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개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걸음 Feb 14. 2018

동학하는 사람의 새해를 맞이하는 방법

동학의 비결 2-26

심 국 보 | 본지 편집위원 [개벽신문] 71호, 2018년 1/2월 합병호



파주에서 새해를 맞았다. 법원수도원, 남쪽에서는 보기 힘든 눈이 때마침 흩날렸다. 수도원 뒤편 능선으로도 눈은 소리 없이 쌓였다.


“밤, 그 자체가 무한한 안식이요 수양이다. 밤의 그 고요한 신비와 허명虛明은 우리를 모두 스스로 ‘무아’ 혼연의 지경으로 인도함이 있다. 밤 한 시간의 송주는 그 효과에 있어 낮의 두세 시간의 송주를 당하고 남음이 있다. 어두워 가는 황혼, 밝아오는 새벽은 특히 정취가 있는 바이거니와, 첫 한잠 자고 깨어지는 그 시간, 대개 자정시간은 정신통일이 유난하게 잘되고 신명의 감응이 몹시 빠른 시간. 약간 수행에 적공이 있는 사람이면 이 시간의 송주에는 곧 지기가 강화되고 휘연한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수련 자료집에 실린 소춘 김기전의 말씀에 공감하며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는 철야 수련에 들었다. 밤새워 주문을 왼다. 새해 첫날 이른 아침, 날이 밝자 눈 덮인 법원수도원을 뒤로 하고 하산했다. 일구육팔년. 김신조 등이 청와대 습격하러 남하할 때 수도원 뒷산 능선을 탔다. 그때도 눈이 왔는지 모르겠다. 저 산 능선을 타고 서울 인왕산 자락 청와대 근처까지 왔다. 일이일 사태다. 나는 아침 일찍 파주역에서 전철 타고 삼호선 갈아타고 무악재 지나 남부터미널에서 버스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보니 김정은의 대화하자는 신년사가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당장이라도 미사일이 우주공간을 오가며 한반도와 뉴욕상공에서 터질 듯했는데…. 화해와 협력의 기운이 가득한 파주 땅에서 이렇게 무술년 새해를 맞이하였다. 의암(손병희)은 ‘무하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무(丁·戊) 사이 기억치 못한 날에 깜깜한 동산을 이룬 사실이 있으니, 홀연히태양이 떨어져 천지가 아득한 것이 마치 흙물에서 헤엄을 치며 육지를 바라보는 것 같으니라. 이때에 천지간 무한한 생령이 고기떼처럼 울부짖으니 가련한 그 정경은 눈으로 참아 볼수가 없었나니라.”


“온 천하의 생령이 거의 다 죽게 된 가운데 벼락불이 거의 죽게 된 백성들이 모여있는데 굴러 떨어져서 목숨이 경각에 달렸”지만, “비록 그러나 사람의 목숨이 지극히 중하니 한울이 어찌 돌보지 않겠는가.”


‘정·무(丁·戊) 사이 기억치 못한 날’이라 한 그날이, 작년(丁酉年)과 올해(戊戌年)의 어느 날일까? 요란했던 핵실험은 대화를 위한 포석이었나. 지난해 겨울 타올랐던 촛불은 암울한 전쟁 위협을 걷어내기 위한 준비였나. 어쨌거나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남과 북은 ‘사람의 목숨이 지극히 중하니’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아궁이 장작도 그렇다. 일단 불붙으면 거침없이 타오르는 법이다.


계명이야분혜鷄鳴而夜分兮 견폐이인귀犬吠而人歸

닭의 울음에 밤이 나누어짐이여, 개가 짖음에 사람이 돌아오도다


해월의 ‘강서’의 한 구절이다. 어느 분은 이 구절로 개띠 해인 올해를 헤아린다. “금년부터 우리 도에 많은 분들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고. 몸부림치며 살려는 사람, 운수 있는 사람은 우리를 찾는다고 했는데, 밀려들면 감당할 수는 있을까?


주역괘 대정수


수련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내가, 길을 찾는 몸부림이며 준비이기도 하다. 막지소향의(莫知所向矣),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은 몰라서라기보다는 마음을 제대로 정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수련을 통해 해가 가고 또 해가 오는 시기의 의미를 새기고 각오를 다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한 수운께서는 주역 괘를 짚어 한울님으로부터 득도한 의미를 새겨보기도 하였다.


처자를 거느리고 용담으로 돌아온 날은 기미년 시월이요 그 운수를 타고 도를 받은 시절은 경신년 사월이라 이 또한 꿈같은 일이요 형상하기 어려운 말이라.

주역괘의 대정수를 살펴보고 삼대적 경천한 이치를 자세히 읽어보았다.

- 동경대전, 수덕문


수운께서는 경신년(1860) 사월 득도 후, 자신이 받은 무극대도가 어찌 된 것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역괘의 대정수를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옛 선비들이 천명에 순종’하였음을 새삼스럽게 재확인하였고, 도를 받은 후 바로 포덕하지 않고 일년 동안 ‘닦고 단련하니 자연한 이치’임을 알았다.




밀운불우(密雲不雨)

  

얼마 전 새해를 맞아 뽑아 본 어느 분의 주역괘의 여운이 생생하다. 풍천(風天) 소축(小畜)괘, 괘의 전체적인 의미를 “외유내강의 형상이다. 내재하는 강인함을 함부로 발산해서는 안 된다. 정체된 상황을 견뎌야 한다.”고 푼다.

  

소축괘는 주역을 만든 문왕의 괘라고 한다. 중국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은 폭군이었다. 주(紂)왕은 하나라의 걸(桀)왕과 더불어 ‘걸주(桀紂)’라 불리며 폭군의 대명사로 쓰이는 그 주왕이다. 주왕의 폭거에 지친 민심은 서쪽 땅의 제후 서백창(西伯 昌, 문왕)에게로 향한다. 당시 문왕은 중원의 절반 이상을 자신의 영토로 만들었으나 은나라의 패권을 종식시키기에는 부족 점이 있었다. 그러자 주왕은 문왕을 유리옥에 가둔다.

  

문왕은 주 임금에 의해 유리성에 7년이나 감금당한다. 그동안 문왕의 큰아들은 가마솥에 삶기는 팽형을 당해 죽고, 문왕은 참으로 끔찍하게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아들을 넣고 끓인 인육탕을 다 먹었다고 한다. 주 임금은 문왕이 아들의 인육탕을 다 먹고 나자 사실을 알렸고, 문왕은 그때까지 먹은 것을 다 토했다.

그때 토한 것이 작은 무덤 하나가 되어 지금까지 전해온다. 문왕은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감옥 안, 극심한 고통 속에서 64괘를 풀이하여 주역(周易)을 짓는다.

 

소축괘를 설명하며 형통 즉 ‘모든 일이 잘되어 간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한꺼번에 대박 나는 상황은 아니었다. 조금씩 조금씩 쌓아나가야 할 상황, 그래서 소축이다. 무엇을 뒤집고 일을 도모하기에는 힘이 약하니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밀운불우(密雲不雨)’라고 멋들어지게 표현한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쌓여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데 정작 비는 내리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날 한시바삐 비가 내려 불타는 대지를 식혀야 하는데, 비는 내릴 듯 말 듯 하지만 정작 비는 쏟아지지 않는다.

  

문왕은 아직 구름만 빽빽하게 뒤덮었을 뿐 비가 오는 때에 이르지는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 섣불리 행동했다가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문왕은 자신을 갈고 닦으면서 덕과 지혜를 조금씩 쌓아 나갔다.

이렇듯 문왕은 치욕과 고통을 참아내면서 점차 민심을 얻어갔고, 강태공이라는 걸출한 군사 전문가를 얻음으로써 천하 대권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 민심을 잃은 은나라를 치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을 무렵 문왕은 큰 병을 얻었고, 결국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은나라를 멸망시킨 아들 무왕은 아버지를 문왕으로 추대하고 자신이 천명을 받들어 천자가 되었음을 선포하였다.




“뭇 개울이 순히 흐르고_백천순류(百川順流) ”


동학과 관련하여 주나라 문왕은 딱 한번 언급된다. 해월선생은 ‘내칙’의 끝부분에서 문왕을 언급했다.


“이대로만 시행하시면 문왕 같은 성인과 공자 같은 성인을 낳을 것이니, 그리 알고 수도를 지성으로 하옵소서. 이 내칙과 내수도하는 법문을 첨상가에 던져두지말고, 조용하고 한가한 때를 타서 수도하시는 부인에게 외워 드려, 뼈에 새기고 마음에 지니게 하옵소서. 천지조화가 다 이 내칙과 내수도 두 편에 들었으니, 부디 범연히 보지 말고 이대로만 밟아 봉행하옵소서.”


‘내칙’은 포태한 부인의 태교 지침서이자 수도지침서로 해월 선생이 직접 지은 글로 알려져 있다. 이상적인 성인으로 공자를 꼽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해월 선생이 이상적인 성인으로 문왕을 언급한 것은 왜일까? 동학은 후 천개벽의 새 시대를 여는 무극대도인 만큼 이에 걸맞는 인물상으로 문왕을 언급했을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새롭게 연 문왕 같은 성인이 동학에 또는 이 나라에, 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주나라가 멸망한 이후의 춘추전국시대 사람인 공자는 주나라를 이상적인 나라로 여겼다. 문왕, 무왕, 주공, 강태공 같은 걸출한 영웅들이 창건한 주나라는 중국을 포함하여 동아시아 국가들의 모범이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동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운께서는 ‘우음’에서 이렇게 노래하셨다.


사슴이 진나라 뜰을 잃었다니 우리가 어찌 그런 무리인가 

녹실진정오하군(鹿失秦庭吾何群 )

봉황이 주나라에서 우는 것을 너도 응당 알리라.

봉명주실이응지(鳳鳴周室爾應知)


여기서 사슴은 천하의 패권을 상징한다. 주나라가 망하자 일곱 나라(연, 제, 진,초, 한, 위, 조)가 패권을 차지하기 각축전을 벌인다. 이것을 축록(逐鹿, 사슴을 쫓음)이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진시황이 나서 천하를 통일한다. 통일왕조 진나라도 3세만에 망하고 만다.


‘사슴이 진나라 뜰을 잃었다’ 함은 동학 창도이후의 상황을 수운께서는 진나라가 멸망하고 후의 혼란한 세상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봉황이 주나라에서 울었다’함은 주나라를 창건한 문왕, 무왕, 주공, 강태공을 비유한 것으로 동학하는 사람들의 역사적 사명을 언급한 것이다. 주나라에 성인이 나왔듯 동학하는 도문에 성인이 줄지어 탄생할 것이라 예언한 대목이라 해도 될 것이다. 동학하는 사람들이 성인됨은 혼란한 격변의 시기에 정치적 활동을 의미하기보다는 오직 수도에 전심전력하라는 것이라 보아도 될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나 새 세상을 맞이하는 것은 별다르지 않다. 해월께서 성인되기는 ‘다만 마음을 정하고 정하지 못하는 데’ 있다는 하셨으니, 주문공부로 갈 길 몰라 헤매는 마음을 붙들어 매는 것을 새해의 다짐으로 한다. 혼돈의 세상이 평온해지는 새 세상에서도 동학하는 사람의 일은 별다르지 않다. ‘무하설’에서는 비유하여 노래하였다.


“지극한 정성으로 한울님께 밝게 고하고 글 십여 자를 써서 중생에게 주어 외우게 하였더니, 조금만에 뭇 개울이 순히 흐르고 육지 평야가 이루어져 뭇 백성이 편안하게 살았느니라.”


동학의 비결 2-25


매거진의 이전글 영원은 길이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깊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