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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09. 2023

병원에서 병원까지

[오늘아침일기]

2023년 3월 9일 오전 8시 25분. 종로에서 지구인문학연구소에서 남산 방면을 바라보면 보이는 풍경. 이 안에도 병원이 있습니다.


요즘은 '고향이 어디냐'고, 

'공개적'으로 물어보는 일이 현저히 줄어든 느낌입니다.

요즘 확산되는 추세인 블라인드 채용의 경우 입사 서류에 성별, 가족관계, 나이 등과 함께

'출신지'를 표기하지 않는 것도 그러한 흐름을 반영하는 한 풍경입니다.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일이라는 공감대가 늘어나기도 했고,

'지연, 혈연, 학연'을 따지는 것은 다른 한편의 '차별'을 조장할 혐의가 짙다는 

사회적 합의(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고향을 묻지 마세요, 내 나이도 묻지 마세요!"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금은 엉뚱하게, 조금은 신선(?)하게' 

사실은 고향을 물을 필요가 없게 된 세태를 반영하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40대 이하, 그리고 30대 이하는 거의 확실하게

모두가 '병원'에서 태어난 '동향인'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거의 대부분 '병원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병원'을 '고향'으로 삼는 것은 '고향'의 의미에 걸맞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리 단순히 판단할 수 없는 현실이 개재해 있습니다.


'수구초심'이란, 여우가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데서 나온 말인데, 본뜻은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오늘날 누구나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도

결국은 그곳이 '네 고향'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큰 뜻'이 깃들어 있는 사회 변화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현대인이 전반적으로 가장 자주 방문하는 기관이 어디일까를 따져보면

아마도 '병원'이 몇 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 빈도는 점점 높아지며

세월이 갈수록, 연령대와 상관 없이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오늘날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다시 말해 어머니 뱃속부터 병원을 찾기 시작합니다.(산부인과)

"병원 다니기"를 '태교'로써 익히게 되는 셈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병원에 간다는 것은 곧 '죽으러 가는 것'과 진배 없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죽을 병"이 아니면, '병원에 갈 엄두를 못내는' 사람이 많았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걸 테지만 말입니다. 

그 '이하'의 소소한(?) 병들은 동네 '의원'이나 '약방'을 찾아가 해결했습니다. 

의원이라고 해도 번듯한 간판을 단 의원이 아니라

그저 가정집에 '의원'이라는 손글씨 간판을 붙였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없이

그저 '0의원집'이라고 불리는 집으로 찾아가 진료(?)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죽을 때까지 병원에 다니다가"

결국은 병원(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병원(영결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고

화장장을 거쳐 납골당으로 향합니다.


비안개도 꿀꿀한 날 '죽음'과 '병원' 이야기를 하는 건

우울함을 재촉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10년 전, 30년 전과는 현저히 달라졌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는 일입니다.


"병원에서 병원까지!"


우리는 환자로 태어나서, 환자로 살다가, 환자로서 죽음 너머로 사라지는 셈입니다.

이것을 "비극"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해 보자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이 무슨 엄청난 '흠결'이 되는 것은 아니듯이

'병원'의 개념도 달라져야 하고(이미 많이 달라졌고)

'환자'라는 개념도 따라서 달라져야 하고(이미 많이 달라졌고)

'치료'/'치유' 등의 의미도 그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는 일입니다.


오늘의 '나(인간)'은 어제의 '나(인간)'이 아님은 일단 분명해 보입니다.

'나(인간, 우리)'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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