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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Nov 17. 2023

종교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종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기획, 장석만 엮음
352쪽, 모시는사람들



천도교의 음식 관련 교리와 철학은 천도교의 정체성과 특성을 잘 드러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식고(食告)’가 천도교의 중요한 종교 행위라는 사실은 먹는 것이 천도교 교리와 신앙의 핵심과 이어져 있음을 말해주고, ‘반포지효(反哺之孝)’ 이야기는 천지부모로서의 한울님을 모시고(侍) 섬기는(事)하는 일을 시사한다. 


‘한울로서 한울을 먹는다’는 ‘이천식천(以天食天)’, 만사지는 밥 한 그릇‘이라는 ‘만사지 식일완(萬事知 食一碗)’ 등의 교리는 천도교(동학)을 대중 곁으로 다가가게 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하는 대표적인 교리, 철학이다. 도가불식 일사족지악육(道家不食 一四足之惡肉)과 같은 음식 금기(禁忌) 문화도 뚜렷하다. 또한 모든 제수(祭需)를 ‘청수일기(淸水一器)’로 귀일시킨 것도 그러하고, 향아설위(向我設位)의 이치로서 ‘음식’을 매개로 한 개벽 사상(顚覆)의 정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종교 일반에서 음식은 종교라는 인류문화체계 자체의 형성, 유지, 발전시키는 중요한 매개가 되어 왔다. 인류 발생 초기의 동굴벽화는 ‘종교’와 ‘음식(사냥)’이 동시발생적인 것이었음을 말해주고, 오늘날에 와서 세계화된 기독교의 경우 예수의 ‘최후의 만찬’은 종교 교리적, 의례적으로 영성체(領聖體, 가톨릭)이나 성찬식(聖餐式, 개신교)으로서 현재에도 기독교를 떠받치는 중요한 의례가 되고 있으며, 예수의 최후를 기념하여 회중(會衆)이 예수의 살을 상징하는 빵과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나누어 먹는다는 것으로 종적으로는 신인일체(神人一體)를 횡적으로는 만인일체(萬人一體)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불가(佛家)에서도 부처님 시대에 이미 음식과 관련된 다양한 교리, 설화가 성립되었으며, 그 이후로도 육류(肉類)나 오신채(五辛菜)를 금하는 등의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전하였고, ‘사찰음식’은 종교 고유의 음식문화가 대중화된 사례로서 널리 ‘회자(膾炙)’된다. 유가(儒家)에서도 공자(孔子) 시대부터 음식은 유교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었고, 이슬람의 ‘할랄’이나 라마단(금식기간) 같은 음식문화도 그 폭과 깊이가 크고 넓다. 우리나라의 굿에서도 풍성하게 차려지는 굿음식 등 종교와 ‘음식’문화는 표리일체와도 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로 읽는 음식문화, 음식이 말하는 종교문화]는 이처럼 음식이 종교집단의 아이덴티티 형성과 유지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종교의 본질과 기능 그리고 다양한 계층 및 문화요소와의 관계를 살핀다. 한 종교집단의 음식 금기와 규제에서부터, 음식의 의미, 상징, 언어 등에 대한 종교적 설명들을 인간의 몸, 물질과의 관계 속에서 살피는 일은, 결국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나아가 인간이 음식을 먹는 데서부터 인간이 결국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되는 것까지 연장된다. 


음식에 대한 종교의 규제와 접근은 그 종교의 우주관, 세계관,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통로가 되며, 종교집단에 활력을 부여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종교를 통해 음식을 이해하는 것은 다시 음식을 매개로 종교를 살피는 일이 된다. 먼저 세계종교와 음식문화를 일별하고, 범위를 좁혀서 한국종교와 음식문화를 살피며, 종교적 관점에서 보는 음식의 의미와 그를 통해 인간의 삶의 근원을 짚어봄으로써, 종교의 근본적인 역능을 살피고 재조명하는 책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세속의 타락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어쩌면 ‘음식’ 문화이다. ‘먹방’이라는 이름의 음식 희화화의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이고, ‘섭취 과잉’에 따른 ‘비만’에 시달리며, 직접 혹은 간접으로 비만이 사인(死因)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식량이 상품이 된 지 오래고, ‘무기’로도 작동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속에서 종교는 세속을 계도하고 교화할 역량을 상실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세태에 어떻게 스스로를 적응시켜 갈지를 고민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러한 시대에 종교적 관점에서 음식의 의의를 새롭게 이해해 보는 이 책은 종교인뿐 아니라, 지구와 생명세계에 죄 짓지 않는 삶을 살기를 희구하는 개인이거나 현대사회의 위기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꼭 읽어 볼 만하다. 


천도교의 음식문화와 관련하여 이 책에서는 “동학 및 천도교의 음식문화는 (중략) 자기 안에는 신령하고 무궁한 우주생명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우주생명을 공경하여, 거기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 바로 자기실현이다. 자기 안에 우주생명이 살아 있다면 이웃 안에도 살아 있음을 인정할 수 있고, 이웃을 공경함으로써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할 수도 있다. 나아가 동식물과 무기물 안에도, 기계에까지도 우주생명이 살아 있음을 인정하고 공경함으로써 생태계의 균형을 새롭게 회복할 수 있다.”(258쪽)고 소개한다.  


* 이 글은 천도교의 기관지 월간 <신인간>에 기고한 글입니다.

** 이 글은 모시는사람들 카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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