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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Feb 02. 2021

교육단체 관련 기억들

2017년 8월 29일, 페북에 쓴 글

1

신규 때 교감 선생님이 협의실에 찾아왔다. 나와 동기에게 교총 가입 신청서를 흔들었다. 난 교총이 무슨 단체인지 알아보고, 생각할 시간을 달라 말했다. 교감 선생님은 그러라고 하더니 협의실에 앉아 나가질 않았다. 우리는 몹시 당황하다 결국 신청서를 작성했다.


교감 선생님이 나간 후에 한 선배 교사가 말했다. 교총 회원 가입률에 따라 관리자(혹은 학교 담당자)에게 선물을 주거나 여행을 보내준다는 말이 있다고. 에... 설마. 나는 그때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만약 돈이나 선물이 걸려있다면 오히려 부끄러워서 이렇게까지 강권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을 거라고 봤다. 한참 뒤에야 그 소문이 사실이란 걸 알았다. 우연히 한 인터넷 블로그에서 한 현직 교사(혹은 관리자)가 쓴 글을 읽었다. 본인이 교총 회원을 많이 모집해서 몇 년 전에 일본 연수를 갔고, 그 해는 50만 원 정도의 현금을 받았다고 기뻐하는 내용이었다. 헛웃음이 터지다가 화가 치밀었다.


관리자가 지위를 이용해 이런 짓을 하다니.

교육단체가 사람 수로 거래를 하다니.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사람 장사를 하다니!


교총에서 내놓는 정책과 제안들도 하나 같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학교 담당자에게 탈퇴하겠다고 알렸다. 교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그때만 해도 난 착하고 얌전한 저경력 교사였기 때문에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을 거다. 점잖게 말하다 이내 포기하셨다. 돌아서 나가는 내 뒤통수에 이런 말이 날아왔다.


“김 선생 혹시... 교총 탈퇴하고, 전교조 가입하려는 건 아니지?”

“하하...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어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 그때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2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사실 지금도 그게 내 성격에 제일 잘 맞긴 하다. 소속 단체가 없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경력이 쌓이며 학교 돌아가는 모양새도 알겠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늘었다. 오라면 안 가고, 내라면 안 내도 그만이었다.


조합원이 한 명도 없는 학교라 동료의 권유도 없었고, 관리자의 만행도 없었다. 가입은 순전히 현실적이자, 추상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일제고사 때문에 환장할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이 문제로 무더기 징계를 받는 교사들을 보며 화가 났다. 내가 큰 힘은 못 돼도 대가리 수 하나는 늘려주자. 그게 다였다. 거창한 노동자 의식이나 교원노조의 방향성 같은 거 지금도 잘 모르지만, 그때는 더 몰랐다.


3

전교조에 가입하고 바로 영어 심화연수를 떠났다. 그래서 한동안 조합원들 얼굴도 본 적이 없었다. 박근혜 당선 초기에 학교로 복귀하고 조합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국정원 댓글 사건 등과 관련해 박근혜 당선 무효 촛불 집회가 있는데 참가할 수 있겠냐고 했다. 흔쾌히 나갔다.


그날, 유독 추적추적 비가 왔다. 앞에서 민주노총 사람 하나가 뭐라 연설을 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입으로는 따라 외쳤지만 혼자 생각했다. 과연 될까? 그 양반이 정말 퇴진할까? 여기에서 우리가 축축한 돗자리 깔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도 모를걸? 앞으로 5년은 또 X됐지 뭐. 혼자 멍하니 촛불을 가지고 놀다가 종이컵에 불이 옮겨 붙었다. 비에서 비릿한 패망의 냄새가 났다. 한동안 어떤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4

그날 어떤 선생님이 내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이런 말을 했다.

“아까 선생님 처음 보고 이런 데 안 올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으음? 무슨 말인지 몰라 그냥 어정쩡하게 인사만 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몇 달 전 함께 했던 동료 연수생들이 생각났다. 내가 전교조에서 나눠 준 꽃무늬 컵을 들고 있으면 동료들이 자꾸 큭큭 웃었다.

“아, 선생님이 그 컵 들고 다니니까 너무 웃겨.”

“엥, 왜?”

“컵에 너무 참. 교. 육.이라고 쓰여있잖아. 선생님이랑 안 어울려. 홍홍홍.”


사실 몇 달 전에도 같은 말을 들었다. 이런 데 안 올 것처럼 보인다는. 실제로 나는 집회나 행사에 많이 참여하는 열혈 조합원이나 활동가가 아니다. 아주 어쩌다 집회에 참가하면 팔뚝도 잘 안 흔든다. 싫다기보다 어색하고 닭살이 돋는다.


전교조는 뭔가 특별히 신념이 투철하거나, 전투력이 있거나, 혹은 참교사의 투명한 아우라가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모양이다. 나처럼 헐렁해 보이는 사람과는 안 어울린다는 뜻이었는지... 잘은 모르겠다.


나를 포함해 내 또래의 많은 교사들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건 사실이다. 조직에게 갈리고 소모되는 듯한 느낌도 정말 싫어한다(촌스러운 꽃무늬 컵도). 하지만 그게 교사로서의 책임감, 시민으로서 참여하는 자세와 대치되기만 하는 경향성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육과 사회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싶다는 열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조직은 구성원들의 개인주의화를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런 개인들을 묶어낼 동인들을 스스로 찾아내 구성해야 한다. 개인과 조직을 연결하고, 개인의 이익과 사회정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해 내야 한다.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려봤다.

2017.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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