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의 철학, 동학 다시 읽기
자유의지라 함은 그 이름과 같이 인간의 의지가 자유로 독립하여 있다는 것이다. 알기쉽게 말하면 우리의 의지는 우리들의 내재적 영혼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자기의 의지는 자기의 자유로 된 것이란 말이다. 가고 싶다든지 오고 싶다든지 먹고 싶다든지 가지고 싶다든지 하는 행위를 비롯하여 일체의 공상(空想), 이상(理想), 이론(理論) 등을 자기의 자유로 생각할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누구의 간섭을 받을 바도 없으며 누구의 명령을 물을 바도 없다. 그리하여 법률이라 할지라도 자유의지는 구속할 수 없다. 사람의 얼굴을 알기는 쉬워도 마음을 알기는 어렵다[知人知面不知心]*는 말은 이 자유의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사람이 각각 자기의 마음을 임의로 놀릴 수 있으므로 갑(甲)이 먹은 마음을 을(乙)이 알 길이 없고 을이 생각한 바를 갑이 알아 볼 법이 없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서 자유의지의 어떤 부분이 그 행위를 결정하고 어떤 부분은 영원히 비밀로 남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행위는 자기의 자유의지의 선택으로 생기는 것이오 타인 또는 어떤 다른 사람[何者]의 간섭도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정신이라든지 의식이라는 것이 독립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논법은 마음의 독립을 주장하게 되고 나아가 영혼의 독립을 말하게 된다.
우리가 간단히 생각할 때는 자기의 의지를 자기가 자유로 행사할 수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것도 역시 인과율(因果律)로 생각해 본다면 또한 인과적 법칙에 종속되는 것임을 알수 있다. 자연계의 모든 법칙이 인과율로써 움직인다 하면 사람의 의지 또한 이 법칙을 벗어나 절대 자유로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다. 반드시 어떠한 원인에 의하여, 원인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동력이 우리의 의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마치 자연계에서 공중에 있는 구름이 자유로 독왕독래(獨往獨來)한다고 볼 수 있으나 그 실을 생각해 보면 원인에 원인이 가첨(加添)하여 움직여지는 것이다. 구름이 움직이는 이면에는 바람을 생각할 수 있고, 바람의 배후에는 기류(氣流)를 생각할 수 있고, 기류의 관계는 태양열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자유라고 생각하는 의지에도 이러한 여러 가지 관계가 있다.
가령 내가 물을 마셨다 하면 물을 마시기 이전에 물 마실 자유의지가 마음속에서 움직여다[動]고 볼 수 있으나 소위 자유의지는 자유가 아니요, 어떠한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물을 마시겠다는 생각은 목이 마르다는 원인에서 나오고, 목이 마른 것은 신체가 어떤 동작에 의해서 수분이 줄어들었기[減] 때문이며, 신체의 어떤 동작은 또한 다른 원인에 의하여 움직여졌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공복(空腹)이라는 원인에서 나온 것이요, 누구를 때리고 싶다는 생각은 감정이 상한 원인에서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고 반드시 무슨 원인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면 그(자유의지의) 원인의 원인되는 구극(究極)의 원인은 무엇일까? 즉 관계의 관계되는 원인을 끝없이 추구해 가면 마지막 구극은 무엇이 될까? 이것은 자유주의 해결의 최종 문제이다. 여기서 유신론은 신이라 답변하고 유물론자는 외적 물질적 환경으로 그의 동인(動因)이라 하고 유심론자는 내재적주의의 자유를 말하게 되는 것인데 인내천주의는 이를 전체 즉 '한울'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편역자 주] "호랑이를 그리면서 그 가죽은 그릴 수 있어도 뼈는 그리기 어렵다. 사람을 아는 데 그 얼굴은 알아도 마음은 알 수 없다[畵虎畵皮難畵骨 知人知面不知心, 명심보감]." cf)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