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걸음 Apr 18. 2016

다시 읽는 신인철학(4)

오래된 미래의 철학, 동학을 다시 읽는다

<지난호 내용>

제1편 우주관 

     제1장 한울 

          제1절 한울이라는 말의 뜻[名義] 

          제2절 ‘한울’ 본체의 속성

     제2장 양적 한울과 우주의 본체 

         제1절 과학적 입장에서 본 한울의 진화 (이상 (3)회 연재분)


제2절 과학적 진화설과 수운주의 진화설의 차이점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수운주의에서도 과학자의 진화론을 옳다고 말하는[是認] 것은 역시 과학자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수운주의 진화설은 본체적 진화설을 작용적 의미에서만 시인하는 것이 피차 서로 다른(相異) 점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수운주의 진화설의 요점은 부분과 전체를 명료히 구분하는 데 있다. 가령 여기에 어떠한 개체가 있다고 하고 이 개체가 어디서 생겼느냐 물으면 우리는 서슴지 않고 개체는 전체, 즉 ‘한울’의 필연성으로부터 생긴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운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개체로부터 사회(전체)가 생긴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로부터 개체가 생긴 것이다. 인류 사회든지 동물 사회든지 어쨌든 사회(전체)라는 것은 먼저 있는 존재[先存的]이고 개체는 그 앞서 있는 사회(전체)로부터 화생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인류(혹은 타 동물)가 적으나마 사회를 이룬 뒤의 일은 물론이지만 이스라엘 신화에 있는 말과 같이 인류의 원시조(原始祖)를 가령 단 한 개인인 ‘아담’뿐이라 가정한다면 인류 사회가 없는 곳에서 ‘아담’ 같은 한 개성(個性)이 화생할 수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이냐고 질문하는 기독교 신자가 있다 하자. 나는 이러한 ‘신화 미신자’에게도 위의 진리로서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세계 속의 인간

즉 그러한 경우에도 사회(전체)는 선존적 존재가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즉 신의 창조설에도 사회를 선존적으로 잡지 않으면 모든 해답이 극히 곤란해진다. 가령 어느 곳에 송이버섯[松茸]이 생겼다면 그 송이가 생기기 전에 벌써 그 환경은 송이가 생길 만한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습기라든가 적당한 기후라든가 토질이라든가, 이미 송이가 나기 전에 송이가 날 만한 조건이 구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신이 ‘아담’을 창조하였다 할지라도 ‘아담’이 나기 전에 지구는 이미 사람이 나서 살 만한 사회적 조건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십만 년 이전에 원류(猿類)로부터 진화하여 한 개체의 인간이 지구상에 생겼다 하면 지구상에는 인간이 나기 전에 이미 인간이 생길 만한 가인간(假人間=類人猿)의 사회가 생겨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사람은 조건 없이 화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길 만한 조건, 즉 준인간(準人間) 사회로부터 진인간(眞人間)이 화생하였다 볼 수 있다. 즉 준인간 사회는 진인간이 생기기 이전에 모든 사회적 조건을 선존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 이치를 연장하여 당초 무생물의 지구로부터 원시생물인 아메바가 생겼다고 하면 아메바라는 개체가 출생하기 이전에 자연의 환경은 이미 아메바가 화생하지 않을 수 없을 만한 모든 조건이 구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서 과학적으로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아메바, 즉 원시생물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증명할 수는 없으나 그 환경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개체가 생겼다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생명)이 전격적 돌변으로 화생하였든지, 무기물의 화학적 성질 변화로 생겼든지, 또는 신의 창조로 생겼든지 어쨌든 아메바가 나기 이전에 준(準)아메바 사회가 모든 사회적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던 것은 원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개체가 생기기 이전에 넓은 의미의 사회가 먼저 있었다[先存]는 것은 누구든지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인즉 수운주의는 이 선존적 사회를 ‘한울’이라 칭한다. 그러므로 우주는 외형으로 볼 때에는 천차만별의 각각 다른 특징을 가졌다 할 수 있으나 내용으로 볼 때에는 전 우주에 방전(磅磚; 至氣)이 있어 천지미생(天地未生) 이전의 무하유(無何有)의 고향[鄕]으로부터 흘러내려 백천억의 겁회를 지나 현재와 같은 어마어마한 조직이 있는 우주를 보게 되었다 할 수 있다. 이것이 곧 수운주의 진화설이다. 


과학적 진화설은 작용의 측면[便]을 말하고 본체의 측면은 말하지 않는데 반하여 수운주의 진화설은 본체론으로부터 작용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은 증명의 학문[學]이니만치 외부에 나타난 조직의 해석으로부터 진화를 논하게 되고 수운주의는 작용과 조직의 본원인 ‘한울’의 본체적 계통으로부터 진화의 형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한 생물(生物)을 연구할 때에 과학은 먼저 그 작용을 연구한다. 이러 이러한 작용이 있으므로 이 생물이 존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 작용에는 어찌하여 이러한 특징이 있느냐 하면 다음에는 조직을 말하게 된다. 이러한 조직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특징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그러면 이 조직은 무엇으로부터 생겼느냐? 육체, 즉 물질을 말하게 된다. 물질이 있으므로 조직이 있고 조직이 있으므로 작용이 있고 작용이 있으므로 생명이 있다고 말한다. 즉 생명은 일종의 조직적 작용의 화학적 변화의 조절로 나타나는 동적 상태에 불과한 것이라 말한다. 이것은 과학적 연구의 당연한 순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작용이 있으므로 조직이 있느냐 조직이 있으므로 작용이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조직이 있으므로 작용이 있다 할 수 있다.  


다음은 조직과 생명의 문제다. 조직이 있은 뒤에 생명이 생겼느냐 생명이 있음으로써 조직이 생겼느냐 하면 여기에도 먼저 생명을 인정하지 않고는 조직의 발전을 말할 수 없으리라 본다. 적은 개자[芥子; 겨자] 종자 속에도 생명이 머물러 있고 원형질 세포에도 생명이 있고 물질의 원자 전자에도 거력(=斥力) 흡력(=引力)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먼저 우주에는 일대 생명적 활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활력을 수운주의에서는 ‘지기’라 하고 ‘지기’의 힘을 ‘한울’이라 한다. 그러므로 대우주의 진화에는 ‘한울’의 본체적 활력, 즉 생생무궁(生生無窮)의 생명적 활동의 진화로 만유(萬有)의 진화로 만유의 시장(市場)을 전개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체적 ‘한울’은 만물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이것이 인격적 신처럼 의지를 가지고 만물을 창조하였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한울’에 의지라는 한정적 성격을 부여할 수 없다. 의지란 타 개체와 대립되어 있는 자, 즉 인간과 같은 자가 처음으로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물이 ‘한울’에 의하여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렇다하여 만물이 ‘한울’로부터 창조된 것은 아니다. 다만 ‘한울’의 자율적 창조성으로 ‘한울’이 한울 스스로를 표현한 것이 만물인 것이다.


나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이다. 그러므로 나는 무궁하다.


비유[譬]하여 말하면 삼각형 그 자체의 성질과 삼각형의 내각(180)의 합(和)이 2직각(90+90)과 같다는 관계와 같은 것이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직각과 같다는 것은 삼각형 자체에 갖추어져 있는 필연적 결과임과 같이 ‘한울’은 만물의 내재적 원인이요, 결코 만물 밖에 있어서 이것을 생산한 초월적(超越的) 원인은 아니다. 


그러므로 ‘한울’은 자율적 창조의 자연이며 만물은 소산적(所産的) 창조의 자연이라 할 수 있다. 즉 전자는 모든 것을 그렇게 되게 하는 자존적 본체요, 후자는 그렇게 되어진 본체적 표현이다. 나무 본체는 꽃에 대한 능산적(能産的) 본체요, 꽃의 개체는 나무 본체에 대한 소산적 자연이 된다. 그러므로 우주는 분산적, 기계적인 상호운동이 아니요, 연쇄적 유기적인 본체 자율의 조화이다. ‘한울’이라는 대자연의 유기적 진화운동이다.

(다음에 계속)


*[편역자 미주1] 신인철학을 읽으면 읽을수록, 신인철학은 "동학으로 보는 '빅히스토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혹은 그런 방향에서 주석이 필요하다.(2016.4.16. 세월호의 날에)


*[편역자 미주2] <신인철학>을 함께 읽는 모임은 4월 20일(수), 5월 4일(수), 5월 18일(수)에 진행됩니다.

       * 4월 27일(수), 5월 11일(수), 5월 25일(수)에는 "개벽신문 독회"가 진행됩니다. 


*[편역자 미주3] 현재의 현대역본은 여전히 더 쉽게 고쳐져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주석을 달아 넣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신인철학 다시 읽기'에 함께하실 분들을 기다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