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남북관계가 진전될 경우에도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고 남북관계가 정체되거나 퇴행할 경우에도 지리한 신경전과 적대적 기싸움을 벌여야 했다. 어렵게 합의를 해 놓고도 남북관계는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화해 협력이 증진되는가 하면 어느새 불신과 대립으로 치닫기도 했다. 그야말로 남북관계는 하루도 편안한 날 없이 진전과 퇴행, 맑음과 흐림, 화해와 불신의 롤러코스터 타기를 되풀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북 포용정책 시기에도 경향적으로는 화해 협력이 증진되었지만 남북관계 개선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대북 강경정책 시기는 남북관계 파탄 속에 한반도 긴장은 고조되었고 적대와 대립이 증대되었다.
하지만 지난 4월 27일의 판문점선언과 6월 12일의 북미 정상회담 덕분으로 ‘천지개벽’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급진전한 한반도 대화해 평화 무드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이루며 종전과 평화체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경제교류와 협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문화 교류가 시작될 것이다.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며 공감과 공유할 수 있는 영역별 교류 협력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부여되고 있는 시점이기도하다.
북한과의 종교 교류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친 선교나 포교를 지향하기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사명과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나가는 노력에 종교계가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한의 종교정책은 통일에 대한 기여 여부를 종교에 대한 태도 결정과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다. 학술적으로는 북한 사상의 주류인 ‘주체사상’과의 이념적 교류의 장이 포괄적으로 열려야 한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동양의 오랜 인본주의에 기초하고 있지만 통치 세습 정당화의 이론적 배경이라는 점에 대한 합리적 이야기를 서로가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의 대립과 갈등의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교류와 협력을 통한 상생의 관계로 전환하여 한민족이 공유할 문화공동체가 이루어져야 평화가 가능하다. 주체사상의 새로운 인식과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가 공유할 종교 문화적 가치에 있어서, 동양의 전통적 가치관인 인본주의 사상 및 해원상생의 철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공동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전쟁으로 인한 원한과 갈등의 재생산과 또 다른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근본적인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은 해원상생사상이다. 이러한 웅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종교계가 남북문제를 해결하는 데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때가 되었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한민족의 과제이며 세계 평화의 문명사회를 이루는 토대가 된다. 특히, 남한의 종교계와 학계는 종교 분야, 인도적 대북지원, 학술
분야 등의 방면에서 북한의 종교계 및 학계와의 교류를 구체적으로 활발하게 실행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종교계의 남북한 교류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종교계가 가진 통일 준비 역량에 비해 북한의 체제 유지를 위한 단체인 북한 종교단체들에 이용되었다는 비판도 있는 상황이다. 이에 종교계 내부의 통일 준비 역량을 모아 북한 교류에도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그리고 어떤 형태의 통합과 공존의 형태를 이루든 나타나게 될 사회문화적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정책 방향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남남 갈등의 완화를 위해서 남북의 유기적 결합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통일 당사자’가 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기초를 종교계가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가령 북한의 산림 복원 지원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에 많은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종교계가 우호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평화를 위한 지원 세력이 종교계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평화란 일반적으로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이름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 없는 상태는 갈등이 내재되어 언제나 전쟁이 가능한 휴전에 불과하다. 진정한 의미로서의 평화는 상호 간의 살상의 가능성마저 사라진 상태, 즉 서로 돕고 위하는 화(和)의 원리가 이상적으로 실현된 세상을 의미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종교계가 먼저 남북 종교 교류의 기초를 놓고 전문적인 공동연구 및 학술교류를 교육기관을 통해 실시하고. 아울러 평화통일 이후를 대비해
평화교육에 대한 제안과 프로그램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평화적인 남북 관계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정전체제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해소하고 분단체제의 정치적 대결 관계를 개선하는 근본적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 물론 경제 협력을 통한 경제공동체 형성도 제도화에 기여하고 각종 합의사항의 법제화와 회담의 상설화, 정례화 등도 제도화를 촉진하지만 그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못된다.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그리고 그와 연동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남북의 군사적 대결을 완화하고, 평화체제와 선순환되는 남북관계의 개선과 상호 적대의식의 약화 및 내부 남남 갈등의 해소를 통해 정치적 남북 대결이 완화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남북관계는 안정적으로 제도화되고 비가역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정치군사적 대결 상황과 여기에서 파생된 북핵 문제와 상호 적대의식의 해소를 위해서는 ‘포괄적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포괄적 평화에 기초할 때 비로소 남북관계 제도화는 실현 가능성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과 판문점 선언이 지향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종전선언과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그것이야말로, 상생의 남북 관계로 가는 길에 있어서 출발점에 불과하다. 군사적 대립은 협정과 합의로서 해결할 수 있으나, 민간 차원, 개인 차원의 갈등은 나라가 나서서,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남북 종교교류의 활성화와 평화를 위한 노력에 있어 종교계는 현실적인 면에서 양측 체제의 차이와 이념상의 한계를 넘어 개개인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신뢰 회복의 기점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종교인들이 남북 종교 교류에 있어 단기적으로는 일방적인 희생을 감수하는 것으로 평가되더라도 장기적으로 통일에 대비하여 상호 이해 증진과 신뢰 회복을 위한 예비 회로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 현실적 의의를 인정하고 이를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특히 통일과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다양한 갈등을 관리를 위해 종교계의 참여가 절실하다. 종교계가 앞장서서 보다 많은 국민들이 ‘통일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종교인들이 대륙과 해양세력의 충돌점이자 이념과 사상의 경계선에서 화해와 평화의 광장으로 한반도가 거듭나도록 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종교적인 도덕성이 결여되면 통일은 자칫 자본과 이념의 잔치마당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