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걸음 Mar 20. 2023

코끼리의 시간

[오늘아침일기]

어디선가 코끼리의 대이동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먼지가 천지에 가득합니다. 이 먼지가 현해탄 건너온 게 아니기를 빕니다.


절대로 따라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이쑤시개로 코끼리를 죽이는 세 가지 방법"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코끼리가 죽을 때까지 이쑤시개를 찌르는 것입니다.

둘째는, 코끼리가 죽기 직전에 이쑤시개를 찌르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쑤시개를 찌른 다음, 코끼리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렸을 적에, 이 이야기를 '재밌다'며 입에서 입으로 전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코끼리에게 미안한 일입니다.

이제, 코끼리가 멸종 위기종이 되어 가는 지구 역사가 전개되는 만큼

꿈속에라도 '코끼리 죽이기'는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위 이야기는 시간의 세 차원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속(持續)의 시간입니다. 다른 말로는 '끊임없는' 노력의 시간입니다. 정성을 의미하는 성(誠)을 순일무식(純一無息)이라고 합니다. 이 점에서, 첫 번째 이야기 속 시간은 '정성의' 시간입니다. 이러한 정성을 적공(積功)이라고 합니다.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功成] '공력'(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끈기의 시간입니다. 


둘째는 기회(機會)의 시간입니다. 다른 말로는 '계기 포착'의 혜안이 맞이하는 시간입니다. 코끼리가 죽을 때를 미리 아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기회'의 시간은 요행의 시간이 아니라 창조의 시간입니다. 하나의 코끼리만을 쳐다보며 죽을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죽기 직전의 코끼를 찾아 끊임없이 모색하는 노력의 시간이 배경에 흐르고 있습니다.  용기의 시간입니다. 


셋째는 성숙(成熟)의 시간입니다. 숙성의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견딤의 시간이며, 기도의 시간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버리는 문명을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성숙'의 결과물들이 화려한 '현대 문명'의 겉모습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습니다. 성숙의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조급증'에 사로 잡혀서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일이 이루어지는 것, 성공(成功)을 위해서는 셋 중 하나 이상의 시간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成功'은 세속적 목표의 성취가 아니라, 精誠 어린 積德의 完結을 의미하며

그러므로 最終이 아니라 '다시' 새 마디의 적공적덕을 시작하는 출발점을 의미합니다.) 

물론, 시간은 세 갈래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시간은 무수한(무한한) 경로를 따라 흐릅니다. 

이 우주(공간)이 무한대인 것과 같습니다. 


현대물리학에서는

공간과 시간은 애초에 한몸에서 분화된 일란성 쌍동이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없으면 공간도 없고 공간이 없으면 시간도 없습니다.

입자(혹은 파동: 끈이론)에 이르면 존재(물질)도 모두 동일체가 되듯이

시간의 '동일성과 동질성'은 그 근원적인 차원에서만 적용될 뿐

현상계의 시간은, 물질의 형태와 규모와 동작이 제각각이듯이, 제각각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그 시간이 '인간의 수준'에서도 '동일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데서 비롯합니다.


물론, 위 세 갈래의 시간이 만나는 차원이 있기는 합니다. 

바로 '기다림'입니다. 정성을 다하는 시간은 정성이 감응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고

기회를 찾는 시간은, 하나의 우주와 다른 우주가 교차하는 그 찰나의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이며

성숙의 시간은 '만기'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때의 기다림은 소극적인 방관이 아니라, 무위자연의 결을 따라 흔들리는 것(진동)입니다.  


나는, 나의 시간 가닥을 잡고, 흔들리는 중입니다.

우주 모든 곳에서, 나와 얽힌 '양자'도 흔들리고 있을 테지요.


오늘, 내 코끼리를 보고 싶습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버리고

'코끼리를 생각해!'를 선택할 시간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