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소개, 조춘영 지음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풍물굿
통일의 그날에 벌일 ‘나라풍물굿’을 할 날을 그리며
2019년 3월 1일, 광화문 사거리에서 시청역 광장에 이르는 세종 대로에는 ‘전국 팔도’에서 모여든 수백 개의 풍물패, 수만 명의 풍물꾼들이 울리는 ‘만북’(만 개의 북) 소리가 ‘웅장하고 신명나게’ 울려 퍼졌다. ‘만북 울림!’이다. 이날 전국의 ‘풍물꾼’들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풍물굿판에 이어 <만북으로 열어 가는 새로운 100년 선언문>을 선포, 채택하면서 3.1운동 100주년을 ‘새로운 100년, 생명의 새 세상’으로 향해 가는 원년(元年)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모인 이들 모두가 ‘굿쟁이’이고 보면, 이날의 선언문은 단순한 ‘말모이’가 아니라, 신력(神力)을 갖춘 기도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풍물굿’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날이 된 것이다.
그에 앞서 2014년에는 ‘농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해방 이후 무형문화재 정책과 제도가 생긴 이래 국가무형문화재와 지방무형문화재에 40여 개의 풍물 단체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와 5, 60년대 ‘근대화 지상주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농악’은 한때 천덕꾸러기 신세를 지나 ‘절멸’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이후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며 여성농악단과 사물놀이를 중심으로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하여 80년대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대학풍물굿 운동을 통해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고, ‘사물놀이’의 세계화를 거쳐, 당당히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풍물굿 문화와 21세기의 풍물굿
농악/풍물굿은 한민족의 대표적인 기층 오락, 예술이다. 전통적으로 민간에서는 세시풍속으로 일 년 중의 각종 절기에 맞춰 다양한 쓰임새와 목적으로 농악/풍물굿을 놀았다. 농악/풍물굿은 그 양식 안에 음악, 무용, 연극, 놀이, 종교, 군사, 교육, 사회, 문화 등의 요소가 망라되어 총체문화를 이룬다.
풍물굿은 바로 민중 자체요, 민중생활의 요체이며 한민족 시민대중문화의 원천이다. 온갖 신과 만나게 해 주는 매체다. 굿은 신이다. 신명이다. 신탁이다. 일상 속에서 성스런 것들을 끌어들여 정성으로 놀리고 참 마음으로 풀어내어 현실 가운데 어려움을 깨나가는 도구다. 전국의 마을 당산 앞에서, 중앙마당에서, 집집 처소에서 장구, 징, 쇠, 소고들 풍물소리가 끊긴 적은 없었다.
21세기에 들어와도 풍물굿은 죽지 않고 새로이 재창조되어 깊어지며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풍물굿은 한편으로 급격하게 탈-맥락, 재-맥락화 되어 가고 있다. 특히 촛불시민혁명 과정에서 풍물굿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또 다른 흐름으로는 10여 개 대학에 전통연희과에서 전공자들이 풍물굿을 공부하고 졸업한다. 무형문화재 지정을 준비하고 있는 지역 풍물굿, 토박이 풍물굿이 여전히 산재해 있다. 풍물굿은 이 시대 그리고 21세기를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가고 있다.
상쇠, 풍물굿의 지휘자이자 예술가이자 살림꾼!
이러한 풍물굿의 저력과~ 생명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전국에 얼마나 많은 상쇠가 있을까? 굿문화와 풍물굿이 진정 이 시대에 필요한가? 어찌하여 그러한가 직접 묻고 싶었다. 어떠한 실천들이 있었고, 어떠한 지향이 있었고, 그래서 지금 우리 풍물굿은 어디로 가는 있는지 답을 듣고 싶었다. 답은 현장에 있다.
<하늘땅을 열어라, 캥~마지캥 놀아라>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필자가 오늘의 풍물굿 현장을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게 풍물굿문화를 이어줄 ‘다리 공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고, ‘입덕’을 베풀어[인터뷰] 일구어낸 소중한 공덕의 탑이다. 저자는 세계, 전국, 지역, 지방, 마을을 누비며 풍물굿의 현장을 섭렵하였다.
저자(조춘영)는 풍물굿 연구자, 담론가로서 이 시대 풍물굿 현장을 기록하고 풍물굿쟁이의 소리를 담아야 할 사명감에 넘치지만, 그것인 힘겨운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노동, 두레적 품팔이라는 생각이 뚜렷하다. 그중에서도 이 책에서 풍물굿의 굿쟁이(지휘자)이자 지도자이며, 살림꾼(일꾼)이자 스승이고, (풍물) 사상가이자 예술가로서의 ‘상쇠’에 주목하였다. 무엇보다 상쇠는 시대를 읽고 예술문화를 말하며 지역과 생명공생체를 이끌어가야 할 감수성과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다.
여전히 대다수 민속학자나 풍물굿 연구자들이 ‘전통문화’라는 범주 속에서 풍물굿을 바라본다. 풍물굿 연구의 결과물은 무형문화재 정책이나 제도에 포함된 일부 단체들 혹은 전통마을풍물굿으로 한정된다. 저자는 이러한 흐름에서 새 길을 내고 이 시대 담론, 시대 의식이라는 지평에서 풍물굿을 바라본다. 그래서 20세기 풍물굿이 아니라 ‘21세기 풍물굿’, 즉 풍물굿의 현재와 미래를 상쇠들과 더불어 조망하고자 한다.
‘21세기 상쇠론’ 전과 후
이것이 저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업이 아니다. 2016~2017 박근혜 국정농단 촛불집회에서 풍물굿쟁이들은 매주 풍물굿판을 벌였고, 저자는 이를 동영상과 면담 구술집으로 기록했다. 1차 결과물로 《새나라로 가는 길굿 - 촛불시민혁명 풍물굿에 대한 기록과 담론》을 세상에 내놓았다. 박근혜국정농단 촛불집회는 이미 과거지만 촛불시민혁명은 과거형, 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시대의식의 연장에서 본 ‘21세기 풍물굿 상쇠론’은 기획되었다. 이제 풍물굿쟁이도 당당하게, 이제 풍물굿이라는 이름도 떳떳하게, 이제 무시와 멸시와 천시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풍물굿판을 벌이고자 하는 염원도 담겨 있다.
촛불시민혁명이 현재형이듯 풍물굿도 현재형이다. 과거, 역사, 전통이라는 옛것 프레임으로 한정할 수 없다. 왜? 전국의 수많은 풍물굿쟁이와 광장, 마당에서 벌인 풍물굿판이, 박근혜 국정농단 촛불집회에서 새나라로 가는 길굿이, 2019년 3.1 100주년 기념 만북울림 나라굿이 증명하였다. 그래서 21세기 풍물굿 상쇠론이다. (풍물굿을 농악이라는 20세기 무형문화재 제도 속 국가주의에 예속된 종목으로 잡아놓을 수 없어서 21세기 미래 시점을 펼쳐내고자 했다.)
‘21세기 상쇠론’은 계속되어야 한다
전국 30여 명의 상쇠를 목표로 시작했지만 남녀노소, 지역과 영역을 고려하여 25명에서 그쳤다.(이번에 권1 그중 10명을 수록하였다. 나머지는 곧 나오게 될 다음 책에 수록된다) 풍물굿이라는 연구 주제로는 최초로 전국 범위에서 다양한 (풍물적) 배경을 가진 상쇠들을 만났다. 면담을 하기 전에 이미 수년 전부터 교류를 하였음은 물론이고, 실제 면담에 들어가서도 두 번의 밤을 새고서야 면담 완결된 상쇠도 있고, 면담 후 이어진 이틀간 뒷풀이를 계속한 경우도 있었다. 비오는 날 강화 들판을 보며 꽹매기 소리도 주고받고, 보존회 사무실에서 수시로 결재를 주고받는 가운데 진행된 수고로운 면담도 있었다.
저자의 후일담에 따르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간 겪어온 고난과 고민의 고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린 일은 다반사요, 같은 동지로서 굿판을 지키는 일의 어려움에 공감의 눈시울이 번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왜 이 작업을 시작했을까? 꼭 했었어야만 했나?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상쇠를 만날 기대와 설렘에 충분히 행복했으니 이제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 책을 읽는 당신, 굿쟁이들의 일이라고 고백한다.
무엇보다 통일의 그날에 남과 북의 모든 풍물패가 모드들어 휴전선을 넘나들며, ‘지난 역사의 원망과 한숨을 모두 씻어내며, 신명으로 새 나라 건설을 축원하게 될 ’나라풍물굿’을 벌일 것을 기약하고 있다.
권1 말미에 논문 <21세기 풍물굿 현장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실어 풍물굿 현장의 다양한 활동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였다. 권2(2020년 하반기 출간 예정)에서는 종합적인 차원에서 ‘21세기 풍물굿 상쇠론’을 제시할 예정이다.
이 ‘애기 상쇠(김영윤)’는 무을마을의 농악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보존회가 새로이 활기를 띠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음원을 담아내고 인터뷰를 통해 구술 자료까지 정리하고 있었다. 전수를 마치고 ‘이 젊은 굿쟁이들에게 어떤 전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풍물굿 선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숙연히 고민에 빠졌다. 거기서 전국 풍물굿쟁이들이 걸어온 길을 정리하고 소개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상쇠들이 바로 풍물굿판의 중심축이며 굿판의 살아온 역사가 아닐까? 상쇠의 증언을 통해 풍물굿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 가자는 뜻을 세웠다. 바로 ‘21세기 풍물굿 상쇠론’이다. (13쪽)
김태훈 상쇠는 영남대 민속연구회 시절부터 지금까지 풍물굿을 놓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학습하는 굿쟁이이다. 경상도 채상소고재비로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고도 민요, 탈춤, 사물놀이, 설장구, 고깔소고, 비나리를 지금도 찾아다니며 학습하고 있다.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이야기하길 좋아하고 악가무(樂歌舞)를 두루 즐길 수 있는 진정한 굿쟁이로 농악, 풍물굿, 전통공연예술 판에 대해 비판 의식을 가지고 소신을 피력한다. 경상도 풍물굿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와 공연예술 분야 전반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어 중원의 숨은 고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7쪽)
최용 상쇠는 전대 상쇠의 명성을 이어 영광의 마을굿과 신청걸궁의 전통을 전승,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전라도에서는 보통 좌도, 우도 농악이란 권역 설정을 하고 좌도는 마을굿, 우도는 전문 연희굿이라는 이분법이 통용되지만 실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영광의 우도농악이 그런 면에서 소중하고 의미 있는 기준점을 제시한다. 한 예로 현재 영광, 담양, 고창, 광산 농악의 잡색탈은 전경환이 제작하여 유포한 것이다. 지금 최용 상쇠는 신청걸궁의 뿌리 위에서 영광 마을굿 나아가 영광 고을굿을 만들어 가고 있다. (78쪽)
순천에는 두엄자리라는 놀이패가 있다. 탈패, 민요패, 몸짓패와 더불어 놀이패가 한 시대를 풍미하던 때가 있었다. 두엄자리는 민중예술, 공동체 놀이의 역사와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김명수 굿쟁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조풍물패로 풍물굿판에 들어와 놀이패 두엄자리에서 순천의 풍물굿판을 만들어 온 상쇠다. 순천 시민사회의 지역 활동은 물론 공동체 문화를 가꾸어 온 두엄자리와 김명수 상쇠의 굿 세계 모두 세상에 소개하고 싶었다. 결국 지금 우리의 풍물굿을 미래세대들이 향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면 풀뿌리 시민과 지역을 발 딛고 서지 않는다면 가능한 일일까? (121쪽)
시대의 아픔과 모순이 있다면 외면하지 않고 공동체와 더불어 해결하고자 하는 게 풍물굿 정신이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세상에 드러나고 11월 촛불집회는 들불처럼 번졌다. 서울 광화문에서는 예술인들이 캠핑촌을 만들고 상주하며 투쟁하였고, 매주 풍물굿판도 빠짐없이 벌어졌다. 전국에서 촛불집회가 일어났는데 부산에서는 특히 풍물굿패 소리결이 지속적으로 ‘새 나라로 가는 길굿’ 기치 아래 시국 풍물굿판을 벌여 냈다. 김인수 굿쟁이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6·15공동선언실천 정신으로 소리결을 창단하였고 전업인과 동호인이 공존하며 청소년과 대학생을 아우르는 풍물굿판을 일상에 녹여 내고 있다. (161쪽)
1990년대 청년 풍물굿쟁이 이찬영은 노동운동 풍물판의 스타급 강사이자 상쇠였다. 대학생이었지만 일찌감치 노동 현장의 강사로 아스팔트 위 최루탄 풍물판의 선봉에서 판을 이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덩치는 산만 하고 성격이 불같아서 마주하는 이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넘친다. 인천의 노동자 풍물패 ‘더늠’의 원년 멤버로, 인천의 노동운동과 풍물굿판 그리고 인천 자체의 변천을 몸으로 겪어 온 굿쟁이 활동가다. 2016년 박근혜 국정논단 촛불집회 초반 풍물인도 시민들과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내자는 ‘풍물인시국선언’을 최초로 제안하며 풍물인시국선언 굿판을 벌였다. 또 우연히 2017년 음력 정월대보름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대동강강술래’ 판을 벌여 수십만 시민의 마음과 몸을 들었다 놨다 했다. (197쪽)
이성호는 수원 삶터의 창립 멤버이자 20여 년간 대표를 맡고 있다. 수원지역 풍물패, 사회단체와 더불어 풍물굿은 물론 다양한 정치,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또 풍물굿쟁이로 전국 다양한 지역의 풍물굿과 민요, 놀이 등을 사사하였다. 삶터는 연중 공연, 행사가 100여 회를 상회하며 집회에도 적극 참여한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수도권 풍물모임’의 주요인물이며 세월호 관련 행사에 적극적이며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 결과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박근혜게이트 촛불집회에서는 거의 빠짐없이 풍물을 울렸다. 광장의 풍물굿 난장에서 그의 신명은 시민들을 웃고 울고 놀고 즐기도록 이끌었다. 현장에서 연행되는 그의 비나리는 즉석에서 만들어지고, 관객과 더불어 노래하고 춤추었다. 상쇠보다는 굿쟁이, 굿쟁이보다는 잡놈으로 불렸으면 좋겠다는 ‘잡놈 이성호. (245쪽)
오랫 동안 기다렸다. 고창굿 이명훈 상쇠와의 대화를. (중략) 장장 5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보존회장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당시 얼마나 바쁘시던지 중간중간 결재를 주고받는 건으로 면담은 수차례 끊어지는 가운데, 겨우 진행되었다. 현재 고창농악보존회의 산증인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황규언 상쇠를 모시고 멋스런 어르신 굿쟁이들과 고창의 여러 세대가 어울려 발전해 온 역사는 이명훈이라는 개인의 생애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고창에 뿌리를 내리고 전적으로 굿쟁이의 삶을 살겠다고 작정한 것은 아니지만 선대의 굿쟁이 선배들과 고창에서 받은 은혜를 되갚다 보니 오늘에 이르게 되었단다. (297쪽)
임인출 상쇠는 30여 년 동안 서울, 경기 지역에서 풍물굿을 성실히 일구어 온 풍물굿쟁이다. 터울림 활동을 시작으로 성남에서 여러 풍물패와 함께 20년 가까이 지역의 건강한 풍물굿을 만들어 가고 있다. 성남에서는 1년의 세시절기마다 풍물굿판이 열리는데 그 중심에 임인출이 있다. 서울, 수도권의 집회풍물길놀이에서 전체 상쇠로서 이끄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최근 미국산쇠고기, 세월호, 백남기 농민, 싸드 관련 행사 등 시국 현장에 적극 참여해 왔다. 2016-2017 박근혜 국정농단 촛불시민혁명 과정에도 대다수 참여하였고, 촛불 비나리를 창작하여 수차례 연행하였다. (361쪽)
수원 칠보산 아래 아파트 단지에는 추석 전 주말을 기해 강강술래와 풍물굿판이 온 동네 사람들을 들썩이게 만든다. (중략) 성인 풍물패들은 가벼이 생활한복을 맞춰 입고 풍물악기를 들었다. 어린이집 아이들과 초중고 학생들은 때때옷으로 한복을 차려입고 소고를 들고 춤을 추면서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를 가로지른다. 어른과 아이들 풍물 대열에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끼어들어 칠보산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수백 명 인원이 풍물에 맞춰 춤을 춘다. 운동장을 큰 원으로 채우는 강강술래를 소리꾼과 놀이꾼이 이끌며 한참을 논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틀리고 말 것도 없이…. 칠보산 아파트 학교운동장은 달빛을 받아 환하고 따뜻하고 자유롭고 신난다. 황순주 굿쟁이는 이 공동체에서 풍물을 이끄는 상쇠이자 판을 벌이는 기획자다 (391쪽)
현재 사물놀이는 전 세계 170여 개국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풍물굿도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상당히 많이 전파된 상황이다. 중국 조선족은 연변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양식의 농악문화를 지속,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북한에서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농악문화가 여전히 살아 있다. 이에 대해 새롭게 환기하고 이후 어떻게 연결하고 연대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현재 급속도로 진척되고 있는 남북통일의 기운에 농악, 풍물굿 문화가 충분히 한몫을 할 수 있다. 우리 동포의 공통분모에 아리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농악, 풍물굿도 있다. 미국 풍물 단체인 풍물인스티튜트의 제안으로 몇 년 동안 진행된 8·15 광복절 ‘얼씨구 프로젝트’는 미국, 중국, 일본, 한국에서 세계 한민족의 결속과 단합을 꿈꾸었다. (4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