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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11. 2023

서동요기법

[오늘아침일기-20230311]

‘서동요 기법’은 소원하는 일을 이미 벌어진 듯 꾸며 말하는 기법을 뜻합니다. 백제 무왕이 되는 서동이 어린 시절 ‘서동요’를 지어 선화공주와 결혼하게 됐다는 설화를 빌린 단어죠. 가령 “서동요 기법 간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윤성빈 스켈레톤 금메달 축하합니다”라고 적으면 윤 선수를 향한 희망과 응원을 더 강하게 표현하는 셈입니다. 갓생과 달리 의지와 달리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에 좀 더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국민일보, 2022.1.29)


"서동요"는 백제 30대 왕, 무왕의 어렸을 적 설화로 알려져 있다. 백제 무왕이 어렸을 적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고 심성이 곱다는 소문이 자자하므로 신라 서울(서라벌)로 들어가서 아이들 사이에 이런 노래를 퍼뜨렸다. 


선화공주님은          (隱)

남 몰래 사귀어(통정하여 두고)          (   古)

맛둥[薯童]도련님을          (乙)

밤에 몰래 안고 간다         (夜矣 卯乙 抱遣 去如)

(한글이 발명되기 전, 한자로 우리 말을 표기한 우리 노래 '향가' 중  4구체 향가의 시초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마 ㅠ


아무튼 이 일로 서둥은 실제로 선화공주와 결혼하여 백제로 돌아가, 마침내 왕이 되었다. 설화상으로 보면, 서둥(이름 장)이 마를 캐곤 하던 산에 황금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서, 그걸 진평왕에게 보내는 등의 이적을 보이므로, 진평왕이 무왕을 크게 존경했다는 등의이야기가 덧붙어 있다.

(이건 이른바 '가짜뉴스'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서동요기법"은 신조어/가짜뉴스 중에서도 그 연원이 가장 깊고 오래된 말일 듯싶다.


우리의 전통적인 '말 풍습' 가운데 "덕담"이 있다. 새해에 '세배'를 하러 가면 어른들이 "그래 올해는 장가 갔다지." "그래 올해는 득남 하였다지." "그래 올해는 풍년이라지." 하며, 올해 그 사람에게 일어나면 좋은 일을 마치 이미 벌어진 일인냥 말하는 것이 '덕담'이다. 오늘날에도 덕담은 널리 행해지고, 널리 쓰이니, '서동요기법'이 낯설지 않다. 


'서동요기법'의 발상은 말 본래가 가진 신성성(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기에,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것이라 해도 좋다. (이 구절은 '아침일기쓰기'의 가장 원초적인 근거가 되는 생각이다. 상세한 이야기는 별도로 정리해 보아야겠다.)


우리 역사상에도 가락국의 구지가로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무왕이 서기 600년 전후의 인물인 반면, 구지가의 수로왕은 무려 서기 50년 전후의 인물이다. 그가 가락국의 수로왕이 되기 전에 가야 지역의 촌장들(아직 부족국가였던 시대)이 구지봉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며, 하늘로부터 임금님이 강림하시기를 빌었다.

거북이 머리

龜何龜何(구하구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약불현야)   내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구워서 먹으리


아무튼, 촌장들이 구지봉 위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하늘에서 6개가 내려왔고, 그중 가장 먼저 깨어난 알이 수로왕이 되고 나머지 5개가 각각 가야의 나머지 왕이 되었다고 한다. 

(앞의 서동요가 '가짜뉴스'를 퍼뜨려 목적한 바를 달성한 '범죄 행위'라면

이 구지가는 '공갈 협박'을 동원한 '범죄 행위'의 빼박 증거가 되는 노래이다.)


신라로 가면, 좀 더 후대에 이러한 사례가 나타난다. 

수로부인(신라 성덕왕 - 재위 702~737)이  그의 남편 순정공(후에 성덕왕)이 강릉태수가 되어 경주에서 강릉으로 부임하는 길에 바닷가를 걷다가, 바다로부터 나온 거북이에게 납치가 되었다.

순정공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는데 바다 속의 물건인들 어찌 여러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경내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짓고 막대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찾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공이 노인의 말대로 위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했더니 용이 부인을 도로 내놓았다. (이때의 '노인'은 '헌화가'의 주인공인 그 노인이기도 하다. 수로부인 역시 '헌화가'의 한 주인공이다.) 

이때 부른 노래는 다음과 같다.


龜乎龜乎出水路 (구호구호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 (약인부녀죄하극)   다른 이의 부녀를 빼앗은 죄가 얼마나 되는가.

汝若悖逆不出獻(여약패역불출헌)    네가 만약 거역하여 바치지 않으면

入網捕掠燔之喫(입망포략번지끽)   그물로 (너를) 잡아 구워먹고 말리라.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衆口鑠金]"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여기서는 '衆口'라고 하여 여러 사람의 입을 이야기했지만 사람이라면 '여러 되풀이 함'으로 이해할 있을 듯하다.

(여기에도 범죄 행위가 나온다.  '여성납치' 행위다.  여기도 '공갈'이 있지만, 범죄자(거북이)를 향해 범죄행위를 멈추라는 뜻으로 내뱉는 말이므로, '정당한' 범위 내의 행위이지 않겠는가.)


이와 유사한 말로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도 있다. 세 사람이 우겨대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이런 게 옛날의 일만이겠는가. 오늘 대한민국에서 가장 첨예하게 벌어지는 일이 바로 이 '서동요기법'이자 '구지가기법' '중구삭금 기법'이요 '삼인성호' 기법이다. 조국 사태의 경우가 그러하고, 이재명 사태의 경우가 그러하다. 둘 다 그 당사자는 검찰 혹은 검찰이라는 사나운 사냥개를 앞세운 어떤 사람들이다.

'서동요기법'에서는 젊은 세대의 '간절함'이나 '발랄함'이 묻어난다면 '구지가기법' '중구삭금기법' '삼인성호' 기법에는 살벌한("구워먹겠다") 혹은 그만큼 "간절한" 마음이 녹아 있다. 아니, 그보다는 오늘날의 검찰독재공화국하에서 구지가, 중구삭금이라는 말이 고생을 해도 한참 고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귤화위지(橘化爲지枳)란 말은 "회남(강남)의 귤을 회북(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환경과 조건에 따라 사물의 성질이 변함을 이르는 말"이다.

검찰 제도가 본래부터 이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겠는가?

그도 역시 인민의 충복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개가 사람을 물듯(이건 어쩌면 개의 본성이니, 탓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검찰이 인민을 윽박지르는 것이 '전통'이자 '상례'가 되었다.


최근에, 고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의 구지가를 가르치며, '거북이 머리'가 '남근(男根)'을 상징한다고 했다가 학생들이 교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며 제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40대 이상의 세대는 대체로 학교에서 '당연한 것'으로 '중요한 것(시험에 나올 수도 있는)'으로 배웠던 사실이, '성희롱'으로 되는 세태를 보며 모두들 개탄했다. 그런데, 그 뒤에는 반전이 있었다. 이 교사가 평소에도 '성희롱성 발언'을 자주 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정당한 수업 상황을 '성희롱'으로 몰고가지 말라는, 그 학교 일부 졸업생들의 '탄원운동'도 있었고, 이에 대한 재학생 중심의 재반박이 이어지며 한 동안 논란이 됐다. 이 일은 어떤 하나의 상황의 '맥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말해준다. 마찬가지로, 조국이나 이재명에게 범죄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전체 맥락을 볼 때 먼저 지탄받고 천벌을 받아야 할 쪽은 '검찰' 혹은 '검찰독재' 혹은 '그 배후세력'이라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다. 


이 모든 일이 '말의 신성성'과 관련되어 있고, 그 신성성은 '불택선악(不擇善惡)'한다는 것과도 통한다.

오묘한 말의 세계에 삼가 옷깃을 여미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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