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신문 73호(5월호) 개벽의 창
[필자 주1 : 이 글은 개벽신문 제73호(2018.5)의 개벽의 창(권두언)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 글이 실린 신문이 오늘 나옵니다. 이 글을 보내놓고 인쇄물을 기다리는 중에,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역시, 혁명은 개벽으로 전진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옳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사례였습니다. 만만한 트럼프가 아닙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즉각 (김계관을 통하여) 대응한 것은 그야말로 '대범' 그 자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은 또 어떤가요. 제 생각에, 우리는 아직 그 깊이의 절반도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우리"도 산전수전공중전을 겪은 '우리' 아닌가요? 지금 내 생각은, "쫄지 마! 사필귀정!"입니다!]
[필자 주2 : 위의 필자 주 1을 덧붙여, 그 전 날(필자 주 1을 쓰기) 썼던 아래 글을 올려 놓았는데, 그로부터 하루사이에, 트럼프의 "취소의 취소" "제4차 남북정상회담(북측 통일각)"이 잇달아 진행되었습니다. 제 '누설'을 말씀드리자면,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혹은 올해 어느 시점에, 우리 민족에 비전되어 오는 "천부인" 세 개 중 한 개(무슨 색깔인지는 알 수 없으나)를 살짝 흔들었을 것입니다. 원래 그것은 북측 김정은 위원장과 손을 잡고 함께 흔들어야 하지만, 먼저 흔들고 뒤에 손을 잡아도, 그때부터 위력은 발휘되는 것입니다. 그 위력에 대해서 제3차(4.27-평화의집) 정상회담 당시 설명을 하고 양해(사전에 흔든 것)를 구했을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때만 해도 그 위력을 반신반의했겠지요. 그런데, 트럼프의 "취소의 취소"를 보고는 그게 아니다 싶었지요. 이번 제4차(통일각) 정상회담은 별 거 아닙니다. 두 분이 다시 만나서, "봤지요? 위력" "그러네요, 역시!" "하하하!" "허허허!" "~~~!!!" 이상입니다...]
촛불혁명은, 혁명이다. 촛불혁명은, 삼세번의 혁명이다. 첫 번째 촛불은 2002년, ‘미선 효순’이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었다. 두 번째 촛불은 2008년 미국의 쇠고기 수입이 도화선이 되었다. 세 번째, 마지막(인/이어야 할) 촛불은 세월호가 도화선이 되었다.
2002년의 촛불은 노무현 열풍과 결합하여 정권교체를 일구어 냈지만, 탄생 직후부터 대대적인 반격을 시도한 반혁명 세력으로부터 혁명정부를 지켜내지 못하였다. 시민[市民, 이 시대의 民衆]들의 역량(신념이든 정부에 대한/로부터의 신뢰든 간에)이 부족했으며,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혁명의 의미와 방향을 스스로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동세력의 공세에 시달리고 말았다.
반대로, 시민들의 마음으로부터 바라는 혁명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혁명정부의 속도감 때문이라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으로 귀결되었고, 앙시앙 레짐은 2대에 걸쳐 승승장구하(는 듯하)였다. 그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시민[民衆]들의 뼈저린 통찰과 자성이 거듭되었으나, 세월호의 영령들이 처절하게 수장되고서야, 우리는 우리가 허송한 세월, 반동체제에 빼앗긴 주권의 의미가 무엇인지, 얼마마한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인지를 새삼스럽게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세 번째 점화한 혁명의 촛불로 우리는 ‘혁명정부’를 재건하였다. 이렇게 보면 촛불 혁명은 ‘삼세번’의 혁명이지만, 나아가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것은 ‘삼세번의 삼세번’ 혁명이다.
돌이켜보면 한반도에서의 혁명의 ‘좌절’이 최근 15년 사이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87년의 항쟁이 3당 합당과 단일화 실패로 좌절되고, 부마항쟁과 서울의 봄, 그리고 광주항쟁이 5.17쿠데타 세력의 준동으로 좌절되고, 4.19혁명이 5.16쿠데타로 좌절되고, 광복 후의 자주적 통일정부 수립운동이 외국군의 진주로 좌절되고….
그러나 한국근대사에서 이러한 ‘혁명의 좌절’ 역사의 원형(原型)은 아무래도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좌절이 아닌가 한다. 그때 혁명전(革命戰)에서 결정적으로 동학혁명군이 좌절을 겪게 된 까닭은 외세(일본)에 무력과 전략을 충분히 간파하여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할 마음을 갖고 수십 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를 거듭하였고, 몇 번의 좌절(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을 겪은 끝에 세 번째 시도 만에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전취(戰取)하는 데 성공했다.
동학농민혁명군의 화력(火力)에 비해 일본군의 무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지만, 그러한 ‘일본군의 무력’조차, 그 이후 동학 세력[自主的/土着的 近代化 革命를 넘어 ‘開闢’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마주해야 할 ‘세계적 규모의 반동세력’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갑오년의 동학농민혁명은 당시의 혁명세력(동학)으로서는 그 전모(全貌)를 본 적조차도 없는 거대한 외세와 시대적 저항(제국주의와 자본(자유)주의-신자유주의)의 앞잡이에 불과한 일본제국주의에 처절한 패배를 맛보았고, 오랫동안 역사적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일본을 위시한 그 반동세력이 주도권을 행사하며 만들어 온 것이 지난 100여 년간의 세계사이다.(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미국 등의 연합군에게 패배했지만, 그것은 ‘반혁명적 근대화 세력’끼리의 땅따먹기 싸움이었다).
그렇게 지금은 혁명시대이다. 수사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혁명시대, 삼세번의 삼세번째 혁명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역사로만 보아도, 가까이는 ‘왕정(王政-박근혜 체제)’을 끝장냈다는 의미에서 혁명이며, 더 크게는 낡은 체제, 즉 적폐(積幣)와 구태(舊態)를 청산하고, 새로운 나라를 구축해 나가는 중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하의 혁명이란, 한편으로 또다른 의미의 지뢰밭 길을 걷는 일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이라는 구체제의 수뇌부가 지리멸렬하지만 온존하고 있고, 그 밖의 경제, 사회, 문화, 법조 곳곳에 여전히 ‘반혁명 세력’이 우위를 점하고, 호시탐탐 ‘지뢰’를 터트릴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차원에서 그러하다. 그들은 지난 1세기 남짓의 역사동안, 더 큰 ‘반혁명 세력’ 다시 말해 서구적 근대화와 자본주의 체제를 재빨리 받아들이고, 세속화와 물신주의라는 속성을 내면화하여 그것을 흉내내는 사람들/세력들이다.
그뿐만이랴. 최근의 ‘미투운동’에서 드러나듯이 우리가 혁명으로써 제거해야 할 적폐와 구태는 이미 우리 안에도 암덩어리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오직 ‘어떤 사람들’만의 문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상식’이라는 이름, ‘관행’이라는 안이한 판단, ‘관례’라는 미필적 고의 속에서 유지되어 오던 반혁명의 동력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제거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촛불혁명은 지뢰밭을 헤쳐 나가는 중이다.
이렇게 보면 지뢰는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으며,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우리가 헤치고 가야 할 ‘혁명 과업’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우리 역사에서 ‘혁명 – 좌절’의 역사를 좀더 추상적으로는 ‘근대 혁명의 길’이라고 설명한다. 즉 인간의 역사에서 중세 시대를 지나 근대사회로 진입하면서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 거쳐야 하는 ‘근대화’를 ‘서구적/(피)침략적’으로 겪는가, ‘자주적/토착적’으로 겪는가의 길에서, 지난 100-200년간의 한국사회는 ‘서구적/(피)침략적’ 근대화(行態)의 길을 걸어왔으며, 그런 점에서 남과 북은 다르지 않다. 북은 왼쪽으로 돌아서, 남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왔다는 점이 다를 뿐. 그리고 우리는 이제 먼먼 길을 돌아서, 우리는 다시 ‘근대 혁명’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대로(大路)로 접어들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사례를 비유해 보면, 우리는 잘해야 겨우 ‘황토현 전투’를 이겼을 뿐이다. 남과 북의 ‘통일의 길’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나아가는 때쯤이 ‘전주입성’이라고 본다면, 그때까지도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알다시피 전주화약과 집강소 정치 이후, 결국은 한반도로 침투해 온 외세와의 혁명수호전(革命守護戰爭)에서 패배하고 좌절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의 교훈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혁명에서도 호시탐탐, 반혁명의 기회를 엿보는 건 ‘국내산 지뢰’만이 아니다.
지금 한반도 남쪽의 혁명정부가 휴전선 이북의 ‘조선인민민주주의’와 의기투합하여 전개하는 기습적인 공세에 허를 찔려 쩔쩔매는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 역시 당장은 국내에서의 혁명에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된다고 느끼는 순간 언제든지 ‘반혁명 세력’으로서의 마각을 드러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고, 그 위력은 실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것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 글을 써서 발표한 이후의 '사태'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돌연한 북미 정상회담 취소' 사태는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망발을 접하고도, 절망과 좌절보다, 희망과 오기가 자연스럽게 발동하는 것이 좌절 속에서 단련되어 온 우리 '민중'의 저력이고, 특히 최근 문재인 정부-김정은 정부가 이룩한 성취의 결실이라고 본다.]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혁명은 좌절된다. 이것이 역사의 진리(眞理)이다.
성공한 혁명이 ‘한 번’이라면, 그런 식으로 좌절된 혁명은 ‘아흔아홉 번’쯤 된다. 혁명의 준비는 늘 오랜 준비와 수많은 시련과 더 많은 목숨을 바쳐야만 ‘시도’될 수 있음에도, 1%의 성공률에 그치는 반면, ‘반혁명’은 ‘여반장(如反掌)’인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의 혁명이 선 자리도 그 어디쯤이다. 여전히 혁명 역량에 비하여 반혁명 역량은 압도적이다.
그러므로 한반도(남과 북)에서의 혁명(革命)은 필연적으로 개벽(開闢)으로 차원이동을 위한 가속도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속도’는 ‘속력’만이 아니라 ‘깊이’를 포함한다. ‘속력’은 현재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운전자론’을 표방하며 내달리는 현실정치외교의 길을 표현한다.
‘깊이’를 표현하는 말은 ‘개벽’이다. 2018 촛불혁명은 꼭 ‘개벽’으로 차원 이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혁명의 성공’을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재 세계 전체를 장악한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한반도에서의 혁명은 결국 ‘신자유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혁명시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반혁명의 쓰나미에 직면할 것이다. 그것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말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직면할 상황이다. 혁명을 넘어서는 개벽을 향한 길이야말로 동학농민혁명 이래로, 우리[民衆]가 마침내 가고자 한 정상(頂上)이다.
개벽신문(開闢新聞)이 준비하고 나아가는 길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