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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22. 2018

“민중들이 역사의 희망입니다”

프랑스 에므릭 몽빌 소르본대 21세기 맑스컨퍼런스 조직위원을 만나고

[개벽신문 제74호, 2018년 5월호] 개벽하는 사람들

박 길 수 | 본지 주간


에므릭 몽빌(소르본대 21세기 맑스컨퍼런스 조직위원)
<제8회 코리아 국제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에므릭 몽빌(소르본대 21세기 맑스컨퍼런스 조직위원, 진보출판사 ‘Delga’ 대표)을 만났다. 인터뷰를 주선해 주신 민중민주당 한준혜 님께 감사드린다.
4월 24일, 용산. 그와의 인터뷰는 기자의 ‘의견’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코자 하였다.
그 내용을 소개하는 방식도, 최대한 ‘ 원문’에 충실하고자 한다.


기자(박길수, 본지 주간) : 반갑습니다. 시간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에므릭 몽빌 대표님을 저희 <개벽신문>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에므릭 몽빌(이하 ‘몽빌’) : 예, 반갑습니다. 기자님은 출판사도 운영하신다고 들었는데,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개벽신문>이라고 하는 매체에 대해서 알고 싶군요.


기자 : 제호(신문)와는 달리, 타블로이드 판형의 월간 잡지입니다(72호, 73호 전달, 72호의 표지 그림인 ‘해월 최시형 선생’에 대해 몽빌이 질문을 하므로 간단히 소개). 


<개벽신문>은 1920년부터 1926년까지 간행된 <개벽>이라고 하는 월간잡지를 복원하고자 지금부터 7년 전에 창간하였습니다. ‘개벽(開闢)’이라는 말은 이 세계가 크게 변혁된다, 또는 그러한 변혁을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근대 이후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말한 ‘혁명’의 의미를 포함하여, 그보다 더 근본적인 변혁을 의미합니다. 이 말(개벽)은 지금부터 150여 년 전, 1860년에 한국에서 시작된 ‘동학 천도교’라고 하는 신종교 운동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개벽>이라는 잡지는 그 동학 천도교의 정신을 계승하는 한편, 근대 신문물과 신사상을 받아들인 당시의 청년들이 신문화운동의 일환으로 간행하던 잡지이고, 대단히 운동성이 강한 잡지였습니다. <개벽>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환경 속에서, 제국주의(일본)에 맞서서 저항하였고, 결국 일제 당국으로부터 강제로 폐간되었습니다. 당시 <개벽>이라는 잡지를 만들던 그룹은 ‘천도교청년당’이라는 정당운동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최시형 선생은 레닌도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인 소수 최동희(素水 崔東曦, 1890~1927 - 필자 주)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9월, 레닌이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또 제국주의와 대항하기 위하여 조선에서는 최대 저항 세력인 천도교와 연대를 모색한다는 소식을 듣고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방문, 레닌을 만나서 연대 문제를 협의하기도 하였습니다(이후 볼셰비키의 정책이 바뀌어 이 계획은 무산됨). 이 <개벽> 잡지는 72호, 4호, 9호 등 모두 85호가 발행되었는데, 사회주의자와 논쟁하기도 하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사상을 소개하는 데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습니다. 그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개벽신문>입니다.


몽빌 : 예, 뜻깊은 <개벽신문>에 제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특히 한국 근대 시기의 신종교가 세계적 차원에서 진보진영과 연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의외로 진보적인 종교인들이 진보운동과 연대하는 사례가 세계적으로 드물지 않습니다. 기회가 되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좀더 깊이 알고 또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최근의 경우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면, ‘남코리아(몽빌을 비롯한 이 그룹의 인사들은 남한과 북한을 각각 ‘남코리아’ ‘북코리아’로 호칭한다)’의 역사에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있었던, 거의 독재와 같았던 파시스트 정권에 맞서서 활동했던 진보 활동가들 그리고 그 안에서 탄압받았던 활동가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가 아는 프랑스의 많은 활동가들이 남코리아의 진보운동가들에 대한 존경을 표합니다. 안타깝게도 프랑스의 모든 국민들이 이 사실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의식이 그리 높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국의 일이라면, 더 무관심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소속된 그룹에서는 특히 남코리아 진보 활동가들의 활동을 지지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이번에 저는 민중민주당(舊환수복지당; 민중민주당은 '민중당'과는 다른 정당이다. '반미'에 관하여 여전히 투철한 입장과 태도(ex-미대사관 진입 시도를 올해 6월에도 전개했었다)를 견지하며, '환수복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좌파적인 입장을 취한다. 우리 나라 정당 역사상 최초로 '자립정당'임을 내세우기도 한다.)의 초대로 <제8회 코리아국제포럼 - 평화와 통일, 민주주의> 행사(2018.4.25.~27, 용산철도회관)에 참가코자 남코리아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이렇게 역사적인 순간에 남코리아를 방문하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기 전부터, 그리고 도착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남코리아의 많은 활동가들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매일매일 기층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역사적인 전진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 최근에는 한국에 대한 뉴스가 널리 알려져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텐데, 처음에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요. 그리고 대체로 프랑스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몽빌 :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민중들과 친선과 연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거기에 기본이 되는 것은 정보의 공유와 교류라고 봅니다. 제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지금까지 150권 정도의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그중에서 2권이 코리아에 대한 책입니다. 정확히는 북코리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주 능력 있는 작가들이 쓴 책인데요, 리스법대의 명예교수가 쓴 책이 하나 있고요,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최고 엘리트들이 가는 정치행정학교인 그랑제꼴에서 공부한 고위 공무원이 쓴 책이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 책, 리스대학 교수의 책의 서문은 소르본대 철학교수였던 정살렘(Jean Salem) 교수가 작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권위가 프랑스 사회에서도 무척 인정받는 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정살렘 교수는 안타깝게도 올해 1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살렘 교수는 저에 앞서서 여섯 번이나 코리아를 방문했습니다(정살렘 교수는 2015년 한국 방문 당시,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의 ‘여성동학다큐소설 제작 발표회’에서 축사를 해 주셨다). 제가 지금 만나는 이 동지들을 먼저 만났던 사람이고요, 정살렘 교수의 아버지는 프랑스의 아주 유명한 반식민 운동가입니다. 그분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저도 코리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만 들었는데 꼭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가 이렇게 현실이 되니 정말 기쁩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의 연장선에서 오늘과 같은 이런 지적(知的)인 교류를 하는 것도 매우 좋다고 봅니다.


이번에 남코리아로 출발하기 직전에 패트릭 모리스라는 프랑스 교수를 만났습니다. 프랑스인인데요, 프랑스 사회에서 북코리아의 문학작품(백승룡, <벗> 등)을 번역해서 알린 유명한 교수입니다(이 책은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다 - 필자 주). 남과 북을 다 알고, 그리고 조선족도 알고요. 저희 출판사에서는 그 모리스 교수의 책을 곧 출판할 예정입니다. 저는 오히려 출판 활동을 하면서 코리아에 대해 잘 아는 프랑스인 실제 전문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프랑스 언론에서는 제대로 된 보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오랫동안 코리아 전문가라고 자처해 온 프랑스 기자들, 또는 남코리아와 북코리아에 대해서 그동안 책을 쓴 작가들을 보면 제대로 코리아의 언어를 알지도 못는 것은 물론이고, 북을 방문해 본 적이 없고, 그냥 사회문화연구소에서 활동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연구소가 냉전의 산물입니다. 그런 기관을 기반으로 한 사람들, 나아가 CIA 요원으로 후에 밝혀진 사람들이 쏟아내는 피상적이고, 편향된 남코리아 소식만을 접해 왔습니다.


역시 최근 들어 코리아 이야기를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북코리아의 핵문제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이 주제에 대해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다는 게 쉽지 않아요. 아무래도 많은 언론의 왜곡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그냥 전문가들의 간의 교류로만 머물 수도 있을 텐데, 최근 프랑스 언론의 추이를 보면요, 그러니까 남코리아의 연합뉴스 보도들을 사실인 것처럼, 그 근거자료를 확인하지도 않고 보도를 합니다. 예를 들면 북측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사형 당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다음 회의에 나온다든지 하는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프랑스 언론은 여전히 편향된, 그리고 근거가 희박한 남코리아 통신사의 보도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책 출판 기념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북에서 탈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남코리아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북의 솔제니친(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이라고 소개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탈북자 증언기를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출판했는데, 거기서 남코리아(‘이명박근혜 정부 당시’-필자주)가 주장하는 것은 “탈북을 한 사람이 북에서부터 몰래 비밀을 일기로 썼던 것을 고이 모아서 나중에 남쪽으로 와서 책을 발간했고, 그것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앞에서 이야기했던 모리스 교수는 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합니다. 우선 언어적으로 이 사람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있는지가 궁금하다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예를 들면 북에서 왔다고 하는 그 사람의 주장에 의하면, 북에 마르크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고 하는데, 모리스는 마르크스 초상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길가다가 마르크스 초상화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잘못된 내용이라고 지적을 합니다. 특히 남에서는 <조선일보>가 그런 탈북자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조선일보> 극우신문으로 편향된 소식을 많이 내보낸다고 알고 있는데,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탈북자 이야기가, 프랑에서는, 그것이 거의 사실인 것처럼, 북의 사회를 이야기하는 유일한 증언인 것처럼 그렇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많은 프랑스 국민들이 북코리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여기서 프랑스인들의 제국주의적 관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프랑스의 제국주의 역사부터 반성하는 게 프랑스인이 가져야 할 기본자세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어느 정도 일제의 식민 강점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특히 신식민주의 대한 이야기를 거의 다룬 적이 없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아까 말했던 정살렘 교수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저는 역사의 일부를 잃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분이 인류의 영웅이었다고 봅니다. 그는 알제리 민족투쟁을 지지했고 그러면서 동시에 프랑스의 명예를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많은 언론에서 다루지는 않았죠. 저는 프랑스인들이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하는 그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북에 대한 관점을 보면 세습 문제를 비판을 많이 하는데요, 저는 아시아의 많은 세습의 사례를 듭니다. 남에서는 박정희의 딸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이 되었을 때 아무도 비판하지 않았는데 유독 북의 경우에는 비판을 합니다. 인도의 간디 집안도 그렇고요, 싱가포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다른 문화는 각각 차이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걸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에도 정치 체제가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입장이고, 현재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또 하나 제가 보기로는 유교를 비롯한 문화적인 차이도 있다고 봅니다. 선대 지도자가 죽은 지 3년 동안 그 죽음을 기리는 기간을 갖는 것에 대해서 서양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하는데요, 특히 프랑스인들에게는 너무 길다는 의견이 많은데, 그런데 코리아에서는 역사적으로 3년상을 하는 문화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식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없이 그저 자기(프랑스)의 눈으로 쉽게 재단하면, 실제로는 자연스러운 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각자의 문화를 인정하고 서로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증오를 쌓아가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저의 현재의 남과 북의 코리아에 대한 저의 정치적 의견이 물론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코리아 사람들이 북이든 남이든 그 민중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대 초기에 프랑스 선교사들이 코리아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프랑스인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병인양요를 통해서 코리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저도 최근에 친구들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과연 프랑인 중에 몇 명이나 이 제국주의 역사를 알까, 라는 의문이 아직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모르고 있는 프랑스 국민들, 그리고 계속해서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는 언론, 이 두 가지가 만나서 현대의 프랑스 사회에서의 코리아에 대한 정보가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기자 : 한국으로 오기까지 과정이 그러했다면, 이번에 한국에 방문하신 소감, 한국에 도착한지 몇십 시간밖에 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기대나 목적의식 같은 것이 있겠지요?


몽빌 : 저는 이곳에 초대를 받고 왔지만, 무엇보다 저의 방문 목적은 코리아를 배우러 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번 행사를 통해서 전 세계의 진보주의자들과 함께 ‘통한다’라는 느낌을 실감하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코리아인들 스스로가 운명을 결정하는 데에 제가 함께 연대하러 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왔다는 점입니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다, 라는 문제는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서 아주 합리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미국이 아니라 코리아 사람들이 코리아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하고 마땅한 거라고 봅니다. 특히 현재는 미국의 개입이 코리아의 정세를 좌우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미국이 남코리아를 해방시켰다, 라는 관점이라든지 또는 호전적인 북코리아로부터 미국이 남을 지켜준다, 라는 입장 같은 것 말입니다. 아무튼 남코리아는 그런 점에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 왔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평창올림픽에서 남과 북의 코리아 선수들이 한반도기(코리안기)를 들고 함께 입장하는 순간은 저로서도 매우 감격적이었습니다. 저는 전 세계인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보여줬다고 봅니다. 한민족, 단일민족이라는 힘을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인 그의 딸을 비롯해서 서양에서 온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VIP석-필자 주)을 여러 번 비춰 주었는데, 그들의 표정에서 그것, 다시 말해서 단일 코리아의 힘을 느끼는 외국인들의 시선이 잘 드러났다고 봅니다.


기자 : 좀 기본적인 사실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이번에 민중민주당의 초청으로 ‘제8회 코리아 국제포럼’에 참여하시는데요, 이 행사에서 맡으신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기대하는바나 각오 같은 것이 있는지요?

4월 25~27일 서울 용산 철도회관에서 열린 코리아국제포럼 포스터

몽빌 :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저는 무엇보다 배우러 왔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제국주의적인 관점과 태도입니다. 저는 연대라는 차원에서도 교훈을 주는 것을 극히 자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이탈리아나 스페인과는 언어가 비슷한데요, 그래서 언론을 비롯한 교류가 매우 자유롭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에 살지 않으면 제대로 된 현실을 알기도 그리고 어떠한 의견을 내기도 어렵고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이곳 코리아는 프랑스로부터 멀고, 언어도 다르고, 그래서 서로 정확한 뜻을 주고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제 역할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어떤 활동을 해 왔다, 라는 제 활동의 구체적인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고요 제가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것과 출판을 하면서 알게 되었던, 프랑스의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생각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물론 이 지식인들은 각자의 전문분야가 있고 의견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을 비슷하다고 보는데요, 예를 들면 코리아의 민중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외세의 개입, 미국의 개입이 없어야 한다, 라는 입장 같은 것은 굳건히 동조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이것은 제가 활동하면서 만났던 모든 프랑스 지식인들이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최대공약수라고 봅니다(국제 포럼의 외국인 참가자 및 프로그램 내용은 포스터 참조).



기자 : 앞에서 잠깐 언급하셨지만, 듣건대 대표님의 활동에서 출판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보고 한국사회에서도 특히 그런데, 80년대에 비해서 우리가 말하는 진보적, 좌파적인 출판물의 영향력이나 판매량이 대단히 급감해 왔습니다. 프랑스 상황은 어떻고, 그러한 상황에서 출판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랄지, 어떻게 해서 계속 출판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출판을 통한 운동성의 계속 유지가 되는지요?


몽빌 : 제가 듣기로는 여기 남코리아에서는 오랫동안 마르크스의 이름이 들어간 출판물은 금서로 취급되다가 뒤늦게야 허용이 되었고, 그만큼 출판의 자유화가 늦게 이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가 전파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예를 들면 19세기뿐만 아니라 1950년대까지도 프랑스 대학사회에서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사상을 이야기하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유물론에 대한 공부를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변증법도요. 남코리아에서도 사르트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표적인 프랑스 철학가입니다. 그런데 사르트르도 자기가 사십대가 돼서야 마르크시즘을 알았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늦게서야 이 사상을 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프랑스 사회는 진보적인 사상을 제대로 접하는 데에서 빠르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이 금지되거나 하지는 않아서 최소한 남코리아보다는 더 나은 상황에서 출판를 했다고 봅니다. 1970년대가 가장 황금기입니다. 프랑스 공산당의 사회과학 전문부서에서 이런 진보적인 출판물들을 다수 출판했고요, 그리고 급진 좌파들까지 많은 출판물들을 쏟아냈습니다.


이웃의 이탈리아에서도 상황은 비슷했고, 저보다 앞서서 마스페로라는 사람은 20년 동안 1500권의 출판물을 낼 정도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저는 15년 동안 150권밖에 출판을 못했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죠. 그런데 저는 소설을 출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모두 다 인문학 관련 책들, 특히 정치적인 책들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책값이 지금보다 다섯 배는 비쌌습니다. 물가대비로. 그래서 지금 프랑스의 출판계가 대체로 그렇지만, 저도 쉬운 상황은 아닙니다. 다행히 제가 마스페로의 유일한 후계자(‘진보출판사’-필자 주)는 아닙니다. 작은 다른 진보 출판사들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또는 맑스-레닌주의를 공식적인 주요 출판물로 삼는 출판사들은 많지는 않아요.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 마르크스의 죽음이 마치 마르크시즘의 죽음인 것처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베를린 장벽이 붕괴 이후에 이런 생각들이 많이 급격히 확대되었고요. 


저는 단연코, 그 반대라고 봅니다. 실제로 프랑스 청년들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오기 직전에 파리제1대학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많은 학생들이 제1대학 본부를 점거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었고,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공권력을 동원해서 학생들을 추방시키고 탄압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프랑스의 많은 언론은 그 학생들을 “깡패”라고 보도합니다만, 제가 봤을 때는 많은 학생들이 마르크시즘을 공부하는 제대로 된 깨어 있는 학생들이었습니다. 물론 청년들이기 때문에 아직 배울게 많고 모든 걸 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겠죠. 그래도 그런 청년들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주목할 만한 철도파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투쟁의 역사가, 투쟁의 전통이 여전히 프랑스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20년 전과 지금은 참 많이 달라졌는데요, 그러나 지금 프랑스가 겪는 문제들의 본질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프랑스가 과연 서양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라는 고민도 하고요. 프랑스에서 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보는 것은 진보운동의 역사와 뿌리를 가지고 있고, 여전히 그런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것,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특히 제가 이 출판사를 만들 때는 혼자 한 게 아니라 다른 동지들과 함께했는데요, 프랑스 진보운동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 출판사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반에는 출판사가 몇 년 안에 망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르크시즘을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출판사가 어떻게 성공하겠나, 이렇게 진보세력이 망해 가는데, 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요. 그런데 그 예상과는 다르게 오래 버티고 있습니다(웃음). 그리고 앞으로 아마 더 나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 좌파로서의 운동을 하거나 정치적 투쟁을 하는 것과 내가 좌파로서의 삶을 살아 가는것, 그것은 다르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에서 좌파로서 살아가는 것이 우파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투쟁의 주요 목표인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도 좌파 운동가가 모범을 보임으로써 대중들의 호응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투쟁의 의해서가 아니라 그런 삶이 모범이 됨으로써 좌파운동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는데, 투쟁과 삶 그 사이의 괴리는 없는지, 그리고 그것이 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몽빌 : ‘모범’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문화가 코리아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프랑스는 그렇게 모범을 앞세우지는 않아요. 여기 와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많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교사(敎師)가 아니지만 그냥 존칭어로 이렇게 쓴다고 들었는데요, 그러니까 이게 바로 문화적인 차이라고 봅니다. 교육에 대한 관점의 차이기도 하고, 미세한 부분지만, 깊은 곳에 뿌리를 둔 중요한 차이라고 봅니다. 프랑스는 그러한 단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 진보세력은 좌파라면 건전한(?)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이러한 문화들이 존재하지만요. 


프랑스보다도 좀더 두드러지는 이탈리아에서의 예를 들고 싶은데요. 과거에 이탈리아 공산당의 사무총장 이야기입니다. 그는 공산주의자, 코뮤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위대한 사람이, 인간이 먼저 되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상보다 먼저 제대로 된 사람으로서의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모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문화적인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삶과 투쟁에서 삶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이 코리아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기자 : 제가 가진 자료에는 몽빌 대표님의 저서 중에 “좌파의 아름다운 위인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제가 지레짐작하고 드린 질문입니다만….


몽빌 : (웃음) 아, 그것은 약간 비꼬는 제목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좌파들 중에 모모한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입니다. 그 책의 내용을 잠깐 요약하면요, 프랑스에서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는 인텔리들을 비판하고자 한 책입니다. 알랭바디우나 자콩시에라고 하는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인텔리 지식인들이 있는데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레닌의 당건설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조직이 중요하다고 보고요. 그러니까 제 입장은 그냥 사상만 존재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저는 그러한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조직으로서 구성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입장 차이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몇 년 전에 밤샘 시위가 한참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분노한 사람들이 거리에서 모여서 토론하고 자리에 앉아서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고 밤새 점거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그 안에서 저는 진정한 정치적인 변화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정말 유행처럼 파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조직화되지 않음으로 해서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당으로서 활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물론 마르크스주의라는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많습니다. 저는 단순히 정치적인 관심, 의제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조직화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앞서 말했던 학생들의 대학 점거라든지 철도 노동자의 파업이 운동의 측면에서 새로운 단계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당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안타깝게도 프랑스공산당은 과거에 레지스탕스 운동을 지도할 때만 하더라도 영웅으로서, 영웅적인 활동을 했지만, 현재는 그 역할을 못합니다. 유럽연합의 지시를 받기에 급급하고요. 그리고 정부에 참여하면서 사유화를 가속화시켰고, 유고슬라비아를 폭격하는 데에도 동의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당을 나오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고 그 내부에서 싸우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부에서 기층에서는 계속된 토론과 변화를 요구하지만, 지도부는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래의 기층끼리는 동지라고 부르고, 지도부에게는 아저씨 아니면 누구 씨라고 부를 정도로 거리감을 느낍니다.


기자 : <개벽신문>의 독자들은 좌파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기보다 한국에서는 ‘진보’라고 분류되지만, 그보다는 ‘개혁’적인 사람들입니다. 한국은 오랫동안 유럽이나 서구사회가 이미 달성했다고 생각되는 정치적 민주화나 경제적 민주화라고 하는 좀더 기본적인 수준을 쟁취하기 이해 투쟁해 왔습니다. 최근에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이라고 하는, 짧게는 30여 년 동안에, 길게는 반 세기 이상에 걸쳐서 누적되었던 여러 가지 잘못들을 바로잡는 일들을 하고 있고, 그게 이제 막 시작이지만 성공할 거라는 분위기가 이미 팽배해 있어서, 이제는 좀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미래사회의 지향을 크게 미국식 모델과 유럽식 모델 이 두 가지로 나누어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들어보셨는지. 지금까지는 성장 중심의 미국식 모델을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면, 점점 새로이 확대되고 좀더 진보적인 계열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을 이른바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유럽식 모델이라고 거칠게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좌파운동을 지향하는 바람직한 미래사회의 모습, 이런 부분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시면, <개벽신문>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몽빌 : 그에 대한 이야기를 <개벽신문> 독자들에게 직접 한다면, 부담스럽고요.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선 기본적으로 저는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지향을 가진 잡지의 편집장을 했고, 지금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중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제 사상만을 고집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는 최초로 한 나라(살바도르)의 대통령이 되었던 아옌데가 칠레에서 했던 것처럼, 칠레에서, 그러니까 아옌데는 피델 카스트로의 친근한 친구였죠 체게바라의 친구였고. 그는 언제나 통일전선을 중요하게 봤습니다. 전 이렇게 세력을 확대하는 관점에서 많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저는 공동소유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새로운 사회에서는. 거기까지 가는 길, 그 사회를 달성하는 방식에 대해서 의견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단결하고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그 조직의 방식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저는 전선(戰線)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적을 고립시키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전선을 구성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정당이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민주주의적으로 경영을 하고, 운영을 하고 그리고 스스로의 원칙이 강한 조직일수록 많은 세력과 함께 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권력과, 그러니까 정치권력과 소유라는 개념을 혼동합니다.저는 정치권력만을 갖는 것은 충분치 않다고 봅니다. 그것만으로 ‘좋은 사회다, 지향하는 사회다’라고 할 수 없는데요, 그러니까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도 소유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소유관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고 봅니다. 


당연히 프랑스의 자본이나 한국사회의 재벌에 대한 청산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남코리아의 자본주의라는 특성을 고려하였을 때, 이 안에서 매우 봉건적인 기업구조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라는 보호자가 언제나 필요하고. 그런데 또 동시에 지금 이렇게 통일로 나가는 과정에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반도의 두개 정부와도 함께 협력해야지 그 기업이 전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교류와 협력. 특히 북에는 희토류라는 자원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남북이 활발하게 교류하면 그게 자원으로서 많이 활용이 될 텐데요, 지금은 그걸 다 중국이 주로 개발을 위해 투자하고 있는데 남코리아의 기업들도 함께하는 데에 관심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 모순을 잘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국과 북 사이에 있는 기업들의 이 모순적인 상황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저는 통일이라는 것이 흡수통일이나 체제통일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민주화를 향한 진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남과 북, 북과 남의 모든 민족의 번영에 기여하는 통일이어야 하고요. 제가 외부인으로서 봤을 때 남과 북이 원래도 한 나라였지만 그래서 그런지 참 서로 상호보완적인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에는 천연자원이 많고, 남에는 기술 발달이 되어 있는 ‘좋은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사회적인 정의를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 공동의 부(?)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이런 측면으로도 접근해야 합니다.


질문에 즉답을 못했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사회는, 저는 마르크스주의 원칙에 의거해서 현재사회의 모순을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이상사회라는 것을 접근합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토머스 모어 같은 사람들처럼 유토피아를 말한 것도 아니고요. 저는 무엇보다도 이상사회의 전망을 공상에서 과학으로 전환시킨 마르크스의 공적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21세기 새로운 이론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보고요. 물론 프랑스 사람들도 이것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사람들마다 다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요. 


그리고 활동하는 정당도 다양합니다. 돌이켜보면, 2차 인터네셔널이 조직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경우를 보면서, 우리가 과연 노동자들의 조직을 건설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라는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반성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국제 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합니다.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이상사회는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는 사회, 민중이 주인 되는 사회라고 봅니다.


기자 : 제가 생각할 때, 여러 가지 세계적인 과제 중에서 정치 경제적으로는 양극화라는 것이 세계 전반에 걸친 과제로 부각되고, 그 다음에 생태 환경적으로는 급격한 온난화, 기후이변에 따른 문제가 세계사적인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좌파운동 방향 혹은 좌파적 과제에 대한 입장이 어떠신지, 그리고 끝으로 내일 모레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됩니다. 아마 그시기에 한국에 있게 될 것 같은데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이 어떠신지 듣고 싶습니다.


몽빌 : 제가 출판한 책들 소개도 드렸는데요, 이 생태문제를 접근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연구가 아직 충분히 연구가 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쿠바를 보면요 쿠바는 경제공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자립적인 경제구조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물론 주권의 수호라는 중요한 원칙 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요. 결과적으로 쿠바에서는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정책이 잘 이루어졌습니다. 유기농업이 발달한 데에 그 이유가 있고, 그래서 유니세프가 지정한 유기농업을 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쿠바가 선정되었습니다. 


그에 앞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한 직후 1918년에 소련에서 환경보호를 하는 구역을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1948에는 숲 보호를 하는 지역이 선정되었고요. 그런데, 이 역사는 어느새 잊혀지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고르바초프 당시부터 들어선 슬로건이 자본주의를 넘어서겠다, 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했습니다. 농업 차원에서 보면 그때부터 소련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농약을 사용하기 시작했고요. 미국과 차이가 없었어요. 제가 놀라는 것은 굳이 생태주의자다, 라고 주장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지만 민중주권, 민족주권이라는 개념 속에서 활동하다 보면, 그리고 애국적인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고 보면, 그리고 사회정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지속가능한 환경구조까지도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삶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사례를 너무도 자주 봅니다. 


저는 생태주의자들도 여기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보는데요. 프랑스에도 녹색, 생태주의당이 있습니다. 특히 유럽 차원의 당들이 존재합니다. 유럽 녹색-생태당이 있는데요. 그 사람들의 주장은 유럽 차원에서의 생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럽 안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생태주의의 미래도 유럽연합 안에 있다고 보는데 저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각 나라의 민족주권이 없으면, 주권이 없는 나라라면 생태문제도 환경문제도 자기 이해관계에 맞게 풀 수 없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포럼에 대한 얘기는요, 저는 어쨌든 포럼에서는 교훈을 얘기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피델 카스트로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조국이냐 죽음이냐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나 조국을 위해 싸워 왔다, 라는 이야기를 했고요. 우리가 국제포럼을 진행하는데요, 여기서 국제주의자라는 것은 민족 간의 교류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국제주의는 각국의 민족성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봅니다. 사회적 모델을 강요할 수 없다고 봅니다. 가장 현명한 것은 한 나라의 모델을 다른 나라에 강요하지 않는 것이라 봅니다.


다음으로, 정상회담 진행되는 이 순간에 코리아에 있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저는 프랑스인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이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코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발전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세계사적 의의를 가진 만남이라고 봅니다. 저는 코리아 문제가 해결이 되면 그것이 바로 인류 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 혹시 북을 방문하신 적은 있나요?


몽빌 : 저는 아직 북코리아 가본 적은 없습니다. 갈 기회가 있다면 갈 생각은 있습니다. 지금 남북의 민족이 서로 자유롭게 교류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독일이 분단된 상황에서도 동독과 서독에서는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했는데, 그것조차 안되는 이 상황이 정말 부당하다고 봅니다.


기자 : 저는 북한을 한 다섯 번 정도 다녀왔습니다. 1920년대의 <개벽>이라는 잡지, 그리고 이 <개벽신문>은 종교적 배경이 천도교라고 하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신종교입니다.


몽빌 : 북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자 : 북코리아 지역에는 가장 다수의 종교인들을 가지고 있는 종교입니다. 북을 방문하시면, 꼭 한번 찾아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쭤 보았습니다. 아직 포럼을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로 귀국하신다면 현지의 동지들, 혹은 교류하시는 시민들에게 한국의 이런 부분이 내가 몰랐던 인상적인 것들이 있더라, 라고 할 만한 거를 발견하신 게 있는지.


몽빌 : 정말 프랑스 사람들이 코리아에 대해서 모릅니다. 거의 0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코리아에 대한 지식 수준이 낮은데요. 저는 제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정확히 그대로 가서 전달하는 게 저의 포럼 참여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긍정성을 많이 느낍니다. 여기를 방문하니 다른 차이점들도 많이 보이고요. 당과 관련된 선거법들도 매우 까다롭다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남코리아의 잘못된 사회적인 악폐를 청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요, 이것은 제가 교훈이나 제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객관적으로 본 것이 그렇습니다.

저는 아래에서부터 활동할 수 있는 정치 공간인 당이 강화되기를 무척 바랍니다. 저는 여기를 방문하면서 남코리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렇게 활동하는 진보적인 활동가들이다, 이게 바로 남코리아 사회의 미래다, 라고 믿습니다.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던, 독재정권에 맞서 싸워왔던 민중들이 바로 역사의 희망이다. 이 사회의 희망이다, 라고 봅니다.


기자 :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을 할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00년 전에 동학 천도교가 레닌을 정점으로 하는 사회주의 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하였던 전통이 미약하나마 복원되는 계기가 될수 있지 않은가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무엇보다 정의로운 사람들의 연대로서, 밝고 아름다운 세계를 함께 지향하는 사람들의 연대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귀하게 모시는 사람들의 연대로서. 그 길 위에서 자주 만나 뵙기를, 소식 주고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몽빌 :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용산의 한 호텔 로비에서 진행되었다. 몽빌은 마치 개벽신문과의 인터뷰를 위해서 방한한 사람처럼, 숨가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막힘없는 동시통역 덕분에 짧은 시간이지만, 적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다만, 몽빌의 프랑스 내에서의 활동, 그의 저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고 구체화 되었다면 좀더 훌륭한 인터뷰가 될 수 있었을 것을, 사전 준비가 부족했던 점이 못내 아쉽고 미안했다.

마지막 인사에서 밝힌 것처럼, <개벽신문>을 매개로 유럽의 진보운동(가)을 만나고, ‘경성’에서 ‘모스크바’로 기차를 타고 가서 레닌을 만난 최동희처럼, 이제 곧 열릴 서울발 유럽행 열차를 타고 프랑스로 가서 몽빌과 그의 동지들을 만날 날을 기다리며,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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