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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19. 2018

성평등의 내재적 원류, 동학을 다시 보다 (1)

-소모임 ‘안산 동학언니들’의 좌충우돌 동학공부 이야기

[개벽신문 제73호, 2018년 4월호] 개벽광장

심 용 선 | 안산동학언니들


안산의 여성단체 ‘함께크는여성 울림’(이하 울림)은 2015년 2월에 창립한 신생단체입니다. 친구들 몇몇이 모여서 당시 박근혜 정부하의 시국의 답답함을 하소연하다가 뭔가 우리에게도 자부심을 가질 만한 유산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동학이 아닐까, 이런 얘기를, 당시로서는 막연하게나마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5년 말에 동학을 공부하자는 소모임이 만들어졌고 당시 출판된 지 얼마 안돼 따끈따끈한 <여성동학다큐소설> 시리즈 13권을 읽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 시리즈를 쓴 작가들이 ‘동학언니들’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것이 부러워서 우리는 따라쟁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안산의 ‘동학언니들’이 생겼습니다.


여성의 눈으로 본 동학 이야기

2016년 1년 동안 13권의 여성동학다큐소설을 다 읽고 저희들끼리 느낀 것은 여성의 눈으로 동학을 본다는 것의 ‘차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보통 동학 관련 자료나 책을 접할 때는 ‘동학란’이라는 사건 중심의 전개 방식이었다면 여성동학다큐소설들은 그 속에 살고 있었던 개개인의 삶, 감정, 나눔에 좀 더 집중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학을 한다’고 하는 것은 혁명을 하고자 했던 투쟁사로서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귀한 우리 함께 잘살자’는 생명정신 가득한, 어찌 보면 매우 여성적인 학문이자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하였습니다.


여성동학다큐소설 시리즈를 읽으면서 저자 중의 한 분인 고은광순님을 만나고 싶다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해월의 딸, 용담할매」,「 깃발 휘날리며」 등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어떻게 여성과 동학이라는 주제로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 13명이라는 여성들이 함께하는 공동작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고은광순님은 소설을 쓰기 전부터 여성계에 많이 알려진 인물입니다. 호주제폐지 운동을 열심히 했고 실제로 호주제가 폐지되는 여성계의 숙원 해결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주인공입니다. 13명의 작가들 대부분이 4자로 된 이름을 쓰는 것도 엄마성 아빠성 같이 쓰기를 했던 호주제폐지 운동의 흔적이라는 것도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는 고은광순님을 찾아간 것은 그해 7월 5일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습니다. 방문해도 좋겠느냐는 요청에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우리는 완전 신이 나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물동이를 쏟는 듯 퍼붓는 폭우에도 12명이나 갔으니까요. 청산에서 그분이 직접 해 주신 엄청난 양의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은 우리에게는 더없이 크고 깊은 힐링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생각 나면서 좋았던 기억으로 얘기하곤 했습니다.


11월에는 동학다큐소설 시리즈의 저자 중 한 분인 박이용운님의「 내포에 부는 바람」 북콘서트에 초대를 받아서 내포 동학 승전 기념식에 참여하고 내포 숲길걷기 행사에도 참여했습니다. 12월 울림 송년회 때는 소모임에서 동학정신이 촛불정신으로 계승된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짤막한 연극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2016년 1년을 동학에 재미있게 빠져서 공부하고 놀았습니다.



내포 동학 승전목 전투 승전 기념식에 참가


성평등의 내재적 원류, 동학을 다시보다

동학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전봉준의 봉기’ 정도로만 아는 사람도 많았고, 좀 더 안다고 하는 것이 우리 나라 근대의 사상적 계보로서 동학 사상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역설한 도올 김용옥 선생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계속 공부를 진행하면서 동학이 실패한 혁명이 아니라 밀알이 되어 3·1독립운동, ‘남북분열저지운동’, 제주4·3, 4·19혁명 등 우리 민족의 주요 고비마다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정신으로 되살아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아시아의 3대 민주주의 사상(유교 민본사상, 불교 일체중생개유불성, 동학) 중 하나라고 김대중 대통령이 말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역사적 유산, 동학을 우리가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가축처럼 일만 하고 모든 권력은 남성에게 빼앗긴 예속된 노예’와 같았던 조선 말 여성들에게 ‘여성도 하늘’이라는 놀라운 말씀을 동학을 창도한 수운 선생께서 하셨다는 것을 읽고 근대 언어인 ‘성평등’과 동학이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여성 동학인에 대해 궁금해졌고 동학경전을 공부할 필요도 느꼈습니다. 동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은 경전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답사도 해야하겠고…. 갑자기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습니다. 외부에서 기금 지원이 있으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성평등

의 내재적 원류, 동학을 다시 보다’라는 주제로 경기도에 기금요청을 했고 다행히 선정이 되어 2017년도에 여성+성평등+동학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수있었습니다.


동학 강좌, 그리고 동경대전을 읽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동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동학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박맹수 원광대교수, 고은광순 평화 어머니회 대표, 김용휘 한울연대 대표를 모시고 동학이 무엇인가에서부터 21세기 동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동학 경전을 공부했습니다.

‘다시보는 동학 이야기’라는 주제로 열린 강좌의 첫 번째 강의를 맡은 박맹수 교수는 <울림>이 있는 안산에 오면서 4.16 세월호가 생각되어 가슴이 먹먹했다는 얘기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동학혁명은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 일어난 것입니다. 동학, 그것은 혁명을 하자는 것이며 보듬어 안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은 투쟁과 저항의 방식이 아니라 억압된 생명의 상태를 정상적으로 돌리자는 것입니다. 전봉준이 혁명을 한 것도 약자들에 대한 애정에서였습니다.”



박맹수 교수의 동학 강좌


동학을 생명사상으로 접근하는 박 교수님의 강의는 매우 신선했습니다. 교수님의 동학입문 이야기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은 5.18 광주민주항쟁 때 지휘본부가 있었던 지하벙커에 있었다고 합니다. 제대 후 자신이 속한 지휘부가 광주시민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알게 되자 죄책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고 부패권력에 직접 저항하고 변혁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야학교사를 하던 박 교수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역사공부를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동학을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 교수는 현재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동학을 가장 깊이 있게 이해하는 동학 전도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봉준의 혁명에 대해서도 약자에 대한 애정을 가진 자로 접근해야지 싸움 잘하는 투쟁꾼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예로 전봉준의 최후 진술에서 판사와의 문답을 얘기했습니다.



질문: 너는 동학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전봉준 : 혹호(酷好, 아주 심하게 좋아한다)


질문 : 너는 왜 동학을 좋아하느냐?


전봉준 : 첫째는 경천수심(敬天修心)하는 도학이라서, 둘째는 보국안민(輔國安民)하는 도학이라서.



서당 훈장이었던 전봉준은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제할 방도에 대한 고민이 깊었는데 경천수심하고 보국안민하는 동학정신을 깊이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학은 민이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일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생명은 정상적인 상태가 침해를 당하면 자연적으로 기본 생존권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동학 봉기는 생명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설명도 또 다른 측면으로 동학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강좌는 고은광순님이 해주셨습니다. 그녀의 강의 주제는 ‘21세기 동학은 무슨 일을 할 것인가’였습니다. 현재 평화어머니회 대표로 평화통일을 위한 운동을 하고 계신데 그것이 동학소설을 쓰는 일부터, 거기까지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청산에 거주하게 되자 도종환 씨가 해월의 외손주인 정순철의 평전을 보내줬는데 그것을 보면서 청산이 동학의 2대교주인 해월이 머물렀던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등 동학과의 인연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청산 고은광순 님과의 만남


동학 소설을 써 내면서, 동학인들의 위대한 삶의 가치 지향이 한순간에 산화되어 버린 것은 압도적인 일제의 무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절감하였고, 그러나 무기는 전쟁을 위한 것이지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평화어머니회를 결성했다고 합니다. 패전국인 일본이 분단되지 않고 피해 당사자인 한국이 둘로 갈라진 것은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우리가 치러야 했던 민족분단의 비극은 말로 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아직도 평화협정을 맺을 수 없는가? 분단 이데올로기를 팔아 장사하는 분단 마피아들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미국 최대의 무기회가 록히드마틴이 있다고 했습니다. 무기자본의 이해타산에 맞지 않기에 북한의 평화협정 요청을 40년 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 동학 봉기 때처럼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분단 고착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평화협정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결국에는 “70YEAR DIVISION IS LONG ENOUGH! SIGN THE PEACE TREATY NOW!라는 피켓을들고 미국 백악관 앞에서의 시위까지 진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강좌는 김용휘 대표의 동학경전 읽기였습니다. 저서「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은 울림 소모임에서도 읽고 토론한 책입니다. 강좌가 있기 전에 저희 활동에 대해 관심을 보이시고 직접 편집하고 해설한 방대한 양의 경전자료를 아낌없이 보내주셨습니다. 강의 시간에는 동경대전을 직접 낭독하면서 토론하였는데요 원래 약속한 2시간을 훨씬 넘겨 4시간이 되었는데도 끝이 안 날 정도로 열강이었습니다. 저희는 1회의 강의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내용이라는 판단으로 열성분자들끼리 자부담으로 후속 강좌를 열기로 했습니다.



김용휘 교수의 동학 강좌


몇 가지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동학은 ‘동국의 학’, ‘보국안민의 학’, ‘천도의 현대적 회복’이라는 것이며 천도의 작동 방식으로서 ‘무위이화’가 있는데 이는 동학 사상의 주요 내용인 ‘시천주’, ‘수심정기’와 더불어 중요한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노자의 무위자연과는 다른 것인데 노자의 도 개념에는 인간의 성원에 감응하는 영적 실재 같은 개념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천주’의 의미를 이해하면 동학을 이해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유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이 사상은 주체의 존엄성과 생명의 연대성에 대한 자각이라고 했습니다.


동학의 한울님은 끊임없이 생성변화하는 과정적 존재로서 이해해야한다는 말도 하면서 이를 ‘범재신론’이라 한다는 어려운 말도 했습니다. 4월에 진행했던 3번의 강좌는 경전을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염원으로 7월과 8월 두 번에 걸쳐 김용휘 대표를 모시고 ‘동경대전 강독 및 해설’ 강좌를 추가로 열게 되었습니다.


추가 강좌에서 경전을 낭독하고 해설하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은 한번 만나면 3~4시간씩 강행군을 하는 열정의 시간이었습니다. 김용휘 대표의 최선을 다해 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져서 배우려는 우리도 좀 더 제대로 다가가려고 노력했던 것같습니다. 동학이 이렇게 오랜 기간 기억되고 3·1정신의 토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상적 깊이가 탁월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송년회에서 연극 공연


동학 창도주인 수운 선생은 3년 만에 돌아갔으나 도통을 이어받은 해월신사가 34년 동안 각지를 돌면서 경전을 가르치며 동학정신을 무르익게 했습니다. 수운 선생은 자신의 노비를 양딸과 며느리로 삼을 만큼 파격적인 평등사상을 몸소 실천했고 해월 선생도 마찬가지로 여성도 한울이라 하고 부인이 집안의 주인이기에 깎듯이 대해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다시개벽의 시대에는 부인들이 도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 및 만물의 평등을 몸소 실천했던 두 분의 말씀이 있는 경전을 공부하는 것은 그래서 우리에게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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