록 바른 자세와 바른 음식 섭취와 천지의 기운과 바르게 연결되도록 하는 햇볕 쬐기와 맨발로 땅을 느끼는 것 등을 다양하게 포함할 수 있다. 결국 일용행사가 다 도 아님이 없고 수행 아님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는 수련 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진리에 대한 믿음과 이 모든 생명을 주시고 간섭해 주시는 천지부모 한울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지심이 흔들리지 않고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도는 많은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성경신 석자니라’(좌잠)하신 뜻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믿음과 경외지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정성을 다하면 누구나 본래 모시고 있는 한울님 성품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몸을 받아 지금 삶을 사는 명이요 숙제인 것이다.
다만 수련을 하다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그동안 공부해 온 과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과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경전에 표현된 대로 강령과 강화 영부를 받는 등의 과정을 차례대로 거치는 사람도 있고, 이를 한꺼번에 겪는 사람도 있다. 또한 그러한 체험의 모습도 온몸을 격렬히 떨며, 울고 불며 요란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조용히 차분하게 겪는 사람도 있고 다양하게 겪는다. 다 똑같지 않으므로 자신만의 깨달음을 추구하면 될 뿐, 다른 사람이 겪는 것을 똑같이 하지 못했다고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수련하는 사람을 감성형인 사람과 두뇌형인 사람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는 마음이 열려있어서 수련과정에서도 비교적 쉽게 한울님 기운을 느끼며 천지부모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다. 때문에 빨리 강령의 체험을 하는 편이다. 반면에 체험을 빨리 해도 그러한 체험의 의미를 잘 모르면, 일과성인 체험으로 끝나고 일상의 변화와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두뇌형의 사람들은 비교적 힘든 희로애락의 상황에서도 냉철한 상황판단을 잃지 않고 일상을 이어가는 장점이 있다. 반면, 함께 공감하는 감성이 부족하여 수련을 함께 해도 강령 등의 체험이 늦는 경우가 많다. 대신 진리에 대한 궁금함을 꾸준히 수행하고 공부하면 이치에 대한 깨달음이 체험이전에 먼저 올 수도 있다.
“그 모인 정신을 흩지 말고 날 공부와 달 공부와 해 공부가 차차 굳어지면, 단전에 밝은 빛이 점점 명랑하여 이치를 비추면 이치를 마음으로 보며, 형용을 비추면 형용을 마음으로 보며, 세계를 비추면 세계가 마음속에 있나니”(현기문답)
먼저 체험하고 늦게 체험하는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잊지 않고 꾸준히 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얼마나 정성을 이어 수련했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