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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an 25. 2021

업무능력과 인화력

나는 '업무능력'과 '인화력'을 이분화하는 관점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어떤 교장과 충돌이 있었을 때 그분은 교장실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본인은 평생 '업무와 성과'보다 '인화와 단결'을 강조해왔고 그래서 나를 만나기 전까지 본인이 일해왔던 학교 분위기는 항상 화목했으며, 학생들과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들은 적이 없다고 말이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놀고 있다'라고 생각했었다. 내 기준에서 학교 상황은 전혀 화목하지 않았다. 교장 앞에서 혹은 회의 시간에 사람들은 늘 하하호호 웃었지만 학교는 깜깜이 인사, 밀실행정, 뒷소문과 험담이 난무했다. 단지 그때까지 교장에게 반기를 든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그때 나는 의협심이라기보다 '이러다 내가 먼저 돌겠는데?'라는 정신적 위기감에 태클을 걸었는데, 그분은 나를 앉혀 놓고 자기 연민에 젖어 감정에 호소할 뿐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업무는 못하지만 인화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고 치자. 여기서 '인화'의 의미는 다양하고, 특히 관리자와 교직원이 보는 '인화'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 또 '인화'가 본래 의미대로 '사람을 모아 화합하는 힘'이려면 일단 모든 공적 사안에 절차적 정당성이 보장되어 있는지, 보상과 관심의 사각지대는 없는지부터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인화'의 기본은 '합리성', '연대의식', '포용과 다양성 존중'이다. 특정 구성원들이 이용당하고 침묵 속에 희생했으나, 가시적인 잡음이 없단 이유만으로 리더가 '나의 인화력 덕분'이라며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된다는 거다. 또 반대로 '업무는 잘하지만 인화력이 꽝인 사람'이 있다고 치자.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그럴듯한 문서 몇 장 뽑아내는 능력, 교실 안팎의 잡음 소거 능력 등이 '업무능력'의 전부라면 그들은 능력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학교나 일터는 업무의 하수처리장이 아니라, 일을 통해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도모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 내에서 일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사람들을 흔히 '일당백'이라 칭송하지만, 어쩌면 이들은 본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조직의 합리적 업무 분배, 협업 능력을 방해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즉 업무능력의 정의에 따라 같은 사람도 천차만별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업무능력'과 '인화력'은 쉽사리 구분할 수 없으며 오히려 톱니바퀴 같은 관계다. 즉 종합적인 업무역량이 뛰어난 조직에서 구성원들은 자연스레 협력하고, 그 협업의 과정다시 조직의 업무역량 자체를 신장시키며 맞물린다. 정말 탁월한 역량의 개인과 조직에서는 이 둘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또 이 두 영역을 통합하지 못하면 엉뚱한 것들이 뒤섞여 버린다. 이를테면 아첨하는 능력이 의사소통능력으로 둔갑하고,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이 효율과 성과의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식이다. 일 폭탄을 투하해 놓고 술 한잔 사주며 어르려 하거나, 간신배 짓을 하는 이를 친화력이 뛰어나다며 옹호하는 행위 등도 이런 혼란에서 출발한다.  



커버 이미지 Christian Jankowski - raft of medusa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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