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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28. 2018

고비원주, 고비원주, 고비원주

동학을 새롭게 공부하는 길

[이 글은 개벽신문 75호(2018.6)의 '개벽의 창'에 투고한 원고입니다 - 필자 주]


1. 고비원주(高飛遠走)


동학에 새로운 기운과 동력이 필요하다. 지금 동학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동학에 대한 관심이 시나브로 높아지고, 동학의 역할에 대한 요구가 나날이 깊어져서다. 물론, 이러한 때에 '새로운 기운과 동력'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한편으로는 지금의 동학 상황으로서는 높아지는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문제를 꺼내놓는 것이다. 오늘의 동학(천도교)의 동학의 형편은 갓난아기[동학하는사람들]는 어미젖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자 애를 쓰는데, 어미(동학)는 시들시들 앓아 누워 젖 물릴 생각을 아니하고 있는 형국이니, 얼른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야 한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오늘 동학의 문제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낡고 뒤떨어졌다는 것이다. 동학 창도로부터 159년,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하여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때(1905)로부터 114년이 지나는 동안 동학은 곪을 만큼 곪고, 스무 번도 더 우려낸 사골 뼈다귀처럼, 골다공증이 만연한 상태이다.

 

이때 생각나는 말이 “고비원주(高飛遠走), 높이 날고 멀리 뛰라!”는 말이다. 이 말은 수운 선생이 해월 최시형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가르침/명령[師命]이다. 1863년 12월, 경주 용담에서 관군에게 체포된 수운 선생은 한양으로 잡혀 올라가던 길에 과천에 도착하였을 때 중 철종 임금이 돌아가시므로, 다시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수감되었다. 이때 해월은 대구 성내로 잠입하여 은밀히 옥바라지를 하면서 수운 선생을 상면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연락이 닿은 수운 선생은 “등불이 물 위에 밝으니 혐극[틈, 사이]이 없고, 마른나무 기둥은 마른 것 같으나 힘이 남아 있도다(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라는 유시(遺詩)와 함께 “나는 천명을 순순히 받으니, 너는 높이 날고 멀리 뛰라[吾順受天命 汝高飛遠走]”는 ‘비결(秘訣)’을 최시형에게 전하였다. 필자가 이 구절을 ‘비결’로 호명(號名)하는 까닭은 그것이 위기에 처한 동학이 처신할 방도를 알려주는 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대부분의 동학의 후예[천도교인]들은 ‘고비원주’를 “나(수운 최제우)는 순도(殉道)의 길을 걸을 테지만 너(해월 최시형)는 먼 곳[高遠]으로 도망쳐라.”라는 말로 이해해 왔다[제1의미]. 이 말을 하기 5개월여 전인 1863년 8월 14일 수운은 동학의 도통(道統)을 해월에게 물려주었으므로, 동학 교단을 보존하기 위하여 ‘동학의 새로운 통수권자’인 해월 선생은 몸을 숨기라는 뜻으로 이 글을 주었다고 이해한 것이다. 한편으로 비장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해월 선생은 그 글귀를 품에 안고 대구 성을 빠져 나가 강원도 깊은 산속으로 몸을 숨겼다. 수운 선생은 1864년 3월 10일, 대구 장대에서 순도하였다. 고비원주의 제1의 해석대로 되었다. 틀린 부분이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지극히 1차원적인 이해에 불과하다. 한편으로 159년의 동학 역사를 도망으로 점철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패배주의적인 이해 방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필자는 생각했다). 고비원주의 제2 해석으로 나아가는 것을 미룰 수 없었다.


2. 고비원주(高飛遠走)


고비원주를 ‘도망치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달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동학의 가르침을 드높이고[高], 온 세상에 펼치[遠]는 것이다[제2의미]. 이것이 필자가 3, 4년 전에

새롭게 착안한 고비원주의 의미이다.


물론 제1의 의미[도망]로 말하는 사람의 심중에 이 제2의 의미가 깃들어 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발화’되지 못하고, 잠재된 채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계요, 문제이다. 왜 수운 자신은 죽어도 좋지만 해월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하는가[제1의 의미]? ‘고비원주’라는 말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빨리, 멀리 도망치는 말이 아니라, 즉 살아남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반드시 살아남아서 동학의 본지(本志)를 심화하고[高揚] 그 세력을 넓히라[遠光]는 뜻으로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제2의미].


이때 ‘살아남는 것’은 출발점, 시작점이다. “높이 날고 멀리 뛰어라!”라는 직역(直譯)조차 후자 이러한 해석에 훨씬 부합한다. 진취적이며, 미래지향적이며, 의욕적이다. 돌이켜보면, 굴곡이 있기는 했으나, 1864년 3월 이후 해월 선생의 30여 년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바로 이 ‘고비원주’하라는 스승님[水雲] 말씀에 따라 동학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행하여 나아갔으며, 그리하여 전국 팔도에 동학의 세력을 심고 가꾸어 꽃피운 시간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동학의 기운이 승승장구하는 때라고 한다면, 앞선 첫 번째의 고비원주의 의미보다 이러한 ‘적극적, 능동적’인 고비원주의 의미, 즉 손가락이 아니라 달 자체에 착안(着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3. 고비원주(高飛遠走)


그러나 동학이 창도된 지 159년, 동학을 천도교라는 근대적 제도종교의 틀로 재편한 지(1905) 114년이 되는 이 시점에, 필자는 고비원주의 제3의 이해를 시도한다. ‘시도’한다기보다는 제3의 의미가 필연적으로 이 시대의 ‘동학’, 즉 천도교에게 주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제2의 해석으로부터 불과 4년여 만이다.


오늘 여기에서의 고비원주의 비결(秘訣)은 연속성보다는 단절성과, 적극성보다는 소극성과 더 친근해 보인다. 다시 말해, 지금의 동학(천도교)의 실상, 지금의 천도교인의 모습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라, 단호하게 초월하라는 의미로 읽는 것이 더 믿음직해 보인다. 굳이 따지자면, ‘ 도망’의 의미가 더 절실하다.


기록으로 전해지지는 않으나, 실제의 역사를 재구성해 보면, 해월 선생이 의암 손병희 선생에게 도통을 전수(1898.12.24)하는 과정에서도 이 고비원주(高飛遠走)의 정신은 승계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 가르침이 있었기에, 의암 선생은 중국을 거쳐 일본까지 가서 세계정세를 조망한 끝에, 1905년 12월 1일 동학이라는 그때까지의 이름과 동학공동체의 틀을 버렸다. 그리고 ‘천도교’라는 새 이름을 높이 내걸고 새로운 동학공동체-천도교의 틀을 퍼뜨렸다(廣告宣布).


설령 해월로부터 명시적인 가르침이 없었다 하더라도, 의암 선생이 ‘천도교 대고천하(大告天下; 동학을 천도교로 선포한 것)’를 감행한 것은 스승님[해월]으로부터 고비원주의 묵교(黙敎)를 읽어내고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한 것임에 틀림없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수운 선생 자신도 이 제3의 의미로 ‘고비원주’한 사례가 적지 않다. 수운 선생이 동학을 창도한 직후부터 첫째, 관의 지목(指目)이 심해지고, 둘째, 제자들의 동학 이해와 수도 방식이 당신의 가르침을 벗어나는 사례가 많아지자 수운 선생은 1862년 가을 홀연히 경주 용담을 떠나 전라도 남원의 교룡산성(蛟龍山城) 내 은적암(隱跡庵)이라는 암자에 한동안 은거하였다. ‘교룡’은 도마뱀이고, 도마뱀의 특장은 위기에 처하면 꼬리를 끊고 도망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이러한 의미 이해는 김지하 시인이, ‘은적암기행’이라는 글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이다], 수운 선생의 전라도행도 바로 ‘고비원주’의 일환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단절과 고독함 속[은적암 시절]에서 수운 선생은 동학론(東學論, 論學文) 등 주요 저작을 창작할 수 있었다. 이를 ‘ 자기부정으로부터 싹튼 새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수운 자신과 해월-의암의 경우에서 보듯이, 필자가 다시 읽는 고비원주의 제3의 의미는 다시 멀어지고, 초월하는 것, 혹은 결별하는 것이다. 제3의 고비원주의 의미는 ‘사즉생(死卽生)’이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필자는 동학 역사상 최대의 사즉생 결단이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한 일이었다는 취지로, 천도교대교당에서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다, 2018.6.17].

https://brunch.co.kr/@sichunju/365


다시 말해 이 시대 동학은 ‘사즉생’의 결단을 결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학을 종교적으로 계승하고, 그 신앙/수행 공동체를 수호하면서 동학의 뜻을 세상에 펼치기 위하여 ‘천도교단/인’들은 지난 114년 동안 숱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물론, 그 시도는 오늘 현재 시점의 결과론으로 보면 성공하지 못하였고, 한때의 영광 시절이 없지 않으나, 오히려 변절과 오욕의 시간과 공간이 훨씬 더 점유율이 높은 것이 천도교 현대사이다.


반면에 ‘천도교 밖’에서 동학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단체들에 기대를 걸게 되지만, 동학의 혁명성에 매몰되어 박제화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이 필요하고, 뒤늦게 그리고 새롭게 동학을 좋아하게 된 분들이 많아지고 있으나 염불[동학공부]보다 젯밥[운동]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제2의 의미에 기울어진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동학, 천도교와 결별하고 새롭게 정성들여야 할 동학, 천도교는 어떤 것인가? 혹은, 동학, 천도교를 새롭게 ‘정성들이는’ 길은 무엇인가? ‘새롭게 공부’해야 한다. 오늘의 강원도, 오늘의 은적암으로 들어가야 한다. 제1의 고비원주와 제2의 고비원주와 제3의 고비원주를 모두 담고 그러나 또 모두 버리며, 동학(천도교)은 지금 고비원주(高飛遠走)할 때다.



동학경전 원전강독

        - 7월 12일(목) 오후 5시, 26일(목) 오후 5시 [매월, 2, 4주 목요일, 오후 5시]  / 천도교중앙도서관

동학독서토론

         - 7월 10일(화) 오후 6시 [매월 2, 4주 화요일, 오후 6시] / 천도교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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