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과 언론, 그리고 미친 놈들
1. [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뤼트허르 브레흐만, 인플루엔셜(주))는 "인간의 역사는 '악(惡)의 연대기'가 아니라 '선(善)의 연대기'이다"라는 관점을 견지하며, 인류 역사를 낱낱이 훑어 나간다. 말하자면, 성악설이 아니라 성선설이다. 현대문명은 성악설을 기본으로 하여 구축되었고, 성악설을 기본으로 하여 돌아간다는 기본 인식도 깔려 있다.(책의 저자가 그걸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화된 인간 역사가 '선한' 인간 본성을 '악한 것'으로 오해한 데서, 비극적인 현재, 혹은 현재의 비극이 '현재화'되었다는 것이다.
2. 장황한 맥락이 있기는 하지만 생략하고, 그중에 내 눈길을 끈 대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즉, 인류사에서 "독재(적)권력*이 성립되는 두 가지 요건으로 '독재자의 뻔뻔함'(후안무치함)과 '언론'"을 꼽는 대목이다. 인간은 세상 만물 가운데 '얼굴이 붉어지는 유일한 동물'(부끄러움을 앎)인데, 독재자는 그 기능을 상실(혹은 제거)해 버렸다는 것이다. 혹은 그 기능을 제거하지 않고는(즉 맨 정신=선한 마음)으로는 독재자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대개 권력(이른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되었다 하더라도)은 경향적으로 타락하기 마련이며, 특히 '절대권력'은 '절대타락'하는 것이 '(준)과학 법칙'인바, 그 과정에서 '염치/수치(羞恥)' 감각 기능이 상실/퇴화/제거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독재적 권력'은 '정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cf. 종교(교단))
3. 이 대목을 듣는 순간(오디오북), 눈앞이 환하게 열리는 느낌!!!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를 장악한 권력의 정점, 그리고 그 주변에 도사린 떨거지들의 행태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할 길이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정말 말도 안 되는 이 정부 수뇌부의 행태를 거의 완벽하게 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그들은 이미 인간 이상(이하)의 어떤 존재가 되었다. 포스트(脫)-휴먼이 별건가. 포스트휴먼이 꼭 로봇공학이나 생명공학의 결실이기만 하란 법이 어디 있는가. 인간의 위대함은 이렇듯 자발적, 자율적, 자체적으로도 얼마든지 탈-휴먼적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한울님(하늘님)이 될 수도 있지만, 짐승만도 못한 존재도 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동물'이 아닌 '짐승'이다) 그 혹은 그놈들이 자기들이 하는 짓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모를까? 나는 '안다'에 100원을 건다. '알지만' '나(우리)는 그래도 괜찮아'라고 생각한다는데 다시 100원을 건다. 인지부조화 환자 혹은 소시오패스라는 데는 200원을 건다.
4. 동학의 가르침에 "대장부의 의기범절은 염치(廉恥) 중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염치다. 체면이란 '남을 대하여 떳떳한 도리(道理)나 낯'을 말한다. 그 둘은 상호 보완적이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의 존재 조건이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지금 우리가 체면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어떤 존재를 '대표자'로 모셔놓고, 인간이랍시고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이다. 접시 물에 빠져 죽더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라는 말이다.
5. 독재 혹은 악덕 권력의 또하나의 조건이 '언론'이다. 언론은, 적어도 자본주의 체제로 들어선 이래로, 특히 한반도에서 신자유주의가 만화방창, 우리 삶의 근본/기본 원리로 자리매김한 1980년대 이후로 (주류)언론은 거악(巨惡)의 깊디 깊은 뿌리로 자리잡고 있다. 그건 '언론'이 '자본'에 종속되는 그 시간부터 천형(天刑)처럼 짊어져야 했던 숙명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훌륭한 언론인'의 희생으로 구축되어 온 '언론자유'는 오늘날 '언론권력의 자유'가 되고 말았으며, 나아가 (자의든 타의든) '권력(정치/자본)의 주구'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살면서, 그것도 권력이랍시고, 자기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 혈안이 된 무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언론 권력이 세계의 사태를 정말 결정적으로 왜곡하고 비틀어가는 원점(原點)이라는 사실이다. 오늘 (특히) 한국사회에서 (한때 인터넷 언론, 대안 언론 등이 많은 치유와 완화를 하였으나, 이제는 잡탕이 되어 버린) 언론의 역할은 그야말로 악의 (멸실되지 않는) 심지라 할 만다.
6. 언론의 이러한 기능을 주목하여, 현 정부의 '방송장악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염치 불구, 안면 몰수, 홀딱 벗고 덤비기, 무대포(우리 고향에서는 '무작배기'라고 했다)로, 전방위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이동관을 선임하는 것은 성동(聲東)이고, 방송심의전문위원회에 대한 감사원 감사는 격서(擊西)인 셈이다. 이미 이명박 시절 종편 채널 무더기 인가에서부터 지속되어 온, 거악 세력의 언론 장악 시나리오는 전두환 때도 시도되었고, 이명박박근혜 때도 계속되었으며, 이 정부 들어서도 계속해서 진행중이다. 전임 정권의 언론방송 장악 시나리에에서 미비점을 계속해서 보완하면서, 한편으로는 더 노골적으로, 한편으로는 더 교묘하게, "될 때까지 한다"는 정신으로 가열차게 밀어붙이는 중이다. 안 될 게 뭐 있나. 돈 있지, 권력(검찰, 감사원 등등) 있지, 뭐가 무서워서 안 하겠나고...
7. 최근 며칠 사이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저들은 이제 특이점을 넘어서 완전히 미쳐 버린 상태에 도달하였다. 그만큼 초조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할 테고, 아니면 최후의 일격을 가할 때라고 여기고 덤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의 양상은 미치고, 미쳐서, 미쳐 돌아가는 이 정권이 제풀에 풀썩 주저앉거나(총선 이후?) 아니면 탄핵 당하거나(역시 총선 이후?), 아니면, 삼세 번 격으로 마침내 그들의 "꿈은 이루어질지도 몰라." .
8. 이 지옥도 속에서, 이 짐승굴 속에서, 한편으로는 서서히 '안심'이 돋는다. 하루하루 '안도감'이 커진다. 저들이 '개굴창'에 처박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이제 곧 그날이 오리라는 확신이 짙어져서다. 그러나 '해피'하지는 않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런 일들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역량이 있는가. 노무현-문재인 정부 이후가 희망스럽게 펼쳐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지금 전북에서 펼쳐지는 지옥도(잼버리대회)를 보면, 암울하다. 단지 한 지자체나 지금 정권만의 문제인가. 한 지자체나 지금 정권의 문제라 하더라도, 그들을 산출(産出)한 것은 '이론적으로' 우리들 '시민사회(주권자)' 아닌가. .... 그러고 보면, 주권 행사, 민주주의라는 게 의미가 있는 정치 행위, 제도인가? 깊이 생각할 때가 지금이다.
9.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동학-천도교(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뭐라 해도 좋다, 나는 천도교인으로 살아 왔으니, 천도교 이야기를 한다)의 이 시대의 사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너는 참 괜찮은 존재(사람)야" "너는 할 수 있어"를 알게 하고, 믿게 하는 일이라고 한다(앞의 책에 나오는 말이다-). 그걸 천도교에서는 '시천주 - 사람은, 만물은 한울님을 모신존재 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