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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12. 2016

다시 읽는 신인철학(25)

오래된 미래의 철학, 동학 다시 읽기

제2절 '시(侍)' 자의 정의와 의지


수운은 자아 존재(自我存在)의 표지[標識]를 '시(侍, 모심)' 자로 표시하고 '모심'의 정의를 단안(斷案)하기를 '안으로 신령(함)이 있고[內有神靈]'라 하며 '밖으로 기화함이 있고[外有氣化]'라 하며, '각각 알아서 옮기지 못함을 안다[各知不移]', 즉 지(知)라 하였다. 


"안으로 신령(함)이 있다[內有神靈]"는 것은 만유(萬有) 자체는 자아자성(自我自性)의 능동적 본능과 밝음[明]을 가진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거미는 거미줄[網]을 짜는[織] 본능, 꿀벌[蜜蜂]은 꿀을 제조하는 본능, 고기는 못에서 뛰는 본능, 새는 하늘을 나는 본능 등이 있다. 이것은 만물정관각자득(萬物靜觀各自得)을 일컫는 말이다. 


그것은 물론 유일한 지기 본체의 분화 작용에 의한 조직의 차별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만유가 이미 각기 한 개체의 자아를 이루어 놓은 이상 자아를 통솔(統率)하는 본능이 따로 존재하며 여러 모로 형식을 달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본능을 잃은 자연은 이미 사물(死物)로 간주할 수밖에 없게 되므로 여기서 자아의 존재는 확실히 "내유신령(內有神靈)"에 그 표지를 걸어 놓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유신령'은 내유신령만으로 자아의 활동 및 의식이 생기느냐 하면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 '내유신령'은 '외유기화(外有氣化)'를 합해서 비로소 완전한 자아를 이루고 완전한 자아의 의지적 활동을 성립하게 된다. 

예를 들면 꿀벌은 그 자아 자체에 이미 단꿀을 제조할 만한 본능을 갖췄으나 그 본능만으로 꿀을 제조할 수 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못하고, 외계의 물질과 환경의 조화에 의하여 처음으로 단꿀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건축업자는 그 관념상에서 이미 건축할 건물의 도안을 세운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의식은 단지 의식만으로는 건물이 되지 못하고 외계의 물재(物材)와 형식적으로 나타난 기성의 모형(模型)을 본떠서 실지로 건물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한 개의 자아가 되려면 완전한 내계(內界)의 본능이 외계의 기화를 합하여 하나로[全一]  한 후에야 될 수 있을 것인데, 이 양자를 합성하여 자아의 의식을 완성케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은 곧 의지이다. 의지가 인간격의 능동적 주관으로부터 힘을 얻어서, 능동적 주관에 맞을 만한 내외계의 조절(調節)을 자결자변(自決自辯)해서 자아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侍)' 자의 최종 정의인 '각(覺)' 혹은 '지(知)'라는 것으로 표시된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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