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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pr 26. 2018

동학으로 가는 길

- 새 책, "동학으로 가는 길"을 펴내며...

"동학으로 가는 길"

-이승현, 송보나, 박맹수 지음 /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 15,000원 


0. 들어가며 


이 책은 전국 곳곳에 산재한 동학농민혁명 사적지를 동학전문가의 안내를 따라 현장 답사하며 동학과 그 혁명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나가는 답사기이자, ‘다큐스토리’이다. 2016년 전주MBC와 춘천MBC가 14부작으로 방송했던 라디오 드라마 ‘사람이 하늘이다’를 기반으로 하여, 그 취재과정과 후일담까지를 반영하여 재구성하였다. 


1. ‘시레기, 장미꽃으로 피다’


“장미대선!”

2017년 5월 9일의 대통령 선거는 5월에 치러진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말에는 ‘5월, 장미의 계절’이라는 의미 이상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1951년 10월 1일자 영국의 ≪런던타임스≫(더 타임즈)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시레기’에서 장미가 피어나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알려진 바로는 그 전해(1951) 2월 거창에서 발생한 양민학살사건과 그 이후 은폐공작 등을 비꼬아서 한 말이라 한다. 우리가 이 소식을 접한 것은 그해 11월 27일자 국내 한 일간지(동아일보) 사설에 그 기사에 대한 ‘반론’을 게재하면서였다. 

그로부터 66년이 지난 2017년, ‘시레기죽’으로 겨우 연명하던 한국인들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고, ‘촛불혁명’의 아름다운 광경을 세계역사에 아로새기고, 마침내 ‘장미대선’으로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워냈다.

동학으로 가는 길 

2.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 1항과 2항의 이 구절은 ‘촛불혁명’의 현장을 대변하는 상징과도 같은 노래이다. 

그 대한민국은 언제부터 ‘민주공화국’이었는가? 알려져 있다시피, 1919년 4월 11일 채택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 제1조에 뚜렷이 명시됨으로써, 그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올해까지 4월 13일에 치러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내년부터 4월 11일에 개최키로 한 것도 바로 이 시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인가?’

이 역사(歷史)를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아는 사람은 누구도 이 사실(임시정부=민주공화국)을 의심하지 않는다.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1919년 4월 11일에, ‘민주공화국’을 제1의(第1義)로 한 ‘헌장’이 채택된다는 이 ‘경이적인 사실’은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해 왔다. 막연하게, ‘민주’든 ‘공화’든 ‘근대화된 서구’로부터 번역(이식)된 이념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당시 세계사적으로도 ‘민주공화국’을 헌법에 명시한 나라는 거의 없었으며, 시기적으로도 1920년 이후에야 오스트리아 연방헌법 등에 명시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3. 동학으로 가는 길 – 동학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기 


3.1운동이 있기 15년 전에 ‘동학농민혁명’이 있었다.

그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동학농민혁명의 1894년부터 3.1운동의 1919년까지 한국사를 재탐색하지 않고서는 1919년 4월 11일 임시헌장의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우리는 ‘일제 잔재의 청산’이라는 과제와 ‘그 실패’라는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일제강점기’의 ‘전사(前史)’요 그 원인[近因]이라고 할 개항 이후의 소위 ‘구한말’의 역사에 대하여 지레짐작식으로, “결국은 식민지화를 면하지 못하였다”을 결과론적 역사에 매몰되어 왔다. 

이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며, 남북한의 평화공존(종전선언과 평화협적)을 기반으로 하는 통일시대를 앞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근현대사를 처음부터 새롭게 정립함으로써, 앞으로 100년 동안 우리가 써 나가야 할 한반도의 새 역사의 뿌리를 튼튼하게 다져야 한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이다. 

동학으로 가는 길을 함께한 "현빈" 씨 가족 

4. 동학농민혁명에서 촛불혁명까지 


이 책의 본문은 전국에 산재한 ‘동학농민혁명’ 전적지를 답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단지 역사의 현장에서 그 흔적과 유적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동학농민혁명군은 사람을 죽이는 군대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개벽군(開闢軍)”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며, 수십만의 동학농민군들이 ‘근대식 신무기’ 앞에서 처절하고, 철저하게 유린되었던 ‘근대 동아시아 학살전쟁(제노사이드)’의 서막임을 확인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죽음’으로 점철되는 ‘전쟁’이 아니라 ‘꿈’과 ‘깨달음’이 공존하는 ‘개벽’의 광장이었으며,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미래를 전망하는 ‘역사적 선취(先取)’의 실천장이었음을, 현장 현장마다에서 체험적으로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이 책에서 나레이터로 등장한 현빈 씨는 가족과 함께하는 수개월에 걸친 동학 답사를 통해 이 시대의 평범한 가장으로서, ‘내(內)가족’에 머물지 않고 ‘우리 가족’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광화문만이 광화문이 아니라, 전라도 장흥, 강원도 홍천, 경상도 경주, 경기도, 충청도 이 땅 어딘들 동학의 당이 아닌 곳이 없으며, 촛불의 광장 아닌 곳이 없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아가는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이다. 


5. 사람이 먼저다 – 사람이 곧 한울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 ‘반외세’의 ‘민중반란(혁명)’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첨병인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조선민중의 항일 전쟁이었다. 사실 ‘청일전쟁(淸日戰爭)’이야말로 부차적인 것이요, 조선민중(동학민중)과 일본군과의 전투가 본질이었다. 따라서, 안으로는 ‘동학농민혁명’이며 밖으로는 ‘조일전쟁(朝日戰爭)’이라고 명명(命名)해야 한다.

‘집강소(執綱所).’ 조선 역사에서 최초로 ‘아래로부터의 혁명’인 동학농민혁명의 최대의 성과로 일컬어지는 ‘집강소’는 ‘민(民)의 자치기구’로서 대의제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직접민주주의’(지방자치제)의 효시로 일컬어야 마땅한 역사적 성취였다. 

그 집강소 통치의 의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폄하되고, 오늘날에는 거의 잊혀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2016-17년의 촛불혁명의 시작은 동학농민혁명이며, 그 민주주의의 경험은 집강소통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어째서 세계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식민지’를 겪고서도 ‘민주주의’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길이 없다. 물론 이때 ‘민주주의의 성공’이란 짧게 보아 ‘4.19-5.18-6.10’으로 면면히 이어져온 민주화운동의 역사 전체를 아울러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때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라는 말로서 우리 스스로의 ‘민주의식’을 폄하하고 자학하기도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퇴화된 민주적 소양의 발로였을 뿐,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저 조선시대 내내 면면히 이어져 온 ‘민유방본(民惟邦本)’의 전통이 ‘동학’을 만나 ‘만민평등’ ‘민심즉천심’의 정신으로 승화, 정화되었으며, 그 바탕 위에서 대한제국시절부터 이미 ‘민국’의 백성(民)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이 먼저다’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였다. 

보은 동학길

6. 동학, 오래된 미래


물론 낙관하기에는 턱없이 이르다. 

우선 당연히도, ‘문재인 정부–사람이 먼저다’는 ‘문재인 개인’이 아니라, 그 정신이며, 그 지향이며, 그 가치를 지칭한다. 그 문재인 정부는 지금,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민주정부는 한편으로는 ‘적폐청산’의 과제를 하나하나 추진해 나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전쟁종식과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세계사적인 견지’에서 실행에 옮기고 있다. 우리 한반도가 세계사에서 이마마한 주목을 끌고, 이마마한 자주권을 행사하던 때가 지난 역사에서 얼마나 되었던가? ‘만세!’다.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3.1운동 당시의 ‘만세’이다.

그러나 여전히 낙관은 금물이다. 실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운 살얼음판 건너기임도 분명하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얼마만큼 가야 하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 기준점이 바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다.

이 책은, 어쩌면, 그렇게 예견되었다. 2016년에 하필 이 기획이 시작된 것도 그러하고, 진통을 거듭한 끝에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출간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남북 정상회담’과 그에 이은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그 이후 얼마쯤 지난(?) 시점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어디쯤’에 해당할까?

동학농민혁명, 지금으로부터 123년 전에 시작된 그 ‘사람이 곧 한울’인 세상을 향한 여정이며, 그러므로 아직 다다르지 않은[未來] 길이다. 


“동학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오래된 미래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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