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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17. 2016

다시 읽는 신인철학(44)

오래된 미래의 철학, 동학 다시 읽기 

5. 나는 나뭇잎이 아니라 나무 


한 가지 비유를 들어보자. 

가령 여기에 한 나무가 있다 하자. 나무에는 천지만엽(千枝萬葉)이 달려 있다. 그리하여 그 천지만엽은 각각 별개의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요 나무 전체의 유일의 생명이 천지만엽의 생명으로 분화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무가 봄에서부터 성장하여 가을이 되면 수만의 '잎'이 한꺼번에 떨어진다.* 


만약 여기에 무식한 사람의 눈으로 이것을 대한다 하면 '잎'은 땅에 떨어짐과 동시에 그 생명이 영멸하였다 오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 잎은 자기의 생명을 가지고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요, 형해(形骸)만 떨어지는 것이다. 즉 잎은 봄에서부터 활동한 생명의 노력 전부를 수목 전 생명 중에 남겨 두고 형해만 땅에 떨어지는 것이다. 


잎은 시시각각으로 전 수목 중에 자신의 생명의 정수를 보내고, 떨어질 때에는 아무 생명도 없고 노력도 없는 동력의 법칙에 의하여 형해만 땅에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해[明年] 춘삼월이 또 돌아오고 보면 수목에는 다시 작년과 동일한 잎을 피게 하는 것이다. 만약 천지만엽중에 한 가지나 한 잎새가 병이 들어 자기의 노력을 미리부터 수목 전체 중에 남겨 둠이 없었다 하면 그 잎이야말로 영멸이며 부재생(不再生)이 되고 만다.

  

이와 마찬가지 이치로서 우주를 일대 수목에 비한다 하면 개체는 한 개의 나뭇잎에 지나지 아니한다. 그리하여 한 개의 나뭇잎으로서의 개체의 활동은 나무 전체인 대우주의 생명 중에 그 노력을 남겨 두고, 죽을 때에는 다만 그 형해만 불속이나 흙속, 물속에 던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전에 우주생활에 대한 아무 노력이 없다 하면 그는 사회 생명 중에 이미 남겨 둔 자기 노력이 없으므로 그는 영멸일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적으나 크나 사람이 우주생활, 즉 사회생활에 참여하여 자기의 생명과 노력을 사회에 남겨 둔 사람이면 그에게는 절대로 영멸이 없다. '너로 하여금 장생하게 하여[令汝長生] 덕을 천하에 펴게[ 布德天下] 하리라"(동경대전, 포덕문)는 격언에 일치하는 것이다. 죽음과 삶의 이치는 여기에서 조금도 벗어날 것이 없다. 인생들아, 인간격의 노력으로서 영원의 장생을 얻으라.

  

6. 성령출세(性靈出世)


위에 말한 이치를 수운주의에서는 '성령출세'라고 한다. 성령출세라는 말은 인간이 자기들이 노력한 그만큼 그 노력의 생명적 가치가 인간에 의하여 다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 이치는 많은 말을 요할 것이 없이 심히 명료하다. 위에서 누누이 말함과 같이 자아 중에 존재한 '한울아(我)'는 바로 우주격의 전 표현이므로 사람의 노력적 생명이 한울과 합일된다는 말은 인간아 중에 있는 한울아와 합치된다는 말인즉 사람의 사후에 생전의 노력적 생명은 힘으로서, 정력(精力)으로서 다시 인간계에 표현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이치로 말미암아 자아라는 것은 심히 중대한 지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선조들의 노력과 정력은 자아 중에 결실을 맺어[結晶] 자아를 무궁으로 지도하는 명호(冥護)를 받는 동시에 자아는 다시 그의 지도에 의하여 자아 중에 있는 '한울아'의 정력을 자손에게 전해 줄 책임이 있다. 


이 점에서 자아는 우주 신비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다. 우주의 문을 열고 전진하는 자도 자아이며 우주의 문을 닫고 멸망과 퇴락에 빠질 자도 자아이다. 성령출세와 자아 문제가 얼마나 중대하냐!


* 개벽신문 55호(2016년 6월호)에 게재된 "나비 문명과 전환(2) - 마사키 다카시 선생과 함께하는 이야기마당"에서 마사키 다카시 선생은 나를 '나뭇잎-개체생명'으로 보느냐 '나무-전체생명'으로 보느냐를 이야기하며, 현재 시점에서 '나-나무론'을 전개하였다. 80년전 야뢰가 전개한 '나-나무론'과 놀랍도록 유사한 것을 발견하며, '전율하였다.' (편역자 주)


** 천도교경전에 있는 "성령출세설"의 해당 대목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성령은 근본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니라. 영을 떠나 별로 물건이 없고 물건을 떠나 별로 영이 없고 다시 세상이 없으니, 마침내 영은 세상을 마련하고 세상은 영을 얻은 것이니라. 물건마다 각각 그 성품을 이룬 것은 이 신묘한 성령의 활동이 만기만상에 응한 것이요, 기국대로 세상에 나 조섭하는 데 응함이니, 비유하면 같은 비와 이슬에 복숭아는 복숭아 열매를 맺고, 살구는 살구 열매를 맺나니, 이것은 천차만별의 식물에 좇아 천차만별의 열매를 맺음과 같으니라. 같은 성령에 헤아릴 수 없는 큰 덕의 묘한 법이 대천 대지의 각개 차별을 순히 화하여, 하늘에 솔개가 날고 못에 고기가 뛰는 것이니라. 그러나 사람은 이에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한 자로 만기만상의 이치를 모두 한 몸에 갖추었으니, 사람의 성령은 이 대우주의 영성을 순연히 타고난 것임과 동시에 만고 억조의 영성은 오직 하나의 계통으로서 이 세상의 사회적 정신이 된 것이니라. (의암성사법설, 성령출세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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