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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ug 06. 2018

아시아 평화공동체의 구축과 영성의 작용

- 영화 「귀향(鬼鄕)」과 아프리카의 토착사상을 중심으로

[편집실 주 : 이번 호부터 ‘토착적 근대 포럼’을 시작한다. 이는 한마디로 서구 중심의 근대화, 근대사 이해를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하자는 것으로, 동학 또한 이러한 ‘토착적 근대’라는 패러다임으로 볼 때 그 세계사적인 지평이 더욱 잘 드러나리라고 믿는다. 특히 이 포럼은 기타지마 기신 욧카이치대학 명예교수의 지혜와 학술적 제안에 따른 것이며, 그 외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이 작업이 세계사 다시 쓰기, 혹은 최소한 동아시아 역사 다시 쓰기 / 다시 읽기로 귀결되기를 기대한다.]


필자 : 기타지마 기신(北島義信) | 욧카이치대학(四日市大学) 명예교수

번역 : 조성환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들어가며


아시아 평화공동체의 구축을 생각하는 데 있어 우선 식민지주의·제국주의의 억압·지배라고 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공통인식 확립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결은 쉬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식민지주의·제국주의 지배를 ‘근대’의 필연적인 것이자 사회진보의 보편적 과정으로 보는 입장에 서면, 식민지에서의 인프라 증설이나 수확 증산을 위한 농업개선 등은 ‘선진국’이 베푼 ‘은혜’가 되고, 지배에 대한 저항운동도 “봉건제에 고수하는 무지몽매한 행동”으로 여겨져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외부성으로서의 타자를 무시한 식민지 지배자측의 자기중심주의의 정당화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으로부터는 상생적 평화의 구축은 나올 수 없다.


이와 같이 객관적인 역사인식을 왜곡하는 사고방식을 극복하는 길은 의식 변혁이다. 그것은 자기를 넘어선 외부성으로서의 ‘타자’의 ‘작용’에 의해 가능해진다. 그 작용은 우리에게 “이대로 좋은가?”라고 물음으로써, 뒤흔드는 작용으로, 대상의 이중화에 의한, 개체 속에서 보편자의 외침을 들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이 작용은 ‘영성’의 작용이다. 이 ‘작용’은 종교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직접적으로는 대지에 뿌리내린 토착종교·문화에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부터 1960년대 무렵까지 개발도상국 세계의 민주화 운동에서는 민족주의·사회주의적 운동이 주류가 되었는데, 남아프리카, 이란, 라틴아메리카에서 현저하게 볼 수 있듯이, 그 운동은 점차 억압되어 갔다. 이러한 현실을 일변시킨 운동이 1970년대에 전세계에 동시적으로 탄생하였다. 그 축이 되는 것은 각 지역의 대지에 뿌리내린, 민중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종교였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전통적 토착사상 ‘우분투(Ubuntu)’와 결합된 그리스도교이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빈곤과 억압의 현실과 토착의 샤머니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해방신학’이고, 이란의 경우에는 현실의 과제 해결 방법을 이슬람에서 찾은 ‘이슬람 부흥주의’였다. 이 종교들은 비폭력에 의한 상생적 평화 구축에 커다란 힘을 발휘하였다. 여기에는 서구형 근대와는 다른 ‘토착적 근대’의 시점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이 시점은 자기의 모습을 객관화하고, 자타의 상호관계성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폐기하고(1994년), 전인종 평등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남아프리카의 건설, 비폭력적이고 상생적인 평화공동체의 구축을 향해서 새로운 첫 걸음을 내디뎠다. 그때 과거의 억압자를 피해자가 재판하여 벌을 준다고 하는 ‘응보적 사법’(應報的司法)이 아니라, ‘회(수)복적 사법’(修復的司法)이 필요하다는 시점이 채택되었는데, 그것은 토착사상 ‘우분투’에 기초한 ‘비서구적 근대’의 시점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러한 상생적 평화공동체의 구축에는 종교적 영성의 ‘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것은 특정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면서 보편성을 띠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한국영화 ‘귀향’(鬼郷, Spirits’ Homecoming)이다.


이 글에서는 ‘귀향’에 일관되고 있는, 토착종교에서의 과거·현재·미래의 일체성, 육체와 정신의 일체성, 정신적 세계와 현실세계의 비분리성,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생가능성이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나아가서 이러한 종교·사상이 아시아의 평화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현실적으로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임을 보이고자 한다.


1. 영화 ‘귀향’의 줄거리


영화는 한 나이 든 여성이 TV에 나오는 ‘위안부’ 인터뷰를 보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 후 장면은 곧바로 식민지시대인 1943년의 경상남도 거창으로 바뀐다. 14세의 소녀 정민은 사랑이 넘치는 부모 밑에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몇 명의 일본군이 집에 와서 부모의 필사적인 애원에도 아랑곳 없이 막무가내로 소녀를 데려간다.


장면은 갑자기 1991년의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 있는 어느 마을 변두리에서 행해지는, 무당들의 토착적 종교의식으로 돌아온다. 얼마 안 있어 이 나이 든 무당이 있는 곳에 한 어머니가 ‘은경’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데리고 온다. 이 소녀는 말을 하지 못한다. 사연을 묻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 날 갑자기 형무소에서 갓 나온 한 남자가 집에 침입하여 소녀를 강간하고, 저항하는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강간 당한 슬픔, 분노, 굴욕, 공포, 절망과 아버지가 살해 당한 일이 겹쳐 소녀는 말을 잃게 되고, 생각다 못한 어머니는 무당에게 상담하러 온 것이었다. 사정을 들은 무당은 그 여자 아이를 맡기로 하고, 자기가 데리고 사는 젊은 무당 애리와 공동생활을 시킨다. 애리의 이야기로는 이 소녀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혼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듯이 중얼거리고 있다고 한다.


어느 날, 무당들이 야외에서 종교의식을 거행하고 있고 은경은 그것을 도와주고 있는데, 그녀에게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응? 나?”

“누구 찾아 오셨어요?”

“아니, 만났어. 이제 간다.”

“아는 사람이에요?”

“그럼, 잘 알지. 그런데 너는 누구니?”

영화「귀향」 중에서


은경은 의식의 제단에 향을 바치고 있는 여성에게 말을 건넨다.

“저, 할아버지가 전해주라고 했어요.”

“나에게 말했니?”

“예, 하얀 상의에 회색 바지를 입은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이제 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빨리 전해주라고 했어요. 옛날에 장롱 안쪽 구석에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썼대요. 버리기 전에 꼭 보라고요.”

“누가, 누가 말했니? 아…, 아빠!”

은경에게 빙의한 남성은 다음과 같이 딸에게 말한다.

“오랫동안 고생시켜서 미안했다.”

“아버지!”

“남편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주렴.”

“아버지!”


은경에는 이와 같이 죽은 자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죽은 자가 은경을 통해서 딸에게 말을 건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은경은 나이 든 한 여성이 만든 전통적인 부적 ‘괴불노리개’를 만지는 순간, 그 여성이 체험한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그 노리개를 만짐으로써 일본군사에게 끌려간 정민을 비롯하여, 많은 여성들이 빽빽하게 타고 있는 화물열차 안을 볼 수 있었다. 정민은 그 화물열차 안에서 옆에 있는 한 소녀와 친해진다. 그 소녀가 바로 지금 괴불노리개를 만들고 있는 나이 든 여성이다. 그녀들은 중국 길림성 목단강에서 화물열차에서 내려, 트럭에 실려 위안소로 보내진다. 1943년의 일이다.


‘꿈’에서 눈을 뜨고 현실세계로 돌아온 은경은 괴불노리개를 만드는 나이 든 여성에게 기이한 ‘꿈’ 체험을 이야기한다. 그 노리개를 만지는 순간 1943년의 현실세계에 돌아가서 총을 든 일본군인을 보고, 그 노리개를 보았음을 말해준다. 그 말을 듣고 그 나이 든 여성은 과거의 가혹한 위안소에서 자유를 뺏기고 강제로 위안부로 일했던 과거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일이 있은 뒤 그 나이 든 여성은 ‘정신대 피해신고’ 신청이 시작된 관청으로 가서 자신이 위‘ 안부’였음을 밝힌다.


그 사이에도 은경은 괴불노리개를 만질 때마다 1943년의 현실세계에 들어가서 위안소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현실을 알게 된다. 위안부 소녀들은 그녀들에게 동정적인 일본병사의 도움을 받아 탈주를 시도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마침내 일본의 패배가 눈앞에 다가오자, 그녀들은 트럭에 실려 증거 인멸을 위해서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내려져 일본병사들에게 총살 당하려고 하는데 빨치산 병사들의 습격을 받아 몇몇 소녀들은 구출된다. 사이가 좋은 정민과 ‘언니’(나이 든 여성) 두 사람은 도망가서 마침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중상을 입은 일본병사가 쏜 총에 맞아 정민은 목숨을 잃는다. 나이 든 여성은 자신을 위해서 일본병사의 총에 맞은 정민에 대해서 자기만 살아남은 미안함을 한시도 떨칠 수가 없었다.


장면은 다시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종교의식(鬼鄕 의례)이 행해지는 현실로 돌아온다. 그것은 사자(死者)의 혼을 불러오는 의식으로, 은경이 무녀가 되어 춤을 춘다. 그 의식 가운데 나이 든 여성은 은경에게서 소녀 정민을 본다. 은경은 소녀 정민이 되어 ‘언니’에게 말을 건다. 두 사람의 혼의 대화 속에서 나이 든 여성은 혼자만 살아남은 것을 사과하는데, 정민은 은경이 되어 돌아온 것을 감사하면서 그녀를 안심시킨다. 나이 든 여성의 혼도 마침내 현실세계에 돌아오고 평안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2. ‘귀향’과 아시아평화공동체


(1) 소녀 은경과 ‘위안부’의 공통점


영화 ‘귀향’은 한국의 토착종교에서 볼 수 있는 영성의 ‘작용’을 통해서 상생평화의 방식에 중요한 문제제기를 행하고 있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나이 든 여성은 과거에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위안부’가 되고, 지금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암환자이다. 그녀에게 있어 암에 의한 죽음의 공포는 자신의 위안부 체험과 비교하면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 그 체험은 무거운 것이었다. 한편 어머니에 의해 나이 든 무녀가 있는 곳에 온 소녀 은경은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집에서 형무소에서 출소한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그 남자에게 저항한 아버지는 살해되었으

며, 그 공포, 굴욕, 분노, 슬픔 때문에 그녀는 말을 못하게 된 상황이다.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과거의 위안부 여성에게도, 아직 어린 소녀 은경에게도 부조리하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짓밟히고 성폭력 피해라는 공통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한다. 그와 같은 공통점이 있지만 두 사람은 그 문제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그 정도로 성폭력의 인간성의 파괴력은 큰 것이다. 그런 현실을 자신의 힘으로 타개하는 것은 여간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영성의 작용이다.


성폭력 피해를 극복하고 인간성 회복을 얻고 싶은 그녀의 바람에 대해서 영성은 반응을 하고, 그것으로 인해 그녀에게는 신비한 능력이 생긴다. 그것은 현재·과거·미래를 일체화시키는 힘으로, 현실세계에 있으면서 죽은 자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자 현재와 과거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지닌 사람이 토착적 민중종교에서의 무녀이다. 그리고 은경이, 정민과 ‘언니’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같은 세대의 무녀와 친구가 되고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그녀의 종교적 능력을 고양시켰다.


(2) 영성의 ‘작용’과 부적 ‘괴불노리개’

귀향 - 괴불노리개

은경은 무녀가 행하는 의식에 처음 참가했을 때 신비한 종교체험을 한다. 그것은 의식의 현장에 한 ‘할아버지’가 나타난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 은경에게는 그 모습이 보이고, 그와 대화할 수 있다. 아울러 그 현장에 있던 할아버지의 딸은 은경을 매개로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은경으로서는 이 단계에서 비록 죽은 자를 산 자에게 매개시키는 능력은 주어졌지만, 자기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그녀가 강간을 당한 마음의 상처에서 해방되는 것은 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 그 고통을 공유함으로써 서로 돕고 서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이 계기가 주어진 것이 ‘괴불노리개’였다. 괴불노리개는 어떤 곤란한 상태에 있어서 반드시 그것을 몸에 지니고 있는 자를 지켜주는 토착적인 ‘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민이 고향에 있었을 때 공기놀이에서 이겨, 상대방의 ‘괴불노리개’를 빼앗았던 것에 대해 정민의 어머니가 불처럼 화를 내면서 그것을 되돌려줬던 것이다. 


그러한 종교적인 ‘사연’을 모르는 은경은 나이 든 여성이 만든 괴불노리개를 만지는 순간 1943년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은경은 위안부의 현실을 눈앞에 보면서 자신과 같은 또래의 정민, 그리고 언니와 ‘고통’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괴불노리개는 은경을 포함해서 세 사람의 혼을 단단히 연결시켜 주는 종교적 상징이었다. 괴불노리개 없이 세 사람이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나이 든 여성이 괴불노리개를 만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가 살아서 돌아온 것은 화물열차 안에서 친구가 된 정민의 친절함과, 그녀에게 받은 괴불노리개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믿어서,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진 정민을 애도하기 위해서 괴불노리개 만들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만 이 세계에 돌아온 것을 치유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괴불노리개가 은경과 나이 든 여성과 정민을 서로 이어준 것이다. 나이 든 여성이 위안부였음을 관청에서 밝힐 수 있었던 것은 은경과의 만남 때문이자 괴불노리개의 힘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이 든 여성은 괴불노리개를 계속 만들고, 위안부였음을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얻을 수 없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녀가 된 은경의 종교의식을 매개한 영성의 ‘작용’이었다. 이 작용에 의해 과거와 현재의 일체화, 혼과 육체의 일체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것은 종교의식에서 나이 든 여성이 은경에게서 소녀시절의 정민을 본 장면에서 알 수 있다. 나이 든 여성은 은경에게 나타난 정민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건다.


“나, 혼자만 돌아왔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정민아. 몸만 돌아왔어.”

“괜찮아. 나도 이렇게 돌아왔어.”

“나, 너만 두고 와서…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도 줄곧 거기에 있었어. 몸만 돌아오고…, 내 마음은 돌아오지 못했어…, 정민아.”

“이제 끝났어. 이렇게 불러 줘서 고마워.”

“나 늙었어?”

“아니, 그때 그대로. 그때와 같아.”

“네가 준 부적 덕분에 조용히 살 수 있었어.”

“언니 이제 그만 편해져….”

“기다려. 곧 갈 테니까.”

“응, 천천히 와.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즐기면서 와.”


나이 든 여성은 목숨을 잃지 않고 현실세계를 살고 있지만, 그것은 육체만 살아남았을 뿐 혼은 1943년에 목숨을 잃은 정민의 옆에 머물러 있었다. 종교의식을 행하고 정민과 얘기하고 용서를 받음으로써 마침내 혼도 현실세계에 돌아올 수 있었다. 정민도 현실세계로 불러준 것을 감사해하였다. 그것은 마지막에 정민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자기 집에 돌아오는 장면으로 상징되고 있다.


(3) 영성의 ‘작용’과 평화적 상생사회


이 의식의 현장에 참가한 사람 중에는 일본병사도 있는데, 이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다. ‘귀향 의식’은 피해자, 동포의 혼만 귀환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 의식은 가해자인 일본병사의 혼도 현실세계로 귀환시킨다. 거기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하지 않는 구제의 시점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영성의 작용이다.


이 일본병사의 모습은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보이기 위해서는 침략에 대한 자기비판과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행동이 필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군산의 동국사의 경내에 세워진 소녀상과 그 뒤에 설치된 참사문(懺謝文) 비석이다. 이 비문은 일본의 불교교단의 하나인 조동종(曹洞宗)이 1992년 11월에 종무총장 오오타케 아키히코(大竹明彦)의 이름으로 발표한 것이다. 거기에는 조동종이 “전쟁 협력의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를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한반도에서 일본이 민비 암살이라는 폭거(暴擧)를 범하고 조선을 속국화하고, 마침내는 한일병합에 의해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말살하고 만” 것에 대해서, 조동종 종문(宗門)은 “그 첨병이 되어 조선민족의 일본 동화를 꾀하고 황민화정책 추진의 담당자”가 되었음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사죄를 한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사람도 국가도 상호의존 관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의 입장에 서서 평화를 위해 ‘타(자)와의 공존이야말로 자신이 사는 근거”라는 것,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규율하고, 타인과 함께 살고 타인과 함께 배우는 삶의 방식”에 의거하겠다는 결의가 서술되어 있다(일본종교자 평화협회편『, 종교자

의 전쟁책임 참회·고백자료집』, 49-53쪽, 白石書店, 1994).


전쟁 협력에 대한 참회와 저지른 죄의 고백은『, 열반경』에서 아자세(阿闍世)가 서술하고 있듯이,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의미하고, 평화실현을 위해 몸을 던져 행동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소녀상과 일체화된 동국사의 참사문 비석의 설치는 그러한 행동의 구체적인 사례일 것이다. ‘귀향의 의식’에 일본병사의 모습이 보인 것은, 비록 거창하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종교인들의 활동이 있고, 그 외에도 다른 유사한 활동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귀향’에서는 현재와 과거가 연속적인 것이 되어 괴불노리개를 만진 순간 소녀 은경은 과거로 향하고,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작품의 묘사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예를 아프리카의 사상과 문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3. 아프리카의 토착사상과 영화 ‘귀향’의 공통점


(1) 아프리카 토착사상의 특징


‘귀향’에서의 위안부문제의 근간에는 식민지주의 지배의 현실이 존재한다. 따라서 식민지주의 지배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 지배구조에는 서구든 일본이든 기본적으로는 공통점이 있고, 그 지배에 대한 저항의 사상에도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작가 구기 와 지옹고(Ngugi wa Thiong’o, 1938~)에서의 식민지주의의 구조에 대한 이해방식과 식민지주의에 대한 저항의 시점을 보고자 한다. 구기는 식민지주의 지배가 가져온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 (이것으로) 식민지주의는 자연적, 육체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기반에 대한 사람들의 관계를 공격하고 완전하게 왜곡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러한 기반이 파괴됨으로써 아프리카 사람들의 주체, 환경에 대한 주체적 관여에 있어서의 주체의 전체성(the wholeness)은 단편화된다. (아프리카의 해방운동은) 유럽의 노예제와 식민지주의에 의해 형태지워진 이 강렬한 절단(dismemberment)을 전체성이라는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지금까지 추방해 왔다고 평가될 것이다. (해방을 지향하는) 이 싸움은 전체적으로 보면 단편화된 것의 재통합(remembering)을 위한 전술·전략으로 도움이 되어 왔다.(Ngugiwa Thiong’o, Something Torn and New, p.29, BASIC CIVITAS BOOKS, 2009) 일본의 식민지주의도 유럽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지역에서 “자연적, 육체적, 문화적 기반에 대한 사람들의 관계를 공격하고, 완전하게 왜곡”함으로써 사람들의 전체성을 갈기갈기 절단해(dis-member)온 것이다. 이 단편화를 복원(re-member)하는 것은 역사를 기억하는(remember)하는 것과 일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주체성을 낳는 것이다.


주체의 존재 방식과 아프리카의 전체성 회복이라는 과제에 대해서 흥미 깊은 것은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고대 이집트 신화 ‘오시리스’(Osiris)에 대한 이해방식이다. 이 신화에 대한 구기의 이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오시리스는 형제 셋(Set)에게 살해되고, 셋은 그 관을 나일강에 던졌는데, 여

신 이시스(Isis)는 관을 바닷속에서 꺼내어 숨긴다. 그것을 발견한 셋은 분노하여

오시리스의 신체를 14조각으로 잘라서 이집트에 뿌린다. 이시스는 이집트를 여

행하면서 절단된 시신들을 하나씩 주어서 일일이 무덤을 만들고 토토신(Thoth)의

도움을 빌려 오시리스를 되살아나게 한다.

갈기갈기 잘라진 채 여기저기 뿌려져서 흔적도 없는 오시리스를 식민지화된

아프리카와 동일시하면서, 그 부활을 꾀한다는 시점에 서서 아프리카 가나의 작

가 아이 크웨이 아마(Ayi Kwei Armah)는『 오시리스는 일어난다』(Osiris Rising, 1995)는

작품을 썼다.

사자(死者) 오시리스로 대표되는, 역사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

하는 의미에 대해 구기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애도의 중요성의 기초에 있는 것은 사자(死者), 생자(生者),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

와의 일체성이라는 아프리카적 세계관이다. 사자가 현실세계를 방문한다고 믿고

있고, 현세의 생활에서 사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참여를 하고 있다는 것, 사후에

친척과 지속적으로 결합되고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따라서 생자는 사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을 바라고,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그들과 자기

를 일체화하여 그들에게 원하고 바라고 있다. … 애도는 또한 기억이면서 단편화

된 조상들을 재구성(re-membering)하는 것이고, 생자에게 그들이 남겨준 유산을 찬

양 [賞賛]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종결이면서 개시이다.

(Ngugi wa Thiong’o, Something Torn and New, pp.57-58)

기억이란 전체화를 지향하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분단된 과거를 현

실적으로 복원하는 것을 의미하며, 생자에게 있어서는 그 복원은 애도와 일체의

것이다. 복원과 애도가 일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자, 생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도 일체이다. 이 일체성은 상호관계성, 비분리성, 자기의 외부에 존재하는 타

자우선을 의미하는 아프리카 토착사상인 ‘우분투’(Ubuntu)에서 도출된다. 이러한

과거의 복원(육체의 분리·육체와 정신의 분리의 재결합), 현재와 과거의 왕래, 사자의 현

실생활에의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토토신으로 상징되는 절대자의 영성의

‘작용’이다. ‘우분투’에 대한 이해도 이와 같은 영성의 작용에 의해 가능해진다.

이러한 기억과 애도의 입장에 섬으로써 역사적 사실의 인식은 주체화되고,

서로 다른 사람끼리의 상생이 성립한다. 반면에 이 입장에서 벗어날 때 역사적

사실의 선택은 자의적인 것이 되고, 차이는 대립만을 낳는다.

남아프리카는 비폭력운동에 의해 1994년에 백인 우월의 아파르트헤이트 체

제를 폐기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인종 간의 대립 감정, 차별에

오시리스 얼굴상(브루클린박물관)

13

대한 분노, 슬픔, 절망감은 일거에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이

후’에 전인종 평등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화해가 필요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하에서는 백인경관이나 군인은 흑인과 유색인에 대해 억압적 입장에 서 있

었다. 반대로 백인 역시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저항운동 과정에서 아프리카민족

회의(ANC)가 설치한 폭탄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75% 이상의

인구를 점하는 아프리카 흑인이 ‘승리자’로서 ‘패배자’인 백인을 일방적으로 ‘단

죄’하는 것이 아니라, 토착사상인 ‘우분투’에 기초하여 상생을 지향하는 진실화

해위원회가 데즈먼드 투투(Desmond Tutu) 대주교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대

통령에 의해 설치되었다. 거기에서는 인종과 정치적 입장을 불문하고 가해자가

저지른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공청회가 열려, 화해를 향한 커다란 첫걸음을 내

디딜 수 있었다.

남아프리카 화해를 위한 노력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절단화’(dismembering)의

‘재구축’(remembering)에 의한 ‘전체화’(wholeness) 회복의 방향성이다. 그리고 그것

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토착사상으로서의 ‘우분투’였다. 이 사상은 비분리성, 상

호관계성, 외부성으로서의 타자우선, 자기를 인간화하는 타자의 작용을 의미하

고, 모든 종교와 휴머니즘의 기저에 존재하는 것이다. 애도는 ‘기억’과 ‘재구성’이

기도 하고, 그것은 인간의 주체화를 낳는 것이다. 그 노력은 새로운 상생적 미래

를 여는 것으로, 평화구축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영

성의 ‘작용’이다. 이 노력에는 역사인식이 필요하고, 그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

는 자기를 넘어선 영성의 작용의 자각화가 필요할 것이다. 이 과제에 적극적으

로 임한 구체적인 사례의 하나가 영화 ‘ 귀향’이다.

(2) 아프리카의 토착사상과 한국의 토착사상의 공통점

‘귀향’에서 혼과 육체의 분리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고, 생자와 사자를 일체화시

켜 가해자를 포함한 상생의 길을 제시한 것은 ‘괴불노리개’나 ‘무녀’로 상징되는

토착적 종교의 영성의 작용이었다. 여기에는 현대의 곤란한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바람이 토착종교를 현대화시켜 영성의 작용에 의해 과제 해결의 방향성이

제기된 것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사상에서도 이와 동일한 것을 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현재와 과거, 생자와 사자는 이분화되지 않은 채 서로 이

어져 있고 이중화되어 있다. 이 점은 나이지리아의 작가 벤 오크리(Ben Okri, 1959~)

의『 굶주린 길(The Famished Road, 1991)』(같은 해 부커상 수상)에도 명확하게 나타나 있

다. 이 작품은 나이지리아가 독립을 맞이한 시기, 즉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

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주인공은 아자로라는 이름의 소년으로 부모는 모두 슬럼가에 살고 있다. 주

인공인 어린 아들은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정령의 아이(아비크)

이다.『 굶주린 길』에서는 한편에서는 독립을 눈앞에 둔 나이지리아의 정치적 사

회적 현실이 작품의 축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과

동시병행적으로, 마치 겹쳐지듯이, 신화적·민화적 세계가 얽혀 있는 이중 구조

로 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슬럼가에도 정치의 파도가 밀려들어 왔을 때의 민중

의 반권력적 대응이 묘사되는 대목이 있다. 거기에서는 정당으로서의 ‘부자당’과

‘빈민당’의 대립이 나오는데, 신이나 정령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신화적 세

계가 동일한 현실의 장면에 들어온다. 민중이 살고 있는 슬럼가에 있는 마담 고

토(Madame Koto)가 운영하는 술집에 오는 손님의 대부분은 인간이 아니다. 정령의

자식이기 때문에 아자로에는 그 현실이 보인다. 인간의 생활 속에 정령이 들어

와 있어서, 현실세계에는 이러한 이중생활이 존재하는 것이다.

『굶주린 길』에는 현실의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의 두 측면이 동시에 존재

한다. 전자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단히 비참한,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냉혹한 ‘근대’, 그것이 ‘신화·민화’를 통해서 서술되고 있다. 아자로

의 아버지는『 굶주린 길』의 일면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 때문에 숲이 작아지기 시작하고 식량이 되는 동물들을 충분히 찾을 수 없게

되자, 그(=길道의 왕王)는 자신의 모습을 ‘숲’에서 인간이 여행하는 ‘길’로 바꾸었다.

길의 왕은 위장이 거대해서 무엇을 먹어도 만족하지 못했다. … 인류는 길의 왕

이 무서웠기 때문에 오랫동안 먹이를 주어 왔다. 이러한 그 때문에, 그리고 다른

이유 때문에, 기아가 세계에서 일어났다(. Ben Okri, The Famished Road, pp.258-

259, Jonathan Cape, London, 1991)

여기에서 우리는 서양 근대의 발전의 역사가 무엇을 가져왔는가 하는 것을,

개발도상국 세계와 선진국 세계의 대비를 통해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길의

왕이라는 요괴는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죽고 만다.

…불만족스런 식사 후에 길의 왕은 누워서 쉬었다. 그러자 갑자기 위장이 그를

상처내기 시작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면 무엇이든 먹을 정도로 굶주리기 시작

한 것이다. … 그러고나서 그는 자신을 먹기 시작했다. 마침내 위장만 남았다. 그

날 밤, 엄청난 비가 내려 길의 왕의 위장을 녹였다. … 비는 일주일 동안 내렸는

데, 비가 그치자 위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길의 왕이 땅 아래에서 신음하

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묻자, 길의 왕은 이 세계의 모든 길의 일

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굶주리고 있고, 앞으로도 항상 굶주릴 것이

다.(ibid., pp.260-261.)

여기에 나오는 ‘길의 왕’으로부터 식민지주의를 읽어낼 수 있다. 식민지주의

는 1960년대 이래로 독립투쟁 시대를 거쳐 일단은 ‘붕괴’되지만, 다시 꿋꿋하게

부활하여 ‘세계화’라는 형태로 오늘날에도 살아남아 있다. 그런 형태로 ‘굶주린

길’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굶주린 길’에는 긍정적인 측

면이 있는데, 그것은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보이는 것으로, 새롭게 열리는 세계

이기도 한다.

아자로의 아버지는 고뇌를 통해 자신들의 힘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 굶주린 길을 열린 길로 전환할 필요성을 설파한다. “우

리의 길은 열지 않으면 안 된다. 열린 길은 결코 굶주리는 일은 없다. 놀라운 시

대가 다가 오고 있다.”고 하면서, 그 시대가 눈앞에 있음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의 ‘열린 길’이란 타자와의 연대, 비(非)고립화, 과거의 문화와 현실을 잇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길의 왕’의 신화·민화와 같은 과거의 문화 속에서 현대의 과제를 찾아감으

로써, 부정적인 것 속에 그렇지 않은 것이 보이게 되는 것으로, 이것이 전체성을

추구하는 여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자로의 아버지는 ‘길의 왕’이라는 아프리

카 신화·민화에서 현대의 과제를 발견해 나가는 작업을 행했는데, 이것은 구기

가『오시리스신화』에서 현대의 과제를 본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은 단순

한 현실의 과학적 분석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민화적·신화적 세계, 정령과

인간사회의 연결을 매개시킴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세계

의 이중화라는 시점은 식민지주의가 만들어낸 ‘단편화’를 전체성으로 방향전환

시켜 나가는 여정일 것이다. 아자로가 정령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고 현실세계에

남은 것은 아버지의 이야기와 현실에 전심전력으로 부딪히는 부모의 모습에서

아프리카의 미래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리카 문학·사상이 지향하는 전체성은 ‘단편화’의 ‘재구축’에 의한 ‘전체

성’의 회복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토착적인 민화·신화에 있어서의 현재와 과거

의 비분리성, 상호왕래성, 이중화의 시점과 현대의 과제를 잇고, 그 정신세계에

서 현대를 보는 일이 기초에 놓여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구기와 오크리의 공통점

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이러한 시점은 영화 ‘귀향’의 시점과도 겹치는 것이

다. 이러한 시점에 서기 위해서는 자기를 초월한, 외부성으로서의 ‘타자’의 영성

의 ‘작용’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맺으며

지금까지 우리는 영화 ‘귀향’과 아프리카사상·문학 사이에 커다란 공통점이 있

음을 보았다. 양자의 토착문화에는 공통점을 찾을 수 없으리라 생각되지만, 그

토착문화를 현실의 과제와 연결시킬 때, 거기에는 과제 해결을 위한 공통의 여정

이 열리게 된다. 그것을 촉진시키는 것은 ‘과학적 인식’이 아니라, 우리가 사물을

보는 관점을 전환하게 하는 ‘작용’으로, 그것을 영성의 ‘작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용’ 덕분에 차이를 지니면서도 그 차이가 서로를 풍부하게 하는 것

으로 전환되고, 적대는 상생으로 전환될 수 있다. 평화공동체의 구축에는 이와

같은 영성의 자리매김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시점을 살린 평화공동체 구

축의 노력이 지금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2018년 5월 8일(화)에 원광대학교에서 있었던 <생명평화리더십 교

양강좌> 제9강에서 강연한 원고를 수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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