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053 - 손원영 지음]
*이 글은 <내가 꿈꾸는 교회>(손원영 지음, 2021/3/20, 모시는사람들 펴냄)의 '서문'입니다.
** 각 단락의 '소제목'은 제(박길수)가 브런치에 올리면서 새로 부여한 것입니다.
- 손원영
503년 전 루터는 당시 부패한 중세 가톨릭교회에 저항하며 ‘95개 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붙였다. 그리고 주지하듯이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개신교가 등장하였다. 나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 2017년 어느 날 밤, 루터처럼 미래 시대의 교회를 꿈꾸며 제2의 종교개혁이 절실한 작금의 한국교회에 필요한 새로운 교회의 이미지로 ‘100개의 교회상’을 적기 시작하였다. 저녁 무렵부터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정신없이 적기 시작한 그 일은 다음 날 이른 아침에서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적은 100개의 항목을 ‘내가 꿈꾸는 교회’란 제목으로 하여, 나는 교회문 대신에 세계를 여는 창인 페이스북에 게시하였다. 그리고 매주 하나씩 거의 2년 반 동안 그 의미를 고요히 묵상하며 해설하였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시사하듯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넘어서 그 대안적 이미지를 찾는 작업이다. 사실,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지금은 그 부패의 임계점에 이른 듯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의 상황에서 그 위기를 우리는 몸소 체험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에 안 나가는 소위 ‘가나안 신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으며, 소위 정통교회를 토양으로 한 이단과 사이비 종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득세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교회 130여 년의 역사에서 또 이런 위기가 있었을까 싶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지켜만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비판을 넘어서는 하나의 ‘대안적 교회’를 상상하며 새로운 교회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한국교회를 꿈꾸면서 그 꿈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내가 꿈꾸는 교회는 크게 세 가지의 준거를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첫째는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제2의 종교개혁을 꿈꾸는 마음으로 작성되었다. 따라서 필자가 제시하는 100개의 교회상은 새로운 교회를 세우기 위한 일종의 방향 같은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교회를 부를 적당한 이름을 고심하던 중 한국학 특히 동학에서 ‘새로움’[新]이란 의미로 주로 사용하는 용어인 ‘개벽’이란 말을 과감히 차용하여 ‘개벽교회’라고 부르면 어떨까 생각하였다. 사실 개벽이란 말은 최시형의 <해월신사법설>에서 많이 언급된 바, 그 뜻은 시대의 전환에 응하여 새로운 세계를 연다는 의미요, 부패한 것을 맑고 새롭게 그리고 복잡한 것을 간단하고 깨끗하게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필자가 말하는 개벽교회란 제2의 종교개혁을 추구하는 ‘새로운’ 교회요, 또 진정한 한국적인 교회를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는 새 사람의 ‘창발적인’ 교회를 말한다. 그렇다고 개벽교회에 대한 대단한 학문적 주장을 펼치거나 혹은 교회론과 관련하여 어떤 이론적인 신학논쟁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한 신학도의 상상쯤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둘째는 필자가 관심을 둔 미래 한국교회의 방향으로써 ‘예술 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사실 신학계에서 예술 신학에 대한 논의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관심을 끌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움’[美]의 문제는 신학에서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한국감리교회의 신앙고백인 <교리적 선언>(1930)에서는 비록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모든 선과 미와 애와 진의 근원이 되시는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을 믿으며”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정작 교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진-선-미 중 오직 진과 선의 하나님만을 강조할 뿐 아름다운 하나님에 대해서는 인색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저명한 예술 신학자인 발타살(Hans Ur Balthasar)은 이러한 문제를 비판하며 진-선-미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그 순서를 바꿔 ‘미-선-진’의 하나님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감리교의 교리적 선언과 발타살의 예술 신학을 교회론적 구조로 수용하는 맥락에서, 이 책의 교회론적 구조를 미-선-진-애의 공동체라는 맥락으로 구성하였다. 그래서 제1부는 아름다움[美]의 공동체로, 제2부는 공의[善]의 공동체, 제3부는 진리의 공동체, 그리고 제4부는 사랑[愛]의 공동체로 구성하였다.
셋째는 이 책의 교회론적 구조로서 미-선-진-애의 구조를 기본구조로 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공동체의 내용은 현대신학에서 논의되는 신학적 논의들을 교회론의 내용으로 적극 수용하고자 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제1부 “내가 꿈꿔도 되는 교회: 아름다움[美]의 공동체”는 예술 신학적 논의와 더불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교회로서 ‘영성’(spirituality)의 측면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예술체험과 영성체험은 손바닥의 양면과 같다고 판단해서이다.
제2부 “내가 꿈꿔야만 하는 교회: 공의[善]의 공동체”는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의 정신을 더욱 계승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예언자 정신을 기반으로 한 사회 변혁과 회복적 정의 그리고 평화구축을 위한 역할 등을 상상하였다.
제3부 “꿈에 그리는 교회: 진리[眞]의 공동체”는 진리를 추구하는 공동체로서 교회가 보다 전향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와 대화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상상하였다. 그래서 인문학과 현대 과학을 비롯하여, 특히 이웃 종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공동체로 새롭게 자리매김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제4부는 “꿈꿀 수 밖에 없는 교회: 사랑[愛]의 공동체”로서 교회가 진정한 ‘한국적 교회’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라는 맥락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상상해 보았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한국적 교회’라기 보다는 오히려 서구의 가치와 문화를 거의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교회였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한국교회의 미래는 성서와 한국의 문화와 전통이 창조적으로 만나 새롭게 형성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사랑의 공동체를 한국적 교회의 형성이란 맥락에서 상상해 보았다.
덧붙여 내가 꿈꾸는 교회상으로 제시된 100개의 항목들은 이 책이 지향하는 교회론적 구조인 미-선-진-애의 공동체에 따라 임의로 25개씩 재분류되었다. 하지만 25개씩 묶여진 항목들은 절대적으로 독립된 항목으로써 분류된 것은 아니다. 단지 각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상대적인 유사성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에 필자가 임의적으로 묶었을 뿐이다. 따라서 100개의 항목들은 독립된 항목으로 이해하기보다 상호유기적인 항목으로써 이해하면 좋을 것같다. 뿐만 아니라 25개씩으로 묶여진 항목들은 어떤 절대적인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25개 항목의 순서는 ‘가나다’ 순으로 배열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