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종록의 시 세상 (3)
- 심종록 | 시인 노래
["심종록의 시 세상"은 개벽신문 79호부터 연재하는 '심종록의 시&이야기' 마당입니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듣는다. 유쾌 발랄 명랑 오페라에 저토록 가슴 아린 사랑 노래가 어떻게 삽입될 수 있었을까. 남몰래 흐르는 눈물로 인해 <사랑의 묘약>은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로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들었다는 소문도 있다.
기원전에도 그런 노래를 부르는 가인이 있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도무지 대책이 없어서 새들도 날다가 내려앉고 날카로운 이빨로 먹이의 숨통을 물어뜯던 맹수도 하던 짓을 멈추고 귀기울이고, 물고기들까지 물속에서 뛰어오르며 듣기를 애쓸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오르페우스였다.
세상 모든 유정과 무정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노래. 바람의 질곡, 고통의 빛, 죽음의 자유, 어둠의 광채, 짧은 생을 헝클어뜨리지만 가슴 설레는 사랑, 찬란한 연애의 덧없음에 관한 내용이었을까? 그가 부르는 노래는 세상의 모든 비밀을 드러내었다가 다시 감추고, 때로는 아우르기도 하는 신묘한 진언이었음이 분명하다.
운명의 셈법은 찰나를 사는 인간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단 성공한 이에겐 그 몇 배에 해당하는 기쁨이 선물로 주어지는데 오르페우스에게 주어진 선물은 에우뤼디케였다. 그녀의 존재로 말미암아 오르페우스는 완벽한, 플라톤의 말대로 그야말로 남녀가 서로 분리되기 이전의 완벽한―신의 능력을 능가하는 괴물 같은, 안드로기노우스―존재가 되었다. 그것이 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일까.
희극보다 비극이, 믿음보다 배신이, 노래보다 절규가, 풍요보다 궁핍이, 결국 한줌 티끌로 돌아가는 인간의 몫이어서일까. 꿈같은 시간이 채 여물기도 전에 에우뤼디케는 독사에 물려 황천으로 직행하고 말았다.
뜻하지 않은 비극에 오르페우스는 절규했다. 무모하지만 비극적 운명에 단호히 저항하는 것 또한 뛰어난 인간의 운명이라서 그는 불청객의 신분으로 살아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황천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저승의 신들 앞에서 사랑을 잃은 비통한 마음을 노래로 전했다. 오르페우스의 노래가 끝났을 때, 황천대왕 하데스의 마음은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페르세포네도 마찬가지여서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고 전해지는데,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삼천대천세계의 유·무정뿐만 아니라 암흑이 지배하는 저승의 신들까지도 감동시킨 것이다.
결국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감동한 하데스는 에우뤼디케를 지상으로 돌려 보내기로 약속했다. 단 한 가지 조건을 붙여서. 그것은 바로 자신의 영토를 벗어날 때까지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는 말이 있듯이, 믿을 수 있고, 믿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똬리를 튼 독사의 대가리처럼 고개를 쳐드는 한 점 의혹. 누군가는 그것을 ‘집착’이라고도 부르는데, 오르페우스도 그 집착-불안에서 헤어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승의 빛이 코앞인데, 한 발짝만 내딛으면 이승으로 들어서는데, 사랑하는 이가 잘 따라 오고 있는 걸까? 불안을 이겨내지 못한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바로 지척에서 따라오던 에우뤼디케는 바람에
까부르는 쭉정이처럼 휘청거리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기겁한 오르페우스가 황급히 손을 내밀었고, 에우뤼디케도 놀라 손을 뻗었지만 엄청난 회오리가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원망과 절규에 찬 눈빛을 던지며 에우뤼디케는 저승의 어둠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 규칙을 망각한 탓에 오르페우스가 잃어버린 것은 에우뤼디케뿐이 아니다. 그는 저승의 신들까지 감동시킬 수 있는 노래와 자신의 정체성까지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갈가리 찢겨 죽었다. 사랑이 떠나고 난 뒤에는 모든 것이 빛을 잃는다는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오르페우스가 비극적 최후를 마친 후, 그가 부른 노래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오르페우스를 기렸다. 그가 부른 노래의 힘과 효력은 간결한 시로, 간절한 기도로, 신비한 주문으로 변이를 일으키며 여전히 세상에 통용되고 있다.
심종록: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는개 내리는 이른 새벽』,『 쾌락의 분신 자살자들』 등의 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