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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10. 2023

친일파, 친일영웅!

[오늘하루일기]



이찬수 교수의 신작 [메이지의 그늘]을 보면, 

한 국가가 몇몇 사람들의 '기획'에 의해서 그 국가의 정체성이나 

특성이 자리매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인위적'인 '개항'(미국 흑선 함대에 의한 강제 개항)에 이은

일본 근대화의 주체 세력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더해지는 역사적인 배경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일본인 특유의 기질 때문일 수도 있을 터이다.

(이찬수 교수의 [메이지의 그늘]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일본인의 '기질'의

대부분 메이지 전후로부터 형성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 점에서,한국도 일본과 비슷하게 '인위적'인 

'개항'(일본에 의한 강화도 조약 체결과 개항을 필두로 한)

이에 대하여 이른바 '온건 개화파' '급진 개화파' 등등의 '적극적인 노력'(?)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근대 이후 이른바 한국인의 특유의 심성과 기질도 그 무렵의 '기획된 것'일 수도 있겠다. 


다만, 일본은 초기에 비자발적인 개항(서구화)의 길로 내몰렸으나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여, 근대사회의 주류국가('탈아입구')로 자리매김하고

'제국'으로까지 비화(飛化/非化)한 반면

한국은 식민지로 전락하여, 오랫동안(일제강점기) 타자에 의해 정체성의 왜곡-형성과정을 겪었으며

독립 후에는 다시 분단과 사이비 민족주의자(이승만) 및 친일세력이 득세하면서

근대 초기의 자발적인 근대화 움직임(친일세력이든 친청세력이든 친미세력이든)과 

단절되었다는 차이는 있겠다.  


이렇든 저렇든, 해방 이후 이승만(철저한 반일 노선)이든 

박정희(이른바 '국교정상화')든, 전두환이든 노태우든 

김영삼은 물론이고...박근혜까지 

(반일 노선에 관한 한 김영상 정권 초기는 그야말로 무대포 식의 반일노선을 걸었지 않은가!)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논리는, 표면적으로, 그리고 공식적(국가적)으로는,

자기들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거부할 수 없는 민족적 합의사항으로 인식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축적해 온 친일화 에너지를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 이명박 등 집권자와 그들을 뒷받침한 '식민지근대화론' 주의자 등등의) 

일거에 발산하여 (완전, 트럼프저리가라마이신 상 또라이 기질을 발휘하여) 

일본의 현재와 과거를 모두 손들어 주는 길로 '과속질주'를 시작했다.


이제 곧, 일제 강점기의 '친일분자'야말로 '선견지명'을 가졌던 

"탈- 민족주의의 세계주의자!"라는 평가가 나올 차례다. 

그야말로 "친일영웅! 탄생하기 직전이다.


(이 글을 쓴지 하루가 지난 3월 11일에 아래 기사가 눈에 띄어 올린다.)


윤석열 대통령의 망발이 있던 때에, 일장기를 내건 '한국인'이 나타났다.

'해프닝'이지만, 그는 언젠가, '21세기 최초의 친일영웅!'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친일영웅이 나타났다!"

이 말이 거짓말이고, 말도 안 되는 말이라도

이렇게 세 번만 외치면, 진짜로 '늑대'가 나타난다고 이솝이 말했다.

그때는 아무도 친일영웅을 막으러 나오지 못한다.

친일파들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아직은 장막-시스루-뒤에서 활개치는 셈이고)

...


일제강점기로부터도, 분단과 전쟁으로부터도, 어쩌면 너무도 긴 세월이 지났다.

36년의 세월조차 견디지 못하고 많은 (일제강점초기의) 민족주의자, 독립운동가들이 '변절'의 길로 나아갔다.

그러니, 독립일로부터 약 80년, 휴전으로부터 70년을 지나는 이 시점에

과거를 망각하는 것은 물론, 그 지난 역사(의 평가)와 계승 원칙(민족정기 회복)을 뒤집어 버리려는 저들을

징치하기에 '우리(who?)'의 에너지는 너무도 소진되었다.

(아래로부터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이러한 때에,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고 일갈하고 싶지만,

내가 믿으며, 혹호(酷好)하는 동학 천도교에서는 

'한울님'은 '무능'하고 '어리숙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한울님에게 빌어 봐야' 소용이 없다.

한울님은 "나(사람)를 만나 비로소 성공"하는 존재라고 한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다.

나는, 나대로 살다가 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나는, 반일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민족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한울님주의자이다.

한울님은 불택선악하시지만,

'개 같은 왜적놈'은 '멸하고자'하는 의지를 가진 존재이다.

(여기서 '개 같은'은 '개를 폄하하는 표현'이다. 천도교경전에 나오니 인용하지만,

앞으로는 가급적 쓰지 않겠다.)


"사람은 곧 한울님"이지만, '개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개 만도 못한 사람'도 있고. 


내 안의 한울님을 기르고, 내 안의 '개性'을 지우는 것,

그것이 수련이고 수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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