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필자 이진구 님의 '도서소개요약문'을 모시는사람들 편집실에서 수정, 편집한 것입니다.)
종교자유, 해묵은, 그러나 여전한 주제
제1야당 대표가 불교 행사에 참여해서, 부처님께 합장례를 표하지 않은 문제를 두고 종교계 공방에 이어 정치권 공방으로 비화하는 중이다. 포문은 불교계에서 먼저 열었다. 조계종은 '정치인으로서 개인의 종교 신념을 공공연히 표현하고 고집하려면 공당의 대표직에서 사퇴하라'는 요지의 성명서을 발표했고, 이에 대해 야당이 반발하며, 기독교계(보수)에서 다시 불교계에 '좌경화'라는 해묵은 색깔론을 덧씌우며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그에 앞서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으면서 ‘종교자유’의 한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2000년대 초부터 공론화되어 왔던 '양심적 병역거부'가 초기에 압도적인 반대 여론에서 최근 찬반 양론이 비등해지더니, 여론에 비해 선제적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 이름은 많은 국민들의 지적에 따라 ‘종교적 병역거부’로 변경되었다.] 이 판결은 '종교자유'의 범위 (넓게는 '양심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지난 20년 사이에 크게 성숙된, 우리 사회의 의식 진보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최근의 이 두 사건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종교자유'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 '민주화 시대'에 접어든 지도 수십 년(?)째인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종교자유'가 국가적 관심사안이 된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사실 대한민국은 각종 지펴상으로 세계적으로 1, 2위를 다투는 '종교자유' 국가로 꼽힌다.] 위의 사건들은 단순한, 일회성의 해프닝인가, 아니면 ‘종교자유’는 여전히 깊은 뿌리를 가진 우리 사회 갈등의 뇌관인가?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종교자유가 문제인가? 종교탄압 국가로 지목되는 북한이나 천주교 박해의 시대였던 조선후기, 혹은 식민지 시대나 군사정권처럼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이 통치하던 시대 같으면 몰라도 민주화된 이 시대에 종교자유가 문제가 되는가? 이러한 물음들을 던지면서 종교자유에 대한 논의를 철지난 과제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종교자유'는 안심해도 좋을 만큼 성숙되어 있는가? 시선을 넓혀 민주화 이후 시기인 2000년대 초의 풍경을 더듬어 보자. 당시 불교 신자인 오태양은 자비 사상과 평화주의 신념을 내세워 병역을 거부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 논쟁에 불을 붙였고, 대광고 고등학생으로서 채플 자유화를 요구하면서 1인 시위와 단식투쟁을 벌인 강의석은 학교 안의 종교자유 문제에 불을 지폈으며,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이명박은 기독교 집회에서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내용의 봉헌서를 낭독하여 이른바 ‘서울시 봉헌 사건’을 일으켰다. '나와 우리 가족'의 터전은 물론, 내 삶터이기도 한 '서울시'를 '저희들의 하나님'에게 바친 서울시장은 경찰에 체포되지도 않았고, 법적 제재도 받지 않았다. 그래도 되는 일일까? '종교자유'의 이름으로, 그러한 '도둑질'까지도 용납될 수 있을까?
민주화 이후 시기 종교자유 문제의 양상
발단의 경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 세 사건은 병역(군대), 교육(학교), 공직사회에서 종교자유가 여전히 뜨거운 쟁점임을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에서 종교자유 문제가 일어나는 곳은 이러한 영역만이 아니다. 일요일 시행하는 국가고시를 평일에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헌법소원,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자녀의 수혈 수술 거부, 교도소나 복지시설에서의 종교행사 강요, 종교재단 교육기관의 특정 종교인 채용 등과 관련해서도 종교자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종교자유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띠면서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있지만 그동안 학계의 연구는 개별 사안 중심의 연구였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의 종교자유 문제의 전반적 성격과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우리 사회, 우리나라에서 종교자유 문제는 언제부터 문제가 되었을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이진구 교수는 <<한국근현대사와 종교자유>>에서 우리 사회에서 '종교자유'라는 말이 생성되고 그 의미가 변천되어 온 과정을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조망하면서 종교자유의 시기별 특성과 함께 구조적 측면에도 주목하였다. 시기적 측면에서는 개항기, 일제하, 군사정권기, 민주화 이후 시대 등 네 시기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종교자유 문제의 역사적인 변천 과정
개항기의 종교자유 담론은 서구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의 선교활동을 보장하는 교두보 역할을 주로 한 반면, 일제강점기에는 사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 신사참배, 종교단체법의 제정을 둘러싼 식민권력과 선교권력의 대립 구도 속에서 종교자유 문제가 주로 부상했다. 군사정권하에서는 진보적 개신교 진영의 선교 자유 담론과 정부 관료의 정교분리 담론의 충돌 과정에서 종교자유가 주요 이슈로 부상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및 미션스쿨과 관련된 종교자유 문제는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었다. 민주화 이후에 비로소 양심적 병역거부와 미션스쿨의 종교자유가 공론의 장으로 떠올랐다.
민주화 시기 이후부터 특히 공직자의 종교자유 문제를 비롯하여 시민단체의 종교법인법 제정, 보수 개신교 진영의 해외선교, 반기독교 진영의 안티기독교운동과 관련해서도 종교자유가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 연장선상에서 최근에는 특정 종교의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종교활동 내지 종교적 신념표현을 ‘종교자유’로 포장하거나 강변함으로서, 종교자유라는 말의 오염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서, 종교자유 문제는 ‘살아 있는’ 주제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특히 이렇게 놓고 보면, 이번 황교안 사태의 유형과 함의가 뚜렷이 드러난다.
종교자유 문제의 네 가자 구조 유형
이 책에서는 또 구조적 측면에서 한국근현대사에서 종교자유 문제를 네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첫째 국가의 일반법규가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과 충돌한 경우, 둘째 국가가 제정한 종교 관련 법안이 종교단체의 자율성과 충돌한 경우, 셋째 종교계의 기관선교가 국가의 법질서나 타인의 종교자유와 충돌한 경우, 넷째 공직자의 종교자유가 정교분리 원칙(종교적 중립 원칙)과 충돌한 경우다. 이 네 유형의 내용과 성격은 맥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각 유형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빚어나갔는가를 살폈다.
종교자유, 여전한, 서로의, 모두의 문제
이 책은 종교자유의 선험적 본질과 의미에 대한 추상적 논의보다는 누가 어떤 맥락에서 누구를 상대로 종교자유를 내세우며 그 담론의 효과는 무엇인가를 추적하는데 주목했다. 즉 각 주체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종교자유의 규범과 이상을 활용하는 ‘종교자유의 정치학’에 관심을 두었다. 특히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국가권력이 종교자유를 지배의 테크놀로지로 활용하는 방식과 종교권력이 자기 방어적 선교의 도구로 종교자유를 활용하는 방식에 주목하였다.
그릇된 행태를 드러내는 일부 종교인들을 이해(?)하고 타개할 방안을 고민하는 분들, 종교단체의 부당한 권력행사, 그리고 종교가 정도로부터 이탈하는 현상에 관심을 갖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