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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l 31. 2018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자

[개벽신문 제76호, 2018년 7월호] 청년포럼

녹취: 유일환·신소향·최다울


○시간: 2018년 3월 10일(토) 16:00~18:00

○장소: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215호실

○참가자: 김용한, 서지원, 성민교, 신소향, 유일환, 최다울, 텐 웨냐민



최다울 : 제5회 청년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죽음’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꼭 찾아오는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 주제이죠. 물론 간접적으로 죽음을 겪었다거나 죽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 본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죽음을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청년포럼 주제를 ‘죽음’으로 정했습니다. 죽음의 정의도 분명 있을 겁니다. 가령 의학계에서 죽음을 어떻게 정의한다든지, 아니면 종교학에서는 어떻게 말한다든지…. 그런 것을 다 얘기해도 되지만 우선 자신이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또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부터 얘기해 보았으면 합니다.


장례식장에서의 죽음 경험


성민교 : 저는 죽음에 대한 경험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저는 성인이 될 때까지 제 가족, 친지 중에 돌아가신 분이 없었어요. 그러다 대학 1학년 때 일인데, 어느 날 저희 할아버지가 넘어지셔서 골반을 다치셨어요. 그런데 어르신 분들은 그렇게 다치는 게 치명적이잖아요? 그래서 할아버지를 간호하느라 제가 병원에 있었는데, 친한 선배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지금 우리 아빠가 병원 중환자실에 있는데 와서 한번 뵐래?” 굉장히 친한 선배였어요. 그 선배 아버님이랑도 함께 술도 마시고 제가 그 집에서 잔 적도 있을 만큼요. 그래서 “나도 정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오늘은 할아버지가 병원에 계셔서 내일 갈게요”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몇 시간 후에 부고 문자를 받은 거예요. 그 부고 문자를 봤을 때 저한테 처음 들었던 감정은 죄책감과 혼란 같은 거였어요. 내일 당장 보러 가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아프시다고 병원에 있다가, 할아버지보다 훨씬 젊은,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죽음을 겪게 되니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고요. 그런 가운데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장례식장에 갔어요. 태어나서 처음 장례식장을 가 본 거죠. 처음이다보니 뭐가 뭔지도 잘 모르고, 겨우 조의금 봉투만 들고 갔어요. 그런데 조의 봉투를 받는 사람이 바로 그 오빠였어요. 그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해서, 봉투를 내고 절을 하는데도 계속 눈물이 나서 꺼이꺼이 울었어요. 그때 다른 선배들이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우는 거 아니라고, 가족들도 그렇게는 잘 울지 않는다고, 슬픔을 너무 그렇게 드러내지 않는 게 예의라고 말했어요. 알겠다고 하면서 추스르고 다 같이 얘기하면서 술 한 잔 하면서 그렇게 조문을 했는데요, 그 친한 오빠가 상주잖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장남이니까. 그런데 되게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얼굴에 그냥 눈물을 떠나서 아예 물기가 없더라고요. 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때 그 오빠가 스물 두셋 정도밖에 안 됐을 때인데. 남동생은 고등학생이었거든요. 그렇게 둘이 검은 양복을 입고, 심지어 양복도 안 맞추어서 상조 회사에서 준 양복을 입었대요. 몸에 맞지 않는 양복을 입고 상주 역할을 하는걸 보면서 굉장히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질감과 슬픔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가 사실상 저의 첫 번째 죽음 경험이었어요. 그때 제 지인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그 장례식에서 운 여자가 딱 두 명인데, 저하고 조문을 갔던 그 오빠의 전 여자친구였대요. 그때는 오빠와 친구로 지내는. 저와 그 언니만 그 장례식장에서 엄청 울었다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장례식의 분위기나 예절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두 번 정도밖에 못 가봤어요. 그런데 여전히 가면 우왕좌왕하게 되고 마음이 단련이 잘 되지 않아요. 심지어 내 가족도 아니고 친구의 가족이었는데도 저는 너무 적응할 수 없었고 제 마음이 흔들려서 아직 저는 죽음에 관해서 굉장히 적응이 안 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갔던 장례식장은 친구 할머니의 장례식장이었는데, 거기서 내 인생의 다음 고비나 전환점이 있다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가 되면 확실히 제가 삶을 대하는 자세나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서 전환점이 될 거라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죽음을 경험하셨고, 어떻게 죽음을 대하셨는지 정말 궁금해요.




사별의 아픔과 대화의 치유


최다울 : 사소한 질문인데요, 저는 일본에서 계속 살다가 한국에 와서, 한국에서는 장례식에 가 본 적이 없어요. 반대로 일본에서는 간 적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것을 철저하게 가르쳐요. 한국에서는 장례식장에 가 본 적이 없지만 어른들 얘기를 듣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는 대성통곡하는 것을 자주 봐요. 한국, 일본의 친척들 얘기를 들어도 일본에서는 안 우는 게 예의인데 한국 장례식장에서는 오히려 대성통곡하다가 마지막에 국밥 먹으면서 웃으면서 집으로 간다,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아까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는 게 예의라고 했다는데, 지금은 옛날과 달라진 것인지, 원래부터 한국에는 실제 장례식장에 울지 않았는지 궁금해요. 두 번째로는 ‘사별의 아픔’은 어떤 사람에게든 정말로 큰 것인데요, 저는 이걸 주변 사람의 죽음으로 간접적으로 겪은적도 있지만, 제가 제일 크게 겪었다고 해야 하나 많이 봐 왔던 것은 대학교에 간 다음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대학은 도호쿠대학(東北大學)이라고, 일본의 동북 지방에 있는 후쿠시마보다 조금 더 북쪽에 있는 대학이에요. 그러니까 2011년에 쓰나미가 왔다가 지나간 곳인데, 쓰나미가 온 다음 해에 저는 입학을 했어요. 그래서 조금만 전철을 타고 나가도 아무것도 없어져 버린 곳이 있어요. ‘가설주택’이라고 해서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 중에서 생존자들은 컨테이너로 만든 거주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다 주변의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제일 필요로 했던 것은 정부의 지원이나 의사의 정기검진 같은 것이 아니라, ‘사별의 아픔’을 들어주는 것, 그러니까 이러이러하게 극복을 하라는 조언이 아닌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제일 필요했다고 해요. 도호쿠대학의 간호, 의학 계열 선배들의 경험담이나 보고서 발표를 보면, 의료에서 말하는 정신과 케어라든가, “이러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세요”, “당신은 희망을 가질 수 있어요” 이런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냥 얘기를 들어주는 것, “당신의 가족은 아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이 정도 한마디만 해주고 그냥 “어떤 사람이었어요?”, “하늘나라에서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라든지 아니면 “어떤 아픔이 있었나요?” 이런 물음을 하고 귀 기울이는 것,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마음껏 얘기할 수 있도록 오로지 들어주기만 하는 자세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때도 사별의 아픔은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라고 느꼈고,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과연 사별의 아픔이라는 것이 빨리 벗어나야만 하는, 치료되어야 하는 질병처럼 꼭 부정적인 상태로 보아야 하는가, 라는 고민도 필요하다고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상태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이 사람은 죽었고 이제 나랑 못만날 사람이라고 마음의 정리를 하는 것이 건강한 상태일까요? 반대로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떠나는 사람을 아직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이 꼭 나쁜 상태일까요?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똑같아요. 내가 죽을병에 걸렸는데 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는 곧 죽을 것이니 이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야지. 병원에 다니고 연명치료하고 부작용 있는 약을 투여해서 일 년이라도 더 살려고 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마음먹고 투병생활을 안하고 내 삶을 사는 게 옳을까요? 아니면 “나는 죽기 싫어, 조금이라도 더 살면서 뭔가 더 남길 거야.” 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더 살려고 노력하는 게 옳을까요? 이런 것들은 판단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사별의 아픔’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는 더 많이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죽음을 바라본 경험은 이런 것들이었어요. 장례식장의 울음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울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것도 이해가 안 가기도 하네요.




추모 받지 못하는 죽음들


김용한 : 저는 좀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요, 어렸을 때 겪었던 철거된 마을에 관한거예요. 제가 살던 마을에서 국토재건사업이라는 걸 했었는데, 도시 부랑자들을 시골로 내려 보내서 시골 황무지를 농토로 개간하면 그 부랑자들한테 땅을 주는 거였대요. 그렇게 해서 생긴 마을이라, 도시에서 적응을 못하는 온갖 떠돌이들,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는데, 바다도 가까워서 배 타는 아저씨들도 있었어요. 그리고 바로 옆에는 설악산이 있었어요. 그 설악산의 약초를 캐던 아저씨들도 있었고요. 그리고 농사를 짓는 데도 집성촌이 아니고 급조된 마을이어서 마을에는 완전히 근본이 없었어요. 만중이 아저씨, 한씨 아저씨, 강춘이 아저씨, 노랑머리 아저씨…. 이처럼 제대로 된 이름이 없이 불렸어요. 그런데 그 아저씨들이 죽어가던 모습을 봤어요. 


초등학교 때 기억으로는 그 아저씨들이 오징어 배를 타고 나갔다가 그냥 죽어요. 그렇게 죽으면 가족도 없고 소속도 없는 떠돌이들이라 제대로 추모도 받지 못해요. 그 사람들의 죽음을 기억도 안 해주고요. 그런 죽음을 어렸을 때 많이 봤어요. 자기 삶이 맘대로 안 되니까 알코올 중독이 심해서 술 먹고 동사하시는 분도 계셨고요. 제 할아버지는 인민군이셨어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나오셨는데 남한에 가족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 사람이 없었어요. 추모해 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렸을 때 그런 죽음을 많이 보니까 되게 무기력해졌거든요. 이게 뭐하는 건가…. 그리고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이런 건물 같은 데에 앉아있으면 제가 그 사람들을 깔고 앉아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추모 받지 못한 사람들의 죽음 위에 건물이 지어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대학교 1학년 때 서울에 처음 왔는데, 제가 사는 집은 함석지붕 집이었어요.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집. 그런데 그 집이랑 서울에 있는 빌딩이랑은 너무 대비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슬프다고 해야 하나…. 


그런 추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 없을까? 그러다 몇 년 전에 찾은 것이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한국인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한국에 데려오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조선인 중에는 무명용사도 있대요, 가족이 누군지도 전혀 모르는. 사상적으로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중간에 걸쳐 있어서, 소설 『광장』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추모 받지 못하는 사람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많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찾아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상처에서 벗어나는 것도 힘들고, 서른여덟인데도 아직 거기서 못 벗어나는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어서…. 저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그런 것이에요.


성민교 :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결국 삶을 대하는 자세라고 하는데 저는 이 말에 정말 공감이 가요. 그런데 김용한 선생님이 경험하신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서 절대 용인되지 않는 모순과 무기력함, 그리고 어떨 때는 비난 같은 것들도 섞여 있다고 한다면, 제가 삶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무기력감을 느끼게 될 것 같아요.


김용한 : 저는 약간 그런 적이 있어요.




추모는 삶의 흔적


최다울 : 문득 의문이 하나 드는 것은,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것이 별로 안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추모’라는 것이 우리가 추모를 한다고 해서 돌아가신 분들이 실제로 더 좋은 상태가 된다거나 뭔가를 느낀다는 걸 우리가 확인할 방법은 없잖아요? 그렇지만 그분들이 추모를 못 받았다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굉장히 슬퍼져요. 그건 왜일까요? 


죽은 사람은 추모를 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그냥 있는 것 같아요. 추모 받지 못하거나 기억되지 못하는 것보다, 추모를 많이 받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많이 남아 있고, 그 사람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 게 더 좋아 보이는 것은 어째서 일까요? 죽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프기만 했을 때도 병문안을 와 주면 기쁘고 안 오면 불쌍해지거나 안 좋아 보이는 것과 똑같을지도 모르겠어요. 죽은 뒤에도 아직 그 사람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생각되어서 그런걸까요?


김용한 : 그러니까 죽었을 때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얘기는 그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없었다는 얘기와 같아요. 관심도 없었고 돌봄도 없었다는 것이 장례식장에서 드러나는 거죠. 이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떻게 살았겠구나를 알 수 있는 것이죠.


최다울 : 그렇군요. 죽었을 때조차도 추모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살았을 때도 그랬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군요. 다만 그것 이상으로 우리는 ‘추모’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장례 말고도 제사를 지내잖아요. 그런데 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아니면 할아버지의 아버지, 이런 분들은 들어본 적도 뵌 적도 아예 없는데, 모여서 음식을 차리고 절하고 조심히 가시라고 해요. 그런데 그걸 하면서도 그분들 ‘혼’ 같은 것이 진짜 앞에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맛있게 드시고 조심히 가셨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사를 안 지내는 것은 안 되지 않을까, 라는 마음도 계속 들기도 해요. 그래서 죽은 사람을 대하는 산 사람들의 행동들이 마음속에서 해야만 하는 ‘의무’처럼 느껴지는 건 그 사람이 살아 있었을 때를 생각해서도 있겠지만,

그 이상의 뜻을 우리가 거기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합니다. 물론 아까 살아있는 동안에 어떤 대우를 받아 왔는지가 나타나는 게 추모의 장이라고 하신 말씀은 굉장히 이해가 잘 됐어요. 감사합니다.




죽음을 이야기하자


텐 : 제가 처음 경험한 죽음은 다섯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에요. 다섯 살이니까 뭐가 뭔지 몰랐는데 갑자기 그날 아버지가 차를 같이 타고 어디 가면서 뭐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의미를 잘 몰랐어요. 그냥 계속 웃으면서 여러 가지 얘기를 했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셨으니까 오늘은 조금 슬픈 날이야, 이런 얘기를 하니까 난 ‘죽음이 뭐지?’ 하면서요. 어릴 때라서 잘 몰랐었어요. 그래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몸을 봤을 때, 그때는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왜 다들 이렇게 슬픈 분위기 속에 있나 하고 느꼈어요. 그런데 나중에 이제 다시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 슬픔이 밀려오면서 ‘ 죽음은 뭐기에?’ ‘왜 사람이 이렇게 죽어야 되지?’ 하며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됐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역시 받아들여야 돼’라는 느낌이 왔어요. ‘죽음’이 없으면 나도 성찰할 수도 없다, 이런 느낌도 받았고요. 그 뒤로 계속 고민하고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가 그다음에 경험한 죽음은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였어요. 사실 그 삼촌과 저는 평소에도 잘 만나지 못했으니까 어떤 분인지 잘 몰랐었어요. 하지만 삼촌이 돌아가시고 친척들이 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서 돌아가신 뒤에야 어떤 분이었는지 알게 된 셈이죠. 삼촌은 어렸을 때 자동차가 좋아서 레이싱

도 하고 다른 지역에 가서 여러 차를 사고 타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서 그제서야 삼촌과 가까워졌다고 느꼈어요. 오히려 돌아가시고 나서 가족들을 통해 여러 추억을 듣고, 삼촌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봤을 때, 사람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고 하는 기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진짜 중요해요. 아까 다울 씨가 쓰나미 얘기를 했는데, 그때 저도 센다이에 가서 유족들한테,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실종된 아들을 찾는데 도움이 될지, 그냥 같이 있으면서 이런 얘기만 나누었어요. 그러던 중에 제일 기뻐하는 순간은 부모님이 실종된 아들 사진을 찾았을 때였어요. 사진을 본다는 것은 일종의 추억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죽음은 자기 인생에 대한 추억이라고 생각해요. 요약해 보면 제 생각에 죽음은 물론 슬프고 무서운 것이지만 ‘죽음’을 무시하기보다는 ‘어차피 우리가 언젠가 죽으니까’ 이렇게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뭔가 자기 세계가 더 곧을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대로 죽음에 대해 외면을 계속한다면 고민하는 인생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최다울 :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사는 것이 자신을 더 성장하게 하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군요.

텐 : 네. 그래서 설령 이 세상에 없다고 해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거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은 내 안에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비록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다섯 살 때까지의 추억이 내 안에 있고, 아니면 그때는 잘 몰랐더라도 할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할아버지가 어떤 버릇이 있었는지 부모님한테 듣게 되는데, 이런 얘기가 오가는 것이 좋아요. 특히 죽은 사람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기도 하는데, 제 생각에는 오히려 나쁜 얘기를 하면서 더 가까워질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진짜 좋은 사람이었다든지, 일을 부지런히 잘했다든지, 이런 말들은 흔히 들을 수 있지만, 반대로 어떤 버릇, 어떤 목소리처럼 평소에는 잘 알기 힘든 부분을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면, 죽었다 하더라도 내 안에서 그 사람이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 세계가 더 커질 수 있고 슬픔이나 고비도 없어질 수 있죠. 이런 것이 없어지면 편하게 살 수도 있고요.




죽은 자에 대한 침묵


최다울 : 확실히 죽은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안 좋은 얘기는 안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텐 : 특히 동아시아에서 그런 경향이 강한 것 같은데, 일본에서도 아까 야스쿠니 신사 얘기도 나왔지만,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나쁜 짓을 했어도 이미 죽었으니까 이런 이야기가 제로로 돌아가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조금 다르죠. 죽음은 역시 자기 가족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들은 얘기인데, 이승만 정권 시기에 제주도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을 때, 그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이야기 자체를 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나쁜 영향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일본에서처럼 러시아에서도 죽은 사람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면 별로 안 좋은 느낌이 있어요. 어차피 죽었으니까, 그냥 좋은 이야기만 합시다, 이런 거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 사람의 나쁜 버릇도 있어서 여러 가지 실수도 했겠지만, 반대로 그런 이야기를 알면 진짜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와요. 그 사람이 그냥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자기처럼 나약한 존재였다는 느낌이 들면 조금 더 연구도 해볼 수 있어요.


최다울 : 일본에서 죽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 한국과 다르다는 것은 저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가족들 품에서 죽은게 아니라 가족들이 볼 수 없는 곳, 그러니까 외국으로 나가서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이어서, 유족들 입장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외지에서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만 듣고 이별하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래서 더더욱 안 좋은 얘기는 안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안 좋게 이야기하지 말자가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에 받들어져 있는 사람들은 외지에서 죽었고, 그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죽였는지, 전쟁에서 어떤 잔학한 짓을 했는지, 이런 것들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고 욕하고 싶지 않고, 전쟁에서 잔학한 일들을 해 왔다는 것을 생각하기도 싫고,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슬픔 때문에 조금 오해를 받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텐 씨가 다섯 살 때 경험한 죽음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고 했는데 저도 비슷했어요. 진짜 죽음이라는 것이 뭔지 모를 때는 진짜 죽어 있어도 모른단 말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제 다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갑자기 슬퍼졌던 기억이 나요. 제 어머니도 맨 처음에 제게 죽음을 가르쳐 주셨을 때가 네 살인가 다섯 살 때인데, 한번은 칼에 어머니 손인가 내 손인가를 베어서 피가 많이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랬을 때 절대 이건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왜 하면 안 되는지 물어 보았더니, 이렇게 피를 많이 흘려서 죽게 되면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는 거야, 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이걸 하면 어머니를 다시는 만날 수 없구나 하는 상상을 하니까 갑자기 슬퍼졌던 것 같아요. 그다음부터 누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다시는 주변사람하고 자기 아들, 부모님하고 만날 수 없게 되는구나, 그러고나서 슬퍼지는 걸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항상 마지막인 것처럼


신소향 : 아까 다섯 살 때는 죽음이 뭔지 잘 모를 나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죽음을 경험했어요. 그때는 갑자기 가족의 상황이 안 좋아지니까 슬픔보다는 분노가 더 컸던 것 같아요. 어렸던 것도 있지만 만나지 못한다는 분노, 그리고 죽음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죽음이란 남은 가족들을 생각도 안 하고 그냥 훅 떠나 버린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냥 이런 생각을 한 10년 동안 했어요. 죽은 사람에 대해서 나쁜 말 하면 안 되지만 나쁜 말도 했었고, 특히 제삿날 같은 때 더 많이 화가 나고 그랬는데, 지금도 죽음은 나쁜 것이라고 많이 기억이 돼요. 그런 갑자기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살면서 너무 많이 느껴요. 제가 집이 제주도인데 항상 비행기를 타잖아요. 그러면 계속 어머님께서 제가 서울로 올라올 때 바래다주시면 그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드는 거예요. 그래서 바래다주지 말아라 혼자 가겠다, 이렇게 매번 어머니에게 말을 해요. 또 살면서 이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는데요, 제대로 된 이별은 무엇일까? 그냥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늘 생각했었어요. 특히세월호 참사를 보면 부모님들이 가장 슬퍼하는 것이 그런 것이더라고요. 마지막인지 모르고 제대로 인사를 못하고 떠나보냈다는. 그게 너무 와 닿는 거예요. 매 순간마다 내가 한 시간 후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아니면 갑자기 길을 가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은 못하잖아요. 그런데 혹시라도 무심코 지나친 그 한 시간 동안이 나의 최후가 될 수도 있고요. 그러면 나는 모르지만 남겨진 사람이 그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는 거잖아요. 진짜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 느낌이 더 두렵더라고요. 그래서 아직도 상상을 해요. 갑자기 엄마마저 아빠가 돌아가실 때처럼 인사를 못하고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엄마한테 가끔 전화로 싸우다가 끊는데 그런 나쁜 일이 생기면 어떻게 기억될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그냥 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것은 마지막으로 보는 사이처럼 늘 한 번 더 웃어주고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이런 마음가짐이에요. 아까 죽음에 대한 태도가 삶에 대한 태도라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았어요. 제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돌아가신 분을 계속 말하고 되새기는 것은 예의도 아니고 또 편한 곳으로 못 가게 하는 것이다, 보내줘야 된다. 그런데 늘 죽음이라는 단어를 멀리 놓고 생각하니까 그 연습이 안 되더라고요, 정작 자신한테 왔을 때는.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너무 우울하고 또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지만요. 지난 번 청년포럼 때 제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고 제안을 했었는데, 참 어려운 주제인 것 같아요. 특히 자

신의 죽음을 생각할 때는요. 그래서 정말 그 태도가 단지 가까운 가족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손 한 번 더 흔들어 준다든지 더 많이 잘해준다든지, 그런 태도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부터 생긴 것 같아요.


최다울 : 죽었을 때 남겨진 사람들이 더 아프다는 말씀에는 정말 공감이 갑니다. 죽은 사람이 죽은 다음에 아픔을 느끼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일이에요.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죠. 하지만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은 확실히 알 수 있어요. 눈에 보이니까요. 


토호쿠대학에는 사별의 아픔을 어떻게 덜어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나 수업들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지진이 왔었고, 일본은 일찍부터 고령화 사회라서요. 일본은 65세 이상 인구가 25%나 돼요. 그래서 노후에 70~80세 되시는 분들을 종말기 의료를 받는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거의 의사소통이 안 되거나 식물인간이거나 병원생활 하시는 분들, 암 투병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얘기를 하면서도 죽음에 관한 대화가 많이 이루어져요. 그때 사별의 아픔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한 대책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것은 바로 말씀하셨던 것처럼 죽음을 생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죽음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가족들과 많은 준비를 하는 것이에요. 그것을 갑자기가 아니라 미리 예방 접종처럼, 의료의 한 분야처럼 예방하는 것을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해요. 그리고 ‘리빙 윌’이라는 것은 유언장과 비슷한 건데, 자기가 죽었을 때를 대비해서 내가 어떻게 죽고 싶은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됐을 때 연명치료를 할지 말지, 그대로 안락사를 할지 말지, 아니면 장례식을 어떻게 할지, 돈이 부담되니 화장을 해서 뼈를 그냥 뿌려달라고 할지, 아니면 어디에 묻어 달라고 할지, 이런 것들을 미리 써놓고 가족들과 공유하는 것을 지금 일본의 병원에서는 종말기 환자들에게 적극 추천해요. 이런 죽음에 관한 대화, 준비, 기록들을 미리 가족들 또는 주변 사람들과 공유를 해 놓을수록 사별의 아픔이 그나마 좀 덜하지 않을까라는 걸 배워왔던 기억이 나요.




죽음을 연습하기


유일환 : 저는 개인적으로 제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 중에서 누군가가 돌아가신 일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죽음은 항상 멀리 있고 실감이 안 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은 제 또래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아직 고등학생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점 때문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왜냐하면 저한테 죽음은 어쨌든 갑자기 찾아오지는 않는 것, 뭔가 항상 멀리 있는 것이었거든요. 누구나 특별한 사고가 없으면 장년기, 노년기를 다 거치고 수명이 다해서 죽는 것을 자기 삶의 전제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세월호 사건뿐만이 아니라 최근에도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느껴요. 나도 내가 생각하는 그런 예정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지만 이것도 저한테는 굉장히 인위적인 생각이에요. 스티브 잡스는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만약에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저도 그런 걸 억지로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에조금 더 초점을 맞춘 생각 같아요. 저도 뭐랄까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서 그런 생각을 종종 하지만, 그것도 죽음에 대해 아직 한 번도 제대로 경험을 못 해본 상태에서의 인위적인 생각 같아요. 그래서 저도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삶을 대하는 자세라는 말이 와 닿았던 것이, 저한테 죽음이 또렷하지 않고 잘 모르는 것인 만큼, 살면서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죽음이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 것 같아요. 어쩌면 저도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 다섯 살과 같지 않을까, 그런 것을 지금 느꼈어요.


최다울 : 맞아요. 말씀을 들으니까 사실은 제 경우도 인위적인 생각일 뿐이에요. 진짜로 죽을 뻔한 적은 없었고, 죽음을 옆에서 본 것은 있어도 진짜 나의 죽음까지는 심하게 와닿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이나 생각들도 사실은 좀 인위적이긴 한 것 같습니다.


서지원 : 제가 죽음을 처음 이해한 것, 아니면 확 와 닿은 것은 아주 어릴 때, 여섯 살 때 정도였어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같이 살아서 할머니, 아빠, 엄마, 이렇게 넷이서 같이 살았어요. 유치원을 갔다 왔는데 엄마, 아빠는 출근을 하셨고 집에 와서 현관문을 열고 안방문을 열었는데도 할머니가 안 계신 거예요. 그때 왜 할머니가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주 어릴 때 사람은 늙고, 늙으면 죽고, 죽으면 사라진다, 이런 말을 들었잖아요. 그런데 할머니가 막상 없으니까 그렇게 어린 여섯 살짜리 애가 그냥 울어버렸어도 될 텐데, 없다는 느낌이 너무 충격이어서 없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머니는 노인정에 놀러 가셨다가 제가 올 시간을 깜빡 놓치고 늦게 오셨어요. 그 몇 분 동안 없는 게 이런 거구나, 어른들이 말하는 그 죽음이란 게

내가 느낀 이런 건가, 그 어릴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그렇고 맨날 밤마다 할머니 주무시는 방문을 열어 봐요. 혹시라도 숨을 안쉴까봐. 오랜 시간을 그렇게 습관처럼 하면서 저는 죽음에 대해서 약간 무감각해졌다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오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도 제가 안 놀랄 것 같은 거예요. 하도 오랜 시간 동안 그런 생각을 해 와서. 근데 그것은 무감각해졌다기 보다는 제가 무감각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더라고요. 난 안 놀랄 거야, 난 안 무서울 거야, 괜찮을 거야. 이런 생각이었고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아직도 죽을까봐 무서운 게 더 크죠. 내가 무감각해졌다는 것은 착각이자 그러고 싶다는 의지 같고요.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저도 직접 제 주변에서 경험한 적은 없어서 정말 그게 무슨 감정일지 어떤 생각이 들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살면서 떨어질 수 없는 고민이 죽음인 것 같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최다울 : 살면서 떨어질 수 없는 고민이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것은 저 역시 마찬가지에요. 그리고 방금 말씀하신 죽음에 대한 연습의 과정들이, 곧 제가 배워 왔던 죽음에 대한 대화나 리빙 윌과 같은, 준비하는 과정으로서 병원에서 권장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죽음에 대해 미리 익숙해지는 것, 미리 대비를 하는 이런 것들로 충격이나 실제 사별의 아픔이 정말 덜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고자 하는 것을 시도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가 되면 그렇게 될 것 같고요. 우리나라는 천재지변이 적지만 일본은 천재지변이 빈번한 곳이어서, 그런 것을 준비하는 것 같아요.




죽은 자의 존재성


최다울 : ‘사생(死生)’이라고 말하듯이, 죽음이라는 것은 결국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지금 대화에서 많이 느낍니다. 물론 정말 죽음을 앞둔 분이 이 자리에 계셨다면, “무슨 삶의 얘기야? 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 이렇게 얘기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분들 역시 삶과 연관되어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삶과 죽음, 죽음에 대한 자세와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조금 더 대화를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김용한 : 아까 우셨다고 그랬잖아요. 그게 되게 부러워요. 저는 장례식에 가서 운 적이 없거든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고, 작년에는 장모님이 돌아가셨는데도 눈물이 안 나왔어요. 그래서 펑펑 울었다는 게 왠지 부러워요. 심지어는 제 아내가 울어도 감정이입이 안 될 때가 있거든요. 그리고 가족들끼리 대화를 하면서 죽은 자를 기억한다고 했잖아요. 가족 안에서 기억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슬픔을 완화할 수 있는 완충장치가 된다는 게 부러워요. 아까 제가 한 이야기들을 학교 상담사 선생님, 교회 목사님 할 것 없이 다 찾아가서 얘기해 봤는데, 제가 하는 얘기는 필요 없는 얘기, 그분들에게는 잡음처럼 들렸거든요. 그런 것들이 돌보아진다는 게 되게 부러워요. 영원한 이별을 계속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흔히 나이가 어리거나 젊을수록 죽음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대비하고 인지한다는 것이 놀랍기도 해요.


신소향 : 저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느낌으로 오는 게 강해요. 죽음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우울하잖아요. 특히 이제 막 봄이 오는데. 그래서 가족 안에서 편안하게 그 기억을 얘기한다는 그런 분위기가 저도 되게 부러워요. 저희는 죽음이나 아빠, 이런 단어를 서로 상처를 줄까봐 못하고 있거든요. 마치 금기어처럼요. 저는 그나마 어리니까 그런 느낌이 강하지는 않았는데,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이렇게 계속 옆에 있던 사람이 사라지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십 년을 봐 왔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더 오래 봐왔으니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어머니는 담담하셨어요. 그런데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무연고 죽음이 아주 많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살다가 돌아가시면 어느 단체에서 와서 처리해준다는 것을 보면서, 그런 아무도 모르는 죽음, 잊혀가는 죽음이 너무 불쌍하게 여겨졌어요. 그래서 그동안 죽은 사람을 나쁘게 생각했던 제가 못된 사람 같아서 죽은 사람을 기억하려고 했는데, 아까는 오히려 기억하지 말라고도 하셨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얘기를 더 듣고 싶어요.


텐 : 저는 아버지한테 돌아가신 할아버지나 삼촌 이야기를 물어보는 게 좀 어려웠어요. 말을 꺼내는 것이 멋쩍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있었어요?” 이런 느낌으로 물으면 아버지는 할아버지나 삼촌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그때는 할아버지가 너무 많이 술을 마셨다.” “한때 트럼프 카드를 했었다.” “담배를 많이 피웠어.” 이런 얘기를 계속했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할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상상하게 됐어요.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기 상상 속에서 어떤 사람이고 어떤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는지에 대해 계속 상상하다 보면, 없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할아버지가 문제 있고 실수했을 때 “어떤 말을 하셨을까?” “어떤 행동을 했을까?” 이런 것을 상상하다 보면 할아버지가 없다는 느낌보다는, 할아버지는 있고, 그래서 더 알고 싶은 느낌이 들면서 조금은 슬픔이 없어지는것 같아요. 


아까 죽음에 대한 실감이 없다는 얘기를 했는데 사실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게 아니고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죽어가면서 살게 된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처음 들었을 때 죽음에 대해 반대로 인식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이렇게 반대로 생각하면 슬픔은 뭔가 도망갈 수가 없지만 죽음은 역시 인식 속에서 이런 것에 상상력을 키워가면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풀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제 생각에는 문학이에요. 사실 문학은 꾸민 이야기잖아요. 픽션 세상이고 작가가 만든 거니까 주인공도 원래는 없는 사람이죠. 하지만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고 만족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은 제 생각에는 죽음 때문이에요. 죽음이 있고, 나는 내 생각 하나밖에 없으니까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서 살고 싶은 이런 욕심이 있는거죠. 


예를 들어 『안나 카레리나』를 보면 주인공이 마지막에는 죽지만 그녀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남편과의 관계와 아이와의 관계에서 러시아 사회가 여러 가지로 드러나니까, 나는 물론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19세기를 조금 느낄 수 있고, 이런 점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상의 『날개』를 읽으면 식민지 때 어떻게 고민했고, 어떤 시대 어떤 분위기였는지 느낌이 와요. 그리고 어떤 소설에서는 남자하고 여자가 명동에 가서 미쓰꼬시 백화점에 갔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저는 그 소설을 읽고 사실은 명동에 가 봤어요. 명동의 신세계백화점이 왜 이렇게 됐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서 다른 세계를 알려는 욕심이 있었던 거 같아요. 마찬가지로 내가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 속에 나오는 다른 사람, 다른 주인공 덕분에 죽음의 느낌이 와요. 그래서 자기 세계가 조금 커져요. 그래서 저는 슬플 때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어요.『 어린 왕자』 같은 책을 보면서 어린 왕자 같은 남자는 어디에도 없지만, 그 책을 읽으면 뭔가 내 안에도 어린 왕자가 있다는 느낌이 와요.


성민교 : 텐 씨가 아까 할아버지와 삼촌에 대해서 가족들한테 물어본다고 했잖아요. 나쁜 건 없었어, 라고 하면서 자꾸 좋은 쪽으로만 얘기하려는 걸 텐 씨가 멈추게 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가려고 한 거잖아요. 저도 그 얘기를 들었을 때 텐 씨가 할아버지나 삼촌에 대해서 캐릭터와 그 스토리를 만들어 주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방금 텐씨가 책 얘기를 해서 아주 많이 공감이 갔는데, 보통 죽음은 그냥 없음이라고 보고 존재가 없어지는 것, 단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저는 오히려 그렇게 얘기함으로써 존재성이 더 강화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할아버지가 더 선명해지고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했잖아요. 


죽음이라는 게 물론 그 사람의 삶은 없어졌을지 몰라도 그 존재 자체를 미약하게 하는 게 아니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사실 우리가 문학을 좋아하는 것도, 텐 씨가 말했듯이 그 캐릭터는 인간의 유한성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새로운 존재인데도 우리가 그를 살아 있다거나 인간과 닮아 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 ‘존재성’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생명은 없을지라도 분명히 그 ‘존재’가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아까 푸코 얘기도 하셨지만 프랑스의 후기실존주의 철학을 얘기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게 죽음이나 고통, 자살 이런 것들인데, 보통 철학과에서 죽음에 대해 얘기하자고 하면 무조건 사르트르부터 얘기를 한다든지 그런 식이거든요. 저는 그게 되게 싫었는데 우리는 아까 시작할 때부터 그런 게 없어서 저는 너무 좋았어요.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을 얘기하고 결국은 이렇게 얘기가 흘러 왔잖아요. 그래서 저는 어쨌든 죽음이 존재성을 흐리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렇게 생각하면 죽음이 슬프지만은 않지 않을까, 그 사람한테 살아 있는 우리들이 더 존재성을 부여해 주면 그 사람의 존재는 잊히지 않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어요.




죽음은 기억을 남긴다


최다울 : 그게 죽음에 대한 고비를 넘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텐 : 네, 물론 종교도 있지만 저는 아직 종교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제 경우에는 지금 제일 효과가 있는 것은 문학인 것 같아요.


김용한 : 종교도 근본적으로는 교리가 문제가 아니라 구전되는 선조 이야기나 그런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보면 문학인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다울 씨가 얘기해 주었는데, 지진 피해가 일어났을 때 의학이나 정신의학의 처방보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요.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셨죠?


최다울 : 저희 대학 선배나 현장에 가서 일했던 간호사들의 발표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사람들을 케어하는 기존의 상식이나 방식이 너무 쓸모없었고, 오히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제일이었다, 그것밖에 할 수 없었고, 그게 제일 많이 도움이 되었다, 효과적이었다”라고 했어요.


김용한 : 그래서 결국은 기억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기억한 것만 이야기하니까요. 자기 인상에 남아 있는 것이요. 그런 이야기나 대화를 들어주는 가족은 일종의 공동체 같은 거죠.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뭔가 한군데로 가는 것 같기도해요.


최다울 : 『오소리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그림책이 있는데, 숲 속에서 오소리의 역할이 다른 동물들에게 “이렇게 살아라”라는 식의 많은 교훈을 알려주는 역할이었나 봐요. 그런데 오소리가 죽은 다음에 숲에 있는 여러 동물들이 모여서 오소리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더 유대가 깊어지고, 더 많은 얘기들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에요. 이것처럼 남겨진 사람들 안에는 분명 죽은 사람의 영향도 있고, 그 안에 기억으로 남아있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얘기를 함으로써 텐 씨가 얘기했던 것처럼 남은 사람들끼리의 뭔가가 생기는 것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완벽한 이별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부분도 있지 않나 싶어요. 반면에 고독사나 추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슬프고 더 안 좋아 보이는 것은 기억해줄 수 있는 사람, 남겨진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는것 같아요.


김용한 : 그런데 텐 씨의 말을 듣고 이제는 전략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아까 얘기할 때 되게 뭔가 비장했잖아요. 비장하고 뭔가 그 사람들의 죽음이 진짜 역사의 한 순간인 것 같고 이런 게 아니라, 제 얼굴이 트라우마 때문에 제 얼굴이 우울해질 거 아니에요. 그런데 텐 씨 얘기를 들어보면 그분들은 장난 같은 이야기, 웃긴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그러면 되게 죽음이라는 게 꼭 심각하지만은 않고 그 사람이 죽었는데 생각해보면 이 일은 웃겼지?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나도 전략을 이렇게 바꾸려고요. 좋은 기억들에 대해서 떠올리고, 죽음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면 내가 죽음을 이야기할 때 표정도 더 좋아질 거고, 그러면 나의 죽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도 너무 당황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어요. 아주 좋은 전략인 것 같아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할 때 듣는 사람들이 힘들어하거든요. 제 얘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힘들어해서요.


최다울 : 요즘에 병원이나 간호사들이 그런 게 제일 고민인 것 같아요. 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병원에서는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이제 얼마 못살 것 같다는 얘기밖에 못하니까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얘기를 꺼내고 어떻게 재미있게 들려줄지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이런 문제들을 토론하는 수업도 많아졌어요. 고령화 사회로 가는 한국도 죽음에 관한 대화나 연구가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런 이야기요.




역사에 기억된다는 것


유일환 : 민교 씨의 존재성 얘기를 들으면서 질문을 드리고 싶었는데, 텐 씨는 돌아가신분에 대한 기억은 값지게 생각하는데, 정작 자신이 죽었을 때 자기의 이름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원하시는지, 아니면 깨끗하게 이름을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원하는지, 어느 쪽인지 궁금합니다.


성민교 : 우리가 계속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만 얘기했잖아요. 먼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름을 많이 남기고 싶어요. 이야기할 게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면도 많고 웃긴 면도 많고. 이야기 거리가 많으면 남겨진 사람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이 돼요.


텐 : 만약에 가족이 없더라도 기억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사를 지내는 것도 죽은 사람이 가족들이 모여서 죽은 자를 얘기하고, 그러면서 더 가까워질 수 있고 거리감도 없어지는 것 같아요.


성민교 : 러시아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나요?


텐 : 모두 모여서 준비를 하는데, 주방에서 조상들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하고, 다른 얘기도 많이 해요. 그래서 저는 그냥 계속 듣고 그랬어요.


유일환 : 아까 무연고 죽음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죠. 저는 제가 무연고 죽음을 겪게 된다면 참 슬플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죽음에 이르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가 되죠.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귀신이 자신의 장례식을 지켜보는 장면을 상상하지만 정작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장례식에 누군가 찾아오든 안 오든,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기억하든 안 하든,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겪는 죽음과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는 죽음은 그 자체로 같은 죽음이면서도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건 조금 유치한 이야기이지만, 고등학생 때 저와 몇몇 친구들은 죽어서도 널리 이름을 남기고 불멸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니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 인물들은 정작 본인 삶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경우가 많더라고요.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면서 이름도 남기고 싶으니 욕심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고 역사에 남고 싶다는 야망은 좋은 것일까요? 아니면 내 삶을 조용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아무리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해도 정작 죽어 버린 본인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하겠지요. 평생 빛을 발하지 못하다가 죽고 나서야 기억되는 사람도 있고요. 저는 죽어서 사람들이 저를 기억해주면 좋을 것도 같지만 저의 부끄러운 점이 까발려지는 것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텐 :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이 포럼은 역사적인 행동이에요. 다음 세대가 우리의 대화를 발견해 내서 “아, 할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지금 역사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성민교 : 맞아요. 우리가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을 ‘흑역사’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SNS를 안 하는데 저도 옛날에 SNS를 아주 활발하게 했던 때가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의 글을 보면 내가 쓴 글이 아닌 것 같아요. 전혀 다른 사람이 쓴 글 같은데 누가 갑자기 내 이름이 달린 글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 우리는 매 순간 역사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경우는 아니지만,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기가 싫어서 SNS를 안 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이렇게 보면 현대인들은 굉장히 역사적인 행동을 하며 사는 것 같네요


텐 : 무의식적으로 역사에 남고 싶어 해요.


김용한 : “구글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검색한 기록이 어디에 다 남아있을 것 같아요. 일기장 정도가 아니라요.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


최다울 : 사상가를 연구하기 위해서 유명한 인물의 기념관에까지 가서 조사한 적이 있는데, 원래 가족 말고 다른 가정을 만들거나, 심지어는 거기서 돈도 대준 경우도 있었고, 더 지저분한 관계도 있었어요. 이런 자료까지 나와 버려서 알게 되었는데, 기념관 사람들이나 역사학자들이 “아, 여기까지는 밝혀도 되지만 여기서부터는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니까 밝히지 말자.” 하고 그냥 덮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확실히 남기고자 하면 밝혀지는 부끄러운 부분이 나온다는 건 분명해요. 그런데 죽을 때 이름을 남기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저는 죽음 뒤까지는 상상을 할 수도 없고 이제 그 뒤는 안 보이니까, 혹은 보일지는 몰라도 지금 저한테서는 상상이 안 되니까 항상 죽는 순간, 또는 죽기 전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이 정도면 만족할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요. 그러니까 명성을 남기고 싶었으면 아 이 정도면 되었지 하면서 죽어 가면 잘 죽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죽는 게 어떤 것인지보다는 항상 잘 죽는 것, 잘 마무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이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마무리 짓는지를 더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죽을 때 내가 만족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면서 죽을 수 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죽어가는 죽음에 임하는 자세가 죽기 전도 삶이고 죽는 순간도 살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삶을 임하는 자세라는 말이 저로서는 죽음에 임하는 자세입니다.


신소향 : “잘 살다 간다”라는 말이 나와서 그런데,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엊그제 유명한 배우가 돌아가셨잖아요. 그분은 사회적으로도 유명하고 잘 살고 있다가 미투 캠페인에 폭로되어 자살하셨잖아요. 그러면 우리에게는 그분의 잘못과 죽음밖에 기억이 안 나잖아요. 그리고 또 뉴스를 보면 매일 누가 어디서 사고로 죽었다, 몇 명 사망했다, 이런 기사를 통해 계속 죽음을 간접적으로 접하는데, 정작 자신은 죽음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나는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지’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잘 보내는 게 ‘잘 죽어가는 삶’인 것 같아요. 아까 태어나서부터 죽어가는 삶이라고 하셨는데 조금 무섭지만 그게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성민교 : 결국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 같아요. 제가 사실 오늘 죽음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했을 때 그분의 자살이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바로 어제였고, 사실 잘 살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이 그렇게 슬펐잖아요. 너무나 갑작스럽고 충격적이고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겠지만, 그분도 참 잘살았으면 좋으련만 잘 못살았기 때문에 그 죽음이 잘 죽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지 하고 생각하기보다는 살아있을 때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엄마 아빠와 인사도 못하고, 게다가 싸우다가 갑자기 죽음이 찾아온다면 정말 못 살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내가 공부를 한다고 하면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하고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조금이라도 내 발자취를 하나 남겨놓으면 죽어가면서도, 아 그래도 내가 주변사람들한테 잘 해줬지, 공부도 열심히 했었지 라고 생각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 못 살았으면 죽어 가면서도 후회만 남기겠죠. 그래서 잘 사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생물로서의 인간


텐 : 그런데 그 배우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였지만, 그분의 가족들은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가족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제 생각에는 그분들에게도 자유가 있으니까 그건 그분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러시아에 비하면 여론이 너무 강한 것 같아요. 러시아에서는 오구라 기조선생님이 말씀하신 완벽한 ‘도덕성’ 같은 요구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 문제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나쁜 실수나 범죄가 있으면 그냥 법률에 따라서만 하면 돼요. 안희정 씨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 욕을 먹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한국 사회는 도덕적인 여론이 강하니까요.


성민교 :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게 아마 우리 사회의 분위기인 것 같아요


김용한 : 그 점이 오구라 선생님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지적하신, 리를 획득한 사람이 돈, 권력, 명예를 얻게 된다는 것의 반대인 것 같아요. 리를 잃은 사람한테는 법률적인 처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돈, 권력, 명예를 다 뺏어버리는…. 그래서 만약에 그렇다면 리를 지킨 사람은 그것들을 진짜 부여해 주고 있는 게 확실하다는 반례가 될 수있을 것 같아요.


성민교 : 맞아요. 우리가 보통 성범죄자를 생각하면 정말 저 사람 가족도 다 뺏어 버리고 싶고 그러잖아요. 특히 강력한 아동 성폭행의 경우에는요. 그래서 어제도 친구랑 그런 얘기를 했는데,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고요. 사실 마음 같아서는 가족이든 뭐든 다 뺏어 버리고 싶고 거의 정말 손발도 자르고 싶은 그런 심정이 들잖아요. 그런데 그건 마음이 그런 것이지 또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진지하게 논의를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용한 : 아까 기억이나 이름을 남기고 싶다고 했잖아요. 나에 대한 기억을 정보로 보면 나에 대한 중요한 정보 중의 하나가 DNA 정보거든요. 내 DNA 정보는 생식함으로써 남겨지는데 저도 이제 딸이 있으면 제 DNA 정보의 반은 딸 안에 있는 거잖아요. 사상이나 윤리는 우선 문자로 쓰여야 정보가 남지만, 신체나 생물 같은 것은 진화 때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더 오래된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신체가 추구하는 것이 사상이 추구하는 것보다 더 강하다는 말이 되죠. 나쓰메 소세키의 어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은 자기 부인이 자기 남동생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사상이 다 쌓여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몸에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잖아요. 그것처럼 성범죄도 사상이나 윤리가 아니라 자기 신체가 원하는 바의 민낯에 대면하게 되는 거잖아요. 거기에서 무너지는 거죠. 방금 말씀하신 성범죄를 얘기할 때 그게 옳으니 틀리니 하는 문제 말고도, 왜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생물이면서 사상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성민교 : 사실 학교에는 좋은 교수님들이 많지만, 그분들이 학문적으로 좋거나 나한테 인간적으로 잘해준다고 해서, 성의식도 좋거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잖아요. 이것도 비슷한 예가 될 것 같아요.


김용한 : 제 생각에는 철학자와 의사가 사람을 보는 관점은 완전히 다를 것 같아요. 우리는 대개 사람을 ‘사상’으로 보는데 ‘생물’의 입장에서만 볼 경우에는 다르니까요.


최다울 : 다음 포럼에서는 이런 주제로 얘기해 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가능하면 의료계에 종사하시는 분이나 뇌과학을 하는 분들도 초대해서요. 오늘은 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 정도로 마치고자 합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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