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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19년 수다사이 인터뷰

by 김현희

2019년 수다사이 인터뷰, 백업.


<1부-분회장>


♥ 페이스북 분회 어떻게 만들게 되셨나요?

아주 우연처럼 만들게 된거에요. 어느날 제 페친 몇 분이 ‘1인 분회라 외롭다’, ‘학교에 조합원이 없어 가입이 망설여진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사실 저도 1인 분회 생활을 오래했어요. 시작부터 계속 그랬다가 지금은 6인 분회거든요. 너무 좋은 거에요. 공적인 힘도 생기고, 괴로울 때 의지할 사람들도 있고요. 그래서 페북에도 분회나 하나 만들까라고 장난처럼 말을 했는데 이호재 선생님이 제가 분회장을 하면 본인이 부분회장을 하시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어떤 선생님은 본인이 총무를 맡겠다고, 또 다른 선생님은 페이지를 개설하겠다는 식으로 자발적으로 나서주셨죠. 그렇게 순식간에 페이스북 분회가 만들어졌죠. 그렇게 서너명이 가볍게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가입을 하기 시작했어요. 솔직히 좀 이상했어요. 뭐지? 왜 이렇게 많이 가입하지? ( 2020.2. 28. 기준 분회원 346명) 온라인 구심점이 생기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선생님들이 모인거죠. 제가 학교에서 깊은 외로움을 느껴봤고 그래서 그 목소리가 흘려 넘어가질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떤 선생님은 인원이 많으니 지회로 바꾸면 어떠겠느냐고 하셨는데 저는 분회였으면 좋겠더라구요. 분회는 기본 단위고, 조합의 뿌리고, 200명이 훌쩍 넘는데 분회라고 하면 약간 병맛도 나구요(웃음). 학교 분회처럼 친근하고 가깝고 옆반 선생님 같은 느낌이길 원했거든요. 우리한테는 그런 게 많이 필요하니까요.


♥ 전교조에서 무언가를 기획할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구현하고자 하는 그림이 있다면?

저는 무엇을 기획할 때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가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페이스북 분회도 그랬고, 망실대회도 그랬어요. 굳이 찾자면 소통과 연대쯤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소통과 연대의 가치를 구현하고야 말겠어’라는 그림을 작심하고 정해놓고 가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냥 제 속에 그런 욕구가 있었고, 그런 욕구가 어느 지점에서 사람들이랑 만나며 아귀가 맞았던 거죠.

저는 ‘이 행사나 조직의 가치는 이것이야’ 라고 정해놓는 게 약간 ‘착하게 살자’ 이런 느낌이거든요. 그런 걸 목청껏 외친다고 그대로 구현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고, 그런 게 중요하니까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가는 거겠죠. 제 머릿속에 엄청난 계산이 있는 건 아니지만, 몸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평소 제 가치관대로 움직이는 거에요. 영화 타짜에서도 그러잖아요. 손이 눈보다 빠르다고.

제가 평소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긴 해요. 사람 하나 하나의 의지와 욕망을 중요시 여겨요. 그래서 사람을 이용하고, 도구화하는걸 정말 싫어해요.

저는 조합원들이 조합에 원하는 바를 말하는 것도 중요하고, 원하는 걸 내가 직접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언론이 너무 약하다고 느끼면 내가 언론인 역할을 할 수 있고, 전교조에 오락적이거나 공감적 요소가 없다면 그냥 내가 한번 움직여 보는거죠. 나 하나도 전교조고, 옆에 있는 사람이랑 같이 하면 그게 또 전교조가 하는거구요.

전교조가 어쨌든 역사성이란 게 있어서인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있어요. 역사를 생각하면 짠내가 나고, 가끔 그 짠내가 정말 싫기도 한데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해요. 그래서 전교조 안에서 뭔가를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목요일을 반말 하는 날로 운영하고 있는데~

제가 일관성이 있어요. 깊게 생각하지 않아요(웃음). 그런데 내 안에 있는 목소리에 충실하려고 해요. 저는 언어교육에 관심이 많고 언어에 예민한데 가끔씩 말이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특히 한국어가 그래요. 나이, 성별, 직위, 상하 질서를 나누는 형식이 많고 그래서 좀 미칠 것 같은 때가 있거든요. 제가 볼 때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있는데, 단지 나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나는 존댓말을 쓰고 저 사람은 반말을 쓰고, 의견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예의 없다는 소리를 하고요. 같은 교사인데 선배 타이틀 때문에 조심해야할 것이 많아요. 그래서 계급장 떼고 얘기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오랫동안 느끼다가, 어느 날 그냥 분회방에서 ‘우리 반말 한번 해볼까요?’라고 제안하고 투표하게 된거죠. 예상보다 반응이 훨씬 좋았어요. 투표때 반대했던 분들이 제일 먼저 저한테 반말로 말을 거시더라구요(웃음).

목요일에 제 페르소나가 싸가지 없고 무서운 반장이거든요. 다들 재미있게 받아쳐 주셔서 좋아요. 분회원들이랑 정드는 느낌도 있고요. 사실 반말하는 날을 제안하기 쉬웠던 게 분회 선생님들은 기본적인 소양이 있고, 반말 하면서도 지킬 것은 지키리라는 신뢰가 있었거든요. 뭘 해보자 하면 사실 제일 쉬운 곳이 전교조 같아요. 기본적인 게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 요즘 마음이 쓰이는 분회원은?

제가 저 살기도 바빠서(웃음). 근데 아무래도 해임, 직위해제 되신 분들은 신경 쓰이죠. 두 번째 반말데이 쯤에 분회원 두 분에게 아픈 일이 있었고 잠깐 고민은 했는데 그냥 했어요. 사실 전교조 역사가 늘 그래왔고, 분회원들도 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씩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어깨 쳐져서 있는 것보다 옆에서 버텨 주는게 더 좋을 것 같았어요. 첫 번째 반말하는 날에 어떤 선생님이 “힘들수록 친한 사람끼리 연대하고 노는 게 중요해.” 이런 말씀을 하셨었는데 그 말이 저에게 많이 남았기도 하고요.

(글을 다 읽고 챙기는거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분회장이지만 모든 글에 다 답글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새로 오신 분들에게는 인사하려고 노력하긴 하지만요. 선생님들이 재밌게 놀고, 서로 댓글 달며 챙겨주니까 마음이 놓여요. 그게 제가 바라던 모습이구요.

요즘은 페이스북 분회장 언제 그만둘지 자주 생각해요. 임기를 몇 달로 한다고 할까? 조만간 규정 만들어야지, 뭐 그런 생각들.


♥ 전교조에게 한마디 한다면?

전교조를 살려야 한다는 말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조직보다 본인들부터 챙기고, 본인들 행복부터 찾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거 아니면 안된다는 식보다는, 넓게 보고 많은 교사단체들과도 연대하는 방향을 찾았으면 좋겠고요. 저는 전교조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맏형 의식, 우리는 옳고 바르다는 생각도 버렸으면 좋겠어요. 옳은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조합원 하나하나가 살아야 하잖아요. 그게 결과적으로 전교조를 살리는 길로 이어질 수 있어요.


♥ 마지막으로 분회원들에게 반말로 인사해주세요.

안녕 분회원 친구들. 내가 별 거 아닌 말을 해도 분회장이라고 웃어주고, 우쭈쭈 해주는거 다 알고 있어. 고마워. 반말하는 날에 경고 3번 받으면 벌칙있는 거 잊지마. 내가 지켜보고 있어. 늘 고맙고 사랑해.


<2부-교사>


☆ 교사는 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교사가 엄청나게 성스러운 직업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제가 시종일관 모든 사람들을 향해 교사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교사가 하는 일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쨌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죠. 저는 수업하는 게 재밌어요. 아이들과 수업이란 매개를 통해 서로 영감을 주고받은 관계이고 싶어요.


☆ 정말 때려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때는?

저는 수업할 때, 아이들과 대화 나눌 때, 교육에 관해 글을 쓰거나 진지한 대화를 할 때 빼고는...그냥 항상 집에 가고 싶어요. 제가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서 그런지 제가 아이들이랑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의외라면서 놀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기본적으로 학생들이랑은 잘 어울리거든요. 성격 자체가 좀 아이 같은 면도 있고. 그래서 학생들하고 있을 때, 딱 그때만 선생님이 천직인 사람처럼 보인다고 해요. 솔직히 저는 학생 시절에 전형적인 모범생이 아니었어요. 반항도 많이 해봤고. 그래서 웬만한 건 그냥 이해가 되고..학생들이 집에 가면 저도 집에 가고 싶어요(웃음).

가치관이 저와 다른 관리자들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분들 때문에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단지 화가 날 뿐이죠. 그런데 동료교사들을 이해할 수 없을 때는 절망하죠. 옳은 것만 얘기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박자 조절도 해야 하고. 그렇게 학교 분위기나 문화 때문에 숨 막힐 때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많이 해요.


☆ 임금 노동자로 살지 않아도 된다면 뭐하고 살고 싶으세요?

저는 천생 한량이에요. 책보고 글 쓰고 여행하며 살 것 같아요. 진지한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다른 세상에 다녀온 기분이 들어요. 여행도 그래요. 갔다 오고 나면 뭔가 예전의 내가 아닌 느낌이 들죠. 최근 들어서는 여름만 되면 어딘가로 뛰쳐나가요.


☆ 정년퇴임을 앞둔 김현희에게 지금의 김현희가 하고 싶은 말은?

사실 제가 정년 퇴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이 생활을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까?’ 매년 생각해요. 학생들과 있는 것 자체는 좋은데 학교에 가면 숨이 막혀요. 그래서 정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아마도 “김현희! 어떻게 버텼니? 대단하다.” 이런 말을 하려나요? 그러면서도 “한 번 사는 인생, 네가 이 일이 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 선택 했겠지.”라며 박수 쳐줄 것 같기도 해요. 교육과정 편성 자율권이 늘어나고, 학교 분위기가 달라지면 또 얘기가 다르죠. 어쩌면 즐겁게 정년을 채울 수 있을지도.


<3부-개인>


♤ 선생님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단어로 저를 규정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예전에 ‘교육자들’이라는 페이지를 만들 때 그룹 이름을 짓는데 2박 3일 고민했어요. 네이밍을 하는 순간 의미가 한정되는데 그걸 못 견디겠더라구요. 교육도 삶과 같잖아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결국 만든 이름이 ‘교육자들’이었거든요. 그러니 저에 대해서도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다고 보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래요. 사람 하나하나가 우주처럼 광활한데 한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삶에서 중요한 이슈 또는 화두는?

2016년에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를 연재했어요. 제 글에 붙은 댓글들이나 반응들을 보면서 나름 분석을 했었거든요.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하는 걸까. 그때 ‘진보와 보수’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어요. 어떤 정당이나 정책을 지지하는 가의 문제가 아니에요. 세상에는 자기를 둘러싼 벽을 깨려고 하는 사람, 어떻게든 벽 안에서 적응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뭐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고요. 저는 태생적으로 벽을 깨려는 사람이란 걸 그때 몸으로 깨달았어요.

그 후에는 사람들 개개인의 자율의지가 중요한지, 제도 변화가 중요한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저는 한 방의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사람들 하나하나가 깨어나지 않은 채 좀비처럼 우루루 따라가는 건 지반이 허약한 변화라고 생각 하거든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제 원칙에도 안 맞고.

저처럼 사람이나 문화를 중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누군가는 ‘답답한 소리 하고 있다’, ‘법과 제도로 빨리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하기도 하더라고요. 뭐 답이야 뻔하죠. 균형이 중요하다. 하지만 또 현실 상황에서는 계속 그 지점으로 논쟁을 계속하게 되고. 그런데 그런 논쟁 속에서 또 배우는 거죠. 내가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어떤 지점에서 발끈하고, 어떤 사람들과 자연스레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똘아이 짓이 있다면?

제가 했던 모든 연애와 사랑은 전부 또라이 짓이었어요. 가장 큰 행복감 가장 큰 절망을 주는 게 사랑이었어요. 진짜 사랑을 해봐야 나라는 인간의 바닥도 볼 수 있고요. 어떤 사랑이든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내 자신이 달라져있고.

사실 사랑이 없으면 세상을 뭐하러 살아요? 어떻게 살아요? 사랑이야 말로 내 목숨 걸만한 가치있는 몇 안되는 행동 중 하나고, 정말로 나를 몰입하게 하는 일이죠. 저는 제가 만나고 헤어졌던 모든 사람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안 그럴 가능성이 더 많지만(웃음). 저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사랑의 경험이 저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해줬고, 지금도 내가 어떤 사랑을 받고 있는지 생각하면 그냥 고맙죠 다.


♤ 조합원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는데..

제가 2007년 발령이에요. 제가 봤던 전교조는 늘 짠내가 났어요. 좋은 시절도 있었다는데 제교직 생활 시기도 그렇고, 저는 대전에 있으니 그런 걸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그냥 전교조 선생님들은 좀 힘들어 보였어요. 제가 이명박 정권 때 일제고사를 겪으면서 영혼이 파괴되는 것 같았거든요. 학교가 광란의 도가니였고 진짜 학생들한테 몹쓸 짓이었죠. 주위 사람들도 문제라고는 하면서도 다들 그냥 순종적으로 따랐어요. 그때 이건 아니라고 말하는 건 전교조 밖에 없었어요. 개인적으로 어디에든 속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아무 곳에도 속해있지 않으면 결국 기득권에 힘을 보태준다는 생각에 그냥 가입한 거죠.

가입하고 처음 간 집회에서 처음 들은 말이 저보고 조합원같이 안보인다는 말이었어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죠. 그 날 오늘처럼 비가 부슬부슬 왔었어요. 대전역에 모였는데 사람은 한 30명 있지, 박스 깔고 앉아있으니 엉덩이는 다 젖지. 앞에서 사람들 말하는 데 집중도 하나도 안되고, 촛불 가지고 장난치다가 컵에 불 붙고. 정말 집에 가고 싶었어요. (웃음)

그날 집회 끝나고 조합 사람들이랑 산낙지랑 멍게를 먹으러 갔어요. 사람들 하나 하나 느낌은 참 좋았어요. 근데 집회에 또 오고 싶지는 않다. 그게 전교조에 대한 첫 기억이에요. 그 이후에도 조합원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어요. 그런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지금도 몰라요. 그게 무슨 뜻이죠?


♤ 선생님에게 글쓰기, 책, 영화, 음악, 그림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 이층 주택에 살았어요. 제 방은 가장 꼭대기에 있어서 사생활이 보장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서 혼자 책 읽고, 음악 들으며 보낸 시간이 저를 키웠어요. 책과 영화, 음악은 오래된 친구에요. 그림은 요즘 새로 만난 친구죠. 푹 빠진지 2~3년정도 됐나...여행 중에 너무 더워서 미술관에 들어갔는데 그림들이 저에게 말을 걸더라구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살아가는 과정이 다 외로운데 무엇이든 그렇게 몰입하고 연결되는 경험이 참 귀한 것 같아요.

저는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2년 전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라는 책을 썼는데요, 쓰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이미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다른 방식과 언어로 고민했던 사람들이 있는 거에요.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있었어요. 100년 전에 죽은 사람도 있고, 지금 저 옆 동네에도 있더라고요. 글을 쓰니까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거죠. 정말 신기했어요. 지식의 세계란 게 근본적으로 협동으로 이뤄지는 거로구나, 내가 지금 그 흐름에 조금이나마 합류하기 시작했구나 느꼈던 순간 밀려왔던 환희를 잊을 수가 없어요. 누군가 길을 내놨고, 그 길 위를 내가 걷고, 또 누군가 같이 걷고.

저는 글을 계속 쓰고 싶어요. 제 목소리를 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한 그냥 계속 쓸 거에요. 40살 되기 전까지 2권 정도 더 쓰는 게 작은 목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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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닫는 말]

김현희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 인터뷰를 마치면 작은 선물이라도 하고 싶어질 것 같아 작은 지퍼백에 얼그레이와 페퍼민트 티백을 몇개 담아서 가져갔었죠. 긴 이야기를 마치고 지퍼백을 건낼때 너무 적절하다 느꼈어요. 왜냐면 세련되고 깊은 얼그레이와 쿨하고 싱그러운 페퍼민트가 김현희 선생님과 너무 닮아서요.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자기만의 보폭으로 전교조와 발랄, 애뜻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김현희 선생님의 수다를 담아 그대들에게 보냅니다. 관계를 잇습니다.


인터뷰어 : 인천지부 구자숙

인터뷰 장소 : 대전

인터뷰 날짜 : 2019년 10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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