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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21. 2023

말. 고함. 악다구니

[오늘아침일기]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거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을 일년에도 몇 번씩 절감하는 사람중의 한 사람입니다. 주로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여, 거친 말, 거센 말을 내뱉고 나면, 상대방만큼이나 상처를 입는 것은 바로 당사자, 나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경험에서 배우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경험에서(조차) 배우지 못하는 일이다"라는 말을 '담벼락'에서 보았습니다. 평생에, 나는 얼마나 많이 경험하고도 배우지 못했는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사납게 짖는 개는 용맹한 개가 아니라, 자기 두려움을 그렇게 표현하는 거"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딱 나 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겉으로 전형적인 '범생이'입니다. 진짜 속내는 '범생이'가 아니라, 단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일 뿐이지요. 규범을 넘어섰을 경우 받게 될 평판, 나아가 법적 제재를 무서워하는 것이지요. 


때로는 그런 '범생이' 기질로 다른 사람의 행태(行態)를 충조평판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주로 마음속으로. 그러다가 때로 폭발을 합니다. 그러나 '범생이'가 한 사람에 대하여 사납게 반응하는 것은 '불의에 대한 분노'인 경우보다, 스스로의 약점이나 자기 분노를, 상대방의 잘못이나 실수에 기대어 표출하는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외유내강' 형의, 진짜 강한 사람이 표출하는 분노와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불의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은 누가 보아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불의인지, 얼마만큼의 불의인지, 그에 합당한 분노는 또 얼마만큼인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습니다... 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기준이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로운 분노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습니다. 공감할 수 있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분노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자아내지요. 그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향기의 문제일 겁니다.


분노에도 제각각의 향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아마도,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의 '입냄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입냄새가 평소의 것이 아니라, 분노로 말미암은 호르몬(?)이 결합된 것이고, 그 호르몬은 분오의 정의로움이나 부정의에 따라 다른 조합으로 분비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저의 분노는 대개 행동보다는 '말'로, '말'이라기보다는 '고함'으로 표출됩니다. '악다구니'라고도 하지요. "말은 실행할 것을 생각하고 (나서 하고), 실행은 말한 것을 (생각하고 나서) 행동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은 선하고, 아름답고, 정의로우며, 바른 말입니다. 그 말은 선하고 아름답고 정의로우며 바른 마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말'이 '고함'이 되고 '악다구니'가 되는 것은 결국 '마음'이 '고함'으로 가득차고 '악다구니'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겠지요.


지천명을 지난지 수천만 년이 되었고, 이제 몇십만 년만 지나면, 세상에 태어난 지 한 갑자가 되는 나이가 되고서도 하늘마음으로 내 마음을 채우기를, 그런 날만 있기를 기도하며, 간절하게 살아갑니다.


오늘 아침, 다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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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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