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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19. 2019

무엇이 21세기를 지배하는가 (2)

- [새책이야기] 최민자 지음, 모시는사람들 



하늘과 땅과 산과 달과 구름과 바다 

...

지리산에서 춘안거(春安居)에 들었을 때의 일이다. 

...

지리산과 마주한 거실 벽면의 통유리창은 액자가 되고 

연초록빛 파스텔톤의 지리산은 그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박혔다. 

...

사흘째 되던 날, 지리산의 ‘안개 설법’이 시작되었다. 

안개가 순식간에 온 산을 감싸면서 일체의 경계가 사라지고 

마침내 거실 창 액자에 박힌 지리산은 형체도 없이 하얗게 변해 버려 

하늘인지 바다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

그것도 잠시, 

안개는 산 정상에서부터 걷히면서 산 중턱에서 윤무를 하기 시작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지리산의 안개 춤사위는 산 정상을 향해 솟구치는가 하면, 

어느새 그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곤 했다. 

종일토록 신비스런 안개 춤사위로 진행된 지리산의 생명에 관한 심오한 설법을 경청하노라니, 

선화(仙畵) 같은 삶을 살았던 조선시대 진묵 대사(震黙大師)의 선시(仙詩)가 떠오르며 

그의 장대한 춤사위가 안개 속에 묻어오는 듯했다.

...

하늘은 이불, 땅은 요, 산은 베개 天衾地席山爲枕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는 술독이라 月燭雲屛海作樽

크게 취해 거연히 춤을 추나니 大醉居然仍起舞

긴소매 곤륜산에 걸릴까 저어하네 却嫌長袖掛崑崙 


봄(seeing)은 봄(spring)이다 


영성이 계발될수록 ‘봄(seeing)’은 깊어지고 

‘봄’이 깊어지면 궁극적인 개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니, 

봄(seeing)은 곧 봄(spring)이다. 

영성의 개화가 일어나는 것이니, 

우주의 봄이다. 

...

보는 주체가 사라지니 대상도 사라지고, 

주체와 대상이 모두 사라지니 투명한 하늘마음이 드러난다. 

...

달을 듣는 강물과도 같이 하늘마음은 진리의 달을 듣는다. 

...

‘봄’은 곧 ‘하늘을 들음(聽天)’이다. 

하늘파동에 자신을 동조시키는 것이다.

 ...

‘하늘을 들음’이 곧 참앎이다. 

이원성을 넘어선 진정한 앎에서 존재계 자체에 대한 전적인 수용이 일어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관조(contemplation)가 일어난다. 

...

참 알면 평등성지(平等性智)가 드러나므로 만유를 차별 없이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는 추동력을 지니게 된다. 

...

참앎은 전체적이므로 지식(knowledge)에서 일어날 수 없다. 

지식 저 너머에 있다. 

...

지식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면, 참앎은 손가락 너머에 있는 달이다.


* 이 글은 "무엇이 21세기를 지배하는가"(최민자 지음)의 제1장 <'한'사상> 본문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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