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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Oct 04. 2023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

2023. 08. 15.

교권 관련 여러 인터뷰를 했다. 보통은 학교 실태, 교사 고충의 심각성, 법과 제도적 대안을 묻고 답한다. 사실 지부장으로서 내 답은 정해져 있다. 간혹 고맙게도 "도대체 이 사태의 근원을 무엇이라 보는가?"라는 질문도 들어온다. 나는 주저 없이 '교육시장화 정책과 자본주의 체제'를 말한다. 90년대 말에 들이닥친 교육시장화 정책은 교육을 서비스 상품화했고 학생과 학부모를 교육 수요자, 교사와 학교를 서비스 공급자로 자리 매겼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객은 왕'이다. 고객은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때까지 끝없이 민원을 제기한다. 불량 상품을 교환하듯 담임 교체를 요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노동 배분의 공동체 질서가 없다. 노동은 철저히 사적으로 수행된다. 교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교사 혼자 오롯이 책임지는 구조의 근원에는 사실상 자본주의가 있다. 


현재 교직 사회 내부에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통제 불가한 아이들' 외에는 함구해야 한다는 압력이 상당하다. 교사정원, 교원평가, 고교학점제, 입시 경쟁 등의 주제를 다루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분위기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나는 기꺼이 그 압력을 감당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과제를 설정하고,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우리의 교육권 투쟁을 '급진성과 무관한' 생존 투쟁, 변혁적 투쟁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 마련 투쟁 정도로 설정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요구를 현실화, 구체화시키기 위한 정치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마치 그것이 전부인양, 즉 법률 개정과 민원 창구 단일화 정도로 학교가 유토피아가 될 것처럼 대중을 호도하거나, 대중의 열망을 단편적 욕망에 매몰시키거나, 혹은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듯 나 자신을 속이는 것 또한 정직하지 못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라는 흔한 구호는 아마 그런 뜻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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