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교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희 Oct 04. 2023

교사의 노래가 노동자의 노래다

교육희망 기고글(2023. 06. 01.)

지부장으로서 전임생활을 시작한 지 5개월이 흘렀다. 고민이 늘었다. 첫째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나는 언제나 교사가 전문직 노동자라고 생각해 왔다. 학교를 떠나 지부장 활동을 하며 오히려 신념이 흔들렸다. 투쟁 조끼를 입고, 집회에 참여하고, 외부단체와 연대하고, 조직확대를 위해 노력하면 노동자 정체성이 강화될까. 난 그렇지 않았다. 어색한 코스튬을 입고 노동자의 형상을 ‘흉내’ 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 고민은 노동조합의 정체성 문제다. 교원노조의 역할이 조합원들의 민원과 분쟁을 해결하는 서비스업화, 보험 산업화되고 있다. 활동가를 ‘대신 싸워주는 자’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앞장 서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는 뜻이 아니다. 조합원들이 투쟁과 실천을 ‘나의 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 두렵다. 상담, 해결, 서비스의 언어에 묻혀 조합의 진짜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 연대와 참여 동력이 위축된다. 현장과 교육운동이 유리되고, 일부 활동가가 투쟁을 대리하는 양상이 비단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거친 제안을 세 가지 던져본다. 노동자의 '형상'에 집착하지 말자. 조끼를 입고,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팔뚝을 흔들고, 민중가요를 부르며 운동권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노동자다. 전교조는 학생을 획일적 잣대와 외양에 가두지 말고, 두발과 복장을 비롯한 신체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투쟁하는 교사는 왜 고전적인 틀에 갇혀, 하나같이 단결의 구호를 외쳐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무슨 옷을 입든, 어떤 구호를 외치든 우리는 노동자다. 산업 노동, 서비스 노동, 교육 노동의 구분 따위 자본 앞에 중요하지 않다.


‘교사도 노동자’란 투박한 구호를 생생한 언어로 살려내자. 교사의 노동은 단편적인 틀에 갇혀 있다. 참교육자, 귀족노동자, 투쟁편향, 철밥통, 교실 내 권력자, 교권침해 피해자 서사의 틀을 넘지 못한다. 이렇듯 단순한 서사만으로는 계급, 돌봄, 기후, 젠더, 인종 등 다양한 의제가 얽힌 교사노동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포착하지 못한다. 기존 운동의 틀 안에, 화석화된 운동권의 언어 안에 교사노동의 서사를 가두지 말자. 계몽하려 하지 말자. 교사의 목소리가 곧 노동자의 목소리다. 교사의 노래가 노동자의 노래다.


교사가 교육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내용’과 ‘실천’의 공간을 확보하자. 국가와 자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마른 수건 쥐어짜듯 교사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 교사의 실질 임금은 삭감되었다. 물가상승률 대비 임금상승률이 낮기 때문만은 아니다. 교사 정원 감축,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연장, 감정노동과 교육권 침해에 대한 안전장치 부재가 임금 삭감의 효과를 낳고 있다. 가부장제의 억압 속에 여성이 무상으로 수행하던 돌봄 노동은 어느새 교사의 무임금 노동으로 탈바꿈했다. 교사는 착취를 방어할 언어와 무기를 갖지 못한 채 자본과 국가 권력 앞에 속수무책 떠밀려 왔다.  


교사커뮤니티에서 병리적 형태로 돌출된 불안과 공포, 연대에 대한 반감은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일정 부분 교사의 노동 현실과 정서를 반영한다. 윤리적 비판만으로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도, 동료를 설득할 수도 없다. 교사노동에 대한 구조적 통찰, 자본과 국가의 착취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일이 먼저다. 교사노동자들이 품고 논할 수 있는 교육운동의 ‘내용’부터 보강하자. 공동체 정신 부족을 탓하기 전에 교사가 투쟁에 뛰어들 수 있는 ‘실천’의 공간부터 확보하자.


조끼를 입지 않아도 나는 이미 노동자다. 투쟁하는 교사다. 나는 빌리지 않은 언어로 교육노동을 말하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로 연대할 것이다. 교사도 노동자란 투박한 구호는 미세한 결을 품은 생생한 목소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교육노동의 다양한 서사를 포용하자. 비난과 공격을 넘어 가능성의 언어를 찾자. 학교를 민주적 공공영역으로 자리 매기고 학생과 교사에게 정당한 권력을 부여하자. 나는 내게 맞지 않는 옷을 벗고 교사의 노래, 교육의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노동자로서의 나의 길을 찾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교권 사수가 아니라 교육권 '생성'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