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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10. 2023

과년한 딸을 여의다

[오늘아침일기]


'자기검열'이 필요한 시대다.

윤석열 정부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더 근본적인 문제다.


다른 것들도 많겠지만, 

오늘 얘기하려는 것은 '차별감수성'의 문제다.

매일 '한 단어'와 관련된 아침일기를 쓰려다 보니, 그런 문제들, 그와 관련된 '가르침'이나 

새로운 조류에 관심을 두게 된다.


오늘 말하는 것은 '과년한 딸'이라는 말이다.

지금 교정(검토)하는 원고에 들어 있는 말이다.

과년하다는 국어사전에 "여자 나이가 혼인할 시기를 지나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제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 풀이말이 좀 이상하다고 느낄 법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차별감수성' 분야에서 지평이 확장되고 있다는 반증일 테다.


이 말의 의미를 '중립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사회적으로 이 말을 쓰던 맥락에서 보면, 

여자(혹은 남자)는 '혼인하기에 적절한 나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오늘날은 '혼인 여부' 자체가 '선택적'인 상황이 되었으니

'혼인하기에 적절한 나이' = '혼인 적령기'라는 말은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말이 아닐 수 없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말이 오히려 예외적인 말이 아닌 시대다.

결혼(혼인이라는 말도 자제해야 한단다)하기에 '적절한 나이'란 없다. 

아니, 어느 때든 결혼하기에 적절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조혼 폐지'를 외치던 정의의 관념과 범주는 아직도 유효하기는 하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상, 70세든 80세든 결혼하기에 부적절한 나이란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과년하다가 '여자 나이가~'에만 해당하는 것도 문제다.

오늘날은 남자도 "결혼 적령기"를 따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과년하다에 대한 풀이말 중 '여의다'도 문제다. 

사전에는 "여의다-3. 결혼시켜 남의 집안 사람이 되게 하다. 시집보내다."라고 되어 있다.

'남의 집안 사람 되'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오늘날 예컨대 '문중재산분할'에서, '시집간 딸'도 권리가 있다거나

세태상으로 보면, 오히려 '아내'의 집안에 가깝게 지내는 것을 보아도, 

달라진 세상을 담아내지 못하는 말이다. 

'되게 하다'도 부모님 입장에서 쓴 말이어서, 

오늘날 '결혼'이 '당사자 중심, 주체'로 전환한 세태에 부합하지 않는다. 

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정서적으로도 그러하고, 오늘날의 실제 세태로 보아도,

영 맞지 않는 말이 되었다. 

인간은 '말에 맞춰서' 살아가는 존재("답게 살다")이기도 하지만,

말(사전)은 자기 고유의 의미를 고집하는 존재가 아니라,

언중(말을 쓰는 사람들)이 쓰는 말의 뜻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이 문제는 현재의 내 수준에서 쉽게 단정하여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 더 많은 공부와 연구가 필요하다)


새 시대가 되기 전에는 깨닫지 못하던 이러한 식의 '차별어'들을

지금도 나나 우리는 부지불식 중에 여럿을, 자주자주 쓰고 있을 테다. 

발본색원해 나가는 스스로의 노력 - 자기검열이 꼭 필요한 사안이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맑아지는 날이 올 수도 있을 테다. 


추신.

그러나저러나, 이 정부는 어쩌면 좋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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