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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Mar 17. 2023

대전지부 전임일기(1월-2월)

2023년 1월-2월

2023년 1월 13일


'늘봄학교' 관련해 어제 KBS라디오 생방송 인터뷰를 하며, 이 정책의 발상부터가 구시대적이고, 산업주의적이라고 피력했다. 어른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학교에 묶어둘 생각부터 하지 말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최선의 환경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고려해야 한다. 내 분량은 17분 정도부터 약 10분간이다. 말할 때 안떠는 법 좀 알고 싶다;;

https://www.youtube.com/live/2pYZx41jrpc?feature=share



2023년 1월 23일


설명하기를 좋아하는 특징이 어떤 성격 유형에 속하는지 모르지만, 아마 내 성격은 정확히 그 반대편에 속할 거다. 혼자 말하는 건 재미없다. 말하기보다 듣기와 쓰기가 편하다. 아는 분들은 나를 '마이크를 (잡고 있지 않고) 나눠 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요즘은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입장을 밝혀야 할 때가 많다. 물론 버벅댄다.


배우자에게 어떤 사람이 말을 잘하고, 못하게 느껴지는지 물어봤다.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확실히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말을 잘하는 경향이 있고, 어린 사람들 그중에서도 어린이 인터뷰가 힘들다고 한다. 예를 들어 '-행사에 참여해 보니 어땠어요?'라고 물으면 초등학생들은 그저 환하게 "재밌었어요~" 라고 해버리니 분량과 내용 확보가 안된다는 거다. 낯선 사람이 저런 질문을 하면, 안타깝게도 내가 딱 저렇게 어린이들처럼 대답한다;; 반면 툭치면 툭하고 준비된 답변이 술술 쏟아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피디 입장에서는 그런 답변이 편집하기에 가장 편하다. 나는 준비된 답변을 기반으로 대화해 본 경험이 많지 않고, 즉흥적이고 직관적으로 오가는 대화가 재미있다. 내가 상대방을 오해하고 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자주 하고, 어떤 것이든 확신을 갖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여러모로 마이크를 혼자 쥐고 설명하는데 최적화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내가 쾌적한 환경에서만 살아갈 수 없는 때다. 잘못된 현실을 보면 '나는 무엇을 했나, 무엇을 해야 하나?'라고 스스로 물을 수 밖에 없는 나이이기도 하다. 나는 그간 매력있고, 패기있는 청년이란 말을 과분할만큼 실컷 들어왔다. 이제는 실력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해야만 할 때, 라고, 아무도 다그치지 않았는데 혼자 다짐하고 있다;;


툭치면 툭하고 레퍼토리가 튀어나오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고 솔직히 자신도 없다. 툭치면 툭하고 떨어져 나오는 것이 더듬대는 말과 상기된 얼굴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언행에서 실력과 품위가 한 방울씩이라도 배어나오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어설플 예정이지만, 적어도 그런 어른이 될 수만 있다면, 쓸데없는 세상에 발을 들였다고 후회하지는 않을거다.



2023년 2월 11일


[선생님들의 눈동자에 건배]

학령인구 감소와 동서학력 격차를 주제로 한 대전MBC 토론회에 참여했다. 학령인구 감소의 근원인 저출산 문제는 교육적인 맥락으로만 풀기 곤란한 지점이 있다. 하지만 교사로서, 전교조대전지부장으로서 나눠야 할 내용과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전에는 원격 연수를 찍거나, 방송국 대담에 나가도 개인 소셜미디어에는 쑥스러워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개인이 아니라 지부 대표로서 하는 활동은 무조건 공개를 원칙으로 할 거다. 요즘은 나 스스로 ‘우리 대전 조합원들에게 누가 되지 말자, 자랑스러운 대표 중의 한 사람이 되자’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천성이 자유롭고 방탕한 나를 성실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우리 선생님들의 눈동자에 건배 ㅎㅎ


2023년 2월 19일


[쉬운 오해]


‘전교조대전지부 달라지겠다고 해놓고 왜 이렇게 (강하게) 나오느냐’ 라는 교육청의 발언을 들었다. 우리가 선거 슬로건 중 하나로 ‘새로움’을 내걸었고, 내가 전교조의 기존 활동 방향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는 걸 교육청도 아는 모양이다. 교육청 관료분의 발언을 듣고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일단, 새로움과 변화를 말한 우리의 공약과 슬로건은 교육청이 아니라 ‘조합원을 향한’ 약속이다. 공약 이행 여부를 교차 점검하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약속의 주체와 대상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변화가 필요한 건 전교조 뿐 아니라 교육부와 교육청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대전광역시 교육감의 공약 중 하나는 ‘소통하고 협력하는 교육행정’이다. 하지만 대전시교육청이 현장과 일말의 상의도 없이 ‘늘봄학교’ 시범 운영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바람에 현재 초등현장은 대혼란에 빠져 있다. 이 정책의 발상과 진행 과정에 깃든 ‘구시대성’과 ‘비민주성’ 사이로 ‘소통’과 ‘협력’의 네 글자는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다. 상대에게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각자의 과제부터 스스로 해결하자는 맥락에서 하는 말이다.


또 내가 기존 전교조의 방향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며 나는 그것을 숨기지 않아왔다. 하지만 전교조 역사와 대다수 선배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와 존경이 없다면 내가 전교조라는 타이틀 걸고 지부장씩이나 하고 있을까? 평교사이자 평조합원이던 시기에 교육청이나 한국교총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이유는 그들에 대한 내 기대치의 ‘기본값’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이나 교총의 방향성을 더 신뢰하고 옹호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교육청 고위 관료 한 분의 발언이 (상징성은 있지만) 교육청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입장 차이가 있을지언정 나는 교육청도 기본적으로는 선의를 갖고 교육을 위해 일한다고 믿고 싶다. 어디에서 무슨 말이 들리든 우리의 기본적인 태도는 달라지지 않을 거다. 우리의 목표는 대전시교육의 질 향상과 교육환경 개선이다. 그 목표를 위해 대화와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두겠지만, 압력이 필요하면 당연히 노동조합으로서 압박도 가할거다. 우리가 내걸었던 슬로건과 내가 가진 외적인 조건들(성별, 나이, 기존 대표들과 다른 이력 등)만 보고 쉬운 오해는 하지 않으시는게 좋겠다.



2023년 2월 23일


[전통과 새로움]

2023. 2. 23_리더연수+퇴임식


어제 대전지부 일꾼연수 중에 내가 공유한 전교조대전지부의 세 가지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전지부는 '일꾼'이 아닌 '리더'를 양성한다. 지부장으로서 올해 나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우리 지부의 활동가들이 지부의 목표에 따라 쓰이는 '일꾼'이 아닌, 책임감과 자율성을 갖춘 '리더'로 성장하는 것이다. 대전지부의 교사들이 일꾼이 아닌 리더로서 성장해야, 학교에서도 학생을 인력이 아닌 시민으로 교육할 수 있다. 나는 조직의 이러한 질적 성장이 (조합원 수 확대라는) 양적 성장보다 더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둘째, 대전지부는 '노력'보다 '전략'을 우선시하며, '옮음'과 '좋음'의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전교조는 옳다고 믿는 길을 걸어왔지만 조합의 규모는 줄었고, 대중적 지지 기반 역시 약해진 것이 현실이다. 전반적인 저성장 시대에 경쟁노조까지 존재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 만큼이나 '좋고 싫음' 은 중요한 기준이며 특히 문화적인 측면에서 포용과 관용, 자유를 확장해야 한다. '옳음'을 실현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어쩌면 노력보다 전략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버리자.  


셋째, 대전지부만의 서사를 쓰자. 누구나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학교를 비롯한 전교조 역시 구조적 변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지부는 조합원의 뜻과 의지에 기반해 지부를 운영하고, 본부는 지부를 지원하고 협력하는 방향성을 구축해 가고 싶다. 대전지부에는 대전지부만의 고유한 조건과 상황, 대전 조합원들만의 색깔이 있다. 상부의 깃발이나 떠밀려 오는 상황에 휩쓸리지 말자. 소신껏 상황을 주도하며 대전지부만의 서사를 써나가자.      


이 날 연수를 마친 우리는 곧바로 조합원 퇴임식을 진행했다. 3년 만에 재개된 대면 퇴임식에 많은 선생님들이 참여해 주셨다. 세대교체는 전교조의 절실한 과업이다. 하지만 선배 선생님들이 조합원으로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교육환경은 지금보다 더 황량하고 황폐했을 것이다. 지부를 대표해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복잡하고 험난한 과정이 되겠지만 역사를 잊은 교육계에도 미래는 없다.


전교조대전지부 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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