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1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의료인문학의 관점에서 지난 1년여의 시간과 공간과 사건 속의 사회, 일상, 우리를 돌아보고, 이후의 우리 사회와 일상에 대한 전망을 제공한다. 언뜻 낯설어 보이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코로나 시대에 인간과 공동체는 팬데믹 위주의 담론에 파묻히기 십상이다. 사소하지만 사소하게 넘겨서는 안 되는 이야기들을 의료 지식과 인문학적 성찰, 경험 면에서 균형 있게 풀어내며 팬데믹 상황에서 인문학의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오늘의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의지를 갖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미지의 세계로 우주여행을 하는 중이다. 여행이 있어서 중요한 것은 향방(向方)이다. 중세 시대 이전에는 '별에게 길을 물어가며'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 이후 모험과 탐험에 따라 지도상의 지구는 점점 넓어져 갔고, 그것이 지도로 구현되어, 인간의 여행은 더욱 정밀해지고, 한편으로 안전해졌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존 조건은 판연히 달라졌고, 그것은 이 '세계의 변하'만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정체성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야기하게 되었다.
지구호(地球號)를 타고 여행하는 우리는 초속 400m의 자전속도, 초속 30km 지구공전속도(지구가 태양 주변을 공전하는 속도), 그리고 초속 700km 태양계 공전 속도(은하계 중심을 기준으로 태양계가 공전하는 속도)로 달려가는 중이지만 우리가 전혀 속도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인류는 지금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부터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로 질주하는 중이지만, 그 속도를 정확하게 가늠하지 못한다.
우리 삶의 여러 양식 - '비대면 수업' 등을 포함한 - 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것은 느끼지만, 그것을 포함한 우리 삶의 전환 전체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19데카메론 2 – 코로나 시대 사소하고 깊은 이야기>>는 코로나19를 이전에서 코로나19시대를 과관통한 2020년을 중심으로, 우리가 어디로부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얼마마한 속도로 가고 있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위치에서 다양한 측정 기구로 관측한 결과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가 경험했지만, 여전히 잘 모르고 있던 사소하고도 깊은 이야기들이다.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인문한국플러스) 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의 연구자와 해외 경험을 지닌 외부 필진들, 모두 23명의 필자가 쓴 33편의 글이 실려 있다.
급격하게 들이닥친 팬데믹 상황에 대해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이 써낸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의료인문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모인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은 이미 2020년 6월에 <<코로나19데카메론 – 코로나19가 묻고 의료인문학이 답한다>>에 이은 두 번째 책이기도 하다. 특히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상시적으로 깊이 있게 살펴보고, 그것을 인간의 몸과 마음에 관한 학문이라고 할 '의료인문학'적 소양 위에서 축적하고 해부해 온 전문가 집단이라는 점, 그리고 이들의 성과가 축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점은 여타의 책가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데카메론2>>에도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하였다. 연구단 소속의 역사학, 철학, 문학, 한의학, 과학사, 사회학 연구자들이 좀 더 깊은 성찰의 결과물들을 내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도쿄대학교,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이탈리아 로마교황청립 고레고리오 대학교, 프랑스 파리 낭테르대학교에서 학업과 연구를 한 해외 연구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하여 해외에서 겪은 팬데믹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코로나 시대의 사소하지만 깊은 이야기들
이 책은 ‘돌아보기-역사’, ‘바라보기-사회’, ‘살아가기-일상’, ‘모아보기-해외’의 네 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돌아보기-역사’는 우리나라의 공공의료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의료인들이 벌인 파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글로 시작해 중세시대로부터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을 거쳐, 메르스와 코로나19에 이르는 팬데믹의 역사에서 우리가 얻어야할 교훈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고 있다.
‘바라보기-사회’에서는 코로나19가 안겨준 사회적 과제를 꼼꼼하게 바라보았다. ‘덕분에 챌린지’, 기본소득, 택배노동자들의 죽음, 착한 임대인 운동, 청년 여성의 자살 문제, 혐오의 역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살아가기-일상’에는 어느덧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코로나19 시대의 우리의 사소한 삶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요양시설의 노인들, 확진자의 투병기, 코로나 시대의 사랑과 연애, 마스크가 일상이 된 현실, 혐오의 대상이 된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며, 코로나19 이후에 우리의 삶의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아보기-해외’에서는 미국, 중국, 일본,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는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실제 경험과 분석을 통해 살펴보았다.
K-방역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비교적 안정적인 방역 성과를 보였다고 하는 한국이지만, 8만 명이 넘는 확진자와 1,5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온 것도 현실이다. 방역에 협조적으로 인내했지만, 피해가 큰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많이들 조금씩 지치거나 무뎌져가고 있는 것 역시 현실이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온 1년여의 시간을 돌아보고, 바라보고, 모아보며 살펴본 이 책의 기획은 우리의 힘들고 아픈 경험이 허무해지지 않기 위한 성찰의 기록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돌아보고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해 생각해 온 결과물이다. 인문학이 코로나 시대에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한 1년간의 고민을 담은 보고서다. 이 성찰은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질 팬데믹 종식 이후 연구에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인류'를 생각하는, 그 좌표를 확인하고 진행 방향을 관측하기 위한 책이다. 거대담론이나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사물과 일상에서부터 시작하여, 근원적이고 원대한 담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가 알아야 할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가고 있다. 부지런히 빛 부스러기를 모아, 우리의 우주여행의 등대별이 되어 줄 별을 만드는 별-이야기 공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