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소개]
“지속가능한 성장”과 “행복가능한 탈성장” 사이-너머 길을 찾아서
탈성장이 우리 사회에서 전면적인 화두가 된 지 10년쯤 되어 간다. 이제 탈성장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아직은 ‘화두’가 되었을 뿐, 우리 사회가 그 방향으로 길잡아 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19년 150개국 이상의 1만1천 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GDP 성장과 부의 추구에서 생태계 유지와 행복의 향상으로 시프트할 것”을 각국 정부에 요구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진전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이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성장주의의 후폭풍이 드세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이 논문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하게 한다. 첫째는 우리(인류와 지구)가 ‘탈성장을 통해 생태계 유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경우에는 파국이 도래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둘째는, 탈성장을 하더라도 우리가 ‘행복의 향상으로 시프트’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성장주의 일변도의 근대사회가 오늘날 전 지구적 기후위기나 여섯 번째 생물대멸종, 빈익빈부익부의 심화에 따른 사회적 붕괴의 위기를 야기하고 조장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별로 없다. 문제는 ‘성장’의 대안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크게 보아 ‘성장만이 인류가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이며 성장과 생태적 지속가능성은 양립 가능하다’는 주장과 ‘탈성장이 아니고서는 인류사회의 지속가능성은 보장받을 수 없으며, 탈성장과 인간사회, 인간행복은 지속/양립 가능하다’는 주장이 대치하고 있다. 전자는 ‘과학기술의 전능성에 대한 신화’에 의존하고 있고, 후자는 ‘인간 의식과 욕망의 근본적인 전환’이라는 도덕주의/영성주의에 의존하고 있다. 둘 다 한계와 모순이 내재한다. 두 갈래의 생각과 행동이 동의하는 것은 우리(인류와 지구)가 생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국면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말하는 자들에 대한 온갖 비판과 비난, 조롱과 혐오도 충분히 많고, ‘행복가능한 탈성장’을 말하는 이들에 대한 조롱과 혐오도 차고 넘친다. 그럴 일은 아니다. 성장을 추구하면서 시스템적으로나 기술-보완적으로 탈탄소의 방향을 실현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고, 탈성장으로의 전환과 이행을 실현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탈탄소화의 성취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둘 다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에게서 배움으로써만이 당면한 문제 해결의 길을 열 수 있다.
탈성장은 한 개인이나 한 나라가, 한두 가지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인류의 현재 문명 전체의 구조와 개념을,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태도와 의식을 바꾸어야 하는 전면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의 대상이다. 이와 관련되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하나 탈성장 체제로 고쳐 나감으로서 전체에 도달하는 방법도 있겠고, 국가헌법이나 국제적 헌장 수준의 대-규제(cf. 에코파시즘)로부터 연역하여 법과 제도와 경제사회활동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방법도 있겠다. 실제로는 이 역시 양자의 조화와 균형을 통해 추구될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 혹은 밖에서 이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철학과 사상, 정서적 호소와 같은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지구, 다른 세계, 다른 나라, 다른 인간을 꿈꾸기 시작하였다
[탈성장을 상상하라: 성장 신화의 종말과 이후 시대]는 이러한 이유로 당장, ‘누가 탈성장을 주도하고 책임질 것인가?’나 ‘탈성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다가서기보다는 바람직한 미래상, 혹은 실현 가능한 미래상으로부터 현실로 소급하는 백캐스팅(backcasting)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여기서 실현 가능한 미래상은 역설적으로 이상적인 미래상이기도 하다. 여기서 이상적이란 ‘최선’만이 아니라 ‘차선’까지를 포함한다. ‘이상’을 ‘실현 가능한 미래상’으로 보는 까닭은 그 ‘이상’이 ‘실현’되지 않는 미래란, 우리에게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탈성장에 대하여 강렬하고 참신하게 구상하고 사고실험한 이야기 모음이다. 탈성장의 주체, 실현 경로를 성급하게 말하기보다 지금-여기에서 모두가 바라는 탈성장의 미래세계를 위한 꿈의 지도를 그려내는 일에 우선 집중한다. 특히 성장을 신화화하고 개발독재와 고속성장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예외적이, 도전적이며, 이단적인 화두인 탈성장을 자꾸자꾸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탈성장 전환사회로의 이행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본다. 경제적인 척도를 성역화하는 관념으로부터 비롯되는 체제의 타파를 모색하고, 탈성장 미래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시나리오화하여 제시하며, 탈성장 전환 이후의 시대상을 그려내어 ‘미래로 돌아가기’를 시도한다. ‘나로부터의 탈성장’ 혹은 ‘탈성장 사회의 나’에 관한 이야기로써, 이 모든 시도가 인간으로부터 시작되고 인간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들임을 보여준다.
제1부는 ‘탈성장, 경제와는 비대칭적인 외부’라는 말로 현대까지의 인류가 ‘식민지’로서 ‘외부’를 전제로 하여 성장을 구가해 온 반면, 탈성장은 ‘경제 외적 척도’나 ‘경제와 비대칭적인 관계’를 부각함으로서 인류사의 지속가능성을 구축하는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제2부는 ‘탈성장의 상상력, 사회구성적 실천의 출발점’이라는 관점으로 사회적 차원에서의 탈성장의 상상력을 시나리오화하여 제시한다. 역사적인 접근, 리추얼(의례)의 복원, 구체적인 비전과 전략,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 등을 통하여 탈성장의 사회상을 상상한다.
제3부는 ‘탈성장, 미래로 돌아가다’라는 역설적이며 직관적인 언어로서 주로 미래세대를 기준점으로 삼아서 그들의 관점에서 탈성장 체제로의 전환과 그 이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기술주의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탈기술의 전략 - 계획경제 모델, 협동조합운동과 같은 오래된 전략들을 소환하여 미래로 가는 길을 개척해 본다.
제4부는 ‘탈성장 전환에 최적화된 인간형 되기’로서, 구약과 신약을 경계 지었던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성장과 탈성장을 경계 짓기 위해서 필요한 생태적 영성을 장착한 새로운 인간, 탈성장에 최적화된 인간, 일상 속에서 탈성장의 삶을 살아내는 ‘탈성장 인간’을 제시해 본다.
[탈성장을 상상하라: 성장 신화의 종말과 이후 시대]
이 책의 저자들은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을 플랫폼 삼아서 서로의 생각을 갈고 다듬어 가는 과정을 최대한 날것으로 보여줌으로써, 지구별의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어깨를 기대며 협동하고 나아가는 그 길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합류하고, 그 길이 넓어지기를 도모한다.
탈성장이라는 화두는 경제적,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미적이며 정서적이고 지적이며 사랑적인 인간관계의 문제이며, ‘나(/인간)는 누구인가’라는 지속불가피한 질문의 답을 신선하게 찾아내는 노력이기도 하다. ‘상상’이라는 ‘신화의 세계’를 동원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접근이 된 이 세계가, 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