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도상학과 한국의 민주화를 중심으로
‘한국학포럼’은 한국학을 연구하는 소장학자들이 매달 한 번씩 모여서, 한국의 사상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문제와 방향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하는 대화모임이다.
이번 포럼에서는 지난번에 다룬 오구라 기조 교수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와 함께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의 ‘유교적 근대론’을 주제로, 한국사상과 한국근대의 특징에 대해서 폭넓게 얘기를 나누었다.
특히 이번 모임에는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유라시아 견문』의 저자이자 ‘개벽파(開闢派)’라는 개념을 처음 쓴 역사학자 이병한 선생이 참여하여, 유학과 동학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에 관한 새로운 문제제기와 귀중한 통찰을 던져 주셨다.
참석자
김용한 : 동학·신학연구자. 신학대학원 석사과정 / 성민교 : 비교철학연구자. 철학과 석사과정
이병한 : 유라시아 연구자. 역사학박사 / 이원진 : 퇴계학·비교철학연구자. 철학박사
조성환 : 동학·인문디자인연구자. 철학박사 / 황상희 : 퇴계학·수양학연구자. 철학박사
일시
2018년 4월 7일 토요일 13 :30-16~:30 / 장소 : 강남 모임공간
조성환 : 안녕하세요? 제2회 한국학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님의 ‘유교적 근대론’에 관한 글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물론 지난번에 다룬『 한국의 하나의 철학이다』도 자연스럽게 언급이 되리라 생각합니다만. 먼저 여러분의 근황을 잠깐 들어 볼까요?
황상희 : 저는 최근에 퇴계사상과 주체사상을 비교하는 연구 과제를 냈는데 다행히 채택됐어요. 인간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는가를 다루려고 하는데, 북한이 오히려 유교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에요. 주체사상에서는 인간 존재를 자주성·창조성·의식성으로 규정하는데, 여기에서 ‘의식’은 사회적인 관계망 안에서의 의식이지 단독자로서의 개인의 의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육체적 생명보다 정치적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개인’이라는 단어는 아예 사전에 없어요. ‘개인이기주의’라는 말은 있지만요. 인간을 정의할 때도 ‘인간’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이라고 해요. 이런 점들이 동아시아 사상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면에 한국사회는 과연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묻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윤치호는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혔는데, 그가 받아들인 것이 약육강식의 세계관이었거든요. 진화론적 세계관요. 그래서 강한 일본이 약한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윤치호를 친일파라고 욕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런 약육강식의 사회구조를 인정하고 있잖아요.
조성환 : 의식성은 이해가 되는데, 자주성이나 창조성은 유교와 잘 안 맞는 것 같은데요.
황상희 : 자주성이나 창조성도 의식이라는 관계성 안에서 논의되고 있어요.
조성환 : 그런데 그런 것들이 퇴계와 어떻게 연관이 되죠?
황상희 : 퇴계는「 태극도(太極圖)」에서 태극이 만물을 낳는다고 하였고,「 서명도」에서 천지(天地)를 부모(父母)라고 하잖아요. 만물을 모두 가족으로 보기 때문에 일종의 ‘우주적 가족공동체’를 말해요. 그리고『 성학십도』의「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에서는 학문의 방법으로 박학(博學, 넓게 배우고)·심문(審問, 자세하게 묻고)·신사(愼思, 신중하게 생각하고)·명변(明辯, 분명하게 구별하고)·독행(獨行, 독실하게 실천한다)을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법들의 바탕에 오륜이 있다는 것이죠. 즉 ‘오륜’을 기본으로 해서 학문을 하는 셈이죠. 그래서 조선의 유교가 ‘가족적 사회화’를 이루었다고 한다면, 북한은 ‘사회적 가족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뒤가 조금 바뀐 정도의 차이이지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해요. 반면에 한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성환 : 그렇다면 퇴계 대신 주자나 주렴계를 넣어도 설명될까요?
황상희 : 그렇죠. 하지만 굳이 퇴계만의 특징을 꼽는다면, 저는 ‘효’에 주목합니다. 똑같은「 서명(西銘)」이라는 텍스트에 대해서, 주자는 주석을 달았고 퇴계는 왕에게 강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분석해 보면 똑같은「 서명」이라는 텍스트를 두 사람이 어떻게 다르게 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주자는 ‘효’를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주자가 주석에서 “이 텍스트는 효를 말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퇴계는 “사천(事天)의 방법은 사친(事親)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서명」 본문의 “그 뜻을 잇고”라는 대목에서 ‘그’를 퇴계는 ‘부모’라고 보는데 주자는 ‘천지’라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퇴계에서는 종교성이 강조되는데 반해 주자에서는 합리성이 강조됩니다. 그리고 퇴계는 ‘나의 생각’이라고 하는 개인의 사적인 영역까지 공공성을 띤다고 보는 점이 특징적인 것 같아요. 북한의 주체사상도 효를 중심으로 정치세계가 움직입니다. 수령은 아버지이고 당은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생명이 효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 주석이 죽었을 때 정말 부모를 잃은 것처럼 울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성환 : ‘주체’라는 말이 나와서 든 생각인데, 퇴계가 “리는 죽은 것이 아니다”고 했잖아요. 나중에 이상정이 ‘활리’(活理)라고 개념화했습니다만, 보통은 ‘도덕적 주체성’을 강조한다고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은 주체사상과 연결이 안 될까요? 퇴계의 이런 ‘활리’ 개념이 주자학 안에서의 양명학의 역할을 해 주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황상희 : 그렇게 볼 수 있죠. 창조성 같은 개념도요. 그리고 퇴계가 향약을 만들 때에도 제1조가 효예요. 제2조가 형제애고요. 이런 점들을 보면『 동아시아는 몇시인가』에서 조선사회의 시스템을 “선진화된 유기적 사회”(133쪽)라고 본 것은 탁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병한 : UCLA의 존 던컨(John B. Duncan) 교수님이 쓰신 개념입니다. 박사논문 쓸 때 UCLA에 2년 동안 있었는데 사람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조성환 : 작년에 일본에서 나온 오구라 기조 교수님의『 조선사상전사』에도 북한사상을 꽤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처음 접해 보았는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황상희 : 제가 최근에 국제퇴계학회에 참가했는데, 조선통신사들의 문집을 조사하는 발표를 들은 적이 있어요. 통신사의 문집을 조사한 이유는『 주자서절요』가 어떻게 일본에 전파되었는지를 알아보려고 한 건데, 조사해 보니까 아무도 일본에『 주자서절요』를 전파해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임진왜란 때 전쟁물로 가져간 것이 보급된 거예요. 이런 것을 보아도 아직 한일사상교류사는 미개척 분야 같아요.
조성환 : 저는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님의 ‘유교적 근대론’에 관한 논문들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일본학계는 주자학에 대한 이해가 계속해서 새로워지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주리-주기론 틀 이외는 새로운 해석이 없는 것 같은데요. 주자학의 ‘리’에 대한 해석만 해도, 작년에 오구라 기조 교수님이 퇴계학회에서 발표하신 것을 보면, 20세기 초에 야스다 지로가 “리는 의미이다”는 해석을 내놓은 것에 이어서 최근에 키노시타 테츠야는 “리는 일의 진행방식을 말한다”는 해석을 하였고, 이에 대해 오구라 교수는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의 ‘리X’라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미야지마 교수님의 유교적 근대론은 키노시타 선생의 주자학에 대한 역동적 이해에 기반하고 있어요. 반면에 우리의 주자학 이해, 또는 주자의 ‘ 리’에 대한 이해는 정체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황상희 : 아마도『 동아시아는 몇시인가』에서도 지적하듯이, 우리가 근대성을 애매하게 규정해 놓아서, 전근대성은 몰라도 되는, 또는 없는 것으로 치부해도 되는 것으로 보아서 그런 것 같아요.
조성환 :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주자학에 대한 이해가 우리는 업데이트가 안 되는가? 일본은 주자학을 근대와의 관련 속에서 보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근대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주자학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그 반대도 성립하고요. 반면에 우리는 주자학과 근대를 따로 보는 것 같아요.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근대성’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뜻이죠.
이원진 : 최근에 나종석 선생님의『 대동민주 유학과 21세기 실학 - 한국 민주주의론의 재정립』을 읽었는데, 민족주의가 세계시민주의가 과연 양립불가능할까를 물어요. 최근에 중국이 다시 유교를 부각시키면서 민족주의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강화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사실 동아시아는 처음부터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같이 양자를 병행하려는 사상이 있었다, 이것을 다시 살리자는 게 이 책에서 말하는 ‘대동민주주의’ 개념이에요.
그 책에서는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님도 언급되고 있어요. 삼일운동의「 기미독립선언서」에서 일본을 준엄하게 깨우치는 논조를 취하면서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일본도 살고 우리도 살 수 있는. 지금이 동아시아 평화의 중요한 기점이라는 사실을 절대 놓치지 말라.”라고 하는 꾸짖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을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님이 지적했는데, 사실은 이런 분석이 이미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에서 나오고, 서문을 쓴 중국인 왕정위(汪精衛)는 삼일운동이 인류 대동의 정신을 이미 구현했다고 주장했다는 거죠. 다만 우리가 이런 사실들을 잊고 있을 뿐이라는 거예요.
한국의 근대성을 다시 성찰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위기인데, 이것은 중국의 움직임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원진 : 제가 지금 대학 교양수업에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교재로 삼아 진행하는데, 현대 사회의 한국문제와 관련해서 조별토론을 시키고 있어요. 그리고 개별과제로는 플라톤의 『고르기아스』를 읽고 타인에게 불의를 가하는 삶(칼리클레스 입장)과 불의를 당하는 삶(소크라테스 입장) 중에서 어떤 삶이 더 나은지를 선택해보라고 했어요. 소크라테스는 개인의 영혼을 지배하는 법과 사회를 지배하는 법이 다를 수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가하는 것은 타인에게 해가 될 뿐 아니라 개인의 영혼을 잠식하는 행위이므로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하죠. 반면에 칼리클레스는 자연 상태에서라면 개인은 자기가 하고픈 대로 남을 해치면서 살고 싶지만, 겁쟁이 시민들이 만든 법 때문에 차마 처벌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고 얘기해요.
그렇기 때문에 처벌이 없는 상황, 예를 들어 남의 눈에 들키지 않는다든가 하는 자연적 상황이 된다면 당연히 타인에게 불의를 가하는 게 이득이라고 주장해요. 이 입장에서는 자연법과 시민법이 엄밀히 다른 법이 되죠. 이에 대해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불의를 가하겠다는 칼리클레스가 옳다고 답했어요. 아까 윤치호 얘기를 하셨는데, 현대사회가 물질만능사회이다 보니까 학생들의 인식은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불의를 가하는 삶을 사는 것이 편하다”고 고백하는 거예요. 이 괴리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왜냐하면 학생들이『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읽고 토론하면서 계속 ‘리’에 대해 얘기를 하거든요.
황상희 : 실제로 요즘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거창한 꿈을 꾸기보다는 그냥 소시민적으로 자기 혼자만 먹고 살 정도로 살기를 원하는 학생이 대부분이에요.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야 하는데요?”, “그럴 필요가 뭐가 있어요?”라는 식이죠. 이런 것을 보면 정말 괴리가 큰 사회라는 느낌이 들어요.
이원진 : 그런데 ‘미투’나 4.3 사건, 1987년 같은 주제로 토론을 할 때에는 굉장히 활발해요. 연대나 저항정신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로 가다가『 고르기아스』를 읽고 토론을 시키면 또 정반대의 태도가 나와요. 오구라 선생님의 지적대로, 우리는 정말 모드 전환이 굉장히 빨리빨리 되는 것 같아요. 미투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리’의 스위치가 발동이 됐다가『, 고르기아스』에 나오는 문제에 부딪히면 ‘기’의 스위치가 발동이 되는 식
으로. 약자로서 당하고만 살지는 않겠다는 것이죠. 대부분의 학생들은 주자학적인 ‘리’의 질서가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작동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 같아요. 한국사회가 도덕지향적이라는 점을 느낄 수 없다는 거예요.
조성환 : ‘미투’가 도덕지향적인 것 아닌가요? 사실 저는 오구라 교수님이 말하는 ‘리’에는 도덕지향성과 상승지향성이라는 상반된 성격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상승지향성은 권력지향성과 같은 말 같고요. 그래서 조선의 사대부들은 “상승을 하려고 도덕을 가지고 상대방을 공격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아요. 반면에 퇴계의 경우는, 지난번에 이원진 선생님이 지적하셨듯이, 도덕을 지향하려고 상승을 하지 않고 하강을 택했잖아요. 그래서 도덕지향성이 ‘리’의 영역이라면, 상승지향성은 오히려 ‘기’의 영역이 아닐까요? 자연감정이나 사적인 욕망의 영역이니까….
이원진 : 그래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그냥 읽고 끝내서는 안 되고, 읽고 토론을 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말씀하대로 리에 두 가지 요소가 다 있다면, 상승지향성을 자연법, 도덕지향성을 시민법에 대응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소크라테스도이 두 법이 서로 상충하지 않는다고 봤듯이 퇴계도 그렇게 봤다고 생각해요. 상승지향성은 인간의 욕망인데 퇴계는 물리적 하강을 통해 리적 상승을 꾀한 것이죠. 상승한다면서 자신의 영혼에 해가 된다면 그 때는 물리적으로 하강하는 게 겉으로는 불의를 당하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은 더 행복하고 그게 진정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상승이라고 보면 어떨까요. 그게 유학에서 말하는 “도가 있으면 나아가고 도가 없으면 물러나는”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조성환 : 제가 지금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한국철학사> 수업을 하고 있는데, 저희도 이 문제로 토론을 많이 했어요. 가령 최치원이 말하는 ‘풍류’를 저는 ‘어떤 사상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겠다는 개방적인 태도’를 말한다고 해석했는데(“포함삼교”), 수업을 듣는 석사과정의 최재석 수사는 그것이 결국에는 하나의 ‘리’로 정해진다고 보았어요.
이것을 종합해 보면, 한국문명에는 두 가지 상반적인 태도가 다 있는 셈이죠. 외부 문명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와 그것을 하나로 고착시키려는, 그래서 ‘일리(一理)’를 만들려는 태도. 이 과정을 오구라 선생님의『 조선사상사전사』의 서문에 나오는 관점으로 설명하면, 하나로 굳어진 ‘리’가 역동성과 생명력을 상실하면 다시 개방적인 태도로 확 열렸다가, 그것이 다시 ‘일리’로 고착되는, 그런 반복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장자나 풍류적인 허통(虛通)이나 개방의 측면도 있지만, 주자학적인 일리(一理)나 배제의 측면도 동시
에 있는, 이런 모순이 공존하는 것이 한국문명이 아닌가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이런 것처럼 도덕지향성과 상승지향성이라는 상반되는 성향이 한국인에게는 공존하는 것 같아요.
성민교 : 저는 ‘리’가 상승지향이라기보다는 ‘리’를 향한 상승지향이라고 읽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리’를 도덕보다는 오히려 권력이라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그리고 최근의 현실을 보아도 상승지향성은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반면에 도덕지향성은 위기상황에서만 발휘되는 느낌이에요. 평소에는 자기가 도덕지향적이라고 인식을 안 하고 있고, 또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시대잖아요.
조성환 : 그렇다면 도덕지향이라기보다는 ‘정의지향’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미투도 그렇고 촛불집회도 그렇고….
이원진 : 인의예지 중에서 ‘의(義)’에 해당하네요.
조성환 : 그렇다면 “한국은 인의예지의 도덕 중에서 ‘의(義)’의 지향성이 강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도덕’이라는 말이 너무 광범위하니까…. 평소에는 상승지향이나 약육강식의 성향이 ‘더’ 강하게 작동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인의예지 중에서 ‘인(仁)’의 측면은 오히려 약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조선시대의 노비제도나 서얼차별을 보아도 그렇고, 지금의 갑을문제를 보아도 그렇고…. 물론 한국인들이 개인적인 정감이 강한 것은 인정합니다만.
성민교 : 그러고 보니까 한국에서는 ‘도덕’이 ‘정의’라는 말과 동일시되지 않나요?
이원진 : ‘효’는 어떨까요?
조성환 : 그것도 가족 안에서의 ‘인(仁)’이죠.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도덕’인지 더 세분해서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일본의 경우에는 개인적인 ‘양심’이라는 도덕이 발달해 있는 것 같아요. 반면에 한국은 사회적 정의라고 하는 도덕이 발달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원진 : 저도 한국인이 ‘의’가 강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은 매우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오구라 교수님의 분석대로,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역사적 경험 때문에 도덕지향성이 강화된 걸까요?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까 무력으로 항거하기보다는 도덕으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조성환 : 아까 ‘대동민주주의’ 얘기가 나왔었는데, 이병한 선생님이 오는 6월에 중국의 <천하학회>에 참석하신다고 합니다. ‘대동’과 ‘천하’는 비슷한 개념인 것 같은데, 중국이 지금 모색하고 있는 ‘천하’는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이병한 :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 유교적 근대론’을 대단히 호의적으로 생각했어요. 비서구적 근대의 일환으로 이런 식으로 볼 수 있구나, 삼일운동과 같이 보편적인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기저도 유교문명 속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한 민족의 독립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시야에 넣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유교에서 너무 비약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세계에서 주체로 어떻게 바로 갈 수 있었을까? 그 사이에 동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삼일운동의 민족대표 33인을 보아도 절반이 천도교인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개신교와 불교였거든요. 유림은 거의 없었어요. 그러면 ‘천하’나 ‘대동’으로 어필하는 것은 자칫하면 ‘중국적 근대’로 모두 수렴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어요. 6월에 북경에서 열리는 <천하> 학술대회 참가자들을 보아도, 베트남, 한국, 일본학자들이 대부분인데, 대단히 빠른 속도로 중국 중심주의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발표해야 하나, 라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대동민주주의론’ 같은 것도 중국에서 보면 아주 좋아하겠죠.
조성환 : 저도 동감입니다. ‘유교적 근대’라는 틀로는 18세기의 조선까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이후는 설명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교 연구자들은 대부분 동학까지 는 내려오지 않죠. 동학까지 내려온다고 해도 거기서 멈추거나….
이원진 : 다카하시 도오루가 조선 유교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동학농민군들의 책상에 퇴계의 책이 있어서, 그것을 보고 퇴계를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동학 도인들이 퇴계를 읽은 이유를 밝혀야 하지 않을까요?
조성환 : 저는 거꾸로 생각하면 된다고 봅니다. 퇴계를 동학 식으로 보는 거죠, 주자 식으로 보는 게 아니라. 주자만으로는 퇴계가 설명이 안 되는데, 동학을 보면 퇴계가 설명이 되니까요. 그래서 동학으로부터 거꾸로 소급해서 다산, 퇴계, 권근 등을 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조선성리학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유학이니 동학이니 나누다 보니까 연속적으로 파악이 안 되는 거죠. 제가 최근에 장일순의 ‘한살림철학’에 대해서 발표한 적이 있는데, 핵심은 ‘하나의 철학’을 지향한다는 거예요. 우주는 ‘하나’의 생명이다, 그래서 그 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삶의 방식을 가져가야 한다고 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의 살림’, 즉 ‘한살림’이죠.
저는 동학부터 이미 이런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천지인(天地人)을 ‘일기(一氣)’로 보았고, 천도교에서는 그것을 ‘한울’, 즉 “하나의 울타리”라고 표현했어요. 그리고 이 ‘한울’ 개념이 대종교 경전에도 나오고 원불교에서도 사용해요. 이들 개벽종교가 공유한 ‘하나’의 철학이 유교의 ‘대동’이나 ‘천하’ 개념과의 차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유교는 역시 문화적 하이어라키(hierarchy, 계층)를 전제로 하는데, 한울철학이나 ‘하나의 철학’에서는 그런 하이어라키는없으니까요. 이것이 삼일운동의 정신적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원진 : 저도 ‘한중비교철학’을 해야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조성환 : 그런데 지금은 또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게, 그것은 중국철학에 대한 한국철학의 독자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동학에서 원불교에 이르는 개벽사상을 보니까, 한국의 근대는 오히려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아프리카적 근대, 인도적 근대, 또는 그 외의 제3세계의 근대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중국의 양계초나 모택동 또는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른바 ‘영적인 지도자’(spiritual leader) 같은 느낌은 안 드는데, 한국의 최제우나 소태산은 인도의 간디나 아프리카의 투투 대주교와 같은 영적인 지도자거든요. 마치 퇴계나 다산의 유학이 ‘영성 유학’의 성격이 강한 것처럼요. 김형효 선생이 퇴계의 유학을 ‘상제(上帝)유학’이라고 명명한 것도 이런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해요. 반면에 중국의 주자학은 영성적 측면이 있다고 해도, 퇴계나 다산의 그것에 비하면 이성적이면서 합리적인 성격이 강하죠. 그래서 한국의 근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문명권보다는 이런 제3의 문명권의 근대와 비교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의 근대는 유교적 근대나 서구적 근대와는 다른 길을 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지난 25년 동안 중국·일본·서양을 공부한 것이 동학에서 원불교에 이르는 한국적 근대를 설명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깨달았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죠.
조성환 : 그래서 우리에게는 대략 세 가지 과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교에서의 영성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주자학과 퇴계학에서의 영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퇴계적 영성과 동학적 영성 사이에는 어떤 연속성이 있는가? 특히 동학의 출현을 영성과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조선 유학의 영성의 약화에 반발하여 영성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애당초 유학으로 대변되는 중국인의 영성이 한국인의 영성, 특히 한국 민중의 영성에 맞지 않아서 그것을 본격적으로 부활시킨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천인관(天人觀)인데, 최시형의 가장 독특한 점은 “하늘과 사람이 서로 협력한다”는 “천인상여(天人相與)”적 천인관을 말하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천인관은, 아까말씀드린 서강대 신학대학원의 최재석 수사의 해석을 참고하면, 퇴계의 활리와 유사합니다. 그분은 퇴계의 활리를 설명하면서 촛불집회의 예를 들었는데, 민주주의라는 리가 마치 살아 있듯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가 촛불집회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리(理)는 한국 시민과 상호작용하면서(活) 함께(與) 진화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최시형 식으로 말하면 “천인상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 경우에 ‘천’은 퇴계의 ‘리’).
김용한 : 초월자가 인격자라면 사람이 하늘과 직접 대화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보통 하늘과 대화한다고 하면 미신처럼 들리잖아요. 한번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새벽기도회에 가본 적이 있어요. 왜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이나 궁금했거든요. 가서 놀랐던 점은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찬송을 한 다음에 하느님과 직접 얘기를 하는 거예요. 소리를 지르면서요. 그것을 학교 분위기랑 비교해 보면, 학교에서 선생님 앞에서는 아무 말도 안했을 분들이 거기에서는 하루 동안 쌓였던 것들, 답답했던 것들을 그 자리에서 다 털어 놓는 거예요. 이것을 교회에서는 “네가 지금 하는 것은 미신적인 행위가 아니야. 하느님과 대화하는 거야.”라면서 공인을 해 주죠. 유교적 계층질서에 막혀서 대화하지 못했던 것들이 새벽에 가서 다 털어놓으면 모두 풀리는 거죠. 그래서 “이것은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성환 : 퇴계 선생은 혹시 하늘과 마음으로 대화했다는 기록 같은 것은 없나요? 충분히 그랬을 것 같은데요.
황상희 : 퇴계 선생의 일기에 이런 말은 있어요. “손닿는 모든 것이 리인데 즐겁지 아니한가!” 그리고 매화나 연꽃이랑 얘기도 많이 하셨고요.
조성환 : 바로 그런 것이 사물을 ‘인격적’으로 보았다는 뜻이 아닐까요? 반면에 주자학에서는 그런 태도가 얼마나 보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작년 여름에 퇴계학회에서 도산서당을 답사했을 때, 퇴계가 우물이나 나무에 이름을 짓고 대화를 나누었다는 말을 저도 들었는데, 그 때 옆에 있던 오구라 선생님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시더라고요. 아마 퇴계에서 해월과 같은 영성을 보신 것 같습니다. 해월 최시형이 만물은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고 했잖아요. 오구라 선생님 표현대로라면 일종의 “애니미즘”적 세계관이죠.
이원진 : 도산서당은 주자의 무이정사(武夷精舍)를 본떠서 만든 것인데, 무오정사에는 사물 하나하나에까지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거든요. 반면에 퇴계의 도산서당은 모든 우주적 질서를 담은 이상향을 만든 거예요.
조성환 : 주자학의 생리(生理)를 넘어서 일종의 생령(生靈)의 세계관 같네요. 이상적인 것은 중국에서 가져오는데 만드는 과정에서 달라진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황상희 : 믿음의 행태가 매우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맹자가 성선설을 주장할 때 중국 사람들은 그것이 다분히 이론적이라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퇴계는 그것을 현실 안으로 가지고 와요. 가령 사단(四端)은 이발(已發)인 이상 그것은 현실 안에서의 사태이기 때문에 순선(純善)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어요. 곰곰이 따져 보면 모순인데, 조선 성리학자들은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모순된 상황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거지요. 고봉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아요. 다른 측면의 논의를 할 뿐이죠.
어떤 논리를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기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조성환 : 우리도 서양철학은 의심하지 않잖아요.(웃음)
성민교 : 그런 게 순수성을 추구하는 측면과 잘 맞는 것 같아요.
조성환 : 저는 오히려 ‘성인 패러다임’이라고 보았습니다. 성인은 늘 바깥에 있고, 그 성인의 말씀을 가지고 와서 실천하려고 하는 태도요.
성민교 : 그 순수함이라는 게 무엇과도 섞이지 않은 온전함이라는 거죠. 온전히 그냥 믿는 태도요.
황상희 : 리통기국(理通氣局)을 주장한 율곡조차도 성선(性善)은 의심하지 않아요.
조성환 : 거꾸로 보면 율곡은 ‘기’를 의심 안 했다고 할 수 있죠. 서경덕을 비롯한 이른바 주기론 계열은 ‘기’의 완전성을 주장한다고 들었어요. 일종의 ‘기’에 대한 낙관이라고 볼수 있죠.
이원진 : 저는 개인적으로 ‘도상학(圖像學)’에 관심이 많은데, 퇴계가 원나라 정복심의『 사서장도(四書章圖)』를 많이 참고했거든요. 남명 조식의『 학기유편(學記類編)』이라는 책도 다도상으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고려대 이승환 교수님이 대조해 보았더니 대부분이 정복심의『 사서장도』에 나오는 그림으로, 남명이 직접 그린 것은 몇 개 안 된다는 거예요1. 그런데 그렇다고는 해도『 학기유편』과『 성학십도』를 비교해 보면, 제가 박사논문에 쓴 내용인데, 모두 원 안에 들어가 있거든요. 저는 이 ‘원(圓)’이라는 게 엄청난 ‘낙천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동그라미 안에 모든 질서가 완벽하게 들어간다고 보고 있으니까요. 저는 퇴계가 주자학을 이런 식으로 완성시켰다고 생각해요. 그림으로 한눈에 보여준 거죠, 이상세계를.
성민교 : 저는 그 ‘낙천’이라는 키워드가 아주 중요하게 들리는 게, 그러니까 아까 얘기가 나왔던 것처럼 위기 상황에서만 ‘리’가 발현된다고 생각되어서요. ‘원’이나 ‘하나’나 ‘어우러짐’(풍류) 같은 것도 낙천성이 없으면 생각하기 어려운 개념 같아요.
이원진 : ‘헬조선’도 비슷하겠네요. 일본의 젊은이들은 아예 희망하지 않기 때문에 절망도 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조성환 : 그런 낙천성에서 오히려 역동성이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상승지향도 낙천적이니까 가능한 것 아닐까요?
황상희 :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님의『 나의 한국사 공부』에서도 한국에서 양반 계층을 나누는 것의 어려움을 지적하잖아요. 중국과 일본은 어느 정도 정해진 틀이 있어서 그 안에서만 움직이는데, 한국은 여기에서 저기로 가고 저기에서 여기로 가는 식으로 이동이 심해서 그런 거래요.
조성환 : 저도 미야지마 교수님 글 중에서 재미있었던게, 보통은 하향평준화를 하는데 한국은 세계 최초로 모두가 양반이 되는 상향평준화가 됐다는 말이었어요. 이것도 일종의 낙천성의 사례겠죠.
이원진 : 오구라 교수님 식으로 말하면 “모두가 ‘님’이 되고자 하는 사회”인 거죠. 1801년에 공노비가 해방이 된 것도 노비들이 너무 많이 도망가서였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엄한 벌을 내려도 목숨을 걸고 도망갔대요. 그만큼 ‘님’이 되고자 하는 상승지향성이 강했던 것 같아요.
조성환 : 낙천성과 이상성이 있기 때문에 헬조선이라는 말도 나오고 촛불집회도 가능했던 것 같아요. 평소에는 낙천적이니까 신경을 안 쓰다가 이상이 붕괴되었을 때에는 다같이 들고 일어나는 거죠. 헬조선이니 촛불집회니 하는 식으로.
이원진 : 퇴계는 ‘원’ 안에 네모를 넣어서 원형이정, 인의예지 등을 하나로 묶어버리거든요.
조성환 : 그것이 한국식 ‘천하’ 개념, ‘세계’ 개념일지도 모르죠.
이병한 : 그런데 이런 식으로 근대를 얘기하면 당장 사회과학자들이 무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사회과학자들은 근대의 핵심을 자본주의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이 단순히 리와 기만으로 근대를 설명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지 않을까요? 그들과 소통이 되어야 이 얘기가 확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조성환 : 그 문제는 미야지마 교수님도 설명하셨어요, 브로델을 언급하면서. 근대는 자본주의라고 보는 사람하고 시장경제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고. 자본주의라고 해도 무엇을 자본주의로 볼 것인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2 그리고 지난번 제1회 포럼에서도 그 문제를 감안해서 ‘삼중근대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중앙집권화가 조선시대부터 진행되었다면, 민주화는 동학에서 단초를 열었고, 산업화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시작되었다는 식으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님도 한국의 근대를 설명하면서,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근대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일본을 통한 서구적 근대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해방 이후로는 미국적 근대의 영향을 받게 되고, 북한까지 포함시키면 소련식 근대의 영향도 받았다고 하셨는데3, 이것은 일종의 ‘사중근대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삼중근대론’은 어디까지나 서구 근대를 기준으로 한 분석이지만, 서양은 이 세 가지 요소가 한꺼번에 나왔다고 한다면 조선의 경우에는 세 단계에 걸쳐서 출현했다고 볼 수 있지요. 전 세계적으로 이 세 가지 요소가 한꺼번에 출현한 곳은 유럽밖에 없을 겁니다.
이병한 : 한국의 민주주의의 시작을 동학으로 보는 분들이 있나요?
조성환 : 있긴 있지만 서구적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반면에 동학은 ‘영성’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라고 생각돼요. 그래서 결국 관건은 근대를 영성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돼요. 서구 계몽주의에서는 영성에 대한 논의는 거의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비서구적 근대’를 인정하는 것은 결국 근대담론에서 영성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용한 : 이타가키 유조 교수님의 논문을 보니까, ‘이슬람적 근대성’을 주장하시면서 서구 계몽주의는 이슬람을 표절한 것에 불과하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오리엔탈리즘을 만들었다고 하시더군요.
조성환 : 예. 7세기에 이른바 근대적 가치, 자유나 평등 또는 인권 개념이 이슬람 세계에 이미 있었고, 또 제도화되었다고 말씀하시죠. 아울러 그 배경에는 “타우히드”라고 하는 “하나의 철학”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같은 시기에 불교에서 화엄철학으로 구현되었다고 보고 계세요. 그런 의미에서 전 세계가 이미 7세기에 ‘근대’라는 시기에 접어들었고 주장해 오셨죠. 지난 50여 년 동안.4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님도 ‘이슬람적 근대’를 언급하시는데, 아마 이타가키 교수님의 학설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이 한국학계와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동아시아나 서구를 못 벗어나는데, 일본학계는 이슬람, 인도, 아프리카와 같은 전 세계의 사상사 연구 전문가가 있으니까요.
이병한 : 저도 ‘동학적 민주주의’나 ‘영성적 근대’는 아주 잘 잡은 개념이라고 생각되는데, 설명이 되어야 해요. 가령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님은 유교적 근대로 3.1운동을 해석하신 거잖아요. 숙명여대의 이황직 교수님도 4.19를 “군자들의 행진”이라고 하셨어요.5 이분도 유교적 근대를 주장하고 계신 거죠. 마찬가지로 3.1운동, 4.19, 5.18, 6.10, 촛불집회, 이런 것들을 동학적 근대나 영성적 민주주의로 설명을 해 줘야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조성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간디와 같은 영성적 지도자가 이때에는 없지 않았나요?
이원진 : 그것은 학생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꼭 한 명의 상징적 인물이 아니라….
조성환 : 그렇죠. 일종의 민중영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
성민교 : 동학도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조성환 : 예. 실제로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은 지난 촛불집회를 동학적 DNA가 발현된 시민영성 같은 식으로 보고 계세요. 그래서 저는 동학이나 촛불집회가 고대 한반도국가의 제천행사와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했죠. 만인이 하늘로 대변되는 영성을 공유하고 즐긴다는 발상이 통한다고 보았죠. 촛불집회도 이렇다 할 리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이원진 : 최근의 미투(me too)를 넘어서 ‘위드유(with you) 운동도 단순히 서양의 연대 개념만으로는 설명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이병한 : 1987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서구적 민주화인가요? 아니면 그것이 거의 한계에 도달해서 30년 뒤에 촛불로 드러난 것은 다른 민주화가 나타난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조성환 : 많이 다르다는 점은 다들 인정하고 있지 않을까요? 질적인 차이는 분명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을 설명하려면 역시 동학과 같은 토착사상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니까요.
이병한 : 지금은 거의 설명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설명 틀이 다 옛날 거예요. 혹시 동학의 용어로 촛불을 사자성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조성환 :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정치가들이 안민(安民)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못하고 있으면 민(民)이 그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보국(輔國) 사상이요. 물론 이 주장은 동학교도들만 한 것은 아니지만요. 이 외에도 해원상생, 영남만인소, 제천행사 등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폭력이 아닌 축제로 전환시킨 점이 그렇고, 땅바닥에 앉아서 청와대를 향해 상소문만 들고 주장을 하는 점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고대한반도 국가에서 모든 이들이 하늘에 제사지내며 축제를 벌이는 모습을 연상시켰어요. 일종의 ‘원(圓)’이라는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모습이죠.
이원진 : 그래서 저는 조선성리학의 도상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 도상을 그리려고 했을까? 물론 정복심의『 사서장도』는 과거제를 빨리 시행하려다 보니까, 뭔가 한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필요해서『, 사서』의 핵심을 두루마리처럼 만들어서 시간 날 때 틈틈이 공부할 수 있는 일종의 자습서가 만들어진 거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이 정도 동기에서 시작된 것인데, 권근 이후의 조선 성리학에서는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 잡게 돼요. 여기에는 아마도 상제든 천(天)이든 뭔가를 그림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퇴계에서는 ‘원’으로 완성되고요. 반면에 중국인들은 하나의 그림에 담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것 같아요.
조성환 :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 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죠. 한국인들이 유독『 주역』을 좋아하는 것도 모든 이치를 하나의 원리나 공식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해서인 것 같아요. 그렇게 보면 태극기가 도상학의 결정판이죠. 일종의 뉴톤의 운동방정식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국기에 넣은 셈이니까요.
이원진 : 그래서 저는 “Theory of Everything”(ToE)이라는 이론이 자꾸 연상이 돼요. 결국 현재 과학계에서는 ToE는 허구다, 아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은 없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이 났다는데, 저는 도상학을 하려고 했던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다 이런 이론을 시도했다고 생각돼요. 남명의『 신명사도(神明舍圖)』라는 그림도 상제(上帝)를 대하는 자세를 그린 거예요. 이런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해요.
조성환 : 상제를 대하는 자세라고 하면 일종의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그린 셈인데, 서양으로 보면 미켈란젤로가 성당에 벽화를 그린 것과 비슷하네요. 그러고 보면 중국의「 태극도설」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이원진 : 주자는「 태극도」나「 서명해의」에서 그쳤는데, 퇴계는 그것들을 하나의 시리즈로 엮어 버린 셈이죠.
조성환 : 그렇게 보면 한국인들은 적어도 영성의 측면에서는 중국과는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중국이나 일본 또는 서양보다는 인도나 아프리카, 이슬람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황상희 : 실은 저도 우리의 식민지 경험을 어떻게 극복할까, 라는 문제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는데,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의 논문을 읽고서 그동안 제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어요.
조성환 : 아쉽지만 벌써 예정된 시간이 다 돼서 오늘의 대화는 이것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다음 포럼에서는 ‘유교와 영성’의 문제에 대해서 좀 더 본격적으로 얘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주석
1) 신성미,〈 남명 조식의 학기도 24도 중 직접 그린 것은 5도에 불과 - 고려대 이승환 교수 주장〉,《 동아일보》, 2012-09-20.
2) 미야지마 히로시「, ‘유교적 근대’를 통해 본 한국사」, 』역사문제연구』26, 2011, 336-7쪽.
3) 위의 논문, 307쪽.
4) 이타가키 유조(板垣雄三)「, 전통과 근대를 다시 묻는 ‘진리파악’」, 』한국종교』 43, 2018.
5) 한승동〈,의병부터 민주화까지 ‘유림운동사’〉《, 한겨레신문》, 2017.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