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임남희 동덕은 지난 9월 8일부터 11일까지 로마 바티칸에서 서소문공원을 가톨릭성지화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9월 9일 로마 바티칸 박물관 내 브리치오 디 카를로 마뇨 홀에서 ‘한국천주교230년’ 기념전시회 개막식, 리셉션, 만찬이 열렸고,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 염수정 가톨릭추기경, 최창식 서울중구청장 등 한국인들이 대거 참석하는 것에 때맞추어, 서소문공원을 가톨릭성지화하려는 부당한 처사에 반대한 1인시위였다. 이번 동학의 비결은 카톡 등으로 보내온 임남희 동덕의 근황을 소개한다.
9월 8일
프랑스에서 로마가는 비행기를 탔다. 로마도착, 베드로성당 둘러보니 비표가 있어야 입장가능. 성당에서 일인시위를 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9월 9일
아침 8시경 전철로 바티칸역 도착. 가는 길에 전단지 복사 한글50장, 외국어 50장 각각 준비하여 바티칸 베드로 성당 앞 광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외국 관광객이 베드로성당 입장위해 줄들이 이어지고 있고, 한쪽에는 한국인들이 행사 입장을 기다리며 여기저기 모여서 대화 중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나 둘러보니 다들 경외로움으로 바티칸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시위 시도 자체가 엄청 미친 짓거리가 될 것임이 분명하고, 또 어떤 반응이 있을지 궁금했다.
베드로 성당 출구의 안내직원에게 교황에게 할 말이 있어 피켓 들려고 하는데 가능하냐고 물으니 성당 안에서는 불가능 하지만 광장에서는 할 수 있다고 하여 용기 충천 하여 광장의 오벨리스크 옆에서 준비한 피켓을 꺼내서 위로 들었다.
‘뭔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다들 나를 쳐다본다. 무리무리 신부들도, 수녀들도, 일반 신도들도. 모두 카톨릭 신자들이다. 넓은 광장에 달랑 작은 피켓으로 무언가 알린다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누구말대로 그나마 사람 생물이 바위를 친다. 전단지를 한국인들에게 설명하며 나누어 주려니 참 쉽지 않다. 다들 독실한 카톨릭 신자들만 입장이 가능한 오늘의 행사 아니던가!
몇몇이 수고 한다며 전단지 받고 사진도 찍는다. 그 사진이 어디에서 알려질지 모르겠다. 그냥 내 할 일, 피켓팅과 전단지로 알릴 뿐. 한국에서 해결 할 일을 바티칸 까지 끌고 오는 한국지도자들 덕분에 한갓 시민인 내가 여기까지 뒤따라 올 수밖에 없는 답답한 심정과 사정을 여기 모여 감격하는 카톨릭 신자들이 알기나 할 것인가. 여기서는 나 임남희만 정신나간 사람이 되는 바티칸 시국(제국)안이다.
모두들 여러 나라의 관광객이라 영어도 이태리어도 한글도 모르니 힘들게 준비한 3개국 언어 전단지가 소용이 없다. 혹시 한국인이 있을까 줄 따라 둘러보지만 모두 행사장으로 가고 없다. 그중에 어느 이태리 한 중년 신사가 하는 말이 교황청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옛날 갈릴레이 시대의 일화를 말한다.
그렇겠지, 권위로 유지되는 교황청이 아닌가! 1시간 정도 지나서 오벨리스크 그늘진 곳에 앉아서 쉬며 옆 사람(이태리인)에게 사진 부탁하여 남긴 몇 장의 사진이 유일한 기록사진이다. 곧이어 경찰과의 일들이 벌어진다.
기념사진 찍고 막 앉아서 쉬려고 하는데 경찰차가 와서 선다.
“바티칸에서 피켓팅은 안 된다.”
“알았다.”
하고 피켓을 거두니 전단지 내용을 보고 심각해지기 시작하더니, 다른 경찰이 와서 같이 가잔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바티칸 앞에는 군인도 있고 경찰차와 경찰도 많다. 어느 사무실에 가서 신분조사와 목적이 무엇인지 등의 심문을받았다.
전형적인 형사들의 행태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보는 경찰의 인물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은지. 서장 같은 지위의 사람은 훤하니 무능한 것 같았다. 어린 경찰은 참신했지만 인상은 험했고 기회주의자 같이 바티칸의 의도를 잘 알아서 자발적으로 큰일로 처리하고자 하는 비겁한 자들 같았다. 다 이태리어로 말하는 것을 보며 느낌으로 판단한 것이지만, 거의 틀리지 않고 맞을 것이다. 똑같은 물음 주소 이름 등등...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필요도 없고 듣지도 않는, 경찰 자기의 업무의 필요 부분만 알아내서 처리하기 급급한 행태. 어찌 그리도 드라마 영화 똑 같은지.
10시30부터 시작된 심문(?), 자기네 일하기(보고서 작성) 바쁘고, 서로간 견해 차이로 언쟁이 있기도 하고, 또 여러 경찰이 번갈아서 체포경위 작성하고, 또 다른 경찰서로 옮겨 갔다. 좀 높아 보이는 선량하고 희멀쭉하게 생긴 경찰은 또 일을 키워서 자기 성과 위주로 끌고 가려하고, 잘 생기고 고집 세어 보이는 동료가 엄청 뭐라 뭐라고 언성을 높이며 반대하는 느낌을 받았다.
또 다른 사무실에서 또 똑같은 신분 질문 전단지, 피켓 내용을 기록했다. 이 사람은 불어 영어 가능했다. 변호사니 판사니 재판이니 협박(?)하더니만 결론은 피켓과 전단지 압수한다는 내용의 보고서 사인을 원해서 ‘이태리어를 몰라서 사인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시위 안 할 것이고 내 것이니 돌려 달라고 항변 했지만 소용없었다.
“만약에 ‘교황 사랑해’, ‘바티칸 성원해’ 등의 피켓팅이었다면 너희 경찰이 나를 잡아 왔겠느냐! 바티칸에 아무런 항의도 못하느냐!! 너희 경찰은 약한 시민을 도와주어야 하지 않느냐! 오직 바티칸과 그 권력의 일만 하느냐! 지금도 봐라! 이많은 경찰이 나약한 여자 한사람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보라! ”
이렇게 말하고 나니 눈물이 확 고여 들며 울컥했지만 꽉 참고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당장 프랑스로 추방 시키라!”고 했더니 그냥 가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서 밖까지 안내해 준다. 다음에 시위를 원하면 3일 전에는 신청하라고 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시위 신청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어본다. 바티칸을 상대로 일정한 기간을 정해서 시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폭발하는 울분을 겪게 되는 찐한 경험을 했다. 경찰서 이층 사무실에서 보이는 건물이 얼마나 멋지던지! 심문(?)중 이준열사의 울분, 죽음으로 알리고 싶은 심정에 공감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다시 찾아가보니 처음 잡혀 간 곳은 경찰서(Polizia)라고 적혀 있지 않았다. 이태리의 내무성 소속 바티칸 보안국이었다. 내가 뭐 대단한 임무를 띤 테러리스트 같은 존재인가? 비밀경찰을 붙여 심문했으니 별 볼일 없는 평범한 한 여자를 큰일이나 한 것처럼 일을 꾸며야 자신들의 실책을 면할 수 있겠지! 더군다나 프랑스 국적을 가졌으니 외교문제를 만들어 좋을 일도 없을 터이고. 바티칸 1인 시위도 결코 허가가 안 날 것이라고 넌지시 알려주던 경찰, 내용이 교황청의 잘잘못과 카톨릭의 잘못됨을 개선하라는 내용은 절대로 허가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히 교황청에 도전을? 감히 교황의 권위에 도전을? 절대 불가침!’
이런 사고방식일 게다. 그래서 더 해보려는 오기가 넘쳤다. 또 한 가지 바티칸의 시위는 위험할 수 있다고, 광신자가 시위하는 것을 보면 해칠 수도 있다고, 마치 경찰이 광신도의 위험에서 나를 보호해 주는 것처럼 말했다.
두 번째 간 곳이 경찰서였다. 뜻밖에 로마 경찰서 관광을 하게 된 것이 나쁘지만은 않은 걸로 마음 먹었다. 앞으로 시위 신고 메일로 하란다 . PECcomm.borgo@pecps.poliziadistato.it
여기로 보내면 답이 없으면 허락이고, 불허는 연락한다고 한다. 이 메일주소로 계속 1인 시위 신청하려고 작정했다. 11월에 1주 정도 매일 2시부터 5시까지. 경찰에서 허락하면 문구도 준비해서 갈 것이다!
이번에 바티칸에 피켓을 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았다. 그래서 경찰들도 갈팡질팡 했었던 것 같고, 아마도 10명도 넘는 경찰이 관여했었다. 그래서 피켓들며 바티칸의 부당함을 끊임없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12월도 1주일 피켓하고, 단골로 가야겠다.
조서 몇 시간 꾸미고, 1시에 풀려났으니 3시간 반을 잡혀(?) 있었다. 한국보다 집회문화가 훨씬 후진국이었다. 바티칸시국이라면서. 말로는 세계의 정신을 어떻고 하는 자들이 아닌가. 종교를 사칭한 권력집단! 이태리가 보호하고 이용하며 활용하는 또 하나의 권력집단! 세계는 이런 파렴치들이 왜 판을 치는걸까? 이런 구호들이 절실해 보였다.
하느님의 영광을 바티칸이 욕되이 하지 말라!
바티칸은 사죄하라!
바티칸의 속세적 욕심을 종교의 뒤에 숨기지마라!
바티칸이 사라지는 날 인간 존중이 일상화 되는 날일 것이다!
세계가 평화로울 것이다!
9월 10일
전날 경찰들의 관심(?)을 엄청 받고 난 후 숙소로 돌아오니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며 골아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웬 천둥 소리가 나서 창문을 열어보니 진짜 천둥을 동반한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허! 꼭 내 심정 같구나! 한울이 오늘은 꼼짝 말고 쉬라시는구나. 내 대신 분함을 천둥으로, 억수비로 풀어 줄테니.”
9월 11일
오늘 오후 빠리로 가기 전 바티칸에서의 ‘천주교 한국선교 230주년’ 기획전도 보고 마지막 계획한 일도 마쳐야 했다. 어제 퍼부은 것으로는 분이 다 안 풀렸는지 하늘에서는 비가 왔다갔다 뿌리고 있다. 우비와 우산 그리고 장화 (이번에 부츠는 탁월한 선택이었음)와 따뜻히 입고 바티칸으로 출발! 그렇게 북적대던 기획 전시관은 썰렁하여 사진 찍는데 수월했다.
서소문공원을 천주교성지화 하려는 목적의 전시를 위해서 답사 방문이라고 공무원 50명이 국민의 혈세로 바티칸까지 날아와서 감격하고 충성맹세 하고 간 꼴이라니. 왜 국민의 세금으로? 그렇게 가톨릭에 감사하고 감동 받을 일이 있으면 개인의 이름으로 비용으로 갈것이지! 우산을 받쳐 들고 베드로 성당 앞에서 줄을 섰다. 눈을 드니 베드로 성당의 지붕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돔 지붕 위로 왕관이 올려져 있다.
그렇지, 왕권 위에 교권! 교황이 관을 씌워 주어야 왕으로 인정받는 것이었지. 옛날 유럽의 역사 속, 그림 속 이야기 인줄만 알았는데. 아직도 21세기에도 교황의 왕관허락을 기다리고 또 그래야 왕 노릇 하는 나라가 있다니. 바로 대한민국 아닌가?! 교황을 부르고 순진한 국민을 내세워 그 아래 고개 숙이고 그리고 갖다 바친 서소문공원 이 그 증거 아닌가!
토요일 경찰에게 잡혔던(?) 곳에서 베드로 성당을 바라보며 오벨리스크 밑에 자리를 잡았다. 비가 와서 물이 있어 우비를 깔고 가부좌를 하고 수련을 시작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2시간은 할 수 있겠지, 베드로성당을 바라보며, 주문을 전해주리라! 진짜 한울을 공경함은 돔 위의 왕관이 아니고 바로 이 주문하는 마음이다!
많은 세계인들의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정한 한울의 기운과 평화를 전하는 곳이 되기를 바라면서 주문을 외는 수련을 시작한다. 1인 시위이기도 했다. 비가 와서 베드로 성당을 향한 방향으로는 관광객이 많지는 않아 대체로 한산하고 조용한 편이라 수련하기 딱 좋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또 경찰차가 와서 수련을 멈추라 한다. 시간을 보니 12시 48분. 딱 1시간 만에 경찰이 출동한 것이다. 어제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고 나니 곳곳의 사복 경찰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경찰이 오자마자 얼른 우비를 챙겨 철수했다.
결론은 바티칸에서 줄서서 기다리고 사진 찍고 하는 일 외에는 다 금기사항이라는 것이다. 다른 행동은 봐 줄 수가 없는 철저한 이기심만 팽배해 있는 바티칸을 또 실감하였다. 그런 사악한 기운이 꽉 차 있는 곳이, 하늘의 감동이 있는 곳으로 둔갑하여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이 커다란 장벽을 넘을 수 있을까?허물 수 있을까?
스승님들을 다시 한 번 귀하고 고맙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람의 본질과 귀함을 담고 있는 대한민국이 있어 다행이고 자랑스러웠다. 파리로 돌아오니 이런저런 일들이 기다리는 일상이 또 시작된다. 3박 4일 바티칸 여행이 꿈같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