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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03. 2018

도를 물음이 어찌 이와 같이 밝고 밝은가

동학으로 묻다, 물음으로 동학하다 5

-「논학문(論學文)」 속의 문답① / [개벽신문] 제70호(2017.12)에 개벽의 창의 글입니다. 


『동경대전』의 두 번째 장인 <논학문(論學文)>은 초기에 <동학론>이라고 불렸다. '동학'이 무엇인지, '동학의 핵심 사상/교리/철학이 무엇인지를 논하고 있는 글임을 알 수 있는 제목이다. 실질적으로 철학사상의 측면은 물론이고 종교교리상으로도 동학의 핵심 ‘이론’을 담고있는 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논학문은 포덕 3년(1862)년 1월경 전라도 남원 은적암에서 집필되었다.


은적암은 남원시 외곽의 교룡산성 내에 있는 선국사라는 절 뒷편 교룡산 7부 능선에 있던 암자의 이름이다.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사진, 천도교중앙총부 홈페이지에서 인용)


1860년 4월 5일에 동학 창도를 위한 결정적인 신비체험을 한 최제우는 그로부터 1년여에 걸쳐 신앙체험과 사색 그리고 사상(교리)의 체계화를 거듭한 끝에 이듬해 1861년 6월부터 제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布德]한다. 그러나 한적하던 시골마을 산속 계곡(구미산 용담정)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관에서 수상한 눈초리로 수운 선생을 주시하였고, 고을 일원에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수운 선생이 도통을 해서 용도 되고 범도 되는 술수를 부린다는 식의 허황된 소문이거나, 수운 선생의 진의를 음해하는 내용이 다수를 이루었다.


이에 수운 선생은 보따리(행장)을 꾸려 길을 떠났다. 남도 지역을 두루 살피며 전라도 남원 땅에 이르러, 고을 외곽 교룡산성 내에 있는 은적암에 ‘은거’하며 경전 집필에 전념한다. 이때 지어진 것이 <논학문(동학론)>이다.


한울님과 수운 선생의 문답에서 수운 선생과 제자들의 문답으로

<논학문>에도 <포덕문> 등장하였던 경신년 4월 5일 이후의 천사문답(天師問答, 한울님과 수운 최제우 사이의 묻고 답하기) 과정이 기록되어 있으나, 거기에 더하여 수운 최제우와 제자들 사이의 문답 과정이 추가되어 있다는 점이 좀 더 주목할 만하다. 천사문답에 비유하면 '사제문답'이라 할 수 있다.


<논학문>이 지어진 것은 남원에서였으나, 그 내용은 수운이 경주 용담정에 있을 때, 용담정으로 찾아와 동학 창도의 경위와 그 핵심 교리를 묻는 제자들에게 답하는 것이므로, 문답이 진행되는 곳은 용담정이다.  


우선 <논학문>에 기록된 천사문답 장면에서는 한울님의 마음과 수운 최제우 선생의 마음이 하나라는 것, 귀신이라는 것도 또한 한울님이라는 것, 그리고 수운 선생이 무궁한 도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한울님 자신의 목소리로 천명된다.


몸이 몹시 떨리면서 밖으로 접령(接靈)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강화(降話)의 가르침이 있으되,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오히려 이상해져서 수심정기하고 묻기를, “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何爲若然)

대답하시기를, “내 마음이 곧 내 마음이니라. 사람이 어찌 이를 알리오. 천지는 알아도 귀신은 모르지 귀신이라는 것도 나니라. 너는 무궁 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닦고 단련하여 그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여기서는 한울님과 수운 선생의 문답(問答)에 앞서서 “밖으로 접령(接靈)하는기운과 안으로 강화(降話)의 가르침”이 “보였는데 보이지 않고, 들렸는데 들리지않는” 과정이 있다(접령과 강화에 관해서는 다른 기회에 ‘양자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듣는 것과 들리지 않는 상호 모순적인 상황이 동시적(同時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원론이 아닌 조화론으로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당연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사항이지만, 수운 선생과 한울님 사이의 문답(問答)은 1860년 4월 5일 하루 동안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고 몇 개월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문답만이 아니라 일방적인 지시(명령)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컨대 <포덕문>에 등장하는 “영부 탄복(靈符呑腹; 한울님이 내려주시는 영부를 종이에 그려서 불 태운 다음,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심)”을 7, 8개월쯤 한 어느 날 이번에는 한울님(상제)이 수운 선생에게 질문을 던진다.

수운이 동학을 창도하고, 또 제자들과 문답을 주고받던 용담정(수운 순도 이후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0년대에 복원한 것이다)

상제께서 또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너는 백의재상(白衣宰相)을 제수(除授) 받겠는가?”

선생이 대답하기를, “상제의 아들로서 어찌 백의재상이 되겠습니까?”

하니, 상제 말씀하시기를, “그렇지 않으면, 나의 조화(造化)를 받아라.”

하고 조화를 나타내 보였다. 선생이 가르침을 받아 이를 시험해 보니 모두 세상에 있는 조화였다. 선생께서 응하지 않으니,

(상제께서) 또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 조화를 행한 후에 저 조화를 행하도록 하라.”

하므로, 선생께서 즉시 이를 행하여 보니, 이 조화 저 조화 모두 세상에 있는 조화였다. (중략) 그 후 비록 명교(命敎)가 있어도 이를 거행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열하루 동안을 음식을 먹지 아니했다. (중략)

“아름답구나, 너의 절개여. 너에게 쓸모 있는 무궁의 조화를 내려서 포덕천하하게하리라.” 하였다. 

(천도교 최초의 역사서인 『桃源記書』에 실려 있는 내용; 다른 기록(시천교 측)에는 이때 내려준 ‘무궁의 조화’가 “오심즉여심”의 내용과 관련된 것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이 에피소드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백의재상(권력)과 조화(술수), 그리고 재력이 아닌 ‘도(道)’를 수운 선생이 최종적으로 선택하였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견해다. 이 기록이 수운 선생의 경험담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인지, 소문에 소문이 거듭되고 부풀려진 결과인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여기서는 ‘상제’가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점만 우선 확인하여 두기로 한다.


그러나 우리가 <논학문>에서 주로 주목하게 되는 대목은 수운 최제우와 제자들 사이의 문답 속에 등장한다. 이를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수운과 제자, 10문 10답


(1) 첫째, 제자들이 수운 선생에게 “천령이 강림”하였다는 것의 진위와 의미를 묻자,

수운은 “무왕불복지리(無往不復之理;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이치)”를받았다고 대답한다.

(2) 둘째, 제자들이 “동학”과 “양학(洋學=西學)”이 같은지 다른지를 묻자,

수운은 서학과 동학은 “도(道)가 같고 운(運)도 한가지이만, 이치(理致)는 아니다(非)”라고 하고, 당신이 받은 무극대도(天道)를 굳이 지칭한다면 동학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대답한다.

(3) 셋째, 제자들이 “동학”의 이치가 서학과 다른 점을 묻자,

수운은 “동학은무위이화(無爲而化)의 도”라고 하고, 이것이 허무지설/허무지도인 서학과는 다른

점이라고 대답한다.

(4) 넷째, 제자들이 “주문”의 의미와 “강령의 글”이 그렇게 되는 까닭을 묻자,

수운은 “주문은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라 예나 지금이나 있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이어 강령(21자 주문)의 글자/용어를 하나하나 풀어서 대답한다.

(5) 다섯째, 제자들이 “한울님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인데 어찌하여 선악이 존재하느냐”고 묻자,

수운은 “천지와 더불어 그 기운과 덕이 합하는지 여부에 따라나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6) 여섯째, 제자들이 “왜 세상 사람이 다 한울님을 공경치 않는지”를 묻자,

수운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7) 일곱째, 제자들이 “동학에 대하여 비방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는 까닭”을 묻자,

수운은 오도(吾道)가 “지금도 듣지 못하고, 예전에도 듣지 못한” (새로운) 도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8) 여덟째, 제자들이 “동학에 입문하였다가 배반하고 돌아가는 자는 왜 그러는지”를 묻자,

수운은 “거론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이 옳다고 대답한다.

(9) 아홉째, 제자들이 “(동학을 배반하는 자의) 입도할 때 마음과 배반할 때 마음의차이”를 묻자,

수운은 “바람 앞의 풀과 같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10) 열째, 제자들이 “(동학 배반자가) 해도 없고 덕도 없는지”를 묻자,

수운은 “이 세상 운수는 세상과 같이 돌아가는” 것이며, “해가 되고 덕이 되는 것은 한울님에게 달려 있”으므로 “해(害)가 그 몸에 미칠지 알 수 없으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 하고 “(나도) 대답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제자들과 이러한 문답을 주고받은 끝에 수운은 찬탄의 글을 남긴다.


아! 참으로 감탄할 일이로다. 그대들의 도를 물음이 어찌 이같이 밝고 밝은가. 비록 나의 졸렬한 글이 정밀한 뜻과 바른 종지에 미치지 못했을지라도, 그 사람을 바르게 하고 그 몸을 닦고 그 재주를 기르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어찌 두 갈래 길이 있겠는가. 무릇 천지의 무궁한 수와 도의 무궁한 이치가 다 이 글에 실려 있으니, 오직 그대들은 공경히 이 글을 받으라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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