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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ug 01. 2018

함께 책 읽기 속으로 ‘퐁당!’

방정환텃밭책놀이터 이야기(1)

[개벽신문 제76호, 2018년 7월호] 한울소리

최 경 미 | 방정환텃밭책놀이터 대표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데, 두 눈에

호기심이 조랑조랑 달려 있다. 방정환 텃밭책놀이터에 오는 아이들에게 가끔 책을 읽어 준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가 오는 날에’ ‘비 오는 날의 소풍’ 등등. 비와 관련된 책을 읽어주고, 색깔이 한참 멋 들어갈 때

는 색깔과 관련된 책을 읽어준다. 초롱초롱 책 속 그림을 읽어내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기분이 좋아서,

뭐라고 한마디 거들라치면 흥에 겨워서 우리는 서로의 기운을 주고받으며 함께 책을 읽는다.


자칫 책 읽어 주기가 일방적일 것 같지만, 굉장히 쌍방의 상호 교감을 동반하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어 주는 이는 듣는 이로부터 영향을 받고, 듣고 보는 이는 읽어 주는 이로부터 행간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흐름을 전달받는다. 특히나 그림책일 경우는 그림이 주는 다양한 해석이 동반되므로 서로의 눈을 통해 발견되는 새로운 세계를 공유하게 된다. 함께하는 동안 공감의 시간을 통해 영혼의 친구로 바짝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지난주는 계속 비가 내리면서 아이들과 책놀이 활동을 했다. 주제는 ‘괴물’로 잡았다. 평소에도 괴물은 아이들에게 흥미를 주는 주제이다. 책 속의 괴물은 우리 마음속의 그림자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성으로 가려져 있거나 도덕적인 면 때문에 눌러 놓은 인간 심리를 괴물로 등장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위축되거나 상처받은 감정을 그려내기도 하고 관계로 인하여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괴물로 비유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며칠 동안 비가 오고 있던 터라 괴물 이야기가 딱이겠다 싶었다. 아이들은 괴물과 귀신을 구분하지 않고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곧잘 귀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기도 한다. 추측하건대, 마음속 그림자를 해소하고 싶은 욕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에 함께 읽은 그림책은 ‘우리집에 괴물이 우글우글(보림)’, ‘괴물들이 사는 나라(시공주니어)’, ‘해치와 괴물 4형제(길벗어린이)’, ‘괴물이 되고 싶어(스푼북)’, ‘정말 정말 한심한 괴물 레오나르도(웅진주니어)’였는데, 이 중에 두 권 정도를 읽어 주고 나이에 따라 다른 활동을 했다.


4세반 아이들과는 내가 변신하고 싶은 괴물을 종이 서류 봉투에 그려서 머리에 쓰고 괴물소동을 벌였다. 악어괴물, 돌고래 괴물, 상어 괴물, 도깨비, 아기 괴물, 사자 괴물, 아빠 괴물, 애벌레 괴물…이 된 아이들은 보자기 하나를 보태주니, 마치 진짜 괴물이 된 것처럼 놀이 속으로 빠져 들었다.



관찰하기를 즐기고 제법 그림도 세밀해진 5세반 아이들은 텃밭에 사는 괴물들을 그려보는 작업을 했다. 활동성이 강한 6,7세 아이들과는 텃밭 괴물을 찾아서 탐험을 나섰다. 우선 고추밭에 살고 있는 벌레괴물을 찾아보고,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빨간 토마토를 따 먹었다. 용기를 주는 힘이 토마토에 들어 있다고 했더니 토마토를 싫어하는 아이도 친구들을 따라서 토마토를 따 먹는다. 개울을 따라 가면서 이야기가 이어졌다. 오디나무 이파리가 아주 멋들어지게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것을 보고 “애들아 여기 봐, 괴물이 지나간 흔적이야!” 아이들이 몰려와서 그물처럼 생긴 나뭇잎을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숭숭한 구멍이 있는 나뭇잎은 심심치 않게 있었고 우리는 계속 괴물의 흔적을 따라갔다. 한참 동안 평소에 산책하던 길을 따라갔더니 산딸기가 딱 두 개 붙어 있다.


역시나 괴물을 물리치는 특효약이라 했더니 아이들이 모두 나눠먹자고 한다. 쪼개고 쪼개서 나눠먹고는 어떤 괴물도 물리칠 수 있을 듯 당당하고 씩씩하게 길을 나선다. 산길로 접어드는 언덕으로 통하는 좁은 오르막 길을 올라서 눈이 탁 트이는 언덕 위에 섰다. 진분홍색의 패랭이꽃이 몇 송이 피어 있으니 그 꽃의 향기로 또 다시 기운을 얻기로 하고 우리는 코를 킁킁거리며 꽃향기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언덕 위에서 보이는 건너편 산을 향해 섰다. 비가 온 뒤라 산을 산듯하고 하늘은 맑았다.



“괴물을 물리치려면 우선 우리 마음속 괴물을 끄집어내고
맑고 밝은 마음이 되어야 해요.
그러면 어떤 괴물도 무섭지 않을 거야.

자 지금부터 맑은 공기를 쑥 빨아들인 뒤 아~하고 크게 뱉어내기로 해요~
목욕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씻어내는 거야. 아~~~”



아이들보다 내가 더 필요했다. 영혼의 목간통이라고 생각하는 숲에서 깊숙이 호흡을 하며 큰 소리를

질러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있는 못난 마음을 닦아내고 싶었다.


아이들도 내 말을 정말로 믿고 있는 것처럼 열심히 호흡을 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따라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아이들 선생님이었다, 그날 퇴근을 하던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오늘 괴물놀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전 아직 유아기를 못 벗어났나 봐요. 정말로 마음이 시원해졌어요~ㅎ.’


아이들과 나는 용기백배하여 다시 산길을 걸었다. 한 친구가 크게 소리를 쳤다.



“저기 괴물이 보인다. 하얗고 커다란 거!”



우리는 모두 그 쪽을 바라보았고,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고 괴물을 만나러 힘차게 나아갔다. 도착한 곳은 절이었고 하얀 건 불상이었다. 그런데 불상은 괴물의 얼굴이 아니라 너무나 환하고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 비밀을 알아차렸다. 괴물은 용기 있는 우리가 무서워서 어느 새 도망가 버리고 멋진 부처님만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기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아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데 한쪽으로 나 있는 좁은 숲길이 보였다. 아마도 괴물은 저 길로 도망갔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다음에 다시 그 길을 탐색해 보자고 하고 우리는 발걸음도 가볍게 돌아왔다.


괴물 책을 읽고 눈에 보이는 텃밭 괴물과 마음속 괴물을 물리치고, 맑고 밝은 마음이 된 우리는 괴물을 물리쳤다는 만족감에 의기양양해서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들과 스토리텔링을 하며 함께 즐거웠다. 마치 내 마음속 괴물도 모습을 감추기라도 한 것처럼 덩달아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떤 날은 아이들이랑 책을 세워서 도미노 놀이도 한다. 높이 쌓기도 하고, 집을 만들기도 한다. 책을 이용한 놀이인 것이다. 책놀이터 한쪽 켠에 좀 낡았거나 오래된 책을 쌓아 두고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책과 친해지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여름 방학 특강으로 책놀이 시간도 마련했다. 종이 위에 그려진 모양 하나로도 아이들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혼자서, 둘이서, 또 여럿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상상의 세계 속으로 쏘옥 빨려들어가게 한다.


방정환 선생님은 내가 나답게, 나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을 책을 읽고 토론하고 생각을 키워 가는 것으로, 소년회 활동의 중심에 두었다. 그 방법은 지금도 의미 있는 활동이라 생각한다. 여름 방학 내내 아이들이 풀어낼 이야기보따리가 한층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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