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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10. 2016

다시 읽는 신인철학(23)

오래된 미래의 철학, 동학 다시 읽기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진리라든지 비진리라하는 것도 선이나 악과 같이 가치의 이름에 지나지 않는[外] 것이라 한다. 즉 어떤 사물이 우리의 요구에 응할 시 그를 미()라 하며 선이라 함과 같이 참도 또한 그러한 것이라 본다. 미는 한 가지 입장에 있다고 본다. 나아가 진리가 선과 독립한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실재란 것도 독립한 것이 아니다. 왜 그러냐 하면 실재라든지 사실이란 것은 결코 인간생활에 관계없이 그 자신에서 일정한 것이 없고 우리의 행위가 외계에 순응하여 나아가는 사이에 점차로 자기에게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여 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 인간의 생활이란 것은 신의 생활이 아니다. 일체(一切)를 지실知悉한 객관적 표준에 따라 일정불변(一定不變)의 만족을 구하는 것과 같은 일은 인간생활로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천재적인 사상가가 있어 "나는 실재에 관하여 일체를 다 알았노라"라고 선언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그 소위 '다 알았다'는 것은 일체를 들어 일체를 지진(知盡)하였다는 것이 아니요 알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알고 싶다는 선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철학적 사고는 선택적이다. 인간성 능동의 주관에 응한 선택이다.

  

우리는 이 세계를 완성된 일정불변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 객관세계라고 하는 것은  더 큰 전체에서 우리에게 쓸모없는[用] 대부분을 제거하고 남은 부분이다. 즉 선택하여 얻은 것 뿐이다. 인류의 오천년 역사는 사람성의 능동적 주관이 자기에게 맞도록 선택한 몇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선택 방법에 의하여 어떻게든지 세계를 개조해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세계는 유연하여 가공 개조에 따라 자유로 만들 수 있는 세계이다. 세계는 옛사람들이 생각하던 것과 같이 기성품이 아니오요 우리의 총명(聰明)과 수완(手腕)을 기다려 자유로 조성(造成) 수 있는 미성품(未成品)이다.


우리는 물질주의 기계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계는 기계처럼 다만 물질적 법칙에 지배되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으며 또는 절대주의자들이 보는 바와 같이 세계는 신이 이미 준 조건에 의하여 완성된 것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그러한 생각은 모두가 인간격의 노력에 제한을 둔 것이다. 인간격 지상주의, 즉 인내천주의는 결코 인간의 노력에 제한을 두지 아니한다. 인간격 생명력의 발전은 무한 진보의 도상(道上)에서 인간을 업고 달아나는 것이다.

인내천주의는 이미 세계는 미성품이라고 보는 고로 인내천주의는 낙천주의(樂天主義)도 아니며 염세주의(厭世主義)도 아니다. 낙천이라든지 염세라는 말은 세계를 이미 기성의 세계라 생각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인내천주의는 전인간격 중심에서 솟아나온 주의인 고로 그는 어떤 편에 치우쳐 다른 편을 모르는 주의가 아니다. 또는 어떤 국한된 한계에 갇혀서 일정불변의 궤도 안에서 도는 주의도 아니다.


인내천주의는 자유자재의 주의이다. 살활자재(殺活自在) 여탈자유(與奪自由)의 주의이다. 인내천주의는 자연주의를 부인하면서 자연주의의 장점을 포함할 수 있고 지력주의를 부인하면서 지력주의의 장처(長處)를 스스로 가지고 있다. 개인주의에 대해서도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다같이 그러한 태도를 하게 된다.


수운은 일찍이 인간격지상(人間格至上)을 노래로 불렀다.

  

근보가성(僅保家聲) 사십평생(四十平生) 

포의한사布衣寒사)뿐이라도 천리(天理)야 모를소. 

사람의 수족동정(手足動靜) 이는 역시 귀신(鬼神)이오 

악간(善惡間) 마음 용사(用事)이는 역시 기운(氣運)이오

말하고 웃는 것은 이는 역시 조화(造化)로세.


인간격은 이렇게 위대한 것이다. 인간격은 귀신의 격이다. 신()이라 하며 불()이라 하며 귀신이라 하는 것은 인간격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운조화(氣運造化) 우주의 대원기(大元氣) 우주의 대조화(大造化), 이도 역시 인간격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격은 무한한 장래를 가지고 있는 격이다. 신의 살림은 신으로 돌려라 자연계의 살림은 자연계로 돌려라. 인간계의 살림은 오직 인간격으로 돌려야 한다.


(다음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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