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커넥투스 이야기 1 - 초연결 세계와 신인류의 연금술적 공생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세계관인 ‘초연결 세계’에서 ‘초-연결된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커넥투스(HOMO-CONNECTUS)’를 이야기할 때다.
호모커넥투스는 지금-이후 시대에 새로이 인식된 세계상, 새로운 인간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신조어(新造語)이다. 호모커넥투스는 인간과 세계의 초연결성이 단지 가시적 세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양자 세계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데로 이어진 이 우주의 근원적 양태로서, 하나와 전체는 불가분의 전체성 속에 이어져 있음, 곧 전체로서의 생명을 발견하게 한다. 사람-사람, 사람-만물, 만물-만물이 상호 연결된 초연결 세계의 운동 원리로서 창조, 융합, 연결, 확장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다가온 “호모커넥투스 시대”를 살아가는 뉴노멀의 초지혜(超-智惠), 자유의지의 평화적 확장 가능성을 열어 준다.
우리는 연결된 존재다, 존재는 곧 연결이다
‘초연결’이 새로운 시대-존재 인식의 화두가 되었다. 역설적으로 ‘기후위기’가 인간은 물론 이 지구 생명 공동체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당면한 현실에서, 인간의 행위가 이 지구-생태계의 연결고리 속에 긴밀히 이어져 있음을 극적으로 확인한 것이, 이러한 인식-“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의 ‘폭발적 확산의 스모킹 건’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 ‘지구사회’를 ‘온전한 하나로 실감’하게 하는 ‘코로나19 사태’는 세계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과 ‘우리’가 연결된 존재임을 목숨을 담보로 하여 실감하게 한다. 이것을 즉자적 현실 인식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차원의 시대-존재 전개로서의 ‘호모커넥투스’ 시대의 인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위기는 그 ‘연결’을 내적 자아, 참 자아의 수준에서 가져오지 못하고, 외적-물질적-기술적인 차원에서만 발전시키고 누리려고 한 데서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인류, 간 생(生)-물(物)의 미물(微物)과 씨름하다
보이저 2호는 지금부터 1년여 전에 ‘인터스텔라’ 즉 ‘별과 별 사이의 공간’으로 진입하였다. 인간은 드디어 문자 그대로의 ‘우주여행’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2020년의 인간은 생명과 생명 아닌 것은 중간에 가로놓인 ‘바이러스’에 걸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인간의 ‘앎의 방향’이 ‘바깥’으로 향하는 데는 장족의 발전을 하였지만, ‘안’을 들여다보는 데는 아직도 38억 년 전 수준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인간 존재(개체)가 이미 수많은 ‘다양한’ 생명체가 연결로서 ‘살아가는’ 복합적 ‘생명군체(生命群體)’라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인간의 살이 38억 년 전 발생 이래로 그 ‘존재 양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박테리아와도 떼려야 뗄 수 없이 이어져 있음을 충분히 분명히 확인하는 이 시대에, ‘연결된 존재로서의 인간’ 즉 ‘호모커넥투스’를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류가 도달한 최고의 ‘지금-여기’이다.
과학에서 영성으로, 영성에서 과학으로의 상호접근
오늘날 현대 과학의 ‘양자역학’ 인식 체계는 있음(입자)와 없음(파동)은 서로 넘나드는 것이며, 존재-비존재의 통일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실상이라는 데까지 도달하였다. 이것은 결국, 보이는 것(망원경이나 현미경까지 포함한)만으로는 우리 자신(인간과 우주)를 온전히 설명하고 이해할 수 없으며, 보이지 않는 것, 계산으로도 계산될 수 없는 영역까지를 염두에 둔 세계 이해를 기반으로 할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 온전히 실현해 나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 그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완벽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안전한 방역이 시작되었던 것도 같은 원리이다. 한마디로 “과학을 통한 영성으로의 접근과 영성을 통한 과학으로의 접근”이 상호 교섭과 접근이 필요한 시대이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연결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인간의 불행은 그 사실을 망각하고 때로 부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인간은 때로 지적인 성찰로써, 때로는 코로나19와 같은 파멸적 위기 속에서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거듭 배우고 거듭 경험하고, 거듭 훈계 받아 왔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레떼의 강’을 건너서 ‘태어 나왔다.’ 21세기를 멀리 앞둔 20세기에 인간은 이미 ‘연결의 시대’로서의 제4차 산업혁명의 단초들을 마련해 왔음에도, 그 근원까지 도달할 엄두를 못 내었다. ‘정보화 시대’는 연결로서 생산력이 보장되는 ‘정보’에 무게중심이 있었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그 정보의 ‘연결’에 무게중심이 주어지게 된 것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연결’로서 이미 우리는 사실상의 ‘AI 세계’ ‘디지털 지구’ 시대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기후위기’와 더불어 우리는 ‘연결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우리는 빅뱅의 순간부터 연결된, 호모커넥투스다
우리 존재의 본향인 ‘연결’이 ‘위기’로 인식되고 작용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사회에 인간이 직면한 비극의 실상이다. 이로부터 전회(轉回)하여, 이 ‘연결’이 낳은 ‘위기’를 연결성의 완성으로 통한 새로운 존재, 새로운 시대, 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의 계기로 삼는 것이 바로 ‘호모커넥투스’의 참된 의미이다. ‘위기의 연결’은 연결을 단지 물질세계의 일로서, 근대 산업사회의 생산성 중심의 사회 구조의 구조적 위기(불황)을 타개하는 수단으로서만 활용하는 데서 나왔다면, ‘호모커넥투스 시대’는 ‘초연결-초융합-초지능’을 기반으로, 우리 존재가 본질적으로, 저 멀리 빅뱅 이전의터 이미 연결된 존재임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이 분절-지향의 세계의 재편(再生)과 재조(再造), 재귀(再歸)와 재생(再生)을 도모하고 기약하는 것이다.
호모커넥투스의 시대는 오래전에 이미 도래하였다
이러한 우주-존재 인식은 일찍이 ‘인드라망’의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존재 인식에서 예고되었다. “이 우주는 ‘인드라망’과도 같이 상호 연관과 상호 의존의 세계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만물만상이 끝없이 상호 연결된 생명의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적 인식도 ‘양자 입자의 비국소적 연결’이라는 ‘양자 얽힘’ 개념으로 이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진공관의 발견/발명이 전자적 계산기(=컴퓨터) 시대를 열었듯이, 이러한 ‘연결-양자얽힘’의 발견/인식이 새롭게 열어낼 세계가 바로 ‘호모커넥투스 시대’이다. 양자역학을 모르고서도 이미 양자역학적 기반에서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의 사용이 보편화된 것처럼, ‘호모커넥투스 시대’는 이미 우리 속에서 도래해 있었다. 이를 지적-체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이 책의 역할이라면, 이를 시급한 존재론적 과제로 다그치는 것이 금번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이때 ‘호모커넥투스’ 인식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식이 우리 자신이 존재와 이 우주의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영성적 인간 호모커넥투스 4차 산업혁명 시대 신인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듯이 ‘강(强)-인공지능’의 출현이나 ‘기후위기’ ‘생물종 다양성 감소’ ‘식량과 물 부족’이라는 위험요소에 의해서 디스토피아 사회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호모커넥투스’로서의 신인간(新人間)-신인류(新人類)이다. 호모커넥투스는 ‘초연결-초지능’이라고 현실-물질 중심 세계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그동안 인간이 ‘영성’이 ‘영’이라고 표현해 온 보이지 않는 존재의 측면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데서부터 인간 세계의 재편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가능해진 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참모습이다. 시대의 참모습일 뿐만 아니라, ‘참자아’의 실상이기도 한 것이다.
호모커넥투스, ‘포스트 물질주의’ 시대의 지구-행성 거주자
이러한 참자아의 실상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 자각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오늘 인류와 지구사회-생명공동체가 직면한 위기를 올바르게, 참으로 ‘치유’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호모커넥투스’로서의 우리 존재의 실상을 이해하는 공리(公利)이다. 호모커넥투스가 가는 길은 ‘꽃 길’은 아니다. 호모커넥투스 시대의 성공적인 개막과 유연한 전개를 위하여, 인간은 기존의 분절된 자아를 기반으로 형성해 온 문명적, 역사적 체계로부터 결연하게 탈(脫)-출(出)을 감행하여 ‘포스트 물질주의 시대’를 엶으로써, 도약적 진화(公進化)를 이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심, 자-타, 아-비아, 인간-사물의 이원성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인문 체계의 전복적 재구축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모두는 공생적 존재로서, 호모커넥투스다
근대 이후 세계를 조형해 온 것은 ‘물-심’ ‘자-타’ 이원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은 ‘물질 일원주의’ ‘자기 일원주의’이기도 하다. 근대 세계 인식에서 결정적으로 결여된 것, 그 병근(病根)은 바로 ‘생명’에 대한 이해-없음, 혹은 ‘이해-못함’이다. 오늘날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기후위기나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과 우주 존재의 생명성’이 세계와 인간의 ‘물질적인 존재성 또는 존재의 물질성’과 둘이 아닌 하나이며, 더 근본적인 것은 전자 - 즉 생명성임을 말해주는 사건과 현상이다. 이것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그리고 그 생명의 생명 원리는 인간-인간, 인간-생물, 인간-자연, 인간-사물의 공생적 관계임을 깨닫는 데서, 위기의 극복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호모커넥투스 시대의 뉴노멀한 교양이다.
4차 산업혁명 속에서, 인간의 자유, 자유로운 인간은?
호모커넥투스가 존재함으로써 열리는 초연결사회는 현상적으로는 “사물인터넷(IoT)·만물인터넷(IoE), 가상 물리 시스템(CPS),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을 중심으로 플랫폼 기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다. 문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혁명이 가져올 혜택만큼 초연결사회가 직면할 사이버 리스크”도 크다는 점이다. 혜택의 최대화 -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인간 제어’ 기능 확보 문제, 기술 사회의 윤리 정립 문제, SNS에서의 유해 정보 확산 방지 문제 등 사이버 세상의 ‘기본’을 세우는 일” 등이 요구된다. “사회적 제 불평등의 심화”도 큰 문제이다. 호모커넥투스의 본질을 깨우치고 확장시키는 것은 이러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배, 인간의 승리와 자연의 패배, 물질적-성장적 문명의 승리와 정신적-공감적 문명의 패배로 귀결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다. 모두의 승리는 인간이 ‘자유의지가 곧 필연이 되는’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데서 성취되는 것이다.
티핑 포인트냐, 오메가 포인트냐, 원픽! 호모커넥투스
지금의 인간에게는 다섯 번의 ‘대멸종’에 이은 첫 번체 ‘초멸종’으로 나아가는 ‘티핑포인트’를 먼저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물질계와 의식계가 상호 조응하여 초연결-초융합-초지능의 ‘호모커텍투스’ 시대로 나아가는 ‘오메가 포인트’를 먼저 맞이할 것인가 하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매순간 - 동시적으로 두 개이 포인트는 교차한다. 빨간 선을 끊느냐, 파란 선을 끊느냐에 따라 폭탄이 터질지, 선물 보따리가 터질지가 결정된다. 그 둘은 백지 한 장보다도 얇은 ‘양자 하나만큼’의 차이에 따라 나뉘게 된다. 인류사의 다음 페이지가 ‘호모커넥투스’ 시대가 되고, 신인간-신인류로서 호모커넥투스가 열어가는 ‘뉴 노멀’ 시대의 ‘첫 거주자’가 지금의 인류-지구사회 공동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