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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Oct 04. 2023

교원노조의 자격

2023. 08. 25.

"교권에 반대한다"는 발언에 아연실색했다. 교육운동가, 인권운동가를 자칭하면서 이것이 얼마나 반인권적이고, 반노동적이며, 폭력적인 발상인지 정말 모르는 건가. 교사의 인권, 교사로서 노동할 권리, 교육할 권한이 '반대'할 수 있는 개념인가. 학생인권에 '반대'하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언제나 '신자유주의와 입시 경쟁 타도'를 외치는 일군의 교육 운동가들이 왜 파국의 근원을 직시하며 문제해결에 참여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본주의, 입시 경쟁, 교육시장화 정책은 학교 교육을 서비스 상품화하고, 학부모에게 소비자 정체성을 주입했다. 입시 지상주의 한국, 고객이 왕인 자본주의 체제에서 학교는 생산성과 이윤율 측면에서 학원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 저질 서비스 공급처에 불과하다. 시장논리가 만연한 학교 안의 교사와 학부모는 협력과 소통의 주체가 아니다. 교사는 평가, 통제, 관리의 대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생 인권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교육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갖춰지더라도 교육 전문성의 개념을 합의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길은 멀고 험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표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신뢰하고 협력하는 교육체제 구축이다. 이 목표를 위해 교육의 공공성, 자주성, 전문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 공공성과 전문성 확보는 사람을 죽게 하는 입시 경쟁과 자본주의의 폭주를 저지할 몇 안 되는 무기 중 하나이다. 교육권과 학습권 보장은 공공성 실현의 기본 조건이기도 하다. 생활 지도 권한, 민원 창구 단일화 같은 것들이 누군가에겐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가 최소한의 교육기관으로서 기능할 수 있으려면 걸음마부터 떼어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혼자 걷고 뛰고 장애물도 넘을 수 있다. 


활동가 공간에서 '교권을 반대한다' 와 같은 말이 한 번이라도 더 나오면 나는 절대로 참지 않을 거다. 공개 토론회를 열고 최대한 많은 조합원들을 모아 의견을 나누겠다. 그리고 지금껏 한국 교육운동 역사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전교조의 교(육)권 역량과 담론의 성장을 가로막아 왔는지, 핵심 활동가들이 교권을 어떻게 취급해 왔는지, 과잉 대표된 소수가 어떻게 대다수 조합원들의 열망과 선의 그리고 조직의 민주주의를 좀먹어 왔는지, 그리고 이를 제어하지 못한 조직의 무능이 어떤 방식으로 현재 진행형인지 낱낱이 밝히겠다. 


교권은 단순히 교사의 권리 찾기를 넘어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 공공성 확보를 위한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나는 전교조가 협소한 교권 개념에만 매몰된 조직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교사의 생존권, 노동권, 교육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와 권한조차 쟁취하지 못하는 노조는 교원노조라 말할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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