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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ug 03. 2023

독서멸종 시대로부터의 편지

01. 분서갱유(焚書坑儒). 책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구덩이에 묻어 버림. 진나라 시황(秦始皇)이 즉위 34년에 사상통제 정책이다. 진시황의 정책에 대한 학자들의 비판과 개선 건의가 잇따르자 이를 금지하기 위해 의약ㆍ복서ㆍ농업에 관한 책을 제외하고 모든 서적을 모아서 불사르고, 이듬해 함양(咸阳)에서 수 백 사람의 유생을 구덩이에 묻어 죽여 버렸다. (그 이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겠지만) 이후 '분서갱유 유의 사건'이 인류의 역사에 뚜렷한 사조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원조격이다. 


02. 서양에서도 분서갱유에 준하는 사건의 역사 장황하기는 매일반이다. 중세에 기독교 일변도의 서적 유통, 엄격한 도서 관리(신성시 혹은 금단시) 등은 대충들 모두 아는 이야기이다. 특히 대개 아는 대로 '선전-선동'을 통치의 핵심 도구로 삼았던 히틀러의 나찌정권에서도 사상, 언론 통제를 위한 각종 조치들을 시행했고, 이에 호응하여 1933년에는 '베를린분서' 사건이 일어난다. <1933년 봄, 나치 대학생 단체, 교수 및 사서 등은 반독일 적 서적에 대한 목록을 만든다. 이 목록에는 유대인 작가들의 책들도 포함했고 나치 이상과 충돌하는 비유대인 책도 포함되었다. 1933년 5월 10일 밤, 나치는 이 서적들을 전부 소각한다. 이들은 횃불을 들고 행진하고, 구호를 외치며 거대한 장작불에 책을 던진다. 그날 밤 약 2만 5,000권의 서적이 소각된다.>(위키백과)


03. 금서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조선조 말 유행한 <정감록>이 대표적인바, 고려 - 조선 교체기에도 시대상황이 상황인 만큼 각종 비기서가 유행하였고, 이들 대부분이 금서 반열에 올랐다. 조선조 내내 (특히 세조 - 성종 연간) 정기적으로 금서 목록을 배포하여 민간에 유통중인 해당 도서를 수거하여 분서하였다. 재야사학계에서는 이 시기에 '환국'의 역사나 '천부경 류'의 고조선-이전 역사서, (한국고유)사상서 등이 절멸되었다고 본다. 그 밖에 '지리서 류'도 때로 금서목록에 올랐는데, 이들 책이 왜국으로 유출되어, 침범의 경로를 알려주게 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또 당파 싸움이 극심할 때는 반대 당파의 비조(鼻祖) 격에 해당하는 선생들의 문집이 금서(禁書) 내지 기피서(忌避書)에 올라 시중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곤 했다.  


기와집 = 책집. 기와 모양은 책을 본뜬 것처럼 보인다. 읽지 못하면, 이고라도 살자!


04. 조선조 말기 <정감록> 류와 더불어 천주교 관련 서적도 금서 목록에 추가되었고, 사도난정(邪道亂正)의 도로 치부된 동학의 경전류(주로 필사본) 들도 주기적으로 탄압이 가중되는 시기에 분서(焚書) 또는 매서(埋書)하였다. 1880년대 이후에는 목판본(목활자본)으로 간행된 경전과 관련 문서 들도 시기에 따라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때 압수된 문서가 '(동학)관몰문서(官沒文書)'라 하여 규장각에 보전되어 오다가 발굴되어 이후 동학(천도교) 경전(해월신사법설) 편찬에 활용되기도 하였다. 


05. 일제강점기에는 또 식민 당국의 식민 정책에 반하거나, 민족적 성향이 강한 간행물 들을 엄금하였다. 국권을 완전히 찬탈하기도 전인 1909년에 <출판법>을 개정 공포하여 모든 출판물은 당국의 허가와 검열을 받도록 한 것을 시발로, 강점 이후에는 한동안(1919년 기미독립운동 이전까지) 완전한 통제 체제하에서 새로운 도서 발간이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기미년 이후 일부 언론-출판이 허용되었으나 부분 삭제를 지시하거나 아예 폐간해 버리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분서, 폐서(廢書)'의 대상이 된 것이 개벽사의 잡지들이었다. 천도교경전(용담유사)에 '개 같은 왜적놈'이라는 구절을 문제 삼아 강점 초기부터 이를 삭제할 것을 종용하다가, 일제 말기에는 끝내 전체 교인들이 경전을 교당으로 가져와서 해당 구절을 검게 칠하여 지워 버린 후 돌려주었다. 1938년경 천도교단이 진행하고 있던 이른바 '멸왜기도'가 발각되어 일제 당국이 당시 교주 박인호 집에 들이닥쳤다. 첫날에는 박인호 선생이 인사불성이 되었으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박인호 선생의 며느리는 부엌문을 걸어잠그고 집안 여기저기에 감추어 두었던 중요 문서와 도서를 물에 풀어(아궁이에 불태우면 연기가 크게 나므로) 하수구에 내버리기를 한참이나 하였다. 분서에 대한 '익서(溺書)'라 할 만하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철학 사조 등에 대한 접근 - cf.<개벽> 등의 내용 - 내지 지식인들의 철학 전개 양상을 보면(오늘날 많은 주류 학자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고 있는), 이 시기의 사상의 지형은 1950년 이후 1980년대 말까지의 한국사회보다 더 자유로웠다고 할 만한 정황도 보인다. 그만큼 분단 이후 한국사회의 폐쇄성 내지 사상적 편향성이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었음을 반증한다. 그 문제는 여전히 완전 회복이 안 되었다고 본다. 이 부분은 달리 자세히 검토해 보아야 할 터이다.]

 

충북 보은. 책 읽는 사람이 많이 살면, 이런 동네가 된다. 


06. 해방 이후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군정 체제-이승만 독재정권 체제가 이어지는 시기에는 반공정책이 외적 강제에 의해서건 내적 자발성에 의해서건 한국(남한)사회를 뒤덮었으므로, '공산주의 관련 서적'은 철저하게 금지되었고(이런 여파로 오히려 '금서'가 양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적었고), 그보다는 언론(신문, 잡지) 등이 잇달아 반공법 등에 저촉되는 등으로 인하여 폐간되었다. 1970년대에도 '금서'가 될 만한 도서의 발행 자체가 극소수였고, '언론출판' 탄압은 주로 '언론'에 집중되었다. 그런속에서 1970년대는 (다른 시기라면) '금서가 되고도 남을 책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출간되었다. 제5공화국을 옹립한 군부는 1970년대 사상계의 흐름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본격적으로 '금서'의 시대를 열었다. 창비나 문지 등의 계간지 폐간을 필두로 숱한 금서가 쏟아졌다. [더 정확하게는 '금지(禁止, 禁知)'의 시대였다고 해야 할 터이다. 책뿐 아니라 대중가요나 심지어는 두발이나 의복까지도 단속의 대상이었으니.]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80년대의 금서는 '필독서'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으니, 세상일에 죽기만 하라는 법은 없는 셈인가.


07. 1989년 동구권의 몰락 이후에는 '금단의 영역'이었던 월북작가의 작품마저도 속속 해금되는 '해빙기'를 맞이하였다. 해외여행 자유화나 점점 늘어나는 유학파 등, 그리고 속속 발전해 간 미디어 등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는 '사상적 자유'가 만발하는 시기를 맞이하였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사상의 자유'라는 말은 어폐가 한참 있는 말이다. 다만 여기서는 그 이전 시기의 경우와 비교한 측면, '남북 관계 부문'을제외한 여타 부문에 한정하여 '사상 자유 만개'라는 표현을 썼다.)


08. 그러나, 이 정부 들어 시계를 1950년대로 되돌리려는 노골적인 시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그 수법이 이전 시대와 달리 노골적이고 '갑질적'이어서, 어떤 점에서는 더 '악질적'이다. 첫째가 도서관의 도서구입예산 삭감이다. 이런 일은 지자체 단위로 시행되는 일이겠지만, 이 정부 들어 노골화되는 것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중대형 공공도서관은 물론이고, '작은도서관'에 지원(?)되는 쥐꼬리 사업비도 전액 삭감하고, 작은도서관을 '독서실'로 변경하려는 시도도 있었다(주민 반발로 철회. 대신 정책 반대한 도서관장 해임). 여당에서는 전국 고등학교 도서관에 '박원순, 손석희, 이승만, 김대중, 이명박, 문재인, 윤석열, 세월호, 새마을운동' 관련 도서 현황을 조사하여 보고하라는 공문을 시도교육청에 보냈다. (이승만, 이명박, 새마을운동 관련 책을 펴내야 할까?) 일부 보수 학부모 단체는 성평등 관련 책 폐기를 '민원'으로 집요하게 제기하여 일부 도서관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박영숙, <도서관, 담대한 전환을 위한 플랫폼: 도서관의 가능성을 놓치지 말자>, [창비주간논평] 참조 요약정리) 이런 일들이 "책 읽는 사람은 현 정부 지지자일 가능성이 별로 없어서"라는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라는 심증이 날이 갈수록 굳혀지는 이유다. 이것이야말로 현대판 분서갱유의 현장이다. 어쩌면, 역사상 처음으로 '정감록' 같은 참서(讖書)나 복술서(卜術書), 그리고 풍수지리서(風水地理書)만 남기고 모두 분서(焚書), 금서(禁書), 멸서(滅書)되는 나라로 기록되지나 않을까, 쓸데 없는 걱정도 유분수다. 그러나 지금까지만 해도 최소한 분서(糞書)와 멸서(蔑書)는 되고도 넘쳤다. ...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부자'는 '기득권자'는 '독서 따위'는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독서 하지 않아서, 부자가 되고  기득권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더라만 / 그러나 사실은 '부자'나 '기득권'자가 몰래 '독서' 또는 '독서'에 준하는 행위 들을 훨씬 더 깊이, 자주, 널리 하고 있다. 그러니, 부익부 빈익빈이란 말이 만고의 진리다. 


항아리마다, 책이 가득하길!!


09. 그러므로, 생각해 보면, 뭐니뭐니 해도, 진시황은 물론 현 정부의 '갑질형 분서갱유' 노선 따위는 발끝에도 따라오지 못할 '분서갱유'가 광범위하게, 근원적인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말하자면 '자발적 분서갱유'라 할 만한 '독서(종이책)율 저하' 사태이다. 한국사람이 책을 안 읽는다는 얘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최근 들어 그 경향이 더욱 노골화되었다. 한편으로는 전자책이나 SNS등을 포함한 '읽기'는 이전 시대에 비하여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되었다고 하지만, '독서'(전자책, 오디오북 포함)는 인간의 진화사와 더불어 진화해온, DNA수준의 사안이라 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보면, 현재의 '책 안 읽기 열풍', '독서멸종'은 기후위기보다 더 심각한 '(인간)멸종'의 징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서점폐업'이 잇따르고 '출판사 몰락'이 이젠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하긴 입만 열면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을 외쳐 온 출판계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런데, 정말 요즘은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 얘기를 안 한다. 정말이다.)


10. 나는 "탈성장(포스트성장포함)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고 주창하고 있다. 그리고 "탈성장은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탈성장은 '쓰나미'나 '팬데믹' 같은 재앙-이후의 일로 우리에게 강제될 것이다. 그 쓰나미의 물결 위로 떠가는 뗏목 혹은 뗏목 제조법(매뉴얼), 그 팬데믹 상황의 최선의 백신 혹은 백신 제조법이 '독서'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독서가 살 길이다!"라는말은 팩트다! [책 읽기 싫은 사람, 책 읽으려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 눈앞이 어른거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도 독서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자면, 책은 사실 보는 것 이전에 사는 것이다! 책을 사기만 해도, 절반은 읽은 셈이다!!!]


11. '독서 멸종'을 부추기는 세력에게 천벌을! (요즘 들어 '저주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는 는심정으로. 그러나, 저주에만 기대지는 않을 것이다.)


추신. (1) 뜬금없이 떠오르는 안 우스운 이야기 하나. 예전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출판사 대표(직원)에게 "책이 저렇게 많으니, 책 한 권 선물해 주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 대표(직원) 왈 "현대 자동차 사장님에게 가서 공장에 차가 저렇게 많으니, 차 한 대 선물해 주세요"라고 해서, 차를 그냥 받아 오면, 자기도 책을 그냥 주겠다고 했단다. (2) "책 한 권은, 하나의 대학이다."라는 말도 있다. 대학 폐교가 일상화된 오늘날, 책 폐기나 멸종도 당연한 수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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